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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7/10/02 23:05:52수정됨
Name   눈시
Subject   삼국통일전쟁 - 10. 황산벌 전투

황산벌 전투 하면 브금은 역시 이거겠죠? (...)


진지하게 가려면 이걸로 ( '-')

"어라하! 산동성을 출발한 당나라 배들이 시방 인천 앞바다 덕물도에 닻을 내려부렀어라!"
"당나라 배가 정확허니 일천팔백오십팔척이고, 배 한척당 대충 칠십명쓱 타고 있스니께, 군사으 쪽수가 무려... 무려... 허벌나게 많당께요!"



"당군의 지휘관은 고구려를 침공할때기 대활약을 혔던 소정방이라고 허요."

소열, 자는 정방, 우리에겐 소정방이라고 잘 알려져 있죠. 원래부터 이런저런 활약을 하던 무장이었지만 그의 능력을 제대로 보여준 건 환갑을 넘은 650년대 중반부터였습니다. 대기만성이란 말이 참 잘 어울리는 사람입니다. 655년부터 동으로는 고구려를 치고 서로는 서돌궐을 치면서 맹활약했죠. 657년에는 다시 서돌궐을 쳐서 멸망시켜 버렸고, 659년에 철륵(중앙아시아의 돌궐 외에 다른 투르크계) 계열의 사결이란 나라가 덤비자 역시 없애버립니다.

이렇게 당시 최고의 전공을 보여 준 그가 백제 공격을 지휘하게 된 건 당연한 거였죠.

이미 고구려와의 싸움을 통해 한반도로의 상륙전을 경험해 보긴 했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는 적국인 고구려 영해를 지나거나 원해에서 곧바로 한반도 남부로 가야 했죠. 어느 쪽이든 여러 번 할 수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한 방에 끝내야죠. 그걸 위해서 백제를 충분히 멸망시킬 수 있는 대군을 준비했습니다. 무려 13만이 바다를 건넜죠.

신라를 위해 한 원정이었지만 신라가 없었다면 당에게도 큰 무리수였습니다. 덕물도는 현재의 덕적도, 신라가 한강을 악착같이 지켜냈기에 여기서 만나서 작전을 짤 수 있었습니다. 고구려와 백제의 배후에 신라가 있기에 적들에 제2 전선을 강요할 수 있었고, (이 원정에서야 없었지만) 안 되면 신라의 구원을 기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신라를 고구려에 대한 공격에 집중할 수 있게 함은 물론 당군 자신(+ 항복한 백제군)도 남쪽에서 고구려를 공격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작전이었죠. 의자왕이 당에 매달리는 신라에 대한 공격을 계속 했으니 명분도 충분했습니다.

물론, 당이 백제 땅을 신라에게 주려고 한 건 절대 아니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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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하! 신라군들이 쭉 늘어선 기럭지를 본께로 대충 그 오만은 되겠어라."



"이번 출정에는 김유신이가 나섰고, 김춘추, 김법민이도 함께 출정을 했다고 허요!"

김유신, 신라 최고의 명장이죠. 가야 왕족 출신으로 진골이지만 족보도 없는 가야 출신 개빽다구 대접이 같을 순 없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김서현은 진흥왕의 조카인 만명부인과 결혼할 때 반대를 받았고, 사랑의 도피를 했다고 합니다. 서동 설화의 모티프가 무왕이 아니라 이게 아니냐는 설도 있었죠.

뭐 그렇다고 그게 아예 무시당한 건 아니었습니다. 김서현의 아버지(이자 금관가야 마지막 왕 구형왕의 아들) 김무력은 진흥왕 아래에서 정말 맹활약을 했습니다. 진흥왕이 세운 비석 5개 중 단양적성비와 창녕척경비에 이름이 나올 정도죠. 김서현도 결국 ㅣ인정받았는지 제법 무공을 세운 것으로 나옵니다.

삼국 이외엔 가장 잘 나갔던 금관가야, 충분히 약해진 상황이라 해도 그 나라를 직접 갖다 바쳤으니 대놓고 천시할 순 없었지만 그래도 정통은 아니었으니 꽤나 단단한 유리천장이 있었다... 뭐 그렇게 생각하면 되겠죠.

