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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5/08/04 17:52:48
Name   No.42
Subject   한 폭의 그림같은 직장 이야기 #4
안녕하세요, 42번입니다. 세 편의 글을 썼는데, 어쩐지 여러분의 혈압에 악영향만 미치는 듯 해서 더 이어야 하나 고민이 되더군요.
그래도 이왕 쓴 거 끝은 맺자 싶어서 다시 적어 봅니다. 발암행 열차 다시 출발합니다.

여차저차 해서 저희는 4개월 안에 중간검수 통과할 만한 녀석을 만들고자 이리 뛰고 저리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이에도 겉도는 팀장과 저와의
갈등은 점점 심해지고 있었습니다. 이 사이에 그간 함께 근무하던 과장님이 퇴사하셨는데 후임자는 뽑지 않았습니다. 결국 과장님의 업무는 일부
차장님께, 일부 제게 나뉘어 배당되었습니다. 먼저 근무하다가 부서 이동한 여직원의 후임도 없었기에 그 일은 고스란히 제가 다 하는 상황이었죠.
결국 저는 입사후 원래 제 업무 + 신사업 + 과장님 업무... 이렇게 받아서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신사업 관련 업무만 해도 일이 장난 아니었는데,
거기에 원래 하던 IP 관련 업무도 아예 놓을 수가 없었으니 제겐 로드가 좀 걸리고 있는 편이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야근을 너무너무너무 싫어하는
성향에다가 퇴근 셔틀을 타지 못하면 귀가하는 길이 너무 멀어져서 가능한 한 칼퇴를 위해 업무시간 내내 미친듯이 달리곤 했습니다. 그러던 하루는
팀장이 회의에서 이런 말을 하더군요. '특별히 할 일이 없어도 9시까지는 자리를 지키다가 퇴근하라'고요. 뭐 윗선에 좀 잘 보이고 싶다는 노골적인
개수작이었습니다. 저는 싫었습니다. 그래서 업무시간에 일을 다 마치는 날이면, 칼같이 퇴근했습니다. 물론 업무시간 내에 일이 끝나는 날은 별로
없었습니다만, 그래도 7시 반 남짓에는 퇴근하곤 했죠. 팀장이 자신의 지시를 무시하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업무 외 시간까지 침해하는 그 지시의
근거는 뭐냐고 물었습니다. 저도 이때 쯤에는 팀장이고 나발이고 수틀리면 전치 6주 만들고 콩밥 먹으리라... 정도로 막나갈 때였습니다. 그랬더니
뭐 회사의 눈길도 있고 하니 우리가 열심히 일하는 티를 내야 하지 않겠냐고 합니다. 전 '그렇다면 매주 주간회의 때 팀장님이 무슨 일 하는지나
제대로 얘기해서 회의록에 기록이나 남기시죠. 매번 팀원들 하는 일에 숟가락 얹어서 넘어가지 말고.'라고 쏴주었습니다. 뭐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그 작자와 저는 강을 건너버린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확실하게 이번 정부과제 기간을 잘 넘겨서 상용화만 올라가면 퇴사하리라
마음을 굳힌 상태였습니다. 사실 부서 이동의 기회도 있었습니다. 제 적성에는 더럽게 맞지 않는 사업부서를 떠나서 제가 정말 가고 싶었던
개발부서, 그것도 기획팀으로 갈 기회가 있었죠. 그런데 팀장이 막았습니다. 왜인지는 말 안해주고 그냥 막았습니다. 그렇게 저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면서 막상 다른 데 가겠다니까 보내주진 않습니다. 신사업이 추진되는 동안에는 제가 떠나면 그 일 누가 하나 싶은 마음에 저도 적극적으로
옮기고자 난리를 피우진 않았습니다만...

