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9/01/13 18:46:31
Name   swear
Subject   나는 아직도 깍두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릴 때 나는 편식이 무척이나 심한 편이었다.
지금도 물론 어느 정도의 편식은 하지만 어릴 때에 비하면 천지가 개벽할 수준으로 많이 나아진 편이다.
어릴 때는 반찬이 5~6가지가 나오면 절반 이상이 못 먹거나 안 먹는 반찬이었으니 말이다.

그중 특히 싫어하는 반찬이자 지금도 못 먹는 반찬 중 하나가 깍두기이다.

내가 4~5살 때라 잘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누나의 증언에 의하면 담은 지 얼마 안 되는 깍두기를 엄마가 나에게
억지로 먹이려고 입에 넣다가 내가 밥이랑 깍두기를 통에 그대로 토하는 바람에 새로 담은 깍두기를 그대로 버린 적이 있다고 한다.
내 기억엔 없는 걸로 봐서 엄마가 내가 워낙 평소에도 편식이 심하다 보니 혼내지 않고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서 기억에 없는 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해 본다.

어쨌든 편식쟁이인 내가 깍두기를 지금까지도 싫어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는데 그게 유치원 시절이었다.
당시 내가 다니던 곳에선 밥을 다 먹고 나면 만화영화를 보여주곤 했는데 그날도 어김없이 밥을 먹고 다른 아이들처럼
만화영화를 보러 가려는데 새로 오신 선생님이 나를 막아섰다.

왜 그러냐 물어보니 깨끗하게 밥과 반찬을 다 비워야 만화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내 식기에 남아있는 건 국 조금과 하나도 손대지 않고 그대로인 깍두기 5~6조각이었다.

국은 먹을 수 있지만, 저 양의 깍두기를 모두 먹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선생님에게 사정사정 해보았지만,
선생님은 아주 단호하게 안 된다 말했고 결국 이걸 먹을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쭈그리고 앉아 깍두기를 최대한 잘게 포크 숟가락으로 잘게 잘라서 입안에 조금씩 넣었는데 1개, 2개, 3개까진 꾸역꾸역 넘겼지만
4개째가 되니 속에서 부터 받아들일수가 없어 토할 것만 같았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체로 선생님을 쳐다보았지만, 선생님은 조금의 움직임도 없었고, 결국 토할 거 같은 억지로 꾹꾹 참으면서 나는 잘게
잘라놓은 깍두기를 모두 입안에 삼키고 나서야 다른 애들처럼 만화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애들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깔깔거리며 닌자거북이를 시청하고 있었지만, 이미 절반 이상 지나버린 상황에서 스토리가 뭔지도 모르겠고
울렁거리는 속 때문에 도저히 만화에 집중할 수도 없는 체로 나는 보는 둥 마는 둥 만화영화를 보고 오후에 유치원에서 무엇을 했는지도 기억도
안 나는 체로 귀가하자마자 열심히 변기를 붙잡고 속에 있는 걸 모두 토해냈다.

그러고 나서 거의 3~4일 동안 먹을 때마다 체해서 소화제를 달고 살았던 걸로 봐서 어지간히 먹기 싫었던 모양이다.


어쨌든 그 후로 나는 깍두기라면 냄새만 맡아도 싫어하는 반찬이 되었고, 닌자거북이는 영문도 모른체 가장 싫어하는 만화 중 하나가 되었다.






ps. 어릴 때는 못 먹는게 많다는게 무척이나 부끄러웠지만 지금은 건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선 내가 먹고 싶은 건 원없이 먹고 살자
주의입니다. 세상에 얼마나 맛있는게 많은데 내가 먹기 싫은 것까지 먹고 살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죠...



2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6330 기타요즘 서울 아파트 매매 시장 간략 후기 24 soul 17/09/24 5873 3
    7017 기타6년 만난 여자친구와 헤어졌습니다. 18 soul 18/01/29 11649 25
    10220 일상/생각세무서 부가세 신고창구 이야기 2 Soul-G 20/01/25 4428 7
    13866 경제심심풀이 5월 종합소득세 이야기 10 Soul-G 23/05/16 1792 3
    13478 일상/생각위로좀 해주세요~아들입시 관련... 10 soulless 23/01/13 3128 9
    13950 일상/생각chat_gpt에게 항성의 갯수를 구하는 프로그램을 코딩해달라고 했습니다. 7 soulless 23/06/05 2089 0
    14676 IT/컴퓨터BING AI 에서 노래도 만들어주네요.. 3 soulless 24/05/14 856 0
    14860 일상/생각노후대책 생각해 놓으신거 있나요? 29 soulless 24/08/22 1683 0
    9290 음악Red Hot Chili Peppers - Live at Slane Castle(2003) 3 sound And vision 19/06/08 5369 1
    6689 일상/생각바나나빵 10 SpicyPeach 17/12/01 4016 7
    12702 일상/생각신기하고 사랑스러운 강아지란 존재 7 StrPepMint 22/04/07 3515 14
    7390 일상/생각일베하는 학생과의 세월호 관련 대화. 15 sungsik 18/04/16 5691 7
    8107 일상/생각살면서 겪었던 무서웠던 경험들 9 swear 18/08/24 4928 2
    3939 음악고등학교 시절 나름 빠져 살았던 비주얼락(?) 밴드 EVE 6 swear 16/10/17 5961 1
    3957 음악배우 김민종보다 가수 김민종으로 더 기억되는 사람 4 swear 16/10/19 6118 0
    3992 음악댄스그룹이지만 발라드곡을 더 좋아했던 그룹 쿨, 터보 13 swear 16/10/23 4395 0
    4036 영화[스포주의] 마블 인피니티 스톤 떡밥 정리 7 swear 16/10/29 6064 0
    4149 일상/생각진정한 친구이자 동료가 있었던 사람 17 swear 16/11/13 5609 1
    8759 일상/생각나는 아직도 깍두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5 swear 19/01/13 3687 2
    9688 일상/생각가족 2 swear 19/09/20 4465 2
    9862 일상/생각꿈을 꾸는 사람 2 swear 19/10/19 4872 6
    10218 일상/생각멘탈이 탈탈 털린 개인카페 리모델링 후기 42 swear 20/01/23 5749 24
    10276 일상/생각문득 보고 싶은 친구 녀석 3 swear 20/02/09 4449 6
    12247 게임[불판] LOL 2021 월드 챔피언쉽 결승 286 swear 21/11/06 5643 3
    12241 기타[불판] 코리안 세일 페스타 지름 불판 39 swear 21/11/04 4920 7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