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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4/02 00:11:40수정됨
Name   기아트윈스
Subject   [데이빋 런시만] 코로나바이러스는 권력의 본성을 드러냈다.
캠브릿지 정치학과 학장인 데이빋 런시만의 가디언 기고문입니다. 런시만은 대학원에서 교재로도 읽었는데 이런데서 다시 보니 반갑네요. 그나저나 요즘 서구 언론은 칼럼에 사우스 코리아가 안들어가면 퇴짜를 놓나... 런시만 정도 되는 사람도 꼬박꼬박 언급하네...


We keep hearing that this is a war. Is it really? What helps to give the current crisis its wartime feel is the apparent absence of normal political argument. The prime minister goes on TV to issue a sombre statement to the nation about the curtailment of our liberties and the leader of the opposition offers nothing but support. Parliament, insofar as it is able to operate at all, appears to be merely going through the motions. People are stuck at home, and their fights are limited to the domestic sphere. There is talk of a government of national unity. Politics-as-usual has gone missing.

자꾸 이게 전쟁이라는 소리가 들린다. 진짜 그런가? 작금의 위기가 전시상황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것은 늘 보이던 정쟁의 부재다. 수상은 TV에서 진중하게 우리 자유의 제한을 발표하고 야당 당수는 지지의사 밖에 줄 게 없었다. 의회는 (작동하기는 한다는 전제하에) 그냥 관성적으로 흘러가는 듯하다. 사람들은 집에 콕 박혔고, 싸움은 집안 공간에 한정되어있다. 전국가적 단결에 대한 정부의 발언이 있었다. 평소의 정치는 실종됐다.

But this is not the suspension of politics. It is the stripping away of one layer of political life to reveal something more raw underneath. In a democracy we tend to think of politics as a contest between different parties for our support. We focus on the who and the what of political life: who is after our votes, what they are offering us, who stands to benefit. We see elections as the way to settle these arguments. But the bigger questions in any democracy are always about the how: how will governments exercise the extraordinary powers we give them? And how will we respond when they do?

하지만 이게 정치가 중단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정치적 삶의 한 꺼풀이 벗겨지면서 그 아래쪽, 조금 더 맨 살이 드러난다. 민주정체에서 우리는 정치란 정당들이 우리의 지지를 얻기 위해 경쟁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우리는 정치적 삶에서 '누구냐'와 '뭐냐'에 집중한다. 우리 표를 구걸하는 너는 '누구냐', 네가 우리에게 주겠다는 건 '뭐냐', 그래서 이득보는 쪽이 '누구냐'. 우리는 선거를 이와 같은 논쟁들의 종결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민주정체하에서 더 큰 질문은 언제나 '그래서 어떻게'이다. 우리가 정부에게 준 이 비상한 권력을 쟤들이 '어떻게' 집행할거지? 그리고 쟤들이 그렇게 집행을 해댈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지?

These are the questions that have always preoccupied political theorists. But now they are not so theoretical. As the current crisis shows, the primary fact that underpins political existence is that some people get to tell others what to do. At the heart of all modern politics is a trade-off between personal liberty and collective choice. This is the Faustian bargain identified by the philosopher Thomas Hobbes in the middle of the 17th century, when the country was being torn apart by a real civil war.

이런 것들은 정치학 이론가들을 늘상 괴롭혀온 질문들이다. 하지만 이제 더이상 썩 '이론적'이진 않다. 작금의 위기가 실감나게 보여주듯, 정치적인 존재(역자주: 정부 등등)를 뒷받침해주는 가장 근본적인 팩트는 어떤 사람들은 나머지 다른 사람들에게 이래라저래라 지시한다는 사실이다. 모든 근대 정치의 핵심에는 개인의 자유와 집단의 선택 사이의 트레이드오프가 존재한다. 이것이 바로 토마스 홉스가 17세기에 포착한 '파우스트의 거래'이다. 그리고 당시에 이 나라는 진짜 내전으로 박살나있었고.

As Hobbes knew, to exercise political rule is to have the power of life and death over citizens. The only reason we would possibly give anyone that power is because we believe it is the price we pay for our collective safety. But it also means that we are entrusting life-and-death decisions to people we cannot ultimately control.

홉스가 알아챈대로 정치적인 통치를 행사한다는 것은 시민의 생사여탈권을 가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런 걸 다른 사람에게 (그가 누구이든 간에) 줄 마음이 조금이라도 들었다면 그 이유는 하나 뿐이다. 그게 모두의 안전을 위해 치러야하는 값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궁극적으로는 통제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생사여탈권을 위탁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The primary risk is that those on the receiving end refuse to do what they are told. At that point, there are only two choices. Either people are forced to obey, using the coercive powers the state has at its disposal. Or politics breaks down altogether, which Hobbes argued was the outcome we should fear most of all.