이 즈음 터진 황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팀장이 중국 파트너 사의 사이트를 살펴보던 도중에, 제가 모르는 상품이 판매되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희는 로열티 담당이기 때문에 캐릭터 상품에 대해서는 다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저희가 모른다는 것은 돈이 들어오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그래서 관련 상품이 뭔지 중국 파트너사를 담당하는 글로벌 마케팅팀 담당자에게 문의했습니다. 대답은 '모른다'였습니다. 그래서 그럼 파트너사에게
한 번 물어보라고 했습니다. 단순한 질문과 답이기에 금방 처리되어야 하는 일이지만 며칠이 지나서야 답이 왔고, 그 답은 '모른다'였습니다. 아니
대체 지들이 모르는 상품을 왜 팔아먹고 있는지... 저는 관련한 계약을 찾아서 몇 년 치 문서를 뒤져야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찾아냈습니다. 6년이
넘은 계약이었는데, 이게 퍽 황당하달까, 말이 안나온달까... 관련 상품을 판매하고 몇 %의 로열티를 지불한다 뭐 이런 류의 뻔한 계약이었는데,
문제는 이 계약이 체결된 이후로 단 한 푼의 로열티도 지불되지 않았던 겁니다. 그 쪽에서 안 보낸 것이야 중국파트너 개념없는 게 하루이틀이 아니니
그렇다 치더라도 대체 우리 회사에서는 왜 입다물고 있었는지가 궁금했습니다. 팀장에게 물어보니 팀장은 자기도 처음 보는 계약이랍니다. 계약
담당자는 현 글로벌 마케팅팀의 전신인 팀의 직원이었는데, 당연하게도 14후퇴를 즈음하여 퇴사한 인물입니다. 결국 그 자가 퇴사하며 인수인계를
제대로 하지 않음 - 구조조정으로 팀이 바뀌며 관련 업무가 우리 팀으로 넘어옴... 이런 과정을 거쳐서 그 계약은 아예 잊혀져 버린 것이죠. 저는
우리가 제대로 청구를 해야만 로열티가 지급되는 조건인지 계약서를 검토했는데, 굳이 청구하지 않더라도 파트너사에게 지불의 의무가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계약 당시부터 현재까지의 로열티 정산을 처리하려 했습니다. 팀장도 하늘에서 꽁돈이 떨어져 매출 실적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니 좋다고 얼른 하라고 했지요. 그래서 중국 파트너사 측에 이 상품을 얼마나 팔았는지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참고로 중국과의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마케팅팀 담당자를 통해서 이루어졌으며, 아무리 간단한 사항이라도 3일 이상씩 걸렸습니다. 왜인지는 저도 모릅니다.) 파트너는
얼마나 팔렸는지 기록이 없다. 따라서 지금 재고를 파악해서 총 생산수에서 뺀 다음 알려주겠다라고 합니다. 이건 또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인지
모르겠습니다. 소매점에 있는 재고 + 자기들 스톡에 있는 재고를 파악한 다음에 공장에서 총 출하된 수에서 빼서 얼마가 팔렸는지 조사한다...라...
뭐 물론 산술적으로 옳은 방법입니다만,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회사에서 판매량 관리를 저따위로 한답니까. -_- 정말 제 머리로는 이해가 불가능한
수준이었습니다. 질문 하나에 답하는 데도 며칠씩 걸리는 회사에서 저렇게 재고조사를 하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등등의 걱정도 따라왔습니다.
뭐 제 걱정대로 한달을 조금 넘겨서야 판매량에 대한 답이 왔습니다. 저는 판매한 상품 분량의 로열티 + 위약금 + 연체료를 계산하여 법무팀과 함께
청구 절차를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마케팅팀 담당자가 좀 보잡니다. 그리고서 한다는 말이 위약금 및 연체료는 까달라는 겁니다. 이게 억대에 이르는
금액인데 지금 뭐 콩나물 5백원 깎자는 식으로 얘기합니다. 그것도 저쪽 사람이 아니라 우리 회사 사람이요... 그 담당자와 저는 그냥 인사만 하는
사이였는데, 배째라로 유명한 담당자가 휴가를 떠난 사이에 그 일을 대신해주던 과장님은 저와 평소 누나 동생하는 사이였습니다. 누나까지 끼고
와서 제게 그런 말을 하는데,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없는 돈을 삥뜯는 것도 아니고 계약서에 명시된 금액을 청구하는 데 무슨 문제가 있냐고
했습니다. 그 쪽의 답은, 지들이 일부러 떼어먹으려고 한 것도 아니고 로열티 전액 다 준다는데도 위약금이니 연체료니 하는 게 너무하지 않냐고
했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가 찾아서 청구 안했으면 영원히 못받을 게 뻔한 상황인데 무슨 소리냐고 해줬습니다. 마케팅팀의 의견은 걔들이 좀
기분나빠하고 있으니 우리가 봐줘야 한다... 아니면 상대와 관계가 불편해져서 일하기 힘들다... 뭐 이런 식이었습니다. 저는 여기서 나름 저의 명언으로
남은 한 마디를 해줬습니다. '글로벌 마케팅팀은 월급 어디서 받습니까. 파트너사에서 월급 받는 부서입니까?' 사실 회사 내의 타 부서에서 글로벌