난세인 게 다행인 점은 있었습니다. 능력의 비중이 커지니까요. 적의 위협이 적당했다면 무력-서현-유신이 무공으로 성장할 수 없었겠죠. 법흥왕 이후 왕권을 강화하며 기존 귀족을 견제하기 위해 가야계를 중용했던 걸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시대는 잘 만난 거고, 그 기회를 아주 잘 잡았죠.

김춘추와의 결혼동맹에서 볼 수 있듯, 그는 순수한 무장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정치력으로는 한국사의 명장들 중 최고였죠. 사람부터 아주 잘 골랐습니다. 능력도 능력이었고, 진지왕의 후손이라는, 왕위계승순위가 아주 높지만 약간 부족했던 사람이었으니까요. 여기에 삼국통일에서 신라의 역할을 강조하기 위해 띄워진 측면도 있을 겁니다. 나당전쟁을 벌이면서 그럴 필요성은 더 커졌구요.

그렇다고 그가 별로 잘 싸우지 않았는데 정치력만으로 띄워졌다고 볼 순 없습니다. 물론 포장이 엄청 많죠. 삼국사기 열전에서 무려 혼자 3권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것도 김부식이 빼고 또 뺀 거였습니다. 온갖 무협지스러운 얘기는 물론이고 본기와도 맞지 않은 얘기가 많죠. 이래서 열전의 내용은 이런 일화가 있다... 정도밖에는 얘기할 수 없구요. 본기를 봐도 김유신이 저렇게 잘 싸우는데 신라는 당하기만 하고 있죠. (...) 하지만 그는 선덕여왕 때부터 알천을 대신해 신라의 마지막 방어선을 맡았습니다. 단순히 정치력이 높다고 맡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죠. 그가 단순히 구원투수 노릇만 한 게 아니라 백제에 대한 역공도 했었구요.

선덕여왕 말 진덕여왕 초인 647~649년에 특히 그의 활약이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비담이 난을 진압한 후, 신라의 혼란을 노린 백제군에 맞서서 승리를 거뒀죠. 649년에는 백제군에게 성 7개를 뺏기자 반격에 나서서 장수 1백명, 군졸 8천 9백 8십명의 목을 베는 대승을 거둡니다. 당에 굳이 사신을 보내서 알릴 정도로 대승이었고, 655년까지 백제의 공격이 없었습니다. 잃은 성을 되찾았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군공은 확실히 있었던 거죠.

+) 647년의 전투에서 반굴과 관창이 생각나는 비령자와 거진의 돌격이 나옵니다. 신라군이 불리하자 비령자에게 나라에 충성할 기회라고 했고, 비령자는 아들 거진에겐 살아서 가문을 이으라는 유언을 남긴 후 돌격했죠. 그의 종 합절이 이걸 전하려 했지만, 거진은 유언을 듣지 않고 어찌 자기만 살겠냐면서 돌격합니다. 그리고 합절도 돌격하죠 (...) 이들의 결사돌격과 전사로 신라군이 분기탱천해서 백제군을 이겼다고 합니다.

백제와 고구려의 멸망의 주력이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 당군입니다. 하지만 그 긴 시간 동안 김유신은 신라를 악착같이 지켜냈습니다. 그렇게 많은 공을 세웠기에 백제와의 전투를 계속 맡을 수 있었고,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는 큰 역할도 그가 맡을 수 있었던 거죠.

이제 그에게 백제의 중심을 공격하라는 대임이 주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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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민이는 자랑스러운 대신라국의 왕이 될 거고, 우리는 끝까지 법민이를 도울 끼다."

김법민, 김춘추의 첫째로 훗날 문무왕이 되는 신라의 태자입니다. 김유신이 외간남자의 애를 밴 여동생을 불태워 죽이려 했을 때 배 속에 있었던 아이죠 (...) 이 때 그의 나이 35, 당나라에도 갔다 오는 등 정치나 외교 부분에선 이미 활약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다만 전쟁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으로 보입니다. 애초에 대장은 김유신이고, 그는 태자가 직접 나섰다는 상징적인 역할이었죠. 또한 당과 백제를 상대로 아버지인 왕을 대신하는 역할이었구요.



"그 다음이 바로 나, 김인무이" (...)