가장 근본적인 리스크는 권력행사를 '받는' 쪽 사람들이 하라는 대로 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선택지는 둘 뿐이다. 국가가 보유한 폭력을 행사해서 강제로 하게 만들기. 아니면 정치 자체가 완전히 박살나는 건데, 홉스는 무엇보다도 후자의 상황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했다.

In a democracy, we have the luxury of waiting for the next election to punish political leaders for their mistakes. But that is scant consolation when matters of basic survival are at stake. Anyway, it’s not much of a punishment, relatively speaking. They might lose their jobs, though few politicians wind up destitute. We might lose our lives.

민주정체에서는 정치지도자들의 실수를 심판하기 위해 다음 선거까지 기다리는 호사를 누린다. 하지만 기본적인 생존의 문제가 달려있을 때는 이건 그저 얄팍한 위안일 뿐이다. 사실 딱히 심판인 것도 아니다. 정치인들은 직장을 잃을 테지만, 실직했다고 아주 비참한 지경에 빠지는 건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반면에 우리쪽은 (잘못된 권력의 행사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The rawness of these choices is usually obscured by the democratic imperative to seek consensus. That has not gone away. The government is doing all it can to dress up its decisions in the language of commonsense advice. It says it is still trusting individuals to show sound judgment. But as the experience of other European countries shows, as the crisis deepens the stark realities become clearer. Just watch the footage of Italian mayors screaming at their constituents to stay at home. “Vote for me or the other lot get in” is routine democratic politics. “Do this or else” is raw democratic politics. At that point it doesn’t look so different from politics of any other kind.

이런 선택지들의 적나라함은 보통 반드시 여론의 합의를 따라야 한다는 민주정체의 대원칙에 의해 은폐된다. 하지만 가렸다고해서 이 속살이 어디 가버린 것은 아니다. 정부는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자신이 내린 결정을 상식적인 조언의 언어로 포장한다. 각 개인이 합리적인 판단을 내려줄 것을 믿고있다고 말한다거나. 하지만 유럽의 여러 국가들의 경험이 보여주듯, 위기가 심화되면 날것 같은 현실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탈리아의 시장들이 자기 지역구에서 '집에 있으라고!'라며 소리지르는 비디오들을 한 번 보라. "저를 뽑아주세요! 아니면 딴놈들이 이 자리를 차지합니다!"가 민주주의 정치의 일상이다. "이렇게 하시오, 안그러면..."은 민주주의 정치의 속살이다. 이 지점에서 민주정체는 다른 정체들과 별로 달라보이지 않게 된다.

This crisis has revealed some other hard truths. National governments really matter, and it really matters which one you happen to find yourself under. Though the pandemic is a global phenomenon, and is being experienced similarly in many different places, the impact of the disease is greatly shaped by decisions taken by individual governments. Different views about when to act and how far to go still mean that no two nations are having the same experience. At the end of it all we may get to see who was right and what was wrong. But for now, we are at the mercy of our national leaders. That is something else Hobbes warned about: there is no avoiding the element of arbitrariness at the heart of all politics. It is the arbitrariness of individual political judgment.

이 위기는 몇가지 다른 차가운 진실을 드러냈다. 정부가 중요하며, 어떤 정부 하에 있느냐가 정말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팬대믹이 전지구적 현상이긴 하지만, 그리고 많은 곳에서 사람들이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지만, 그 임팩트는 각각의 정부가 취한 결정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언제 행동할 것이며 어디까지 갈 것이냐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들은 그 어떤 국가도 똑같은 걸 경험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것이 지나간 후에 우리는 누가 맞았고 무엇이 틀렸는지 알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자기나라 리더들의 처분에 달려있을 뿐이다. 이것 역시 홉스가 경고했던 바이다. 그 어떤 정체에서도 우리가 임의성(arbitrariness)을 피할 길은 없다. 각각의 정치적 판단에는 임의성이 있다.

Under a lockdown, democracies reveal what they have in common with other political regimes: here too politics is ultimately about power and order. But we are also getting to see some of the fundamental differences. It is not that democracies are nicer, kinder, gentler places. They may try to be, but in the end that doesn’t last. Democracies do, though, find it harder to make the really tough choices. Pre-emption – the ability to tackle a problem before it becomes acute – has never been a democratic strength. We wait until we have no choice and then we adapt. That means democracies are always going to start off behind the curve of a disease like this one, though some are better at playing catch-up than others.

록다운 상태에선 민주정체는 다른 정체들과의 공통점을 드러낸다. 여기서도 역시 정치는 궁극적으로 권력과 명령/질서(order)이다. 하지만 우리는 근본적인 차이점도 조금 엿볼 수 있다. 민주정체가 더 착하고 친절하고 젠틀하다는 건 아니다. 민주정체들이 그렇게 하려고 노력이야 하겠지만, 결국 그게 지속되지는 않는다. 어쨌든 민주정체들은 진짜 힘든 결정을 내리는 걸 어려워한다. 선제조치 -문제가 심각해지기 전에 해치워버리는 능력-가 민주정의 장점이었던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나. 민주정은 다른 선택지가 없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 다음에 맞춰간다. 그러니까, 민주정체는 언제나 지금과 같은 질병의 전개를 뒤늦게 따라간다는 뜻이다. 물론 게중에 몇몇은 남들보다 '따라잡기'를 더 잘 할 테지만, 어쨌듯.

