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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7/11/20 17:02:51
Name   리니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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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춘몽 (A Quiet Dream, 2016)


- 장률 감독

장률은 제중 동포 출신의 감독입니다.
과거 연변 대학교를 졸업하고 교수를 역임하였고, 1986년 소설가로 등단하였습니다.
그 후 <11세>라는 단편을 통해 베니스 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랐고, 이후 감독으로써의 길을 가게 됩니다.

그의 작품 초기엔 디아스포라, 경계, 유목민, 이방인 등 조선족 출신이라는 특수성을 영화 내내 투영하는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각박한 그의 삶과 환경들의 그의 작품 세계에 내포되었습니다.
하지만 <두만강> 이후 그의 작품은 전작에 비해 가벼워졌고 단숨에 읽어내리는 듯한 호흡의 이야기를 펼쳐내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유인즉 한국에서 교수 생활을 하며 영화를 찍기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거니와 환경도 많이 나아졌기에 과거에 비해 더욱 가벼운 이야기로 영화 만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 촬영동기

평소 장률 감독은 박정범, 윤종빈, 양익준 세 사람은 술자리를 자주 했답니다.
몇 년 전부터 이 세 사람이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를 찍으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농담을 주고받곤 했었답니다.
어느덧 이 농담은 진담이 되어 스케줄을 맞춰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가장 한가한 3, 4월 봄에 찍기로 하였고 감독이 자주 찾는 공간인 수색동을 흑백의 공간 속으로 인물들을 채워 넣게 되었습니다.

영화의 가제는 <삼인행>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배우 한예리가 뮤즈로써 영화에 등장하여 <삼인행>이라는 제목이 수정되어 <춘몽>으로 바뀌게 되었고, 이 제목은 촬영 기간과 각 인물들의 조화, 동양권에서 생각하는 그 뉘앙스를 모두 내포하게 되었습니다.




- 네 인물

양익준, 박정범, 윤종빈 모두 첫 장편 데뷔작을 감독하였고 배우로써 출연하였습니다.
똥파리, 무산일기, 용서받지 못한 자 모두 국내 평단과 관객에 매우 큰 호평을 받은 작품이었죠.
영화를 꿈꾸는 많은 이들에게 이 감독들은 스타이자, 히어로나 다름없습니다.
이런 익숙한 인물들의 등장이 꿈과 같은 독특한 구성을 가진 영화의 이해를 도왔다고 생각합니다.

한예리 또한 새로운 캐릭터가 아닙니다. <푸른 강아 흘러라>에서 연변의 조선족 인물을 가져왔습니다.
이렇듯 춘몽에서 나오는 주요 캐릭터들 각자 영화에서 존재하던 인물들의 질감을 끌어왔고, 이것은 장률 감독이 의도한 지점이기도 합니다.




- 이준동 (예리 아버지 역)

영화감독 이창동의 친동생이자 나우필름, 파인하우스필름 제작사의 대표입니다.
늦은 나이에 영화 제작에 뛰어들었지만 한국에선 칸에 가장 많이 가본 제작자이기도 합니다.
장률 감독이 이창동 감독과 워낙 친하기 때문에 이준동 제작자와도 인연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런 이유로 춘몽에선 식물인간이자 친딸 예리를 고생시키는 인물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영화가 흑백일 때는 몸도 가누지 못하고 누워있으면서 예리의 삶을 힘들게 합니다.
하지만 영화가 색을 되찾는 순간 유일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나며 영화에 중요한 방점을 찍어주게 됩니다.
쉼표 수준의 작은 역할이라 볼 수도 있지만 이준동 제작자가 이 영화에 출연함으로써 이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지평이 넓어질 수 있었습니다.




- 신민아, 유연석, 강산에, 조달환, 김의성

특별출연이 화려합니다.
일반적이지 않은 서사로 전개되는 이야기 속에서 대중적으로 유명한 배우들의 등장합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춘몽> 은 파편적인 이야기로 구성되어있습니다. 그러한 구성 속에 익숙한 배우들의 모습을 잠깐씩 보여주게 됩니다.
이는 마치 이해하기 어려운 현대음악, 또는 예술의 흐름에서 대중들이 친숙한 악기가 소리를 내며 낯선 형식의 이해를 돕는 역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의 역할은 영화를 보는 사람에 따라 서사에 큰 영향을 주기도, 주지 않기도 합니다.




