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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7/05/14 06:20:42 |
Name | 틸트 |
Subject | 5월이면 네가 생각나. |
처음이야. 올해는 네가 늦었어. 출근길에 무심코 달력을 봤는데 하필 5월이지 뭐야. 열흘이나 지나고 나서야 오월이 왔다는 걸 알았어. 오월이 왔다는 걸 알고나서야 네가 생각났어. 신기한 일이야. 보통은 말이지, 갑자기 네가 떠오를 때 무심코 달력을 보면 5월이었는데, 올해는 반대네. 오월이 먼저 떠오르고, 네가 떠올랐어. 그러니까, 올해는 네가 늦었어. 그렇다고 오월에만 널 떠올리는 건 아니야. 사월에도 유월에도 너를 떠올려. 하지만 오월은, 우리의 오월은 특별하니까. 너를 처음 만났던 5월의 어느 날은 바로 오늘처럼 생생해. 그날의 너는 사월처럼 싱그러우며 오월처럼 빛났고 유월처럼 따듯했어. 마치 칠월의 너처럼 말이야. 너를 처음 본 순간, 바로 네가 내 사람이라는 걸 느꼈어. 언제나 틀리던 내 직감이 우연히 한 번 맞았네. 그리고 우연한 한 번이 중요한 거 아니겠어. 그렇게 우리는 사랑할 수 있었으니까. 신에게 감사해. 내가 너를 만날 수 있었다니. 그리고 너에게 감사해. 내가 신과 만나 사랑에 빠진 건 아니니까. 그 시절이 정말로 꿈만 같아. 다시 네가 살아 있던 시절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정말 좋을텐데. 함께했던 짧은 시간들이 자주 떠오르곤 해. 우리는 정말 잘 어울렸는데. 보니와 클라이드처럼, 가예고 부부처럼. 내게 너는 정말 좋은 연인이자 친구이자 동지였는데. 내가 네게 연인이자 친구이자 동지였던 것처럼. 네가 커다란 눈을 빛내며 네 철학을 이야기하던 유월의 어느 밤이 생각나. 나는 그 때 네게 완전히 반해버렸어. 정말로 신기한 일이야. 완전히 반해버린 사람에게 다시 한번 반한다는 건 말이야. 그리고 정말로 신기한 일은 잊혀지지 않아. 나는 유월의 여행의 모든 장면들이 너무 생생해. 여행의 동선을 짜던 어느 새벽에서부터 여행의 절정에 이르기까지. 아니, 절정이라는 말은 적절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어. 내게는 모든 순간이 절정이었으니까. 여행의 절정에서 잠시 다투던 게 생각나. 네게도 너의 철학이 있고 내게도 나의 철학이 있었으니까. 나는 그 때 그런 게 건전한 관계였다고 생각했어. 그떄는 내가 어렸으니까. 네가 원하던 게 내가 원하던 것이었고 내가 원하던 게 네가 원하던 것이라는 걸 나는 너무 나중에 깨닫고 말았어. 내가 물러섰으면 너도 물러섰을 텐데. 하지만 이제 너는 없고 그런 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겠지. 미안함을 풀 길이 없어. 네가 이렇게 훌쩍 떠나버릴 줄 알았더라면 내가 양보했을까. 아니, 네가 이렇게 훌쩍 떠나지 않았더라도 지금의 나라면 네게 모든 걸 양보했을텐데. 내년에는 너를 생각하지 않을 거니까. 하지만 내년에도 5월은 돌아오고 나는 또 네가 생각나겠지. 작년 이맘때도 이런 생각을 한 것 같으니 내년 이맘때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될 거야. 그립다. 너를 잊지 않고 싶은데, 너를 계속 완전히 기억하고 싶은데. 솔직히 말하자면, 어떤 것들은 기억이 흐릿해. 태양이 밝던 날 네 눈동자의 색이 조금씩 변해가는 게 정말로 아름다웠는데, 그리고 작년까지는 그걸 완전하게 묘사할 수 있었는데. 그래, 정말로. 작년까지는 그랬는데. 올해는 너무 바빴어. 마치 작년처럼 말이야. 뭘 어떻게 살아갔는지 기억나지 않아. 나는 네 눈동자를 기억하는데, 네 눈동자의 색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해. 