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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9/02/12 15:23:55
Name   AGuyWithGlasses
Subject   [사이클] Festina 사건 - 너도 하고 나도 하는 도핑
https://redtea.kr/?b=3&n=7785 시기적으로는 이 글 모두에서 말한 사건 뒤에 이어집니다. 글을 먼저 보시고 이 글을 읽으시면 연대가 딱 맞습니다.

언제나 프랑스의 7월은 시끌벅적합니다. 1998년의 여름은 더욱 특별했다고 합니다.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프랑스는 우승을 했고, 그 열기가 바로 다음에 벌어지는 TDF로 이어진 거죠. 또 한번 프랑스가 월드컵 우승을 했던 작년에도 TDF의 프랑스 내 시청률이 다른 해보다 높았었다고 합니다. 이 나라도 국뽕이 장난이 아니라서...

그러나 이 해의 TDF는 시작 전부터 엄청난 사건을 맞게 됩니다. 사이클 업계의 타락이 본격적으로 대중들에게 드러나기 시작한 거죠. TDF 시작(7월 11일) 3일 전인 동월 8일, 벨기에-프랑스 국경에서 Festina 팀 소속의 팀카가 검문을 받습니다. 세관 경찰들은 팀 카를 수색하던 도중 수백 그램의 다양한 스테로이드, EPO, 주사기, 400개에 달하는 약물 앰플, 각종 도핑기구들을 적발해 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에 경악합니다. 이건 한 팀에서 쓰기엔 너무 많은 양이었거든요. 저 앰플들은 독일이나 스위스의 제약회사 연구실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이 당시 TDF는 아일랜드에서 출발하는 루트였기 때문에, 일단 조직위는 조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합니다. 모두가 다 아일랜드에 가 있었으니까요.  그 사이 경찰들은 페스티나 팀의 본부를 수색하고, 자세한 도핑 계획이 적혀있던 문서를 발견합니다. 도핑이라는 게 그냥 앰플에 든 약을 주사기에 넣고 팔에 바늘 꽂는다고 되는 게 아니라서... 이 시기 자가수혈 쯤 가면 거의 팀 호텔이 병원 수준이고 팀카는 이동식 약국이었다고 전해집니다.

결국 Stage 6쯤 가면 감독과 팀 닥터, 보건 담당 직원이 체포되고, Festina의 선수들은 전원 경기에서 제외되고 경찰 조사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누가 봐도 적발된 약물의 정도는 다른 팀들까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양이었기 때문에, 수사가 전방위로 확대됩니다. 그리고 다음 날, 북동부 프랑스에서 경찰은 TVM 소속 팀 카를 찾아내어, 104개의 EPO 앰플을 발견해 냅니다. 투르의 분위기는 완전히 개판이 됩니다. 결국 TVM 팀도 17스테이지 이후 나머지 선수들이 전부 도핑 혐의로 수사를 받기 시작하면서 경기를 포기합니다.

투르의 첫 휴식일에 모든 팀들이 조사를 받습니다. 추가로 몇몇 선수들이 적발되었습니다. 한 선수는 TDF 출전한 팀들 모두의 약물 공급책이라는 혐의까지 받았습니다. 이 때는 사실 2개 팀만 도핑 사실을 적발하는 선에서 수사가 종료되었지만, 사실상 봐주기 수사라는 오명을 씻을 수가 없었죠(이는 후술). 펠로톤의 행위도 개차반이었는데, Stage 18에서 도핑 수사에 대한 항의로 스페인 4개 팀이 단체로 경기를 포기하고, 일부러 경기 진행을 질질 끄는 추태를 보입니다.

결국 이 해의 투르는 얼룩진 채로 끝이 났고, 프랑스 월드컵 우승의 분위기는 이미 싹 걷어졌습니다. 많은 프랑스인과 유럽인들은 가장 친숙했던 스포츠 중 하나가 실은 약쟁이들 천국이었다는 사실에 엄청난 실망감을 느낍니다. 그전까지는 예전에도 글을 썼지만 EPO가 막 펠로톤에서 나돌아다니고, 많은 팀들이 그걸 따라하더라도, 적어도 그건 '펠로톤 내'에서의 일이었거든요. 현실이야 어떻든 언론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대중은 모르는 법입니다. 그냥 관행이라고 넘어가기엔 너무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이 때 사람들도 이 해의 사건이 그저 끔찍한 시대의 처음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을 겁니다. 지금이야 다 드러난 이야기지만, 다음 해 TDF는 1위를 달리고 있던 선수가 종합우승을 앞두고 약물이 적발되어 또 개판이 되고, 이렇게 한 시대의 선수들이 약물로 퇴장하니까 그 자리를 비집고 들어온 시대의 지배자가 십수년 뒤에 '사실 그거 다 약물이었음' 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겁니다.