김인문, 김춘추의 둘째입니다. 우리 역사에서 숨겨진 명외교관이라 할 사람입니다. 당태종이 김춘추를 마음에 들어했듯 그는 당고종의 마음에 들었다 합니다. 이 때 그는 13만이나 되는 당군을 이끌고 돌아왔죠. 다만 부대총관으로 임명돼서 그냥 총관인 아버지보다 서열상 위였다는 거 (...) 이래서 황산벌에선 당을 더 중시하는 캐릭터로 나옵니다. 강대국에서 잘 나가면서 고국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풍자하려고 만든 거고, 인물 단위로 보면 황산벌의 가장 큰 왜곡이라 할 만 합니다. 오히려 평양성에서 둘 사이에 끼어 고생하는 모습이 실제 김인문과 비슷할 겁니다. 아무튼 그를 굳이 김춘추보다 위로 했다는 점에서 당의 방침이 어땠는지를 볼 수 있죠.

http://lyuen.egloos.com/5533955

아래를 보시면 당시 동원된 신라 장수들을 토대로 신라군의 동원이 어떻게 됐는지를 분석한 부분이 있습니다. 경상도 병력이 중심인 걸 알 수 있죠. 경기도 쪽의 병력은 고구려를 막기 위해 남겨둘 수밖에 없었고, 그걸 빼고도 5만을 만든 것입니다. 정말 영혼을 끌어모은 한 타 병력인 거죠. 이 대병을 굳이 경기도 이천까지 끌어올리는 페이크를 보여주기도 했구요. 황산벌에서는 이를 쌀배달로 묘사하지만, 당군은 충분한 보급품을 들고 왔고 애초에 보급은 해로를 이용하는 게 훨씬 낫죠. 쌀배달은 이후 고구려와의 전투에서 나옵니다.

이전처럼 백제의 뒷치기를 걱정하면 안 됐습니다. 백제와의 전투에서 신라의 지분을 늘리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정예병을 동원해야 했습니다. 경상도 방면은 김춘추 그 자신이 상당히 소수일 병력만을 이끌고 백제군을 견제했죠. 그리고 뒷치기를 걱정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바닷길로 무려 13만이나 되는 당군이 오고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신라군은 7월 10일 사비성 도달을 목표로 진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 앞에 백제군이 나타났습니다. 그 수는 단 오천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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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목표가 고구려여" 아님 백제여?"

백제 측에 이 소식이 전해진 게 언제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시간대가 좀 나와 있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알고 난 다음에는 갑론을박이 계속 벌어집니다. 충격도 충격이지만, 대체 연합군의 목표가 어디냐도 문제였을 겁니다. 굳이 이천까지 올라갔다면 당군이 당항성에 상륙한 후 경기도에서 직접 남하할 수도 있었으니까요. 사료에야 안 나와 있지만 고구려를 남쪽에서 치려는 거 아닌가도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는 상황이었구요. 현실도피를 위해서도 말이죠.

일단 당군은 바다로 오고 신라는 탄현 넘어서 오는 정도의 정보는 모아진 모양입니다. 애초에 성충이 말했듯 나당이 쳐들어온다는 주장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기벌포와 탄현이 적이 올만한 요충지라는 것도 백제에서 파악은 하고 있었을 겁니다. 그러니 논의도 그것을 중심으로 진행됐겠죠. 그렇다면 어떻게 막아야 할 것인가가 문제였습니다.

좌평 의직 - 당군은 바다를 건너와서 피곤할 것이니 상륙한 직후 공격해야 함. 당군을 이기면 신라는 저절로 돌아갈 것임
달솔 상영 - 당군은 멀리서 와서 빨리 싸우려 할 것이니 빨리 맞서면 안 됨. 최대한 방어만 하면서 신라부터 깨뜨려야 함

이렇게 주장이 갈렸죠. 공통점이 있다면 둘이 합류하게 하면 안 된다는 것, 그리고 신라는 만만하다는 것 (...) 이었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주력을 어디로 보낼 것이냐였고, 고민할 수밖에 없는 거였습니다. 결국 의자왕은 귀양보냈던 흥수에게까지 의견을 묻습니다. 흥수는 백강(혹은 기벌포)을 지키고 탄현을 지켜서 진입을 막자는 거였습니다.

