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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5/08/06 21:37:24 |
Name | No.42 |
Subject | 한 폭의 그림같은 직장 이야기 #5 |
절단신공은 의도된 바가 아닙니다. 시간의 문제이기도 하고... 솔직히 너무 길어지기도 하네요. 저도 이렇게 대하논픽션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먼저 개발부서 쪽으로의 이동이 좌절된 경험이 있기에, 저는 그쪽 팀장형과 모의(?)하여 다르게 접근하기로 합니다. 즉, 팀장의 결제만 빼고 모든 프로세스를 싹 진행해 버린 것이죠. 결국 이 이적(??)이 성사되지 않으면 그건 온전히 팀장의 탓임이 명확하도록 일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나서야 저는 팀장에게 이야기했습니다. 팀장의 불쾌함이 얼굴에 적나라하게 나타나 있었고, 저는 그래서 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팀장은 아예 노골적으로 말하더군요. '이게 만일 안되면 내가 문제인 거네?'라고요. 그래서 전 단호하게 '네.'라고 했습니다. 팀장은 그 말만 하고서는 바로 결제했습니다. 다른 말은 없었죠. 이야~ 이렇게 일이 풀리는 일도 있네요. ... ...라는 것은 저의 오산이었습니다. 팀장은 정치 일면으로는 퍽 유능한 인간입니다. 팀장 결제가 난 후에 저와 그쪽의 팀장형은 뜻밖의 암초를 만났습니다. 제가 야근을 마치고 퇴근을 준비할 때였는데, 형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목소리는 퍽 다급했습니다. 지금 시간이 있냐. 만날 수 있냐. 형은 퇴근 후에 짐에서 운동을 마치고 나왔을 때였지요. 회사 지하에 있는 짐으로 가서 형과 만났습니다. 형이 전해준 소식은 퍽 충격적이었습니다. 저희 팀과 형네 팀 모두가 속한 본부의 본부장이 결제를 거부한 것입니다. 그리고 형에게 전화를 해서 이렇게 말했답니다. '그 인간쓰레기 새끼는 절대 안된다. 자르면 잘랐지, 부서 이동은 인정 못해.'라고요. 잘 몰랐었는데, 전 인간 쓰레기였나봅니다. 너무나도 그러한 나머지, 저와 얼마 일해보지도 않았고, 개인적인 콘택트는 전혀 없었던 본부장조차도 제가 그렇다는 것을 저렇게 확신하고 있을 정도로요. 형은 퍽 당황한 듯 했습니다. 저와는 달리 형은 본부장과 어느 정도 함께 일한 경험도 있고, 공적인 일로 충돌도 잦았고, 의기투합한 일도 없지 않았던 터라 본부장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형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본부장이 저렇게까지 단호하게 말하면 그 결정은 뒤집기 불가능하다. 내가 내 얼굴을 봐서 인터뷰 자리라도 한 번 가지고 걷어차라고 했다. 그런데 내 생각에 본부장이 생각을 바꿀 확률은 1%도 안되는 것 같다. 대체 본부장에게 무슨 짓을 했냐?' 전 솔직히 말했습니다. '아무것도요.'라고 말이죠. 뭐, 전말은 뻔합니다. 팀장이 한 짓이겠지요. 형과 그날 저녁과 다음날까지 해서 여러분에게 해드린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을 다 했습니다. 회사에서 전 '파이터' 이미지였습니다. 융통성 없고 고지식해서 원리원칙대로 밀어붙이려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과는 기꺼이 일전을 불사하는... 그런데 제가 다니던 회사는 원칙보다는 반칙이 잘 통하고 원리보다는 사리가 가치있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따라서 저같은 사람은 많은 이들의 눈엣가시가 됩니다. 글로벌 시녀팀과의 마찰도 그런 맥락이지요. 그런데 저보다 먼저 그런 이미지를 가지고 파이터로서 열심히 싸운 사람이 저희 회사에 있었습니다. 제가 옮기려던 팀의 팀장 형이었죠. 이 형은 회사의 초창기 멤버 중 하나였고, 해외 서비스 분야에서 엄청난 공로를 세운 이였으나, 그놈의 정치에서 밀려서 음지에 있었습니다. 형은 저의 고충에 대해서 잘 이해해주었습니다. 하지만 형의 절망적인 예상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습니다. 형과의 이야기가 끝난 그 날 오후에 저는 형과 더불어 본부장과의 인터뷰를 했습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거짓말쟁이와 배신자야. 그런데 넌 둘 다야. 난 그래서 널 자르려고 해." 회의실에 들어서서 형과 인사를 나누자마자 본부장은 제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와, 이 양반 화끈합니다. 