마케팅팀은 글로벌 시녀팀 내지는 좀 더 저속하게 나아간 별칭으로 불리는 일이 잦았습니다. 이유는 첫째, 거의 모든 업무에 있어서 회사보다는
파트너 사의 편을 드는 일이 많았고, 둘째, 대다수 실무자가 여성이었기 때문이었죠. 이번 일에서도 담당자가 나서서 신나게 볶아대고 받을 돈 받는게
원칙인 듯 한데, 그들은 같은 회사 직원인 저와 법무팀과 신나게 싸워가며 파트너사의 이익을 위해 몸을 불사르더군요. 이에 대한 저의 보고를 받은
팀장은 무슨 개소리냐며 받을 돈은 칼같이 다 받아내라고 강력하게 부르짖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케팅팀과 마음껏 싸웠습니다. 그렇게 지지부진
결론이 나지 않던 중에 저는 팀장의 호출을 받습니다. 자신이 본부장과 얘기했는데, 위약금과 연체료는 없이 기존 계약의 어멘드만 맺어서 진행하기로
했답니다. 저는 그간 해온 관성이 있어서 좀 언짢았지만, 그냥 알았다고 대답했습니다. 계약서 작성과 청구서 수정 등등의 일을 해서 이 케이스를
종료했습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이 그 본부장이라는 인물입니다. 본부장은 사실 마케팅팀의 수장이었는데, 구조조정을 하면서 마케팅팀과 제가
일하던 CI, IP관련 부서, 그리고 개발팀에 속해 있던 해외지원 부서를 죄다 통합한 본부의 본부장이 된 이였습니다. 저와는 업무적으로 얽힌 일이 별로
없는 사람이었죠. 다만 여기저기서 들리는 평이나 제가 보고 들은 것으로 봐서는 그렇게 무능하지도 않았고, 강단이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바로
저희 팀장의 야망을 막아서고 본부장이 된 인물이었기에, 나름 호감도 가지고 있었죠. 이렇게 중국 건을 마무리하고 나서 저는 나름 친했던 그 누나와
조금은 서먹한 관계가 되었습니다. 누나는 이런 얘기를 해주더군요. 원리원칙도 좋지만, 파트너 사 관리는 중요한 이슈다. 말단 직원이 팀장 지시도
그렇게 무시하고 원칙 지키겠다고 날뛰어서 될 일이 아니다...라구요. 으잉? 이게 무슨...? 아아... 네, 그렇습니다. 팀장은 본부장 및 마케팅팀과 이야기하며
그 수많은 언쟁과 난리부르스가 저의 독단이었다고 했던 겁니다. 애시당초 그 상품을 발견해서 돈 받아내라고 지시한 것도, 마케팅팀과 파트너사의
의견에 강력하게 맞서서 연체료 위약금 다 받아내라고 했던 것도 팀장이었고, 그런 사실은 제가 실로 열심히 기록했던 회의록 및 업무일지에도 죄다
기록되어 있었지요. 저는 진짜 피곤했습니다. 누나에겐 일단 얘기했습니다. 절대 내 독단이 아니었다고. 의심스러우면 우리 팀 기록이라도 보여주겠다고.
하지만, 그 전에 일차적으로 나는 일이 원칙대로 진행되지 않는 것이 싫다고도 했습니다. 누나네 팀이 매번 그따위로 원칙을 무시하며 남들 위해서
따까리 짓이나 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요. 그렇게 저는 그 누나와 서먹한 관계를 확정지었습니다. 별로 아쉽진 않았습니다.

그래도 개발 일정은 그나마 부드럽게 진행되었습니다. 어찌어찌 12월의 중간 검수도 통과했고, 플랫폼 사업자의 기준에도 썩 벗어나지 않는 녀석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렇게 일단 하나의 채널로 상용화가 결정되었습니다. 차차 유사 채널로 확장해 나갈 계획도 진행되고 있었구요. 이제 제가 없어도
사업의 틀은 잘 잡혀 있기에, 차장님과 디자이너 동생이 잘 해나갈 수 있었습니다. 제가 때려치울 시기가 된 것이지요. 사실 부서는 정말 거지같았지만,
회사 사람들에 대해서는 애착이 깊었습니다. 입사동기인 친구, 그 친구의 팀 형들, 우리 팀의 차장님, 디자이너 선배에서 여동생이 된 녀석, 다른 부서의
친한 형들... 그래도 그 지옥에서 더 일하고픈 마음은 없었습니다. 아, 지옥을 모욕했네요. 지옥은 나쁜 사람이 벌받는 곳이었죠, 참. 일을 잘하는 이보다
정치를 잘하는 이가 더 대접받고 비합리적인 결정이 훨씬 많이 이루어지는 곳이니 지옥보다도 못했습니다. 저는 주위의 친한 이들에게 퇴사 결정을
알렸습니다. 다들 축하(?)해주는 분위기였는데, 단 두 명이 다른 말을 했습니다. 입사동기 친구와 그 팀의 팀장형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디 다른 데로
옮길 계획이 없다면 퇴사하지 말고 자기들의 부서로 옮겨와서 일해보는 게 어떠냐고 했습니다. 마침 미국지사 지원을 담당하는 형이 퇴사하게 되어서
그 자리가 빈다면서 말이죠. 저는 그 팀 사람들을 너무 좋아했고, 젊은 남자 다섯명으로 이루어진 그 팀의 분위기를 평소부터 엄청 부러워하고 있었죠.
그 제안에 솔직히 너무 솔깃했습니다. 하지만 팀장이 순순히 저를 보내줄 리 없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찌해야 할 지 퍽 고민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번에도 마무리를 못 지었네요. 다음에는 아마 확실하게 끝낼 듯 합니다. 여러분의 혈압상승과 소화불량에 대해서 심심한 유감의 뜻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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