헌데 대신들은 흥수가 벌 받고 있으니 왕을 원망할 거라면서 그 말을 듣지 말자고 합니다. 이 [대신들]의 말은 위의 의직, 상영의 말과도 다릅니다. 적을 백강 안으로 들이고 탄현을 넘게 해서 좁은 곳에 들어오게 한 후 일망타진하자는 거였습니다. 의자왕은 이게 옳다고 여겼다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적이 백강 안으로 들어오고 탄현을 지났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이에 의자왕은 우선 신라군 쪽에 병력을 보내죠. 탄현을 넘은 다음 신라군의 진로는 뻔했습니다. 황산벌이었죠.



"계백아, 니가 거시기 해야겄다."

여기에 파견된 이는 좌평 충상, 달솔 상영, 그리고 달솔 계백이었습니다.

좌평은 백제 16관등 중 제 1관등으로 정원은 6명이었습니다. 의자왕이 자기 자식 41명을 좌평으로 만들었으니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긴 했겠지만 (...) 그래도 백제의 최고위급이라는 건 맞겠죠. 달솔은 그 다음, 정원이 30명이었습니다. 백제의 중앙 5부 지방 5방의 장인 방령은 달솔이 임명됐다 합니다. 계백은 그 달솔이었죠.



"살아서 치욕을 당하느니 명예롭게 죽어야제."

그 김유신을 고전시킨 인물이지만 나오는 건 황산벌 전투 뿐, 기록만으로만 보면 정말 굵고 짧게 갔습니다. 하지만 별 거 아닌 인물이 이런 중책을 맡을 리가 없죠. 하지만 그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는 알 수 없을 겁니다. 그 외의 기록이 없으니까요. -_-a 일단 신증동국여지승람이나 대동지지에는 사비 출신에 부여씨라 합니다. 역사서가 아닌 지리서지만, 이거라도 믿고 가야죠. 그렇다면 높은 귀족이긴 했나 봅니다.

하나 더 추측해 볼 수 있는 건 이전에 있었던 의자왕의 숙청에서 살아났고, 황산벌 전투의 주장이 될 정도로 신임을 받은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부여씨 중에서도 좀 밀리는 쪽이었다가 의자왕의 측근으로 힘을 얻게 된 게 아닐까 할 수 있는 거죠. 죽을 게 뻔한 싸움, 처자식을 죽일 정도로 그걸 뻔히 알고 있었음에도 간 걸 보면 말이죠. 온달 같은 느낌이 나긴 합니다. 물론 의자왕이고 뭐고 백제에 충성한 천상 군인일 순 있겠지만요.

애초에 백제의 장수는 물론 신하들에 대한 기록이 너무도 부족합니다. 계백이 그 사이에서 어떤 위치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죠. 이 전쟁 전에 나온 것도 상영과 의직 뿐입니다. 이전에 대야성을 점령한 윤충도 보이지 않죠. 살아 있었다면 신라에서 가만히 두지 않았을 테니 의자왕이 숙청했거나 늙어 죽었을 것 같습니다. 이 전쟁에서도 상영은 그래도 계백과 같이 갔지만 의직은 역시 없습니다. 조선상고사에서는 의직이 당군에 맞섰고 전사한 걸로 나옵니다만 역시 신빙성이 적죠.

뭐 이렇게 정체를 알 수 없는 게 계백이긴 합니다만... 어쨌든 이런 중요한 위치에 보낸 걸 보면 당시 백제 장수 중에 못해도 2~3선발은 됐겠죠. 소수 병력만으로 보낸 걸 보면 에이스일 수도 있구요. 결국 계백이 패하긴 했지만, 그 이름만큼은 지금도 지울 수 없을 정도로 강하게 남기긴 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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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당연합군의 진격에서 황산벌까지... 기록이야 남아 있지만 분석할수록 물음표만 붙습니다.

백제가 연합군의 진격을 알게 된 건 언제일까요? 왜 탄현과 기벌포를 넘을 때까지 대응이 없었을까요? 여기서부터 얘기가 나뉩니다. 삼국사기의 기록만 보면 갑론을박만 하다가 시간을 버린 것처럼 보입니다. 탄현과 기벌포를 막는다는 정답이 있었음에도 그걸 선택하지 않은 것으로 말이죠.

