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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9/06/05 00:34:45수정됨
Name   호타루
Subject   [다소 19금] 튜더스 시즌4 5회차 리뷰
영미권 드라마 중에 튜더스라고 있습니다. 튜더스. The Tudors. 튜더 가의 사람들이라는 뜻인데, 튜더는 영국 왕조였던 튜더 왕조를 의미하고, 이 튜더 가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그 유명한 헨리 8세입니다.

멀쩡한 아내 맞아놓고 딴 여자와 바람나서 국교까지 바꿔 버리는 초초초초강수를 둬 가며 그 여자와 결혼했더니만 성질머리 빡빡 긁는다고 근친상간으로 몰아 모가지, 그렇게 맞아들인 아내는 고대하던 왕자를 낳았지만 그와 동시에 산욕열(대충 산후감염증 정도로 보시면 되는데 요즘이야 워낙 깔끔을 떨어서 산욕열로 죽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중세 당시에는 그야말로 걸리면 죽는 무서운 병이었죠)로 사망... 네 번째 아내는 그림 보고 얼씨구 좋다 하고 맞아들였더니 웬 암말이 왔다고(이거 실제로 한 말입니다;;;) 화를 내며 바로 이혼에 중매 섰던 중신까지 모가지. 다섯 번째 아내를 들였더니 이번에는 이 아내가 바람이 났네요? 그래서 모가지. 마지막으로 아내를 맞아들였을 때는 이미 헨리 8세의 나이가... 뭐 그런 이야기죠. 그 와중에 메리 튜더와 엘리자베스 튜더 - 훗날의 엘리자베스 1세 - 및 왕자 에드워드(에드워드 6세)에 얽히는 이야기까지 잘 풀어낸 수작입니다. 아 물론, 드라마로 역사 공부하지 마라라는 철칙은 이 드라마에서도 유효합니다만... 상대적으로 고증이 잘 된 명작 드라마라 스토리의 맥락을 파악하는 정도에서 즐기는 건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서론이 길었는데 드라마는 드라마고... 이 드라마는 인간군상과 정치 싸움 및 심리묘사를 절묘하게 잘 표현한 수작입니다. 역사를 걷어내고 한 편의 정치 드라마로 봐도 훌륭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그렇게 되면 배경 지식 없이는 흐름이 좀 많이 빡세겠지만...) 그 중에서 개인적으로 최고로 치는 게 시즌4 5화입니다. 다섯번째 왕비인 캐서린 하워드의 몰락을 표현한 에피소드에요.

이 시즌4의 5화만 한 열 번은 본 것 같은데, 처음에는 정사씬 많기로 유명한 시즌4에서 갑자기 분위기 잔인해지며 고문과 유혈이 낭자한 처형씬에 아예 모가지만 뎅겅 잘려서 창에 꽂혀 있는 게 그대로 나오는 - 밥 먹다가 토하기 딱 좋은, 마치 한 편의 공포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 살벌한 씬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아 물론 잔인한 장면은 시즌3에서도 꽤 많이 나왔습니다만... 그러다가 다섯 번쯤 보게 되면 조금씩 인간군상에 눈길이 가게 되고, 또 다섯 번쯤 더 보고 배경도 찾아보고 대사를 거지반 외울 정도가 되면 대사를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면서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숨은 흐름의 진면목을 보고 감탄하게 된다는 거죠.