그런 면에 전 호감을 가지고 있었지요. 저는 침착하게 대답했습니다. 당신이 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 대강 알고 있다. 아마도 우리 팀장에게 몇몇 이야기를 듣고 그렇게 판단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건 그의 이야기이며 진실이 아니다. 내 이야기도 들어달라. 본부장은 그게 공평하겠다며 이야기해보라고 했습니다. 저는 우선 문서 자료들을 챙겼습니다. 제가 하는 말 하나하나마다 그 근거가 되는 문서들을 내밀었죠. 연차 사건으로 절 거짓말쟁이로 몰고, 내부감사팀과의 연락으로 절 배신자로 몰았을 거라는 제 예상은 정확하게 맞았습니다. 저는 정말 하나도 빼지 않고 그간 있었던 일을 그에게 '보여줬습니다.' 그렇게 본부장의 짧은 의사표명과는 정 반대로 저는 길고 긴 이야기보따리를 풀었습니다. 이야기가 끝날 무렵에는 끝장미팅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행정결제만 하고 팀의 일에는 관여 안할테니 책임도 너희가 져라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팀장이냐고 묻는 순간에, 바보처럼 눈물이 터졌습니다. 그렇게 바보같이 저는 인터뷰를 마쳤습니다. 본부장은 잠시 생각을 하더군요. 그는 제가 내민 문서들도 꼼꼼히 살폈습니다. 생각이 끝나고서 그는 말했습니다. '좋아, 넌 거짓말쟁이도 아니고 배신자도 아니야. 그냥 단지 조금 경솔했던 거야.' 라고요. 앞으로는 그런 경솔한 행동들을 조심하라고도 하더군요. 그리고 그는 저의 부서이동을 허락했습니다. 형은 기적이라며 놀랐지요. 이렇게 저는 제 첫 일자리인 곳을 떠나서 제가 원하는 모습에 조금 더 가까운 곳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좋았습니다. 팀의 분위기는 전에 있던 곳과 비교도 되지 않았습니다. 팀장은 차마 말로 다 옮기지 못할 만큼 차이가 컸구요. 다만 근본적인 문제만큼은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회사 전체의 일이었죠. 우리의 타이틀은 퇴물 혹은 실패작이었고, 조직의 자리 중 상당수는 쓰레기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새로이 맡은 일은 해외 국가 하나의 서비스를 운영하는 거였습니다. 아무것도 안하겠다고 마음 먹으면 정말 할 일이 없고, 뭘 좀 해봐야겠다라고 마음먹으면 엄청난 양의 일을 할 수도 있는 자리지요. 저는 저를 뽑아준 팀장형과 제 파트너이기도 했던 친구때문에 설렁설렁 일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달라진 것은 있었습니다. 부서이동을 즈음하여 제대로 겪은 스트레스로 저는 안면마비 증상을 겪었습니다. 얼굴의 절반이 마비되어 표정도 제대로 지어지지 않고 양치할 때 물이 입 밖으로 새어나가는 뭐 그런 증상입죠. 가족들까지 걱정을 하게 만든 이 난리를 겪고서 저는 정말 큰 회의감에 빠졌습니다. 내가 왜, 대체 왜, 무슨 부귀영화를 보자고 여기서 일을 더 해보겠다고 이 짓을 하고 있는가. 그와 더불어서 무기력감도 느끼고 있었습니다. 팀장형은 싸우는 것은 자기 하나로 충분하니 저는 관련부서 사람들과 충돌하지 말 것을 당부했습니다. 저는 그 말대로 더 이상 싸우지도 고집을 부리지도 않고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타협해나가며 일을 했지요. 싸우고 싶은 부분은 형에게 이야기해서 대신 싸워달라 청했습니다. 하지만 형이 싸워준 부분도 저희의 입맛대로 일이 흘러가는 부분은 거의 없었습니다. '뭘 그런 걸 일일이 다 신경쓰나요.', '그건 지금은 힘드니까 다음에 생각합시다.' 등등이 저희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이었습니다. 그래도!! 팀장은 진정한 리더였고, 제 파트너는 좋은 친구였습니다. 그냥 사람 좋은 친구가 아니라 정말 좋은 친구 말입니다. 처음 옮긴 후에 일에 익숙치 않아 이런저런 실수가 잦을 무렵, 제 친구는 - 이 친구는 해외서비스의 서버를 담당하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 저를 정말 신나게 '까줬습니다.' 어지간한 군대고참처럼 말이죠. 덕분에 저는 일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고, 솜씨도 꽤 늘었지요. 이 쯤에서 절단신공을 펼칩니다. 죄송합니다. 다음 번이 마지막이 될 듯 합니다.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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