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9/10/22 09:14:52
Name   nothing
Subject   도움을 주며 살고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집안 형편이 그리 좋은 편은 못됐습니다. 뭐 그렇다고 지금 그렇게 많이 나아졌냐하면 또 그런건 아니긴 하지만 어찌어찌 먹고살만은 합니다. 그러다보니 예전과는 다른 욕구들이 생겼는데, 그것중에 하나가 다른 사람들을 돕로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제 인생 중 가장 어두웠던 시기를 꼽으라면 아마도 전역 후 ~ 졸업 전까지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취직은 해야겠는데 학점은 요즘 보기드문 2점대에 스펙이라 부를만한 것도 없으니 이런 내가 남들 가는 회사에 취직해서 월급이란걸 받을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던 때였습니다. 거기다가 학점이 모자라 학교를 1년 더 다녀야했는데 그 사실을 어머니께 전화로 이야기하던 날 어머니는 "우리 아들이 그럴리 없다"며 재차 여러번 되물으셨고 내 인생이 정말 회복 불가능한 나락 근처까지 다다른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어머니와의 통화가 끝나고 몇분 후 아버지께 전화가 왔고 아버지는 "어찌됐든 괜찮다. 넌 내 아들이다. 인생 살면서 스텝 몇 번 꼬여도 괜찮다."고 해주셨습니다. 그 날은 정말 부모님께 죄스럽고 자신이 한심스러워 잠을 이루지 못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도 전역 이후에 공모전 실적도 열심히 만들어놓고 교수님과 조교형따라서 논문도 열심히 쓰다보니 어찌저찌 취업문을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제 기준 그래도 꽤 괜찮다고 할 수 있는 회사에서 소중한 경험들을 쌓으며 프로 직장인의 길로 들어섰고, 그 후 두 번 정도의 이직을 거치면서 지금은 그래도 부모님이 어디가서 자랑할 수 있을만한 회사에 다니면서 커리어도 어느정도 잘 잡아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던 차에 개발자 지망의 대학생이 올린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요약하면 주변에 코딩 잘하는 친구들은 많은데 본인의 실력은 그에 비하면 바닥이고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다, 이런 실력과 경험으로 개발자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뭐 이런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취준 시절의 제 기억이 오버랩되었습니다. 사실 취준/구직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건 멘탈이고 그 부분만 안전하면 그 외에는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을 볼 수 있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멘탈을 잡고 있는게 쉽지 않을뿐만더러 이쪽 길을 가본적이 없으니 어디로 어떻게 발걸음을 떼야할지 알려주는 나침반의 부재에서 오는 혼란입니다. 그 날 안타까운 마음에 장문의 리플을 작성하면서 위로와 도움, 조언같은 것들을 전해주려 했는데 잘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이후에도 취업 문턱을 아직 넘지못한 채로 멘탈이 흐물흐물해져있는 후배들을 보면 진심으로 도움을 주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조언만으로 실질적인 도움이라고 이야기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최소한 그 친구들에게 없는 나침반의 역할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 행동의 근간에는 안타까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본인의 자존감을 깎아내리는 안타까운 상황에서 하루빨리 벗어날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요즘에는 아내가 임신중인 관계로 육아준비를 조금씩 하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육아용품들을 구비해놓고 어떤 부모가 될지, 아이는 어떤 식으로 케어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들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문득 미혼모에 관련된 문제들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정상적으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가지게 되는 경우 보통 주변에서 축하와 관심 속에서 이 시간을 지내게 되는데 미혼모의 경우에는 전혀 그렇지 못하겠다라는 생각을 하게되었고, 거기에 더불어 아주 현실적인 생활고 문제까지 고민해야 하는 안타까운 경우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낳고, 기른다는 일은 누구에게나 어렵고 복잡하고, 동시에 하나의 생명을 새로이 길러낸다는 점에서 숭고하고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을 혼자서 오롯이 감당해내야 할 미혼모들의 처지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제 형편이 또 넉넉하냐 하면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월급쟁이 수입이야 어짜피 뻔하고 은행 어플을 켜서 계좌조회를 해보면 억 단위의 전세보증금 대출이 조회됩니다. 부모님께 물려받을 껀덕지도 사실상 없습니다.