결론적으로 위에서 적발된 선수들은 대부분 약물 복용을 시인했고, 저때에는 완강히 거부했던 선수들도 은퇴 뒤에 즙 짜가면서 그거 다 약물이었다...는 고백을 합니다. 2010년대 초반 언제였더라... 저때쯤에 도핑 테스트용으로 받아냈던 소변 샘플들을 다시 검사해 보니 90%에서 약물이 나왔더라는 충격적인 결과도 있었죠. 처벌? 재판들은 다 갔는데 유야무야됐습니다... 제가 도핑 사건들을 죽 보면서 느끼는데 알베르토 콘타도르 이야기할 때도 말했지만 유럽이야말로 유전무죄의 끝판왕입니다.



정리하자면, 이 사건은 스포츠계에서 더 이상 약물을 두고만 볼 수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그전까지는 매니아들이나 관계자 사이에서만 문제가 되었던 약물이, 일반 대중들에게까지도 심각성을 인식하게 만든 거죠. TDF는 7월되면 프랑스 노천 카페같은 곳에서 3주 내내 틀어주는 프로그램입니다. 6시간 구간 전체 중계 평균 시청률이 지금도 20%가 넘어가고, 저시절이면 하이라이트 구간에선 50% 나오던 시절입니다. 남녀노소가 모두 보는 프로그램에서 선수들이 치팅을 했다더라...는 이야기가 나왔으니 그 시절 사람들이 받은 충격이 어마어마했죠. 왜 우리도 그런 시절이 있었잖습니까. 빅맥과 소사 그리고 73호 친 본즈 실제로 다 그거 약빨이었다더라... 첨 들었을때 받았던 충격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가지 싶습니다.

업계에서는, 더 이상 스포츠 협회 주관으로 약물검사를 하는 게 얼마나 ㅄ짓인지를 처절하게 깨닫게 됩니다. 그전까지 모든 스포츠들은 해당 협회나 경기 주최측에서 도핑 테스트를 담당했습니다. 그러나 이게 얼마나 눈가리고 아웅인지 만천하에 드러낸 사건이죠. TDF 경기 내내 '단 한명의 선수도' 도핑 테스트에서 적발되지 않았습니다. TV에서 매일 연신 구단 차를 프랑스 어딘가에서 검거했는데 트렁크에서 약국 차릴  수준의 약물이 나왔다더라는 뉴스를 때려대는데도 말이죠.
게다가 이런 약물들은 편의를 위해서 몇몇 팀에서 대량으로 사와서 엠플을 서로 나누어 맞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국경지대에서 검문받은 차에서 엠플이 400개나 나온 겁니다. 한 팀당 열 명이고 모든 선수가 매일 약을 해도 200개 언저리면 충분한데 말이죠. 의대 연구실-제약회사-브로커-팀 선수단'들'의 연결고리도 이때 처음 등장하죠.


결국 따로 반도핑기구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났고, 99년도에 WADA가 만들어집니다. WADA는 각 국가별로 지부를 만들어서 운영하는 형태로 지금에 이르고 있죠. 그럼에도 창과 방패의 대결은 항상 창이 이기고 있습니다. 베이징 올림픽만 해도 8년 뒤에 샘플 검사해보니 또 우르르 약쟁이가 나와서 메달 색깔들이 많이 바뀌었죠. 런던도 마찬가지고. 반도핑 측도 최선을 다하고 정말 모든 노력을 쏟고 있습니다만 언제나 막는 측은 약하고 돈이 없고, 공격측은 돈이 많고 수단이 많습니다. 그래도 저 시절처럼 대놓고 팀 카에 약국을 차리는 시절은 지났죠.

다음 글이 가능하다면 이 다음해 TDF에서 벌어진 마르코 판타니의 약물 파동과 판타니 선수 본인 이야기를 짚어볼까 합니다. 이 선수도 참 할 말이 많은 선수죠. 그 다음은 드디어 이 판의 끝판왕인 랜스 암스트롱 차례.

ps. 이 사건 이후 프랑스는 최초로 도핑을 '범죄'로 규정하고 형법에 넣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프랑스에 집 구한 수많은 스포츠 선수들이 다 이사갔다는 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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