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9/01/05 15:12:54수정됨
Name   레이즈나
Subject   동양의 디즈니를 꿈꾼 일본 애니메이션 백사전의 피
1950년대 일본은 한국전쟁이 불러온 엄청난 호황을 누리고 있었고 이런 호황 덕에 일본 영화계 역시 돈을 갈퀴로 긁어 모으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존감이 차오른 일본 최대의 영화사 토에이의 사장은 '우리도 디즈니처럼 애니메이션 만들어 보자!' 라고 나서게 됩니다.

토애이 이전에도 일본 애니메이션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1940년대엔 전시 선전물 용도로 모모타로 캐릭터를 이용한 장편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지기도 했고요. 하지만 전후 혼란 속에 이런 저런 흐름은 다 끊겨 버렸고 그런 상황에서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건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기나 마찬가치였죠.

한데 토에이는 애니메이션 제작 자회사 토에이동화를 만든 후 정말 맨땅에 헤딩하듯이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애니메이션 같은 건 만든 적도 없던 사람들을 파격적인 보수로 모으고 모인 사람들끼리 생각을 모으고 궁리하고 제작 도구까지 고안해 가며 애니메이션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노하우를 쌓아 갔고, 동양의 디즈니가 되기 위해 동양의 고전인 요재지이의 이야기를 원작으로 삼아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이 1958년에 나온 백사전. 디즈니처럼 초당 24장의 그림을 투입해 만들어낸 현대 일본애니메이션의 시작이 바로 이 작품입니다.

백사전 이후 토에이 동화는 계속해서 동양의 디즈니를 표방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만 이런 작품들은 막대한 비용이 들아건 거에 비하면 수익을 내지 못했습니다. 정작 수익을 낸 작품들은 회사 내에서 b급으로 싸게 만든 - 백사전을 비롯한 a급 작품들이 초당 24장의 그림을 쓴 데 비해 저런 b급 작품들은 초당 8장의 그림이 기본으로 쓰였습니다. - 인기 만화 원작 애니메이션들이었죠.  

결국 제작비 부담에 토에이 동화는 60년대 후반에 이르러 디즈니를 모토로 한 대작 작품들의 제작을 줄이려 했지만 이런 움직임은 노조 활동을 근간으로 한 회사 내 애니메이터들의 반발에 부딪쳤고, 이런 혼란 속에서 백사전의 꿈을 이은 애니메이터들은 자신들의 모든 걸 쏳는다는 마음으로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호루스는 쫄딱 망했죠.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 제작을 주도한 인물들은 하나 하나 토에이 애니메이션을 떠났고, 그렇게 토에이 황금시대는 끝이 납니다.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 이후 토에이 동화가 동양의 디즈니란 꿈을 아예 버린 건 아닙니다. 장화를 신은 고양이도 있고 백조 왕자 백조의 호수 지구로 같은 작품들은 토에이 동화 창립시절의 꿈을 이은 작품들이었고 한국에서도 방영한 고깔모자 삼총사도 따지고 보면 백사전의 꿈을 이은 작품이었죠. 하지만 분명 벡사전의 꿈은 점점 옅어져 갔죠.  

호루스의 대모험 흥행 실패로 토에이를 떠난 사람들이 바로 타카하다 이사오와 미야자키 하야오를 비롯한 이들이었고, 이들은 니혼 애니메이션에서 만든 알프스 소녀 하이디와 빨강머리 앤 미래소녀 코난 같은 작품들로 백사전의 핏줄을 이어가다 마침내 스튜디오 지브리를 만듭니다. 그렇게 동양의 디즈니를 꿈꾼 백사전의 피가 이어진 겁니다.


백사전 이야기는 90년대에 홍콩 영화 즐겨본 분들에게는 익숙할 수도 있습니다. 서극 감독에 왕조현 장만옥이 주연한 청사가 바로 백사전 이야기입니다.




10
  • 동양 애니 좋아요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5889 일상/생각[뻘글] 철학자 존 설의 중국어방 문제와 LLM 은 얼마나 다를까? 13 레이미드 25/12/11 732 1
8729 문화/예술동양의 디즈니를 꿈꾼 일본 애니메이션 백사전의 피 1 레이즈나 19/01/05 5749 10
9246 영화애니메이션 속 풍경을 그려내는 배경미술 3 레이즈나 19/05/29 10277 13
15222 철학/종교교회에 대한 기대를 조금 더 버리며(의식의 흐름에 따라) 4 레일리처럼될래요 25/01/20 2053 9
154 기타어느 병원으로 가야 하오 65 레지엔 15/06/01 13190 1
138 기타저는 환자입니다. 35 레지엔 15/05/31 12896 0
202 기타심심해서 써보는 자파메탈(Japametal) 14 레지엔 15/06/04 10753 0
232 기타Not the same old song and dance 11 레지엔 15/06/06 9295 0
311 기타배우 크리스토퍼 리 사망 9 레지엔 15/06/11 9136 0
349 기타신경숙 작가 표절 부인 21 레지엔 15/06/17 9830 0
477 생활체육간합의 변화로 본 mma 발전 양상 17 레지엔 15/06/30 9534 0
592 음악이보쇼 거기서 뭐합니까... 8 레지엔 15/07/15 8332 0
720 방송/연예밴드 '브로큰 발렌타인'의 보컬 반씨가 사망했습니다 6 레지엔 15/08/04 5512 0
849 의료/건강커피가 건강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최신 지견 46 레지엔 15/08/26 9325 0
942 의료/건강후쿠시마 원전 사태와 소아 갑상선암에 관련된 중간 리포트가 나왔습니다. 29 레지엔 15/09/07 7475 2
1153 일상/생각일욕심과 편하고 싶은 마음의 딜레마 35 레지엔 15/10/01 9527 3
1268 정치용인 캣맘 사망 사건 용의자 체포 11 레지엔 15/10/16 8030 0
2802 의료/건강정말로 신은 없습니다. 22 레지엔 16/05/13 5755 1
2811 영화<스포일러> 곡성에서 보이는 호러영화 매니아의 흔적 28 레지엔 16/05/14 6938 2
3171 의료/건강담배는 파킨슨병을 줄여줄 것인가? 22 레지엔 16/07/01 5517 2
3875 영화이성애가 비주류라면 14 레지엔 16/10/11 5129 1
4343 음악제대로 불러보고 싶은 노래 14 레지엔 16/12/09 4779 1
5820 일상/생각연애의 시작과 고백이라는 세레모니에 대해서 25 레지엔 17/06/21 5564 1
5893 스포츠남성 호르몬 수치와 여성 육상 성적의 관계 12 레지엔 17/07/05 5674 0
5971 문화/예술전인권씨의 표절 의혹에 대한 실망스러운 발언 31 레지엔 17/07/18 7180 2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