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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8/05/01 22:56:34 |
Name | 다시갑시다 |
Subject | 축구 경기력 vs 결과 +@ |
축구에서 경기력 v 결과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있다 의식의 흐름이 이어지길래 홍차넷에 끄적입니다. 이 이슈가 논쟁이 되는 큰 이유는 사실 "경기력"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모두가 동의하는 깔끔한 정의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동의할수있는 경기결과에 비해서는 더 추상적인 개념이죠. 결국 경기력 v 결과의 논쟁은 좋은 경기력이라는게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에 모두가 동의하고 이야기하지 않는 이상 사실 유의미한 진전을 기대할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경기력의 정의에 관해서 많은 고민을 해봐야겠죠 "공격축구를 한다" "축구를 잘한다" 처럼 너무 추상적인 개념을 끌고 오는건 이야기의 발전이 안되고 "슈팅이 많다" "점유율이 높다" 처럼 표면적으로 스탯에 집중하는것 또한 오류가 심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경기전에 본인들이 설계한 경기플랜을 경기중에 수행해낸 정도]로 표현하는게 그나마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고있습니다. 물론 변화하는 경기상황에 따라 어떻게 대응하느냐와 같은것도 경기력의 범주에 들어갑니다만, 처음부터 변수를 너무 많이 고려하면 머리가 아프니 간단한 케이스만 생각해보겠습니다. 헌데 이 정의에도 불편한점이 존재합니다. 1. 코칭스태프 or 선수가 아닌 이상 정말로 의도했던 경기플랜이 무엇인지 팬 입장에서 확언할수는 없습니다 뭐 큰그림이야 어느정도 알아볼수있다고는 해도, 바깥에서 보는것과 안에서 보는것이 다른 경우도 흔하고, 일정수준 이상은 그저 추측해볼수 밖에 없다는 한계를 인정해야합니다. 외부인으로 만약 경기플랜을 완벽하게 알고있다해도 사실 더 불편한점이 존재하기는합니다. 이 정의를 따를 경우: 2. 좋은 경기력은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그냥 생각해보았을때 경기력이 좋다면, 적어도 다수의 경기를 치루면은, 결과의 상승으로 이어져야합니다. 축구에서 대부분의 경우 저런 모습을 보여주지만 경기력에서 결과로 가는 길은 일차원적으로 절대적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a. 애초에 경기플랜이 허접할수있습니다. 보통 감독들간의 지략 대결에서 한쪽이 패배하는 케이스죠. b. 경기플랜이 "좋은결과"를 추구하지 않을수도있습니다. 전력차가 많이 난다고 판단할 경우, 득일 취하는 플랜보다는 실을 줄이는 플랜을 준비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이 경우 경기를 잘했어도 결과는 나쁠수가있습니다. c. 축구의 결과는 운빨이 심합니다. 골을 잘넣는 공격수와 슈퍼 세이브 골리들이 고평가를 받을수밖에 없는 스포츠입니다. 프로축구는 평균적으로 한골 승부입니다. 20명이 넘는 인간기계들이 90분 동안 탈진할때까지 뛰어서 딱 한순간의 차이를 만들어서 결과가 나오는 스포츠죠. 경기의 메커니즘상 플랜을 잘 짜와서 확률싸움을 아무리해도 운이 없거나 운이 좋아서 한골 들어가면 그게 결과에 더 큰 영향을 끼치기에 쉬운 시스템입니다. *d*. 축구 경기플랜의 우위관계는 일차원적이지 않습니다. 축구는 소위 말하는 짱개식계산법이 유효하지 않는 스포츠입니다. 'ㄱ'이 'ㄴ'을 이기고, 'ㄷ'이 'ㄴ'을 이겼다고, 'ㄷ'이 'ㄱ'을 이길거란 보장이 없다는거죠. a와 연결되는 부분이있습니다. 특정 경기에서 좋은 경기력을 보인팀이 다른 경기에서 똑같은 경기력을 보인다고해서 그게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지 않습니다. 축구는 전술적으로 물고 물리는 경향이 상당히 강한 스포츠이고, 현실적으로 저런 전술적인 스펙트럼을 폭넓게 높은수준에서 소화할수있는 팀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톱클래스 팀이라면 그래도 기본적으로 여러 플랜을 수준급으로 수행할수있지만, 고수들간의 진검승부에서 굳이 내가 덜 익숙한 무기를 쓸 여유는 없죠. 