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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9/01/05 00:58:23 |
Name | 이슬먹고살죠 |
Subject | [CHAOS] 팬픽 소설 (1) |
아래 소설은 군생활할 때 틈틈히 인트라넷에 연재했던 글을 옮긴 것입니다. 전역 7년 후 기적적으로 사본을 발견해서 인터넷에 아카이빙차 올립니다. ==================================================== 서막(Prologue) 사막에서 시작된 모래바람이 한 마을 입구의 이정표를 휘감고 돌았다. 은빛으로 빛나는 두꺼운 철판에는 수도란 글자가 음각되어 있었다. 마을 입구의 반질반질한 돌길과 양 옆으로 선명하게 나 있는 바퀴자국, 자신 있게 수도라는 이름을 내보이고 있는 이정표, 모래바람 속에서도 빛을 반사하는 눈부신 금속제 기둥은 이곳이 금속과 기계공학의 메카 아이언포지라는 것을 대표하고 있었다. 그러나 과거는 과거일 뿐, 이곳 아이언포지는 예전의 활기참과 분주함을 잃은 지 꽤나 되어 보였다. 매일같이 들리던 티타늄 망치 소리도, 마법물약을 파는 시장상인들의 호탕한 웃음소리도 없는 마을은, 끊임없이 불어오는 모래바람과 장단을 맞춰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주점인 듯한 곳에서 간간히 새어나오는 음악소리를 제외하면 유령도시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이따금 광장에 모습을 비추는 고블린들도 본래의 수다스러운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눈이 빨개진 채로 무언가를 급히 찾아다닐 뿐이었다. 바람을 닮은 그 방랑자가 아이언포지에 도착한 것은 햇살이 아직 뜨거웠던 늦여름이었다. 적막한 마을에 이방인이 도착한지도 벌써 2주가 넘었지만 그에게 관심을 갖는 이는 없었다. 여행자가 사막을 건너다 이곳에 들리는 일이 드문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방인은 으레 마을의 화제가 되곤 했었다. 그런데 이번 경우에는 마을 주민 모두가 그의 얼굴도 떠올리지 못할 정도―이번 이방인이 커다란 로브에 모자까지 푹 쓰고 다닌 탓도 있겠지만―였다. 그는 보통 바 한 구석에서 진을 마시며 하루를 보냈다. 무슨 일로 이런 사막 한 가운데의 도시까지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에게 관심을 가지는 이 또한 없었기에 특별히 문제될 만한 것은 없었다. 특별히 모습을 숨기지 않는데도 그 존재를 느끼기 어려운 것이 낯선 방랑자의 특징이었다. 때문에 그는 주점에서 떠느는 술 취한 드워프들의 의심을 받지 않고 자연스레 대화에 끼어들 수 있었다. "...여기도 원래 이런 재미없는 곳은 아니었단 말이야!" 맥주거품이 묻은 머리통만한 오크통을 내려놓으며 코가 빨개진 드워프가 중얼거렸다. "17년 전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지만 달이 없어지고 난 뒤로는 무기에 숨을 불어넣을 수가 없게 됐어. 봐 봐! 이 볼품없는 도끼를." 거의 자기 키만 한 도끼를 등에 매고 있던 드워프가 말을 받아쳤다. 그의 도끼에는 드워프의 언어로 마력선이 그어져 있었다. 분명 그 마력선은 휘두르는 자의 안광과 같은 색으로 치열하게 빛났으리라. 드워프들의 무기 공정은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 채광-제련-마력귀속으로 나뉘는 무기 공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드워프의 무기는 단순 제련을 통해 나오는 일반 무기와 차원을 달리한다. 마력을 담을 수 있는 금속만을 모아 제련하고, 최종적으로 마력선을 새기면 마장기가 탄생한다. 마장기는 소유자의 마력을 읽고 받아들여 강도, 무게, 탄성, 예도를 비롯한 모든 수치가 비약적으로 상승된다. 이 때 마장기의 마력선에는 사용자의 마력이 기억되고, 그 사용자에게만 반응하는 무기가 된다. 착용자에게 귀속되어 그야말로 사용자의 분신이 되는 것이다. 마장기는 전장에서 빛나는 성과를 거두곤 했으며 실제로도 마력의 속성에 따라 아름답고 잔인하게 빛났다. 아무튼, 코가 빨개진 드워프가 다시 말을 받았다. "빌어먹을 고블린놈들도 그때부터 늘어나기 시작했어. 망할. 기계 같은 것에 혼이 있을 리가 있나! 제기랄. 마법만 다시 쓸 수 있다면! 겉으로는 아이언포지의 새로운 상품이라지만 그딴 게 시장에서 나돌아봤자 삭막해지기만 할 뿐이야. 봐 봐. 예전처럼 무기를 사고 여관에서 묵는 사람이 있나 술을 마시러 주점에 들르는 사람이 있나. 자기한테 물건을 판 고블린의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고 도망치듯이 이곳을 빠져나갈 뿐이지. 대체 요새는 또 뭘 그렇게 찾아다니는 거야? 벌써 2주나 지났어. 원래 뜻모를 말만 지껄이는 녀석들이었지만 그래도 입을 다물어버린 요즘보다는 나아. 요즘은 보고 있자면 소름이 끼친다니까." 도끼를 맨 드워프가 거들었다. "드워프들도 마력이 모이는 곳을 찾아 대부분 떠나버리고, 이젠 고블린들의 아이언포지라고 해도 할 말이 없어." "웃기지마!" 코가 빨개진 드워프가 말을 끊으며 소리쳤다. "그런걸 노린다면 나부터 가만히 있지 않는다구! 젠장맞을 것들!"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잖나." "저것들의 공장을 폭파시켜 버리는 거야. 말로는 자기네들 공방에서 만든다고는 하지만 나는 봤어. 새벽에 토끼며 다람쥐며 하는 것들이 편지를 물고 브론즈비어드의 성에서 떼거리로 나오는 것을. 그것들이 고블린한테 지령을 내리고 있었어. 저놈들의 왕이 거기 있는 거겠지. 빌어먹을! 감히 산왕의 성에서!" "그러고 보니 무라딘의 소식을 들은 게 있나? 마력을 잃은 날 가장 먼저 마을을 떠난 게 그분이었지." "내가 아는 게 있나. 그래도 산왕은 산왕이야. 분명히 마르티산의 도끼의 푸른빛을 되찾을 거라고. 고블린들이 날뛰는 걸 못 본 척 하는 것도 그날까지다! 빌어먹을 놈들." "그런데, 마르티산의 도끼가 뭐죠?" 걸걸한 두 목소리 사이에 갓 소녀티를 벗은 듯한 맑은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두 드워프는 소리 나는 방향을 동시에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머리까지 로브를 덮어쓴 이방인이 자신의 종족을 밝히는 듯한 뾰족한 귀를 쫑긋거리고 있었다. <계속>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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