그래서 일단 직접 구해서 보시는 걸 추천하되, 시즌4 5화에서 묘사된, 죄를 지은 인간들이 어떻게 문자 그대로 개박살이 나는가를 좀 트래킹해 보겠습니다. 약간의 현대식 의역을 바탕으로 표현을 좀 강하게 할 거라, 운영진들의 아량을 부탁드립니다. 그래야 이해가 빠르거니와 좀 표현하는 맛이 날 것 같아서요... 덤으로, 재미있어 보이는 영어 표현도 같이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일단 배경 스토리의 이해가 중요합니다.
다섯번째 왕비인 캐서린 하워드는 왕비로 발탁되기 전에 스캔들이 두 번 났었는데 하나는 헨리 매녹스(Henry Manox)였고, 또 하나는 프랜시스 데어햄(Francis Dereham)이었습니다. 이 프랜시스 데어햄이 문제였는데, 대체 무슨 생각이었는지 캐서린 앞에 당당히 나타나서 한다는 소리가...
데어햄(이하 D) : 왕비님, 저도 한 자리 주시죠.
캐서린(이하 C) : 큰일날 소리하고 있어! 빨랑 못 돌아가?
D : 하지만 왕비님 친구도 한 자리 해먹었잖아요. (캐서린에게는 비밀을 아는 옛 친구가 왕비를 보좌하는 시종이 되겠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친구가 있습니다.)
C : 아놔...
그래서 조선 시대로 치면 궁인(宮人)이 된 데어햄... 근데 이 양반이 궁에 들어와서 한다는 소리가...
D : 나불 나불 나불 나불... 그래서 저와 어렸을 때 매우 가까웠던 캐서린이 어쩌구저쩌구... 나불 나불 나불 나불...
그 와중에 캐서린은 왕을 모시는 시종이었던 토머스 컬페퍼(이하 T)와 바람이 나 버리고 시녀장인 로치포드 부인(이하 R, 앤 불린의 남동생인 조지 불린의 옛 아내였는데 사이가 무진장 나빴던지 조지 불린이 앤 불린과 근친상간을 저질렀다는 증언을 해서 불린 남매를 처형대로 보내버린 인간)은 이걸 방조 내지는 동조하고...
그걸 보다못한 건지 어쨌는지 누군가가 헨리 8세(이하 H)에게 투서를 던져넣는데...

...배경부터가 난잡하네요. 그러니까 간단하게 요약하면 왕 H의 왕비가 된 C. 그런데 C의 과거를 아는 D가 C에게 접근해서 한 자리 따냈더니 이 망할 놈은 C와 예전부터 가까운 사이였다며 입을 나불대고, 그 와중에 C는 T와 바람이 나고, C의 시녀장 R은 막지는 못할망정 동조하고... 그 상황에서 누군가가 해당 내용을 적어 H에게 투서를 던졌다-가 지금까지의 줄거리입니다.



드라마 초입부에서 헨리 8세는 세번째 왕비 제인 시모어의 오빠, 그러니까 처남(형님)이자 과거 박정희 시절 중정부장 정도의 위신을 가졌던 에드워드 시모어(이하 E), 헛포드 백작(Earl of Hertford)에게 다음과 같이 지시합니다.
H : 너 이 편지(투서) 봐봐. 뭐라고 쓰여 있냐?
E : 그거 방금 전에 읽으셨...
H : 야 임마, 뭐라고 쓰여 있는지 읊으라고 이 자식아.
E : 음, 그러니까... 캐서린 왕비님이 궁으로 오기 전에 헨리 매녹스와 프랜시스 데어햄 두 남자와 공공연한 스캔들이 났다는 이야기네요.
H : 누가 썼냐?
E : 그게... 익명인데요. 대면해서 말씀드릴 자신이 없다고...
H : 가짜구만. 누군가 캐서린을 음해하기 위한 수작임에 틀림없어.
E : 그렇구말굽쇼. (이 양반이 캐서린을 왕비의 자리에 앉힌 사람 중 하나라. 스캔들이 터지면 자칫 이 양반까지 모가지가 달아날 판이었죠.)
H : 그렇다고 해도 진상을 알아야겠어. 진상을 다 파악할 때까지 멈추지 말도록. 알았나?
E : 알겠습니다.
H : 일단 혐의가 풀릴 때까지는 시녀장을 제외하고 죄다 쫓아내도록.

밑바닥을 볼 때까지 멈추지 마라 - 이걸 가리켜서, 좀 있어 보이게... Do not desist until you have reached to the bottom of the pot이라 표현하더군요. 왕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투서가 날아들 경우 조사를 명하는 것이 매우 당연했을 겁니다. 가짜라고 생각했는데도 조사를 명한 데에는 몇 가지 목적이 있었겠죠. 첫 번쨰로 어떤 자식이 이 따위 망발을 저질렀느냐. 둘째로 아내에 대한 음해에 대해, 편지에 쓰인 그런 거 없다고 깨끗하게 밝혀야 아내도 좋고 나도 좋고 잉글랜드 국가적 위신도 좋고. 셋째로 아내라고 해도 법 - 정확히는 자기 자신이겠지만 - 앞에서는 평등하다는 걸 보여줘야 법치 국가로서의 위신도 서고. 그런 점에서 수사를 명하고 시작했겠죠. 그 과정에서 대어가 걸릴 줄은 생각도 못 했겠지만...