하지만 다른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가령 병자호란의 인조처럼 소식을 들은 게 너무 늦었다면? 그런 것치곤 연합군의 진격속도가 그리 빠른 건 아니었지만요. 그래도 이렇게 본다면 뭔가 결정을 하려는 가운데서 이미 너무 늦은 상황이라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은 게 되겠죠.

상영, 의직부터 흥수를 욕하는 대신들의 주장까지 최대한 타당성이 있는 걸로 보기도 합니다. 탄현 기벌포에서 막는 게 확실한 정답은 아닌 걸로 보는 거죠. 그렇게 되면 그렇게 시간을 끈 게 실책이긴 해도 비교적 어쩔 수 없는 게 되니까요.

일단 결과야 나와 있습니다. 계백은 가족을 죽이고 나옵니다. 니는 누가 시키가 니 가족을 몰살시킸는갑제? 으이? 전투를 시작하기도 전에 말이죠. 그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이었다는 거죠. 우리가 여기서 다 죽을 정도로 싸우면 백제에 유리해진다, 그러니까 시간을 벌자는 의도일 수는 있습니다. 반면 어차피 끝났지만 우리는 백제에 충성을 다 하고 죽자일 수도 있겠죠. 어느 쪽이든 뒤를 돌아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좌평 하나에 달솔 둘, 오천명이라는 수에 비해 이름값이 너무도 큽니다. 이렇게 높으신 분들이 너희들과 싸운다, 너희들과 함께 죽을 것이다... 이런 게 아니었을까요. 병사들도 이 정도 급이 이끌만하긴 했을 겁니다. 백제가 바로 동원할 수 있는, 대군에 맞서 소수로도 버틸 수 있는, 끝까지 싸울 충성심을 가진 병력이라면 백제의 중앙군이었겠죠.

황산벌 전투에 비해 주목이 너무도 떨어질 뿐, 백제군은 당군도 요격했습니다. 깨졌지만 말이죠. 그 병력이 제대로 안 나와 있지만 계백에게 보낸 것보다야 병력이 훨 많았을 겁니다. 이들이 주력이었을 거구요. 그렇다면 계백의 오천 결사대는 그런 당군에 맞서는 동안 시간을 벌기 위한 병력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시간을 벌어야 될 결사대의 대장이 뒤는 이미 없다는 모습을 보여줬으니... 이게 백제 전체에 퍼진 거라면 정말 죽어라 싸우다 죽자였을 거고, 다른 이들은 그나마 낙관했는데 그만 그랬던 거라면 나름 혜안이 있었다고 할 순 있겠네요.

이렇게 본다면 계백은 별다른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급히 출발해서 열배의 병력을 상대로 버틴 게 됩니다. 그가 버틴 하루를 얼마나 크게 보느냐에 따라 주장이 갈릴 부분이죠. 하루라도 버틴 걸 대단하게 본다면, 아무런 준비 없이 급하게 갔다기에는 어색한 부분이 있죠. 이래서 연합군의 진격 사이에 있는 한 달이 좀 넘는 기간 동안 황산벌이 전장이 될 걸로 보고 방어 준비를 해 놓은 걸로 보기도 하죠. 이렇게 되면 탄현은 정말 일부러 포기한 게 되구요.



"우린 명색이 결사대여. 아 결사대가 일당 십도 못 혀?"

자... 복잡한 얘기는 나중에 다시 얘기하죠. 아무튼, 계백의 결사대는 신라를 요격하러 갑니다. 황산벌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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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상과 상영이 있음에도 계백이 대장으로 보이는 건, 앞의 둘이 얼굴마담이어서 그랬겠죠. 그래도 각기 군을 이끌긴 했는지 세 개의 진영으로 나뉘어서 신라군을 기다리게 됩니다. 이래서 오천 곱하기 삼 해서 만오천이 아닐까 하는 주장도 있지만, 사료에 오천으로 나와 있으니 이 쪽이 정설이죠.