미안해. 네가 떠난 지 몇 년이 되었지. 3년, 아니 2년인가. 모든 게 흐릿해. 하지만 괜찮아. 나는 너를 기억하니까. - 이렇게 네가 떠날 줄은 몰랐는데. 너는 평소에 감정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고는 했지. 감정이 실린 진정한 예술이 될 수 없으며, 삶의 동력이 될 수도 없다고. 예술은 마치 삶이 그러하듯 그 자체여야만 한다고. 나는 네 철학에 동의하지 않아. 나는 너를 앗아간 놈에게 복수하고 싶어. 하지만 너는 그런 걸 싫어하니까 나는 참을 수 밖에 없어. 네가 살아있다면 따져 물을텐데, 너는 이제 없고 네 말만 내게 남았으니까. 하지만 나는 아직도 매일 밤, 네가 떠나던 날의 꿈을 꿔. 그 날 비가 오지 않았더라면, 그 날 너와 조금 일찍, 혹은 조금 늦게 헤어졌다면. 그랬다면 네가 차에 치이지 않았을까. 수많은 '만약'들이 떠올라. 그리고 그 만약은 존재하지 않겠지. 그리고 나는 자주 꿈을 꿔. 꿈의 끝에서, 너는 항상 차에 치여 죽어 없어져. 꿈 속에서 나는 신이 되어 비바람을 멈춰보기도 하고, 트럭 운전사가 되어 집에 일찍 들어가보기도 해. 떄로는 네가 되어 하루종일 아무 것도 하지 않기도 해. 그래도 꿈의 끝에서 너는 항상 차에 치어. 나는 미칠 것만 같은데, 그런데 또 그런 생각이 들어. 이렇게 꿈에서라도 생생한 네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건 역시 좋은 일이 아닐까 하고. 꿈에서 너는 결국 차에 치어 조각나. 그리고 조각난 너는, 우리가 함께 조각냈던 수 많은 사람들처럼, 현기증나게 아름다워. 그래서 나는 자위를 하고는 해. 그런 날 나는 네 번이고 다섯 번이고 힘차게 사정해버려. 마치 유월의 여행처럼 말이야. 우리는 예순 여덟 조각으로 잘라낸 노인의 시체 위에서 신나게 교미했지. 나는 그때 조금 화가 나 있었어. 우리가 빌린 방은 그 돈을 내기에는 좁고 더러웠는데. 너는 그런 감정을 벗어나서 우리의 일에 집중하라고 했지. 하지만 나는 계속 화가 난 상태였어. 어떻게 이런 방을 빌려줄 수 있지? 말이 되지 않잖아. 절정의 순간에 우리가 노인의 비장을 뜯어내 장난스러운 키스로 함께 잘근잘근 씹을 때도, 나는 비장의 쓴 맛을 전혀 느끼지 못했어. 그 노인에게 너무 화가 났으니까. 그리고 너는 화를 냈지. 왜 쓸데없는 일에 감정을 싣냐고. 너 때문에 쓴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고. 미안해. 하지만 이제 사과할 수도 없는 일이네. 너는 이제 없으니까. 네가 떠나버린 이후로 나는 일흔 여덟 조각으로 잘라낸 노인의 시체 위에서 자위를 해 보기도 했는데(네 도움 없이 그렇게 자르는 건 꽤 힘든 일이었어), 그래도 그 때처럼 기분이 좋지는 않더라. 작년의 일이야. 아닌가. 재작년인가. 조금 헷갈리네. 기억이 조금은 흐릿해. 작년에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그래도 내년에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내년에도 5월은 돌아오고 나는 또 네가 생각나겠지. 작년 이맘때도 이런 생각을 한 것 같으니 내년 이맘때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될 거야. 그리워, 네가. - p.s. 너를 앗아간 사람을 용서하려고 노력했어. 너는 입버릇처럼, 감정이 실린 사건은 좋지 않다고 했지. 철저하게 감정을 숨기는 것만이 우리를 숨길 수 있는 일이라고. 하지만 너 없는 내 삶은 의미가 없어. 나는 더 이상 나를 숨겨야 할 이유가 없어. 나는 내 감정을 충분히 싣고 내 행동에 나설거야. 너를 죽음에 이르게 한 놈을 죽여버릴 거야. 