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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7/08/24 20:49:00
Name   알료사
Subject   민망한 재회
한 9년 전쯤인가..

회식에서 필름이 끊길 정도로 과음을 한 저는 이쁘장한 타 부서 여직원을 집까지 쫄래쫄래 따라가는 추태를 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필이면 아파트 앞에서 그분의 아버님까지 뵙고 인사까지 했다더군요..

다행히 큰 실수는 안했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인사를 하고 귀가하는 제 뒷모습이 위태해 보였었는지 그 여직원분이 근처 응급실로 저를 데려다 놓고

다른 동료 남자직원에게 연락을 해서 저를 좀 챙겨달라고 부탁까지 하고 갔다 하더라구요.

이 모든 것을 다다음날 출근해서 제 3자로부터 전해들었는데 나는 전혀 기억이 없다고 극구 부인했으나

어쨌든 나 자신 응급실에서 정신을 차린건 확실하고 승용차 안의 모르는 어르신에게 90도 폴더인사를 했던게 어렴풋이 기억나고

결정적으로 제가 휘청거리며 도로변을 걷고 있을때 그 여직원이 필사적으로 저를 잡아주었던 장면이 또렷하게 기억나면서 수긍을 할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게 아마 그분 집에서 응급실로 가는 길이었던거 같아요..  

그분은 1년 정도 더 일하다가 결혼을 하면서 퇴사를 하고 간간히 건너건너 요새 이렇게 산다더라 ~ 하는 소식이 들리는게 전부였는데


그 여직원이 9년이 지난 오늘 제 업무와 관련이 있는 개인적인 부탁이 있다며 직장으로 찾아왔습니다.

직접 저한테 부탁한것이 아니라 저보다는 더 친분이 있는 다른 동료에게 먼저 부탁을 해서

그 동료가 저에게 "예전에 ㅇㅇ부서 있던 ㅇㅇ씨 알죠? 그사람 부탁이에요"라고 미리 언질을 준 이후에..

그분의 이름을 다시 전해듣는 순간 까마득한 기억 저편에 있던 흑역사가 재생되면서 오그라드려는 손발 진정시키느라 혼났습니다..

그래도 약간의 설렘과 함께 어떤 식으로 재회를 할까 상상하며 기다렸습니다..

"잘 지내셨어요? 저 몇년 전에 퇴사한 ㅇㅇㅇ인데 기억하시겠어요?"  뭐 대충 이런 식으로 인사를 나누겠지.. 하고..

그런데 막상 두어시간 후 저한테 다가오는 그분 얼굴을 보는 순간에 바로 알아보겠더라구요..

그래도 혹시나 싶어서 "아~ ㅇㅇㅇ씨죠? 오랜만이에요!" 하고 확인을 하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말이 안나오고 그분이 완전히 제 앞에 다가와 서게 될때까지 빤히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어요.

그분도 시선 안피하고 별다른 인사말 없이 저를 쳐다보면서 한 1초 정도 서있었구요.

제가 "아....... 훗! ...ㅋㅋㅋㅋㅋㅋ" 하고 먼저 웃음이 터졌고 그분도 웃더라구요 ㅋ

신기하게 그 9년 전 흑역사의 그날이 바로 어제였던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모르긴 해도 그분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아마 살면서 저를 추억하는 순간이 한번이라도 있었다면 그때 그날의 일로만 떠올렸었겠지요 ㅋ

인사따위는 생략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필요한 일 해결하고 작별했습니다.

웃을 때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해지는게 새삼 세월이 지났음을 상기시키고 아련해지더군요..  아마 내 얼굴도 그렇게 보이겠지.. 하는 생각도 들고..

저정도면 꽐라되서 따라갈만 했네.. 하는 생각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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