뭐 일이 이렇게 진행되었으니 캐서린은 일시 유폐되었고, 나불대던 프랜시스 데어햄은 즉시 체포. 그리고 에드워드 시모어는 데어햄을 직접 심문하기 시작합니다. 이전에 앞서 언급한 비밀을 아는 친구가 심문을 받는데, 그 친구는 겁에 질려서 데어햄이 왕비와 관계를 가졌음을 실토했죠. 사극 아니랄까봐 표현이 참으로 고풍스러운데 have one's maidenhead라는 표현을 쓰더군요. maidenhead는 처녀성이라는 뜻이니, 그러니까 그 친구가 처녀성을 가져갔냐? = 그래서 그게 왕비와의 첫 경험이었냐? 정도가 되겠네요.

E : 너 캐서린 하워드가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며?
D : 뭐... 그렇습니다만...
E : 너, 캐서린과 했냐? (have carnal knowledge of one's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직역하면 그 사람의 육체의 지식을 가졌다는 뜻이니 성관계를 맺었냐는 의미가 되죠.)
D : 어... 소꿉놀이 비슷한 걸 했는데요... 내가 남편이고 캐서린이 부인 역할을 하는 거요.
E : (말 돌리는 거 봐라?) 야, 그래서 했냐고 안 했냐고? (Did you know her carnally?) 침대에 기어들어갔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어.
D : 그 때는 왕비가 아니었...
E : (걸려들었군) 다시 묻지. 했냐 안 했냐?

잠시 후 데어햄을 고문실로 데려가서 한다는 말이...
E : 똑바로 말해. 안 그러면 고문당할 줄 알아.
D : 아, 아... 알겠습니다.

E : 아주 선물까지 주고받으셨더만. 대체 왜 선물을 주고받으셨을까?
D : 그녀가 저를 사랑해서...
E : ㅋㅋㅋㅋㅋ... 얼씨구? 사랑?
D : 그녀가 저에게 고백해 왔단 말입니다.
E : 그러면 약혼한 거네?
D : 그렇게 예정되어 있었죠. 그래서...
E : 그래서 하셨겠다?
D : ...그렇습니다. 약혼까지 했으니 잘못될 건 없잖아요?
E : 그럼 결혼을 왜 안 했는데?
D : 아일랜드로 갔다왔더니 왕비가 되어 있더라구요...
E : 최근에 왕비는 너를 고용했지. 대체 왜?
D : 왕비의 할머니가 주선했습니다.
E : 자, 일단 왕비가 되기 전에 관계를 가진 건 인정했고. 그러면 왕비가 된 후에도 관계를 가졌겠지?
D : 아니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제 명예를 걸고!
E : 명예를 걸고? (남은 명예가 있기는 하냐?)

자, 이렇게 되니 일단 왕비는 과거를 속였고, 과거의 내연남을 안으로 들여오기까지 했다는 이야기가 되죠. 여기에서 왕비가 그 내연남과 관계를 가지지 않았다? 이걸 누가 믿겠습니까? 요즘처럼 연애하다 식어서 차 버리고 다른 남자와 만나서 결혼한 후라고 해도 과거의 연인을 불러들이는 게 가히 미친 짓인데 하물며 연애 결혼 따위 없었던 과거 잉글랜드 왕실에서야 말해 뭣합니까? 그래서 조사관인 에드워드 시모어 입장에서는 "이 새X 조져." 모드로 나올 수밖에 없죠. 에드워드 시모어가 결혼에 앞장선 인물이었으니 왕의 눈치를 봐서라도 더더욱 그럴 필요가 있었구요.

왕 입장에서는 황당함과 당황스러움이 제대로 교차했겠죠. 아내의 혐의를 벗기기 위해 조사를 명했는데 뭔가 나와요. 그것도 외간 남자가 있었고 최근에 측근으로 불러들이기까지 하고. 당연히 사실을 안 왕 입장에서는 일단 딥빡... 그런데 그 뒤가 더 볼만합니다.



일단 나불나불 나대다가 제 명을 자초한 데어햄은 본격적인 고문에 들어갔는데... 사실 이번 회차에서 고문씬을 보여주는 건 딱 한 번 뿐이지만 이 회차에서 세 번째로 잔인한 장면 되겠습니다.

고문 기술자 : (어디 보자... 어떤 도구가 쓸만할까...)
D : 나한테 왜 이래! 난 내가 아는 걸 죄다 불었다고!
기술자 : (옳거니, 이게 좋겠군.) 손이다, 귀여운 친구들아. 손 내놔라. (His hands, my loves. His hands.)
D : 뭐 하려는 거야!! 안돼! 안돼!! 안돼!!!!

