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뉴스를 올려주세요.
Date 22/03/12 17:00:08
Name   구밀복검
Subject   소심한 사람의 한 마디
https://www.hani.co.kr/arti/legacy/legacy_general/L617747.html
나는 아주 소심한 사람이다. 얼마만큼 소심하냐 하면 이 난의 필자가 돼 달라는 청탁을 받았을 때 앞서 <한겨레신문>의 지면을 빛낸 명필자들이 겪고 있는 고초부터 생각나서 피하고 싶었다. 마침 그때 <한겨레신문>도 한창 탄압받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면 어떻게든지 안 쓸 수 있는 완곡한 핑계를 생각해냈을 것이다.

어디 산다고 말해야 할 때 이미 쭈뼛쭈뼛해지는 것도 나의 못 말릴 소심증이다. 지난 일년 사이에 곱절이나 값이 뛴 아파트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가만히 앉아서 불로소득한 액수까지 계산하면 내가 속한 사회가 미쳐도 단단히 미쳐 가고 있다는 위기의식에 사로잡히게 된다.

며칠 전 집 앞에서 택시를 탔을 때의 일이다. 전철 정류장까지 가 달라고 했더니 기사가 벌컥 화를 내면서 지금 거기엔 승객은 없고 택시만 여남은대나 늘어서서 손님을 기다린다고 했다. “그럼 내릴까요?” 했더니 그렇다는 말이지 누가 내리라고 했냐고 또 화를 낸다. 그는 8백원 요금의 거리를 가는 동안 잠시도 쉬지 않고 화를 냈는데 주로 욕이었다. 욕도 보통 욕이 아니라 주로 `죽일 놈'이었다. 정치 하는 사람, 돈 많이 번 사람 순으로 죽이다가 맨나중엔 국민학교도 안간 어린이만 빼고는 다 죽어야 이 세상이 조금 달라질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국민학교만 가도 벌써 못된 물이 든다는 그의 단죄는 차라리 광기였다.

“내가 화 안나게 됐습니까? 운전대 잡은 지 10년에 아직도 다섯 식구가 10만원짜리 월셋방에 삽니다. 근데 또 5만원을 올려 달래요. 한꺼번에 5만원씩이나요.”

만약 그런 그에게 일산과 분당에 대단위 주거지역이 생길테니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리라고 한다면 어떤 얼굴을 할까? 생각만 해도 모골이 송연해진다.

전번 대통령선거 무렵에도 택시 탈 때마다 말조심에 신경을 쓰곤 했다. 대통령 후보건 현직 대통령이건간에 우리끼리 있는 자리에선 존칭 없이 성명 삼자만 부르는 게 내 오랜 말버릇이고 또 그 정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맛도 이 자유민주주의 나라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중요한 까닭 중에 하나였는데 운전기사 중엔 승객의 이런 소중한 자유에 제재를 가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어떤 특정한 후보에겐 꼭 선생님이라는 존칭을 붙여 부르고 승객도 그래 주길 강요하다시피 한 것은 여러 후보 중 그래도 그 후보가 없는 사람의 입장을 대변해 주리라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결과적으로 어떤 후보가 이끈 당이든간에 다 중산층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믿고 있고 서로 중산층만은 위하려 하고 있다. 획기적인 주택정책이라고 발표된 새 시가지 계획도 그 모델을 금싸라기 땅 영동에 두고 있다. 극도에 달한 중산층 이상의 투기판에 숨통을 터주고 그 놀이마당을 넓혀주었을지는 모르지만 그게 도대체 일생을 죽자구나 일해도 월셋방을 면할 가망이 없는 사람들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비단 소심증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다같이 그들의 억압된 불평불만, 철저히 막힌 살 길에 대해 두려움을 가져야 할 줄 안다. 그들이 참다 못해 미치게 해선 안된다. 요새 너무 많이 가진 사람들의 작태를 봐도 미친 것 같은데 너무 없는 사람이라고 미치지 말란 법이 없다. 없는 사람이 중산층에 대해서까지 적의를 갖는 건 요새 갑자기 중산층의 생활이 붕 떠올라 그들이 차근차근 기어오를 수 있는 계단도 온데간데 없이 없어진 느낌 때문이지, 그들의 꿈도 결국은 중산층이 되는 것일 것이다.

