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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8/12/15 11:38:43
Name   The xian
Subject   스물 다섯 살까지 저는 한나라당의 지지자였습니다 (2)
들어가기 전에. '광주민주화운동'이란 용어가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에 대해 제가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은 점이 있어, 5.18 민주화운동을 '광주사태'에서 '민주화운동'이라 부르게 된 유래에 대해 잠시 말하고 넘어갑니다.

사실 우습게도, 요즘 일각에서는 '광주민주화운동'이란 용어를 '진보 좌파'들이 만들었다거나 심지어 '김대중 정부가 만든 명칭이다'라는 가짜 정보 또는 뉴스가 유행하고 있는 듯 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 용어는 과거 노태우씨 취임 이후 '광주민주화운동진상조사특별위원회'를 만들면서 처음 공식 확정된 것입니다. 시기도 김대중 대통령 때보다 10여년 먼저 확정된 것이지요.

게다가 이 용어를 주장한 것은 다름아닌 민주정의당입니다. '엥?'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농담이 아닙니다. 당시 평화민주당 등의 야권에서 '광주민주항쟁'등으로 '투쟁'을 뜻하는 용어로 부르던 용어를 그들 나름대로 '순화'시키고자 민주정의당 측에서 주장한 용어가 '광주민주화운동'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초기안으로 민주정의당에서 '광주사태'를 제안했던 건 당연한 일이고요)

제발 좌파 어쩌구 하면서 색깔론 씌우기에 여념이 없는 작자들이 거짓말 좀 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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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에서 계속됩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당선되고 나서, 신문을 통해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이름도 조금씩,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지나고 대학에 들어가면서도 제게는 광주는 '광주사태'였지 '민주화운동'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제 어릴 때부터의 생각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노태우, 전두환. 두 전직 대통령이 구속되면서부터였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노태우, 전두환 두 사람의 구속 사건 시작은 크게 보면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폭로 사건이었습니다만 사실 비자금 문제는 저에게 큰 이슈가 되지 못했습니다. 이명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이나 그 부역자인 자유한국당 패거리의 비리와 거짓말 등등에 거품을 무는 지금의 제 모습을 보면 믿기 어려우실 일이지만, 저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 수천억원의 통치자금을 조성했다고 인정하는 말을 듣고도 별로 놀라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별 일 아니라고 넘어갔고 그래도 다른 비리를 저지른 것들보다 노태우가 낫다고까지 생각하는, 지금 생각하면 매우 당황스러운 생각을 한 것입니다. 비록 잠깐이었지만 말이죠.


지금 다시 생각해도 대학을 갓 들어간 청년이 그렇게 참으로 후지고 부끄러운, 처참한 인식을 지닌 것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을 정도입니다. 한창 정의롭고 배운 대로 생각해도 모자랄, 갓 스무 살의 나이에 여느 노회한 정치인보다 썩은 인식을 지녔으니 참 웃기는 일이지요. 다만 그에 대해 굳이 변명이든 해명이든 하자면. '무감각하던 시절을 지내 왔기 때문입니다.'란 말을 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제가 국민학교(초등학교 아닙니다)와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엔 대통령 선거는 말할 것도 없고 국회의원만 뽑아도 하다못해 우산이나 수건, 작은 기념품 등을 돌리는 것은 공공연한 일이던 시절입니다. 당선이 되려면 으레 그래야 한다는 게 후보자들 뿐만 아니라 유권자들 사이에서도 당연한 이야기로, 지금 같으면 50배의 과태료를 물었을 일이 너무도 빈번히 일어났던 어린 시절입니다.

주변 어른들의 발언도 한몫 했습니다. 그런 뉴스가 터지고도 대통령이 몇천억쯤은 있어야 자기 정치를 하는 법이라는 논리(?)는,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논리는 커녕 돌 맞기 딱 좋은 말이지만 그 당시는 '그렇지요 뭐'하고 넘어가는 분위기였습니다. 게다가 당시는 대통령이 여당인 민주정의당이나 민주자유당의 총재를 겸하던 시절입니다. 오히려 주변 어른들 중에서는 의혹이 나오고 난 뒤 이를 인정하는 기자회견을 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진정한 남자네'라고까지 치켜세웠고 저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럼 말 다 한 겁니다.


하지만 그에 뒤 이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친구(!)인 전두환 대통령의 '도주'와, 그로 인해 바뀌는 뉴스의 논조들이 저에게 서서히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합니다.

이른바 제5공화국의 '땡전뉴스' 시절을 거치며, 광주 시민들을 반란군이나 폭도로 매도하던 방송과 언론들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도주 행위를 기점으로 군사반란의 실상을 보도한다는 식으로 너도나도 전두환 전 대통령을 반란 수괴로 보도하기 시작했던 흐름을 저는 기억합니다. 95년 겨울. 전두환 전 대통령의 구속 과정을 기점으로 서서히 바뀌기 시작한 뉴스의 논조에 따라 광주에 대해 제가 알고 있었던 잘못된 지식은 서서히 깨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뉴스들을 볼 때마다 어릴 적 제가 알던, 봄과 여름, 가을 쯤에 제가 대학에서 했던 일들. 그런 것들이 모두 부정당하는 느낌을 받았고 제 어릴 적의 행동 중 상당한 부분이 사실은 크게, 그것도 매우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저는 내심 많이 괴로워하게 되었습니다.


때마침 그 시기를 전후하여 저는 광주를 반란군이라 했던 아버지였던 사람을 더 이상 보지 않게 됩니다. 제가 자의로 연을 끊거나 하는 것처럼 뭔가 극적인 일이 있은 것은 아니었지요. 아니. 차라리 그런 극적인 일로 자의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었다면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슬프게도 제 아버지였던 사람은 예전부터 그다지 가족을 돌보지 않는 아버지였습니다. 아니. 돌보지 않는다는 말로는 부족합니다. 가족을 버린 것이죠. 어머니 말에 의하면 중고등학교 때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사실 제대로 생활비도 주지 않고 몇번이고 찾아가 사정사정해야 돈을 찔끔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것을 아주 늦게 알게 됩니다.) 그리고 아버지였던 사람은 제가 대학생이 되고 난 다음부터는 왕래가 끊기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제 아버지였던 사람은 가족을 버렸다고 말해야 맞을 겁니다.

그 자는 가족을 버렸고 저와 어머니와 동생은 버림받았습니다. 덤으로 친가와도 왕래가 끊깁니다.


어쨌거나, 얼마 뒤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유죄가 확정되면서 저는 노태우, 전두환 두 전직 대통령을 다시는 '전직 대통령'이라고 부르지 않게 됩니다. 그들은 저에게 '노태우씨, 전두환씨'가 됩니다.

하지만 저의 번민은 '과정'은 커녕 '이제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그 때 저는 알지 못했습니다.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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