아, 참고로 이 씬에서 행해진 고문이요? 손톱을 그냥 통째로 뽑아버리는 거였... 이게 CG처리가 아마도 됐겠지만 진짜로 손톱을 뽑힌 건지 아니면 CG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네요.



그리고 왕의 최측근 중 한 명인 가드너 주교(Bishop Gardiner, 보통 주교 앞에 붙는 건 담당구역이기 마련인데 이 사람은 본명이 스티븐 가드너입니다)를 캐서린에게 파견합니다. 그래도 꼴에 자기 왕비였다고, "사실대로 불면 목숨만은 살려 주지. 단 재판에서 증언할 내용 고대로 가드너 주교의 질문에 답해야 할 것이야."라는 메시지를 보냅니다. 여기에서 캐서린이 큰 실수를 하는데, 친절하게 가드너 주교가 "약혼한 사실이 있었다고 하면 좀 망신은 당해도 목숨은 건질 수 있을 거요" 하고 조언을 하는데도 그런 거 없었다고 버텼죠. 심지어 자기는 데어햄에게 강간을 당했다고 뻥을 치기까지... 이게 얼마나 얼척없는 답인지 짐작을 하고도 남으실 겁니다. 아니, 자기를 강간한 전력이 있는 사람을 비서로 들인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당연히 런던으로 돌아온 가드너 주교는 뻥일 거라 대놓고 이야기하지만, 적어도 뭔가 약혼 같은 게 있어서 결혼을 무효로 하기에는 충분할 거라 말합니다.

왜 캐서린은 이 상황에서 조언을 따르지 않고 거짓말을 했을까요? 아마도 왕비의 자리에 대한 미련이 캐서린의 눈을 멀게 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이건 여담입니다만 가드너 주교 역을 맡았던 사이먼 와드(Simon Ward) 선생은 고령에 건강이 좋지 않아 그만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유명을 달리하셨습니다. 벌써 7년이 다 되어 가네요. 영화와 드라마에서 윈스턴 처칠 수상 역도 한 번씩 해 보시는 등 꽤나 내공 있으신 분이었는데... 매우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네요.



아무튼 수사단의 핵심 인원인 에드워드 시모어, 가드너 주교(이하 G), 그리고 헨리 8세의 오랜 친우이자 매부인 찰스 브랜던(이하 B)가 모여서 회의하기를...

G : 뭐, 그거 강간이었다네요. 당연히 그거 다 뻥이겠지만, 적어도 뭔가 약혼 같은 게 있어서 결혼을 무효로 돌릴 수는 있겠네요.
E : 그리고 결혼 이후에 별다른 관계가 없었다고 주장하겠죠?
G : 당연하죠.
E : 아니, 그걸 믿으라구요?
B : 못 믿는 모양입니다?
E : 데어햄이 하는 말을 한 마디라도 믿을 수가 있어야죠.
B : 그거 어쩌면 데어햄이 아닐 수도...
E : 왜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H : 아그들아, 뭣 좀 알아냈냐?
G : 예, 왕비가 자비를 구하는데요. 블라블라블라하면서 잘못했다고 싹싹 비는뎁쇼.
H : 그래서 결혼을 무효로 하는 선으로 끝낼 수 있겠지?
G : 네, 그게 베스트겠네요, 폐하.

그래도 꼴에 자기 왕비였다고 최대한 자비를 베풀려고 애를 쓰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에드워드가 데어햄을 고문하려고 하면서...

E : 야 임마, 왕비가 된 이후에 너를 들여보냈는데 관계가 없었다는 말을 믿으라고?
D : (이빨을 뽑으려고 하는 시도를 저항하며) 제발 그만둬요! 그거 사실이라니까! 누군가가 나에 이어 왕비의 마음을 채 갔단 말이야! (Because someone else had succeeded me in her affections!)
E : (고문 기술자를 제지하며) 누구야?
D : (이미 멘탈이 나감)
E : 어떤 새X야!!!!
D : 토머스 컬페퍼...
E : 토머스... 컬페퍼!? 왕의 시종 말이야?
D : 예...

여기에서 다소 재미있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succeed + 목적어(때로는 보어까지 같이)로 쓰게 되면 이 때는 성공하다는 뜻이 아니라 이어지다라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는군요. affection은 애정이라는 뜻이니, 누군가 자기 뒤를 이어 마음을 채 갔다는 것, 다시 말해 왕비가 눈독을 들이는 사람이 바뀌었다는 폭탄선언을 한 거죠. 당연히 이들에 대한 수사에 돌입하게 되고... 여기가 중요 터닝포인트가 됩니다.