그래서 고민 중인데 그래도 내가 분유를 두통 살 꺼 세통 사서 여분을 전해주는 방법은 어떨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 본격적인 육아에 돌입한게 아니라 사실 어떤 부분들에 대한 도움이 제일 필요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 형편에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이를 한살한살 먹으면서 선의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걸 조금씩 체감해갑니다. 이 쪽에서 선의로 대하면 대개 호구잡히기 딱 좋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체득해왔습니다. 그래도 부담없이 선의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싶습니다.



30
  • 춫천
  • 별다른 수식어가 필요없어 보입니다. 조용히 추천 하나 올리고 갑니다.
  • 좋은 생각이네요. 추천드려요!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2615 정치마이크로 마케팅의 선전 6 Beer Inside 16/04/14 3780 0
7799 음악고전)러브홀릭-화분 2 놀보 18/07/06 3780 1
13137 기타[불판] 제11호 태풍 힌남노 기상 관련 불판 63 swear 22/09/05 3780 1
3650 게임롤드컵 진출팀이 13팀째 확정되었습니다. 5 Leeka 16/09/05 3781 0
3756 IT/컴퓨터북한 도메인을 사용하는 사이트들 5 Toby 16/09/23 3781 0
12079 기타남자 곰타입의 옷배색에 관한 연구 35 흑마법사 21/09/15 3781 9
12936 기타구멍난 클라인 병 9 Jargon 22/06/21 3781 1
3888 IT/컴퓨터아이폰이 다음주면 한국에 나옵니다. 3 Leeka 16/10/13 3782 0
4821 음악하루 한곡 025. 화이트 - 7년간의 사랑 7 하늘깃 17/02/09 3782 3
6540 게임신 트레일러 기념으로 와우를 오리지날에 시작 했던 이야기를 라노벨 돋게 쓰려고 했지만 쓰다가.. 8 천도령 17/11/05 3782 5
7131 영화마이클 베이의 트랜스포머 유니버스가 리부트 됩니다. 2 키스도사 18/02/17 3783 0
3040 기타헤비 오브젝트 라는 애니 보는중인데 꽤 재밌군요. 2 klaus 16/06/16 3784 0
7173 스포츠[MLB] 오승환 토론토 유니폼샷.jpg 6 김치찌개 18/02/28 3784 2
7268 일상/생각해무(海霧) 2 Erzenico 18/03/23 3784 6
7714 스포츠라이트한 축덕의 어제 스웨덴전 후기 12 오리꽥 18/06/19 3784 3
9592 음악Rachmaninov, 피아노 협주곡 2번 C단조, 작품번호 18번 4 Darker-circle 19/08/28 3784 6
9871 일상/생각도움을 주며 살고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10 nothing 19/10/22 3784 30
10652 창작피아노 곡을 전자 음악으로 바꿔보았습니다 (곡 : Soul Particle) 1 롤백 20/06/05 3784 3
12127 생활체육여성 운동화/스니커즈 리뷰? 4 NOORY 21/09/30 3784 3
2460 창작[19주차] 종이학 2 제주감귤 16/03/24 3785 0
2477 일상/생각수업시간 추억 한 폭 7 기아트윈스 16/03/26 3785 21
6353 영화이번 주 CGV 흥행 순위 5 AI홍차봇 17/09/28 3785 0
12483 일상/생각인간관계, 그리고 연애(1) 1 늑대를불러야지 22/02/01 3785 6
2416 기타[불판] 잡담&이슈가 모이는 홍차넷 찻집 <31> 17 NF140416 16/03/16 3786 0
9053 일상/생각유폐 2 化神 19/04/10 3786 25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