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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7/06/21 15:30:00
Name   tannenbaum
Subject   내가 만난 선생들 #1 - 언어학대의 장인.
나는야 따라쟁이 tannenbaum!!
하지만 나는 역으로 갈테닷!!


체벌이라는 명목으로 교사들의 폭력이 난무하던 1987년 중학생 시절 담임이었던 그 여자는 폭력선생은 아니었습니다. 남선생이고 여선생이고 애들 폭행하는 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시절이었지만... 단 한번도 아이들을 물리적으로 폭행하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아주 잔악하고 교활하게 아이들을 언어적으로 학대를 했지요.

*이해를 돕기 위한 상황설명 : 갓 재혼한 새어머니는 아버지직장인 타지역에서 살고 있었고 할머니와 우리 형제가 반지하 단칸방에 살던 시절이었습니다. 넵. 그렇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1. 학기초 학부모 면담이 있었습니다만. 아버지와 새어머는 타지에 있었고 할머님이 같이 살기는 했으나 3일에 한번씩 시골에서 올라오셔서 반찬과 빨래를 해 놓으시면 제가 도시락 싸서 학교 다니던 상황이라 아무도 담임을 찾아가지 않았었죠. 그 여자는 계속 할머니라도 오시라 재촉했지만 전 이러저러해서 못오신다 했지요. 그렇게 학부모 면담기간은 끝이 났고 3월 첫번째 시험을 치뤘습니다. 다음 날 시험 결과가 나왔고 그 여자는 저를 교탁으로 불러냈습니다.

'자 너네도 봐라. tannabaum은 부모님 이혼하고 또 재혼해 새어머니도 계신다. 지금은 할머니랑 어렵게 사는데도 이렇게 공부를 잘 하잖니? 너네는 [친]엄마가 해주는 밥 먹고 든든한 [친]아버지 밑에서 함께 살면서 뭐가 부족하다고 공부를 안하는거니? 너네도 tannenbaum 본받아서 열심히 공부해. 자 우리 어려운 환경속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tannenbaum에게 박수!!!'

2. 지금도 키가 작지만 그때도 키가 작았습니다. 당연히 맨 앞줄이었구요. 하루는 그 여자가 자기 교탁보 빨아오라 시키더군요.
'오늘은 집에 어른들 안계시는데... '
'괜찮아 다음주 월요일까지 빨아와'
할머님은 시골에 밭이며 논이며 챙기신다고 내려 가셨고 집에는 세탁기도 다리미도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전 빨래비누를 칠해가며 손으로 교탁보를 빨아 널었습니다... 하지만 손빨래가 그렇듯 교탁보는 쭈글쭈글 주름이 잔뜩 생겼죠. 제가 빨아간 교탁보를 본 그 여자는 신경질을 내며 제 얼굴에 집어 던졌습니다.
'야!! 너네집은 이렇게 지새끼 담임을 무시하냐? 빨았으면 다려와야 할거 아냐'
'.... 집에 다리미가 없어요......'
'거짓말하고 있네. 니네집은 나를 아주 개남자성기처럼 보나봐? 다시 빨아와'
'........................'
'.(혼잣말이지만 다 들리게) 참 내.. 그렇게 가난하면 애새끼를 왜 학교를 보내. 공장에나 보내지'

3. 전국 수학경시대회 학교대표를 뽑는 시험이 있었습니다. 당시 무슨 시험이든 1등부터 꼴등까지 큰 대자보에 학년반, 이름, 점수를 적어 벽에 붙여 놓았습니다. 지역 시대표 선발대회에 네명을 보내는데 제가 2등이었습니다. 그런데 6등이었던 같은 반 약국집 아들에게 대신 준비하라고 하더군요. 물론 사전에 저랑 집안 어른들과 아무런 말도 없었구요. 한참 망설이다 용기를 내 물었습니다.
'응 너네집 가난해서 육성회비도 지금 밀렸잖아? 시대표 되어도 어차피 너 서울 갈 돈 없어서 내가 00이 대신 보내는거야'
'그래도.... 저도....'
'육성회비나 가져와. 왜? 육성회비 낼돈은 없고 서울 갈 돈은 있니?
'....알겠습니다.'
'이게 다 너 생각해서 하는 일인데 그걸 왜 모르니? 이래서 집안교육이 중요한거야. 너 뭐하니? 신경 써줘서 고맙다고 인사해야지'
'... 감사합니다....'

아마 이때쯤일겁니다. 제가 공부에 손을 놓은게요. 이후 고2때까지는 공부를 안했었죠. 100프로 그 여자때문만은 아니지만 참 고마운 여자입니다. 초중고 12년 동안 12명의 담임과 많은 선생들을 만났지만 스승은 고사하고 교사같은 인간을 한번도 만난적이 없는 사람으로 좋은 스승들 경험담 들을때마다 좀 많이 부럽습니다. 지지리 복도 없지.....  다음편엔 조현병 선생에 대해서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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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빡친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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