- 줄거리

이 영화는 네 명의 인물들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됩니다.
은평구 수색동의 조용한 동네에서 한물간 건달 익준, 임금체불과 해고를 당한 탈북자 정범, 어리바리한 듯 조금 모자란 느낌까지 주는 집주인 아들 종빈, 그리고 이 세 남자가 사랑하는 중국에서 온 조선족 출신의 여인 예리가 있습니다.
예리는 병든 아버지를 돌보며 '고향 주막'이라는 곳을 운영하는데 이곳은 이들의 유일한 안식처입니다.

영화가 시작하면 익준, 정범, 종빈 세 남자들의 특징을 보여주며 이들이 예리라는 여인과 어떤 관계인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타이틀롤 이 영화 중간쯤 뜨고 난 이후엔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탈북자 정범의 밀린 임금을 받아주는 에피소드. 건달 익준에게 제안을 하는 깡패들. 예리와 함께 세 남자가 영화를 보는 이야기.
동성애자로 보이는 주영이 시를 써 예리에게 전해주고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이야기.
정범의 옛 여자친구가 고향 주막에 나타나 이별을 고하는 에피소드.
영화의 인물들이 수색동이라는 배경 안에서 일어나는 일상들을 흑백 화면을 오가며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 예리의 꿈

이 영화는 예리의 꿈속에서 펼쳐지는 이야기 같아 보입니다.
영화가 시작하고 약 30분간 세 남자들과 예리가 어떤 관계인지를 이야기해 줍니다. 그리고 네 사람이 술자리를 하고 예리가 춤을 추고 있을 때 세 명의 남자는 사라집니다. 예리는 그들이 어디 갔는지 어리둥절해 하며 이 영화의 타이틀롤 <춘몽> 이 나옵니다.
예리의 꿈이라면 이런 상황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또한 예리가 꿈을 꾸는 장면이 직접적으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예리 아버지의 빈 휠체어가 가파른 골목길 아래로 내려가는 꿈을 꾸며 침대에서 일어나기도 하죠.

예리는 직접적으로 죽음에 대한 암시를 듣기도 합니다.
강산에가 직접적으로 그녀의 아버지는 오래 살 것이지만 예리에겐 아무 말 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삶이 얼마 안 남았다는 듯한 뉘앙스를 풍깁니다.
중간에 그녀는 관처럼 보이는 가구 안에 들어가 죽음을 대비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렇듯 예리를 중심으로 한 서사에선 이 영화가 예리의 꿈이며 그녀가 점점 죽음을 향해 간다는 것을 은유해 보입니다.




- 거울, 마블 유니버스.

영화 시작 부분부터 중간중간 수많은 거울들이 등장합니다. 인물들이 프레임 밖을 나가도 거울을 비춰주기도 할 정도입니다.
거울에 대해 감독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 영화의 공간과 질감은 꿈에 관계가 있고, 수색동이라는 공간과 인물들의 관계 속에 무언가의 관계를 의미하고 싶기에 거울을 남겨두었다고 합니다.


앞서 이야기하였지만 <춘몽> 은 우리가 익숙한 캐릭터들이 등장합니다. <똥파리>의 익준, <무산일기>의 정범, <용서 받지 못한 자>의 종빈.
이는 마치 마블 유니버스에서 어벤저스를 다루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이언맨, 스파이더맨, 캡틴 아메리카, 헐크.. 모두 각자의 영화에서의 캐릭터를 한 영화. 한 서사에 몰아놓고 그들이 어떠한 활약을 펼치며 악당을 무찌를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히어로들이 펼칠 서사의 내용은 분명합니다. 더욱 강력한 빌런이 등장할 것이고 한자리에 뭉친 영웅들은 그 빌런들을 물리치는 것이 주된 서사가 되겠죠.