Autocratic regimes such as China also find it hard to face up to crises until they have to – and, unlike democracies, they can suppress the bad news for longer if it suits them. But when action becomes unavoidable, they can go further. The Chinese lockdown succeeded in containing the disease through ruthless pre-emption. Democracies are capable of being equally ruthless – as they showed when prosecuting the total wars of the 20th century.

중국과 같은 전제정권들 역시 어쩔 수 없이 직시해야 하는 순간까지 이런 위기들을 직시하기를 꺼려한다. 그리고, 민주정체들과는 달리, 그들은 필요하다면 나쁜 소식들을 더 오랫동안 억제해서 직시의 순간을 늦출 수 있다. 하지만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게되면, 그들은 엄청 멀리까지 갈 수 있다. 무자비한 선제조치들을 통해 중국의 봉쇄조치들은 질병을 통제하는데 성공했다. 민주정체들 역시 같은 정도로 무자비해질 수 있다 (20세기의 총력전 수행 때 보여주었듯).

But in a war, the enemy is right in front of you. During this pandemic the disease reveals where it has got to only in the daily litany of infections and deaths. Democratic politics becomes a kind of shadow boxing: the state doesn’t know which bodies are the really dangerous ones.

전쟁에서는 적들이 여러분의 코 앞에 있지만 이번 팬대믹에서는 확진자와 사망자를 알리는 일일 발표를 통해서만 이 질병이 어디까지 갔는지를 알 수 있다. 민주주의 정치는 쉐도우 복싱처럼 되어버렸다. 어떤 몸뚱이가 진짜 위험한 몸뚱이인지 국가는 알지 못한다.

Some democracies have managed to adapt faster: in South Korea the disease is being tamed by extensive tracing and widespread surveillance of possible carriers. But in that case, the regime had recent experience to draw on in its handling of the Mers outbreak of 2015, which also shaped the collective memory of its citizens. Israel may also be doing a better job than many European countries – but it is a society already on a permanent warlike footing. It is easier to adapt when you have adapted already. It is much harder when you are making it up as you go along.

어떤 민주정체들은 더 빠르게 맞춰가는데 성공했다. 대한민국은 전파자들에 대한 광범위한 추적과 폭넓은 감시를 통해 이 질병을 길들였다. 하지만 이건 2015년 메르스 사태를 처리해본 최근의 경험으로부터 배웠고, 또 이 사태가 시민들의 집단 기억을 형성한 경우이다. 이스라엘 역시 다른 많은 유럽 국가들보다 더 잘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거의 늘 전시상태 아닌가. 이미 맞춰가는 중일 때는 다시 맞춰가는 게 어렵지 않다. 사태가 한참일 때 새로 만들어가는 게 훨씬 어렵다.

In recent years, it has sometimes appeared that global politics is simply a choice between rival forms of technocracy. In China, it is a government of engineers backed up by a one-party state. In the west, it is the rule of economists and central bankers, operating within the constraints of a democratic system. This creates the impression that the real choices are technical judgments about how to run vast, complex economic and social systems.

근래에는 종종 전 세계의 정치라는 게 단지 서로 경쟁하는 두 종류의 테크노크라시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것처럼 보였다. 중국 정부는 일당국가가 뒷받침해주는 엔지니어들의 정부이다. 서구에서는 민주주의 시스템의 제한 안에서 작동하는 중앙은행과 경제학자들의 지배체제이다. 이런 상태에서 우리가 받는 인상은 우리의 선택지라는 게 다름 아니라 복잡하고 거대한 사회경제 시스템을 운영하는 데 누구 기술이 더 나은지 보고 판단하는 정도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But in the last few weeks another reality has pushed through. The ultimate judgments are about how to use coercive power. These aren’t simply technical questions. Some arbitrariness is unavoidable. And the contest in the exercise of that power between democratic adaptability and autocratic ruthlessness will shape all of our futures. We are a long way from the frightening and violent world that Hobbes sought to escape nearly 400 years ago. But our political world is still one Hobbes would recognise.

하지만 지난 몇주간 또 다른 진실이 표면을 뚫고 올라왔다. 우리의 판단은 궁극적으로 폭력을 어떤 방식으로 행사할 것이냐에 관한 것이다. 이건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다. 일정 정도의 임의성은 불가피하다. 권력의 행사에 있어 민주주의적 맞춰가기와 전제적 무자비함이 펼치는 경쟁은 우리의 미래를 직조할 것이다. 우리는 홉스가 400여년 전에 탈출하고 싶어했던 무시무시하고 폭력적인 세계로부터 떠나온지 한참이다. 하지만 홉스가 우리의 정치 세계를 본다면 어쩐지 낯이 익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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