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ID-19로 모든 스포츠가 멈춰버린 후, 축구냐 야구, 농구, 미식축구 등을 비롯한 스포츠가 제한적으로 다시 재개되었지만, 복싱은 그 흐름에 동참하지 못했다. 이는 리그가 열려야 수입이 생기는 축구, 야구 등의 구조와, 예상수입이 있어야 경기를 열 수 있는 복싱의 차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복싱 월드의 모든 시선은 자연스럽게 오랜만에 벌어지는 주목할 만한 한 경기에 쏠리고 있다.
14승 1패와 15승 무패 선수 간의 대결. 둘 모두 열 여섯번째의 경기를 앞두고 있는 선수들이지만 둘이 갖는 무게감은 완전히 다르다. 14승 1패의 선수는 이미 아마추어 전적 396승 1패에, 프로 복싱 커리어 12전 만에 3체급 제패를 해낸 복싱 마스터이며 15전 무패의 선수는 이제 막 전성기를 향해 발돋움 해 나가고 있는 젊은 스타 선수이다. 바실 로마첸코와 테오피모 로페즈. 현재 가장 치열한 디비전으로 인정받고 있는 라이트급(-135lbs)에서 최선두 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두 선수간의 대결이다.
혹자는 현재 라이트급의 정점에 올라 있는 로마첸코에게 도전한 테오피모를 무모한 만용이라고 하지만, 그와 반대로 어떤 이들은 로마첸코의 압도적인 모습은 -130 디비전과 -126 디비전에 한정될 뿐, 라이트급에서는 그런 모습이 사라졌다고 지적한다. 그들은 두 손에 충분한 펀칭 파워를 갖고 있는 로페즈의 탄력에서, 모두의 예상을 깨고 브루클린 토박이가 우크라이나 복서를 격침시킬 수 있는 광경을 본다.
규칙을 만드는 자와 깨트리려는 자의 대결, 노련한 복싱 마스터와 떠오르는 패기있는 젊은 스타 간의 대결이라는 점에서 이 경기는 2013년 플로이드 메이웨더와 카넬로 알바레즈의 메가 매치를 연상케 한다. 무엇보다, 이 스포츠를 사랑해 왔던 수많은 팬들에게 이 경기는 가뭄의 단비와도 같다. 복싱계의 모든 시선이 한 경기로 집중되는 지금,
누구를 고를 것인가?
2. Vasyl Lomachenko : 'High-Tech'라는 단어 그 너머.
결국 언제나, 둘의 승패는 흥행 문구를 떠나 두 선수가 어떤 선수인가에 달려 있다. 하지만 바실 로마첸코만큼 많은 이들의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선수도 드물다. 복싱 해설자들부터 분석가들까지 magician, matrix 따위의 용어를 남발하다 보니 막상 로마첸코가 링에서 무슨 일을 제대로 수행하는지 보고 싶은 사람들이 미사여구의 홍수에 묻히고 있다. matrix라는 용어는 무엇인가? 남들의 동작을 슬로우 모션으로 본다는 뜻인가? 제대로 이해될 수 없는수사는 자신의 무지를 자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로마첸코 복싱의 특징은 크게 네 가지이다.
1) 지속적인 압박
로마첸코는 절대 상대가 리듬을 주도하도록 만들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는 엄청난 체력을 바탕으로 계속해서 펀치를 내며 상대가 자신의 펀치를 계속해서 쳐내도록 만든다. 그의 압박은 마치 물과도 같아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상대가 물러나면 들어오고, 상대가 치고 나가면 뒤로 빠진다. 끊임없이 잽으로 상대를 압박하되 인파이터처럼 계속 들어가지는 않으면서 지속적으로 상대에게 프레싱을 가한다. 그의 공격 무기가 잽뿐이라면 상대가 이렇게 어려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상체를 계속해서 흔들며 오른쪽 슬리핑 후 앞손 어퍼와 같은 다양한 공격을 통해 계속해서 상대를 압박한다. 그의 활동량과 끊임없는 압박은 로마첸코를 상대하는 모든 복서들이 겪는 어려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