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최근 K팝은 확실히 시장의 선택을 받았죠. BTS, 블랙핑크 같은 한국 아이돌들 무대는 세계적으로 어마어마한 인기와 부를 끌고 있고, '원밀리언 댄스 스튜디오'같은 한국 댄스 크루는 유튜브 구독자 2천만명, 간판인 리아킴은 시장의 선택을 받은 아이돌 안무로 돈을 긁어 모으죠. 그들의 춤과 무대를 보면 확실히 '잘 팔릴만' 합니다. 화려하고 세련되고 수준 높고 멋있고.. 이렇게 보면 문화 예술 역시 시장 논리에 따라야 한다, 좋은 상품은 돈을 벌게 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리아킴도 최효진도, 원밀리언도, 블랙핑크도, 모든 종류의 춤에 빚을 지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고 있는 K아이돌들의 무대, 구독자 2천만명의 원밀리언의 춤들.. 이건 마치 대기업에서 상품 기획하듯 잘 팔리는 상품을 기획한게 아니라 순수 무용, 라틴, 스트릿.... 무수한 춤 장르들이 오랜시간 제멋대로 쌓이고 쌓인 집합체입니다.

제가 처음 리아킴을 알았을 때 제 눈엔 특색없는 한국의 댄서1이었습니다. 댄스 오디션에서 중도 탈락하는 거 보고 잊어버렸던 기억이... 그런데 어느 순간 적극적으로 무용을 배우고, 융합하더니, 구독자 2천만명 원밀리언을 이끌고 있었습니다. 선미의 '24시간이 모자라'라는 춤도 그가 만들었는데, 신선해서 인기도 많이 끌었죠. 24시간이 모자라는 컨셉, 작법, 전부 무용에서 따온 작품입니다. 무용을 아이돌 안무에 기가막히게 섞어 잘 팔았죠.

최근 댄스계의 트렌드는 '코레오'인데요. 대충 말하면 '왁킹'이냐, '비보잉'이냐, '걸스힙합'이냐, 이런 장르적 국한을 더이상 두지 않고, 여러 장르를 녹여서 자기 안무를 만들어내서 추는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원밀리언 역시 이 '코레오'로 유명하구요. 이 코레오는 심지어 무용까지도 가리지 않고 그냥 섞어댑니다. 당장 앞에서 이야기한 원밀리언의 또다른 간판 댄서인 효진초이 역시 무용을 하던 사람이었고, 효진초이만의 개성은 무용 베이스에서 나온 부분이 굉장히 많습니다.

최근에 엄청 핫한 '아이키' 역시 라틴 댄스 전공자이구요. 미국 월드오브댄스(대충 아메리카 갓 탤런트의 춤 버전이라 보심 됩니다)에서 4위를 하고, 유튜브 조회수 천만을 찍고, 온갖 광고를 휩쓸 수 있었던 아이키만의 개성의 상당 부분이 라틴에서 나옵니다. 스트릿 댄스를 추다가 순식간에 라틴 댄스를 출 때의 짜릿함이 제니퍼 로렌스를 비롯한 미국인들이 그에게 열광하게 한 결정적인 요소였죠.

그런데 무용이나 라틴은 시장 선택만으로 자생할 수 없는 분야입니다. 무용은 특히 더. 만약 말라붙은 한국의 무용계라는 것이 각종 국가 지원사업으로나마 꾸역꾸역 살아남아있지 않았다면, 한국에 현대 무용 씬이 없고 라틴 씬이 없었더라면, 선미의 24시간이 모자라, 원밀리언, 아이키, 리아킴.. 이 '인기 상품'들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요.

순수예술이 짱이다 이런 주장이 아니라, 문화 예술이라는 것이, 시장 논리에 맡겨서 성장할 수 있는 영역이 절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돈 못버는 문화 예술이 가져다주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같은 것들을 다 차치하고서라도, 정말 돈만 따졌을 때도 그렇습니다. "잘 팔리는 상품"만 알아서 살아남게 놔둔다면, 그 잘팔리는 상품이라는 게 절대 나올 수 없습니다.

무용, 라틴, 언더씬, 스트릿, 인기 없는 것, 지루한 것, 괴상한 것, 잘 안팔리는 것부터 잘 팔리는 것까지, 그 수많은 것들이 뒤섞여 와글와글 댈때야 겨우 무언가 나오는 것이 문화예술입니다. 아이돌이 잘 팔리니까 아이돌만 팔고, 순수 무용, 라틴, 언더 스트릿씬은 다 도태되도록 내버려뒀다면, 무용, 라틴, 언더 스트릿 씬에서 싹틔우고 자란 K팝 안무들이 나올 수 없었을 겁니다. 이 모든게 와글와글 대면서 쌓아왔기에 지금 세계가 열광하고 세계가 따라하는 그 K팝 안무들이 폭발하듯이 나온 것이죠.

아, 좀더 직접적인 예로 유튜브 5천만 뷰를 찍은 '범내려온다'의 주인공이자, 최근 콜드플레이와 협업까지 한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 그리고 세계적으로 흥행한 넷플릭스 스위트홈의 괴물을 연출한 김설진 안무가도 있겠네요.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김보람 안무가, 그리고 스위트홈의 김설진 안무가. 저는 둘 다 꽤 오래전부터 이름을 보아왔었는데요. 둘다 이미 굉장히(심지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안무가였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무용계라는게 참 빈약해서, 이들조차 좋은 작품을 "티켓을 팔아서" 올리는 건 어려운.. 아니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이 각종 국가 지원 사업, '국립'현대무용단 등을 통해 작품 활동을 해오는 걸 보았습니다. 만약 시장 논리로 티켓 팔아서 올릴 수 있으면 올리고, 아니면 걍 망해라, 하고 놔뒀다면 그 작품 활동들이 이어져 오지 못했겠죠.

하지만 참 좋은 작품들이었어요. 무엇보다 그렇게 돈 한 푼 못벌면서도 사회적, 국가적 지원으로 그들의 작품 활동이 쌓여온 덕에 "범 내려온다"도, 콜드플레이와의 협업도, 스위트홈의 괴물도 탄생할 수 있게 되었구요. 문화예술이란 그런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