일단 캐서린은 바람이 났었다는 사실은 인정했지만, 간음을 저지르지는 않았다고 하면서 로치포드 부인이 간음하도록 부추겼다는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덤으로 나쁜 소문을 퍼뜨렸다는 말과 함께요.

한편, 에드워드 시모어는 토머스 컬페퍼를 심문하면서...

E : 너 이 자식, 여러 번 왕비와 비밀로 만났다는 사실은 인정하는 거지?
T : 인정합니다.
E : 근데 간음한 적이 없다고?
T : 없다니까요. 우린 선을 넘은 적이 없어요(We never passed beyond words).
E : (컬페퍼의 멱살을 잡으며) 사실대로 불지 않으면, 컬페퍼 씨, 고문당할 줄 알아!
T : 아 거 진짜라니까... 내가 더 진도를 빼고 싶었다는 걸 부인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렇게 하려고 하기는 했었다니까.
E : 맙소사! 그 사악한 의도만으로도 반역죄가 성립되는 건 알고 있겠지?
T : 하지만 날 끌고다닌 건 캐서린이었는데요! 내가 원해서 한 건 아니라구요! 그리고 로치포드 부인이 매춘부 알선자마냥 부추겼고!

이렇게 두 사람의 입에서 로치포드 부인의 이야기가 나오자 로치포드 부인을 심문을 안 할 수가 없죠. 에드워드의 동생 토머스 시모어(이하 S)가 직접 이야기를 듣는데...
R : 아니 왜 나를 걸고 넘어지죠? 난 죄가 없어요! 둘이서 바람났을 때 망을 봐야 했던 적도 있고 난 그걸 싫어했다구요! 심지어 토머스가 하필 거기에 있어서 왕이 오는 걸 막아야 했던 적도 있었는데!
S : 거기서 관계를 가졌습니까?
R : 달리 생각할 수가 있나요? 내가 보고 들은 게 있는데...
S :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서서) 경비병!
R : (나가려는 시모어를 붙잡고 울먹이며) 내가 죽을 것 같나요, 각하? 나 진짜 죽어야 하나요?
S : (외면하며) 문지기, 문 열어.



이 세 사람 각각에 행해진 심문이 제가 생각하는 백미입니다. 각자에게 유리한 이야기를 싸그리 걷어내고 보면 진상이 보이죠. 캐서린은 간음을 저질렀고, 토머스 컬페퍼는 적극적으로 나섰으며, 로치포드 부인은 적극적으로 부추기고. 이게 참 절묘합니다. 요즘에야 무죄 추정의 원칙이 중요하다지만 당시에는 그런 거 없었을 테고, 또 무죄가 아닌 유죄로 추정했을 때 정확히 사실에 들어맞는 케이스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그러니 참으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거 아니겠습니까. 더구나 분명히 놀아날 때는 아주 죽이 잘 맞았을 이 세 사람이 연인관계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자기가 살겠다고 서로를 탓하고 끌어들이고 비난하며 발버둥치는 모습은 그야말로 씁쓸함의 정수입니다.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가장 큰 장면이기도 했죠.

서두에도 말했지만, 처음에는 이 시즌4의 5화를 보면 잔인한 장면에 눈길이 가고, 이게 워낙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편이라서 다른 걸 생각할 겨를이 없는데, 몇 번 반복해서 곱씹다 보면 이 짧은 장면, 합해서 길어야 2~3분 남짓한 짧은 심문씬이... 죄를 지은 인간들이 서로를 비난하며 자기 스스로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알아서 몰아넣는 꼴이 되는 게 참으로 씁쓸하단 말입니다. 거 룬의 아이들 6권인가에서도 그런 장면들이 나오더만...



아무튼 그 결과를 왕에게 보고하면서...