평야, 황산벌[판]으로 들어왔다는 거죠. 여기서 오천 명이 오만 명을 막았다는 겁니다. 이래서 말이 황산벌이지 평지가 아니라 산성 세 곳에서 막은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 후보가 되는 산성들 - 황령, 산직리, 모직리 산성 - 도 있구요. 반면 벌은 벌, 성에서 막은 게 아니라는 주장이 맞서죠.

전 후자 쪽이 맞다고 봅니다. 성을 잔뜩 쌓아서 방어하는 거야 삼국부터 조선까지 이어지는 유서 싶은 전략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때는 어울리지 않죠. 나당군은 성 하나하나를 점령하면서 간 게 아니라 사비성으로 직공했습니다. 계백이 산성에 들어갔다면 최대한 무시하고 갔을 겁니다. 거기다 막기에만 급급한다면 신라군이 백제 결사대를 전멸하기에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겁니다. 기록에 진영을 세웠다고 하고, 반굴과 관창이 싸우다 죽은 걸 보면 백제군이 막기만 한 건 아닙니다.

이래서 산성을 세웠다는 쪽도 (후보가 되는 산성도 그리 높지 않고) 방어에 큰 이점이 있는 산성은 아닌 걸로 보고, 방어만 한 건 아닌 걸로 봅니다. 벌판에서 싸웠다는 쪽도 평야래도 그나마 높고 험한 곳이었던 곳으로 보고 있죠. 어느 쪽이든 백제군은 막는 것 뿐 아니라 신라의 우회도 막아야 했습니다. 그 곳에서 이기는 게 아니라 사비성으로 가는 것 자체를 막아야 했으니까요. 자기들의 목숨을 바쳐서 말이죠.

신라군은 네 차례 공격을 벌입니다. 실제로 어느 정도였을지는 제대로 나와 있지 않습니다. 셋으로 나뉘어져 있었으니 하나씩 공격한 걸 수도 있고, 세 곳을 한꺼번에 공격한 게 네 번이었을수도 있죠. 사비 공격에 쓸 힘을 아껴둬야 하니 적당히 공격했을 수도 있고, 시간을 맞춰야 하니 죽어라 했는데 막혔을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사비성이 얼마 안 남았는데 계획이 틀어져 버렸습니다.

흠순아, 품일아, 우짜겠노. 여까지 왔는데. 결국 김유신은 다른 카드를 꺼냅니다. 결사대에 맞서려면 우리 쪽에서도 목숨을 걸었다는 걸 보여줘야죠. 그것도 고위층의 목숨을요.





"아부지, 내는 길게 살고 싶다."

첫 번째로 간 건 자신의 조카, 동생 김흠순의 아들인 김반굴이었습니다.

+) 김유신의 조카이자 사위라는 건 화랑세기에 나오는 거라 재밌긴 하지만 딱히 - ,-)



"아부지, 이거 진짜로 개죽음 아이지예?"

그리고 김품일의 아들, 열여섯 살 김관창이었습니다.



"니가 화랑이가? 니가 화랑이냐꼬?"
"알았다카이. 가서 콱 디지뿔면 될 거 아잉교?"

거기다 관창은 나이가 어리다고 보내줬는데도 다시 가서 죽는 드라마틱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래서인지 흐르는 역사에서 황산벌의 계백에 맞서 싸운 건 반굴도 흠순도 품일도, 심지어 유신도 아닙니다. 관창이었죠.

자, 이렇게 높으신 분, 그것도 어린 분이 가서 목숨을 바쳤는데 니들은 어쩔래? 저 원수들을 그냥 둘 거가?

의자왕은 오천명의 저승길 길동무로 좌평 하나와 달솔 둘이라는 높으신 분들을 보냈습니다. 그들이 시간을 버는 게 백제에겐 그 정도로 중요했죠. 김유신은 그들을 뚫기 위해 자신의 조카를 비롯한 신라 최고위층의 아들 둘을 보냅니다. 그 정도로 신라에게, 그에게 중요한 전투였다는 거겠죠.

계백의 결사대는 그렇게 하루를 버텼습니다. 이후의 역사에 별 영향을 주진 못 했지만, 신라와 김유신에게는 너무도 안타까운 하루였겠죠. 이제 더 이상 시간을 끌 순 없었습니다. 두 화랑이 만들어 준 분위기를 바로 이어가야 했습니다.