우리가 항상 했던 것처럼, 산 채로 조각내버릴꺼야. 마지막 숨소리를 녹음하면서. 그리고 나는 절정에 이를거야. 비록 너는 없지만. 지난 일 년 동안, 나는 그 놈을 추격했어. 그리고 이제 그 놈이 누군지 알아. 그 놈을 잘게 조각내 네게 바칠 거야. 기다려. - - - - "이 사람이 트럭기사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일까요?" 편지를 다 읽은 유 형사는 살짝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최근 12년 동안, 매년 5월 10일의 한적한 도로에서 조각난 트럭 운전사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트럭 운전사라는 걸 제외하고, 희생자들에게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었다. 별로 유명한 사건은 아니었다. 한적한 도로변에서 사람은 매일 죽는다. 트럭 운전사도 매일 죽는다. 한적한 동네에서 숙박업을 하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리고 조금 전, 순찰을 돌던 교통과 김 형사와 유 형사는 출동 지시를 받게 되었다. '순찰 권역내 교통사고 발생. 용의자 자수. 출동하여 현장을 점검할 것.' 습도와 대비를 이루는 건조한 지시였다. 그렇게 김 형사와 유 형사는 피와 비에 젖은 사내였던 육신과, 사내의 가방에서 떨어진 톱과 칼과 우비와 연습장과, 트럭과, 트럭 안에 잠든 트럭 운전사를 발견했다. 김 형사가 트럭의 열린 창문과 빗방울을 사이로 흘러나온 술 냄새를 맡으며 트럭 기사를 깨울지 말지 고민하는 동안, 유 형사는 비에 젖은 연습장을 들춰보고 있었다. 군데군데 페이지가 뜯겨진 흔적만 존재하는, 아무 것도 써 있지 않은 연습장의 가운데서 편지를 발견한 유 형사는 살짝 들뜬 목소리로 김 형사에게 그 내용을 읽어주고 말했다. 이 사람이 트럭 기사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일까요. 목소리에는 일종의 발랄한 확신이 서려있었다. 김 형사는 건조하게 답했다. "그럴지도 모르고, 상관 없는 사람일 지도 모르지. 담당 부서에서 판단할 일이야." "하지만 편지 내용이 여러가지로 이상하잖아요. 제 느낌엔 이 사람이 확실한 것 같은데." "음주운전자가 인적도 없는 곳에서 사람을 치고 자진 신고한 쪽이 더 이상하지 않나?" 유 형사는 딱히 대꾸할 말을 떠올리지 못했다. 김 형사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빗소리가 침묵을 어색하게 덮어주었다. 어색한 침묵을 걷어낸 건 두어 보금의 담배를 빤 김 형사였다. "뭐, 내 느낌에도, 저 사람이 용의자가 맞는 것 같긴 하군." 김 형사의 말에 유 형사는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다니까요. 저 사람이 트럭운전사 연쇄살인마에요. 그러니까, 내년 5월 10일에는 아무도 죽지 않겠죠?" 김 형사는 몇 보금 빨지도 못한 채 비를 맞아 꺼진 담배를 집어던지고 무표정하게 답했다. "무슨 낭만적인 소리야. 사람은 매일 죽어. 연쇄살인범 하나가 차에 치었다고 사람이 안 죽는 날이 오지는 않아. 당장 지금도 봐. 사람이 죽었잖아. 길바닥에 누워 있는 저거. 저것도 사람이라고." 유 형사는 김 형사의 말이, 마치 이 사건처럼, 혹은 오늘의 날씨처럼, 어딘가 아주 조금은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다. 멀리로 앰뷸런스의 사이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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