장점사이에 천적급 상성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내가 제일 익숙하고 제일 자신있는 무기로 나가는게 일반론입니다 - 그리고 보통 축구계에서 전술간에 저러한 상성관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축구전술도 다원주의를 따르는거죠. 축구에서 절대적으로 우월한 전술과 선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어느 특정 전술이 다른 전술을 압도한다기보다는 누가 준비해온 전술을 더 잘 수행했느냐가 중요한거죠. 헌데 간혹 모두를 잡아먹는 최상위 포식자들이 나타납니다 - 소위 말하는 전술적 혁명가들이죠. 이들은 말합니다: 축구에서 다른건 몰라도 이건 확실히 틀린거다. 그리고 이들은 이 발상의 전환으로 축구에서 경기력과 결과를 거의 일치 시키는 위대한 업적을 달성하죠. 사키와 크루이프가 "너네 선수의 라인간격 컨트롤 못하면, 간격을 컨트롤하는 팀 절대 못이겨"라고 공표한게 대표적일겁니다. 이 둘의 전성기팀들은 물론이고, 그 이후 축구계의 모든 패자들은 물론이고, 동네축구에서도 선수들간의 라인관리에 신경을 씁니다. "아 우리 미드필드랑 수비 사이에 공간이 너무 넓어요, 미드필더들 내려와서 수비 좀 해줘요" "나 공격에서 너무 고립되, 우리 공격시에 다들 같이 올라가자" 축구에서 예외적으로 존재하는 깨져서는 안되는 대원칙중 하나가 된겁니다. 그리고 이 대원칙은 유지되면서 조금씩 발전해 나갑니다. 프로레벨에서는 EPL 무대에서 초기 퍼거슨과 초기 무리뉴의 전술적 성공 또한 이 대원칙의 연장으로 볼수있습니다. 퍼거슨은 4-4-2 덕후로 알려져있지만 본인피셜 "난 4-4-2 쓴적 없음. 4-4-1-1을 썻지" => 기존 미드필드과 공격수 사이의 라인 공간을 컨트롤해라 무리뉴가 04/05 시즌 4-3-3으로 EPL을 두들겨 패면서 "너네 (영국) 수비랑 미드필드 사이 라인 그렇게 비워 놓으면 안되는거야"라고했죠. 축구팬으로서는 행복하게, 지난 10여년간 축구계는 새로운 대원칙을 받아들이고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라인에서 공을 의식적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이동 시킬수있어야한다] 이 원칙을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람은 당연히 펩 과르디올라입니다. 동의하든 그러하지 않든, 저 의식은 이미 축구계 전반에 널리 퍼지고있습니다. "요즘 수비수들 옛날 같지 않어"를 아무리 얘기해도 태클, 헤딩머신이지만 볼을 낭비하는 센터백은 프로레벨은 물론 동네축구에서도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합니다. "아 무조건 길게 차지 좀 말라고" 여기에 펩은 오픈 플레이에서 평소에는 천대받던 골키퍼도 적극적으로 포함해야한다고 믿는 사람이죠. 시티에서 에데르손도 이전에, 흔히 똘끼로만 표현받던 노이어의 적극성을 스위퍼 키퍼로서 키퍼의 새로운 모델을 보여주며 체계화 시킨건 펩이 뮌헨에 간 이후의 일이라고 봅니다. 이렇다고 펩이 무조건 승리하는건 당연히 아닙니다. 이걸 처음으로 구현시켰다고 할만한 펩의 바르샤 경우 거의 범접할수 없을듯한 포스를 보여주었지만 언급했듯이 축구에는 불가항력적인 일이 생길때도있고, 더이상 펩만이 이 대원칙을 이해하는 사람은 아니니까요. 현재 시티에서의 축구가 당시 바르샤의 축구보다 더 체계적이고, 더 의식적이고, 더 유연합니다. 하지만 다른 일류 감독들도 이를 이해하고있고,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표현하는 법을 찾으면서 펩의 상대적 압도성은 줄어든거죠. 국내축구계에서 이러한 개념들이 얼마나 논의되고 경기에서 적용되는지를 보면은 "아직 갈길이 멀었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합니다. 기성용 선수의 위상과 평가가 국내축구와 소위 선진축구의 차이를 보여주지 않나 싶습니다. 기성용 선수가 EPL에서 더 상위권 팀으로 가지 못한 가장 큰 약점이 바로 저 지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여전히 현역 국내선수들 중에서는 최상위권이기는합니다. 글 끝낼법이 생각안납니다. 4시간여 걸릴 줄 알았던 프로세스가 10시간 걸려서 기다리다가 무작정 끄적이기 시작했거든요. 댓글에서 뵙겠습니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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