E : 시키신 대로 진상을 죄다 파악할 때까지 멈추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긴장하며) 왕비와 간음까지 하며 전하를 배신한 놈이 있습니다...
H : 어떤 놈이야?
E : ...전하의 시종, 토머스 컬페퍼입니다.
H : (기가 막혀 말도 안 나오고)
E : 부정한 만남이 있었다는 건 부정하지 않았고, 간통은 없었다고 하는데... 컬페퍼의 방에서 캐서린이 쓴 편지가 발견되었습니다.
H : (완전히 꼭지가 돌아서 에드워드 시모어를 가리키며) 일이 일어난 건 너 때문이야! 니 잘못이라고! (이번에는 브랜든을 가리키며) 니가 결혼 설득(solicit)했지! (이마를 짚으며) 아내를 만나는 족족 이 모양이라니 이렇게 운이 없을 수가!
(드라마를 보던 제 입에서 나온 말 : 그게 니가 할 소리냐!?)
H : 내 맹세하지! 그 망할 개썅ㄴ이 바람나서 즐긴 그 어떠한 즐거움도 절대, 절대! 내 고문 기술자들이 가할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라고! (I vow, that any pleasure that wicked bitch got from her wantonness will be nothing, NOTHING!! In comparison to the pain she going to feel at the hand of my torturer!)

vow는 맹세하다는 뜻이고, 그나저나 위엄 있고 진중해야 할 왕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정도면 헨리 8세가 얼마나 빡쳤는지 상상이 가실 겁니다.



그래서 결말은... 뭐 다들 예상하시고 알고 계시다시피...

언급된 모든 사람들의 목이 달아납니다. 그나마 토머스 컬페퍼는 그래도 왕의 시종이었던데다가 컬페퍼와 데어햄의 형벌에 차이를 두고 싶어하는 왕의 심정이 반영되어 참수형으로 감형되고, 데어햄은 그런 자비(?) 없이 그 유명한 교수척장분지형 - 일명 Hanged, drawn and quartered - 으로 처형됩니다. 이 과정이 하나하나 진짜 제대로 드러납니다(두 번째로 잔인한 장면). 창자 같은 장기가 보이는 건 아니지만 유혈이 낭자하고, 거기에서 애타게 절규하는 데어햄의 모습은 좀 뭐랄까 씁쓸하게 하죠. 그거 분명히 자업자득인데 절규하는 모습이 애처롭다고나 할까요.

캐서린에게 남은 건 죽음뿐이라 런던 탑으로 끌려가는데, 끌려가면서 창에 꽂힌 컬페퍼와 데어햄의 머리를 보며 캐서린은 절망하고 오열하죠. (개인적으로 이 장면을 가장 잔혹한 장면으로 칩니다.) 로치포드 부인은 죽음의 공포에 미쳐버렸는데, 원래 미친 사람은 사형이 불가능했지만 제대로 열 받은 헨리 8세가 반역죄를 지은 미친 년놈은 예외로 처리한다는 규정을 신설하여 죽여버립니다. 둘은 같은 날 목이 달아나게 되죠. 아 그리고, 처리과정에서도 Bill of Attainder(사권박탈법)라고 하여 재판받을 권리조차 죄다 박탈해 버렸습니다. 따로 재판 씬이 없고 가드너 주교의 심문을 제외하면 재판에 대해서도 딱히 언급되지도 않는 이유입니다(컬페퍼와 데어햄의 경우, 최종진술에서 컬페퍼가 유죄를 인정했다고 찰스 브랜든이 짧게 언급합니다).

말 나온 김에 그 보고가 올라갈 때 헨리 8세가 찰스에게 던진 말이...
H : 너도 캐서린 하워드를 내 앞에 갖다바친 놈들 중 하나였지? 미안하지도 않냐?(Any regrets?)

마지막으로, 엔딩롤 올라갈 때 원래 오프닝곡을 약간 어레인지한 걸 쓰는데, 유일하게 이 회차에서만은 컬페퍼와 데어햄이 목이 달아날 때 쓰인 애처로운 현악곡을 엔딩으로 쓰더군요.



여러 모로 버릴 것이 없는 회차입니다. 내용의 잔인함도 잔인함이지만 뭣보다 제가 가장 높이 산 것은 알아서 파멸을 향해 달려가는 이들에 대한 여러 방향에서의 그 심리묘사입니다. 덤으로 분명히 악역이라고 할 수 있는데도 일말의 동정심이 가게 만드는 연출력까지... 다른 회차는 몰라도 튜더스 시즌4의 5회차는 꼭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단, 그래도 기억은 하셔야 할 게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옮겨놓지는 않았다는 점을 잊지 마셔야 할 것 같아요. 예컨대 컬페퍼도 고문 빡시게 받았는데 처형씬에서는 말끔하게 나온다던가 하는 식으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픽션 내지는 인물의 심리묘사에 치중하여 감상하시는 편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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