"전쟁은 미친 놈들 짓인 기야."



"개 같은 놈의 시상, 죽자. 죽어불자!"

그렇게 신라군은 마지막 공격을 감행합니다. 백제군은 이를 막지 못 합니다.



"와 이리 덥노?"



"겁나게 덥구마이"

그렇게 백제의 마지막 불꽃, 황산벌 전투는 끝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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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벌 전투에 대한 서술은 참 드라마틱합니다. 하지만 전투의 정확한 상황을 알기엔 너무 간단히 기록돼 있죠. 이 시대의 전투들이 다 그렇지만, 워낙에 중요한 전투라 아쉬움이 남는 부분입니다.

이래서 전투를 분석할 때 이런저런 창작이 많이 들어갑니다. 위에서 쓴 전투 전의 상황부터 전장이 어디였는지, 어떻게 진행됐는지 말이죠. 백제가 이긴 네 차례의 전투부터가 그렇습니다. 신라본기, 백제본기, 계백, 관창의 열전들에서 뉘앙스가 약간씩 다르기도 하구요. 백제가 정말 잘 막아냈다는 것처럼 나오지만 그저 신라군이 백제군을 뚫고 진격하지 못 했기에 백제가 이긴 걸로 적은 걸 수도 있습니다. 그 사이에 백제군의 피해가 누적된 거야 당연한 것일 거고, 세 개의 진영 중에 한두개는 먹혔을 수도 있죠. 최후의 전투 역시 반굴과 관창의 희생을 강조하기 위해 그렇게 기록됐을 뿐, 백제군의 피해가 누적되고 신라군은 피해을 신경 안 쓰고 총공격을 했기에 그렇게 된 것일 수도 있구요.

반굴과 관창의 돌격도 그렇습니다. 단기돌격은 확실히 아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그냥 죽으라고 보낸 건 의문이 듭니다. 관창의 열전에는 어린 나이지만 부장을 맡았다고 돼 있고, "적은 많고 아군은 적어서" 생포됐다고 나옵니다. 감동적인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 4번째 공격이 끝나고 돌격했다고 돼 있을 뿐 3, 4번째에서 선봉을 맡아서 죽은 걸 수도 있고 소규모나마 5, 6번째 공격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일부 부대끼리 싸우는 거야 전투에서 당연히 있는 일이고, 소수 특공대로 유리한 지점을 차지하는 것 역시 그렇죠. 그 척준경이 소수로 간 게 죽으려고 간 건 아닐 거잖아요.

다만 불리한 상황이더라도 후퇴하지 말라고 한 건 맞겠죠. 그 유명한 임전무퇴, 고위층의 자식이 그걸 보여준 효과야 확실하니까요. 잘 되면 그들이 앞장 서서 공을 세운 것이고, 못 되도 그들이 먼저 죽은 거였습니다. 그들 역시 이런 사실을 알고 갔을 거구요.

신라에게 좋은 전투는 아니었을 겁니다. 계백이 얼마나 잘 싸웠든간에 십대 일의 전투였고, 하루를 늦어 버렸으니까요. 김유신의 열전에 이 전투가 생략된 것만 봐도 자랑할 전투는 아니었다는 건 알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결국 신라가 승리했고, 사비성으로 진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계백과 같이 죽으라고 보냈던 충상, 상영은 포로로 잡혔고, 항복했죠. 이후 그들은 신라의 6두품 급으로 등용돼 대 백제전에 다시 동원됩니다. 뭐 전쟁에 진 이상 죽으라고 하긴 그렇지만 단 20명밖에 안 됐다는 결사대의 생존자들을 생각하면 좋게 볼 수는 없겠습니다.

계백은 그렇게 하루를 버텼습니다. 그게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백제는 그 하루도 제대로 이용하지 못 합니다. 바다를 건너 온 당군에 속절없이 밀려버렸죠. 계백이야 이런 상황을 예상했겠지만요. 그가 죽은 후 열흘도 안 돼서 백제가 망할 거라고까지는 예상 못 했을 것 같긴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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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기다리셨습니다 (__)

다음 편에는 백제의 멸망까지 가면서... 이런저런 분석을 더 해 보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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