없는 사람의 불평불만을 대변하고, 인간다운 생활로 기어오를 수 있는 현실적인 계단을 제시해 줄 새로운 세력의 대두가 불가피한 시기가 아닐까 싶다. 지금 당장 그런 세력이 제도권에서 발언권을 가질 수는 없다 해도 다음 선거를 위해서라도 생겨나고 자라나는 걸 도와주는 길만이 더불어 살아나갈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기득권을 위협하는 세력은 무조건 용공으로 모는 방법으로 유지되던 안정의 허구성을 현정권은 직시해 주었으면 한다.
박완서 <작가>



1989년 박완서의 노태우 비판 ㅋㅋ.. 33년 동안 전혀 성장하지 않았어



12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27683 정치윤석열 "가상자산 투자 수익 5000만원까지 완전 비과세" 9 인생호의 선장 22/01/19 4235 1
29219 정치안철수, 성남분당갑 보선 등판 24 데이비드권 22/04/27 4235 2
36 기타세월호 공기주입·수중로봇·잠수기록 다 거짓말 (본문에 영화 터널 스포일러 함유) 7 NF140416 16/09/03 4235 1
22820 의료/건강'코호트 격리' 당시 무슨 일이…요양병원장의 고백 4 맥주만땅 21/01/04 4235 3
22309 의료/건강철원서 확진자 하루 13명 쏟아져…함께 김장한 주민 7명도 감염(종합) 2 다군 20/11/15 4235 0
24869 정치이재명 기본소득 후퇴, 자문 교수그룹 ‘강력한 권고’ 있었다 13 샨르우르파 21/07/09 4235 1
22566 사회의대생, 코로나19 의료자원봉사 합류…수도권 임시진료소에 투입 9 다군 20/12/11 4235 0
33574 정치서민, 이준석 겨냥 "당사자 아닌데 왜 장예찬 소설 문제 삼나" 16 붉은 시루떡 23/02/27 4235 0
17449 방송/연예'프듀 조작' CJ 고위층 연루 정황…경찰, 10여명 입건 9 원영사랑 19/11/12 4235 1
18985 의료/건강'코로나19' 25번째 환자, 퇴원 후 재확진..전국 첫 사례될듯(종합) 12 安穩 20/02/28 4235 0
31785 스포츠한화, 손혁 신임 단장 선임…정민철 전 단장은 임기 마치고 작별 5 다군 22/10/13 4235 0
22571 기타농사일 하랬더니 짝짓기만..죽지도 않는 '좀비' 왕우렁이 13 하트필드 20/12/11 4235 0
37675 정치안철수 “쓴소리 제대로 하겠다” 당선 소감 17 the hive 24/04/11 4235 0
13356 경제홍장표 "대기업 노동자, 자발적으로 임금 줄여야" 9 이울 18/11/14 4235 1
20012 정치김종인 추대 vs 김종인 거부, 속보대결 16 소원의항구 20/04/28 4235 0
32301 사회김천 한 초교서 동료 교사간 부적절한 관계 '발칵' 8 danielbard 22/11/19 4235 0
2350 문화/예술"서점이 책 읽는 곳인가요?" 출판사 속앓이 7 우분투 17/03/15 4235 0
22318 사회"사무실 들어오지 말라"...3위 한화운용 업계 첫 100% 원격근무 2 맥주만땅 20/11/16 4235 1
20271 정치윤미향 "2012 아파트 경매 위해 전에 살던 아파트 팔아" 15 DX루카포드 20/05/18 4235 0
23855 정치박영선 캠프 "사전투표 이겼다" 문자…선관위 조사 착수(종합) 10 copin 21/04/05 4235 0
29488 IT/컴퓨터Plain text 인터넷이 온다 17 blu 22/05/17 4235 7
21041 정치[說의 정치학] 통합당, 故 백선엽 공 강조하다 '아차차' 7 Schweigen 20/07/18 4235 2
24113 사회장위10구역 철거현장서 매몰된 노동자 숨진 채 발견 2 swear 21/05/01 4235 0
25396 경제종부세안 '상위 2%' 전격폐기..1주택자 과세기준 9→11억(종합) 11 하우두유두 21/08/19 4235 0
14389 경제장재진 오리엔트바이오 대표 "탈모치료제 2상 후 나스닥 상장 검토" 2 라피요탄 19/01/21 4235 0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