인디영화의 영웅인 '익준, 정범, 종빈' 의 캐릭터들이 한 영화에 모이면 어떤 서사를 펼칠 것인가.
분명 어벤저스처럼 악당을 무찌르는 그런 영화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각자 자신만의 영화 속에서 독특한 연출과 이야기, 세계관으로 인정을 받은 영화들입니다.
그런 각자의 영화가 춘몽에서 이야기하는 거울이라면 그 거울들이 마주 보았을 때 상이 맺혀지지 않으며 무한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입니다.
영화 속이 인물들이 모여 무한한 세계를 공유할 때 우리는 <춘몽>이라는 거울을 통해 한쪽에 맺혀진 상을 통해 이 이야기를 단편적으로 나마 들춰볼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와 재미코드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 이준동의 꿈, 그들의 세상.

그렇다면 성공한 인디 영화의 캐릭터들을 한 영화에 모아놓았을 때 어떤 서사가 펼쳐질까요.
마블 시리즈야 히어로들이 빌런을 무찌르고 정의를 실현한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이들에겐 '힘겨운 삶을 살아낸다는' 정도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런 통일할 수 없는 조건 속에 '이준동 제작자' 의 출연으로 이 영화의 큰 매력이자, 다층적인 이야기를 확장시키게 되었습니다.

이준동 제작자는 위에서 말했듯 한국에서 칸에 제일 많이 다녀온 영화를 제작한 사람입니다.
<오아시스>, <시>, <화이> 같은 영화를 제작하며 영화 속 인물들을 괴롭힌 장본인이나 다름없습니다.
이렇게 영화 속 인물들을 괴롭혔던 장본인이 이젠 영진위 신임 부원장에 선출되기까지 합니다.
영화속의 인물들에게 이준동은 너무나 얄밉기도 하고 혼내고 싶은 존재로 여겨질 것 같습니다.

그런 이준동이라는 제작자를 <춘몽>이라는 영화로 끌고 들어오자 식물인간이나 되어버릴 뿐입니다.
아무런 힘도 행사하지 못하고 예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존재 정도로나 그려집니다.
영화 속 인물들도 그런 예리의 아버지에게 조롱하듯 이야기하는 장면도 몇 번씩 나옵니다.

이 영화가 이준동 제작자의 꿈인 것을 암시하는 장면은 여럿 나옵니다.
뜬금없이 내레이션처럼 이준동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아무 맥락 없이 비탈길의 골목에서 휠체어로 갑작스럽게 내려오는 장면도 보입니다.
가장 결정적인 장면은 흑백일 때 생생했던 인물들이 "컬러"를 되찾게 되자 생기를 잃어버리고, 식물인간이었던 이준동이 멀쩡하게 일어나는 장면이겠죠.
이러한 연출을 통해 '흑백은' 영화속 인물들이 살아숨쉬는 공간이자 제작자 이준동이 꿈꾸는 세계를 보여줍니다. 그리곤 현실로 돌아와 컬러를 되찾게 되면 그의 꿈은 멈춰, 캐릭터들은 생기를 잃어 버리고 현실속 이준동이 식물인간에서 깨어나는 모습을 보입니다.

영화라는 놀이터 안에서 영화속 캐릭터들을 자유분방하게 보여주며, 다른 영화를 욕하기도 하고 (장률 감독의 <당시>), 자기 자신들이 나올 수 있던 제작자도 골려먹기도 하는 유머도 보여주는 식으로 영화 속의 무한한 세계를 단편적으로나마 비춰주는 그들의 세상을 표현했습니다.




- 마무리

<춘몽>은 낯선 형식을 연주하는 현대음악 같습니다. 연주하는 악기들은 우리에게 친숙한 배우와 캐릭터들이 연기하고 연주해 줍니다.
음악의 내용은 영화 속 캐릭터들이 그들이 뛰어노는 세계를 보여주며 그들이 갖고 있는 에피소드들을 얼기설기 배열해 줍니다. 또한 거기서 그치지 않고 영화 제작자를 이 속에 끌고 들어와 영화를 구성하는 한 요소로써 독특한 매력을 뽐냅니다.
영화 중간 '주영'이라는 인물의 역할은 이 영화의 마법을 깨버리기도 하지만, 그 단점을 덮을 만큼의 좋은 장점을 가진 영화라 생각이 됩니다.




더 많은 이야기는 구밀복검 님과 함께하는 팟캐스트 영화계 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8720?e=22459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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