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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9/07/21 08:46:21수정됨
Name   Fate
Subject   파퀴아오-서먼 : Who will be resurrected?




1. 누가 부활의 영광을 차지할 것인가.

여기, 복싱 커리어에 있어 부침을 겪은 두 선수가 있다. 하나는 복싱 월드의 두 통치자 중 하나로서 모든 행보를 언론이 주목하고, 모든 경기마다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이다가 결국 두 통치자가 만난 초신성supernova의 폭발 끝에, 선수 생활의 황혼을 바라보던 인물이다.

그는 올 타임 그레이트로서의 영광을 뒤로 하고 이름값에 걸맞지 않은 형편없는 선수들을 만나야만 했으며, 심지어는 본인이 적지에서 원정 경기까지 뛰는 수모를 겪고, 편파판정 끝에 검은 별을 추가하기도 하는 오욕의 세월을 보냈다.

그러나 그는 돌아왔다. 이제 모두가 이제 은퇴 수순이라고 생각하던 시기, 1년여의 휴식을 갖고 돌아와 준수한 컨텐더 중 하나이던 루카스 마티셰를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넉아웃 시켰으며, 그를 형편없이 대우하던 프로모터로부터 떠나 다시 좋은 경기들을 잡기 시작했다. 밥 애럼과 결별하고 PBC와 계약한 이후 가진 첫 경기에서, 그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차세대 권좌를 노릴 선수로 주목받았던 애드리언 브로너를 완전히 압살해 버렸다. 그리고 이제 PBC와 계약 후 가지는 두 번째 경기에서, 그를 더 이상 은퇴전을 목전에 둔 노장으로 취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의 이름은 매니 파퀴아오Manny Pacquiao이다.

반면 여기에 또다른 부침을 겪은 두 번째 선수가 있다. 그는 파퀴아오와 메이웨더가 복싱 씬에서 퇴장하고 나면 공백기가 될 최고 슈퍼스타의 자리를 노릴 수 있는 유력한 인물로 주목받았던 선수이다. 미국 출신으로 준수한 외모와 관중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스타일을 갖고 있었고, 가장 경쟁이 치열한 체급인 웰터급에서 로버트 게레로, 숀 포터, 대니 가르시아 등을 연달아 정리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한 눈에 집중시켰다. 하지만 불운하게도 팔꿈치 부상을 비롯한 몇 차례의 큰 수술을 받으며 복싱에서 잠시간 이탈해야만 했고, 2년만에 치른 복귀전에서 승리하기는 했으나 몇 차례 아찔한 장면을 연출하며 몸상태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복귀전 이후 그의 복싱 커리어 전체를 통틀어 가장 명성이 드높은 선수와 맞상대할 기회를 잡았다. 그의 이름은 키스 서먼Keith Thurman이다.

파퀴아오와 서먼, 두 선수 모두 세계 챔피언이라는 타이틀은 '따위'로 치부할 만큼 실력에 있어서나 커리어에 있어서나 더 이상 증명할 것이 없는 선수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을 둘러싼 의구심 섞인 시선과 싸워야 한다. 이 경기는 파퀴아오에게는 40살이 된 자신이 여전히 웰터급에서 경쟁력이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메이웨더와의 2차전이 충분히 가능한 레벨의 선수라는 것을 입증할 기회이다. 반대로 서먼에게 이번 경기는 웰터급 통치자의 제위를 이어받을 적법한 황태자임이 바로 자신이라고 선언할 수 있는 즉위식으로 여겨질 터다. 복싱계 전체를 놓고 봐도, 앤서니 조슈아와 디온테이 와일더가 모두 패배하며 이탈한 지금, 2019년 하반기에 만들 수 있는 최고의 매치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누구를 고를 것인가?




2. Pac-Man Returns

매번 하는 말이지만, 파퀴아오와 서먼이 만났을 때 어떤 방식의 경기가 전개될지 예측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둘이 어떤 복서인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파퀴아오는 2000년대 최고의 선수로 낮은 체급에서 올라와 자신보다 체구가 큰 상대들을 모조리 때려눕히며 8개의 다른 체급division에서 챔피언을 따낸 역대 최초의 선수이다. -147 디비전에 안착한 파퀴아오는 모슬리 전을 기점으로 펀쳐puncher 스타일에서 복서 스타일로 변화를 꾀했고, 상대의 위험 지대에서 연타를 통해 상대를 파괴하던 모습에서 앵글과 풋워크 위주로 경기를 운영하면서 간간히 좋은 콤비네이션을 통해 라운드를 따내는 모습으로 변화했다. 해튼-코토-클로티-마가리토 전에서 파퀴아오의 무기는 예측할 수 없는 궤도에서 폭격처럼 쏟아지는 콤비네이션이었지만, 모슬리-마르케즈 3-브래들리 1차전에서의 파퀴아오는 포지션과 타이밍을 무기로 효과적인 유효타를 가져갔으나, 펀치의 숫자 자체는 줄어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런 복서의 모습은 결과적으로 그의 커리어에서 좋은 영향을 끼치지 못했는데 메이웨더와 같이 퓨어 복서에 가까운 상대를 맞아 매니 파퀴아오는 포지션과 타이밍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간간히 인사이드에서 과거 그의 명성을 드높인 연타로 몇 개 라운드를 가져올 수 있었지만 넉아웃 시킬 정도의 충격을 주지는 못했고 결과적으로 활동량 때문에 메이웨더와의 경기에서 패했다.

그러나 2018년과 2019년에 각각 치른 마티셰, 브로너와의 경기는 그간 팩의 노쇠화를 지켜봐 왔던 팬들에게 놀라운 반등의 연속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해설자들이 빈티지 파퀴아오가 돌아왔다고 찬사를 보낼 정도로, 복서 파퀴아오가 가졌던 거리감각이나 앵글 점유뿐만 아니라, 펀쳐 파퀴아오가 가졌던 무기인 상체 무브먼트나 과감한 리드 레프트 스트레이트 역시 살아났으며, 적극적인 프레셔와 연타가 건재함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런 신체 컨디션의 회복은 그동안 피지컬의 노쇠를 경험으로 채우다가 결국 한계에 부딪치던 많은 노장 복서들의 모습을 상기하면 더더욱 놀랍다. 펀치 스피드가 이전의 수준까지 많이 회복되었고, 내구도 면에서도 특별한 문제점을 보이지 않았다는 모습을 고려하면, 2019년의 팩은 2016년의 팩 이상으로 좋은 모습을 현재까지 보여 왔다.

https://www.youtube.com/watch?v=hkotkD9mtEM

팩에게 마지막 남은 과제는 활동량인데, 마티셰는 후반 라운드까지 버티지 못했고 브로너는 후반 라운드에 경기를 흔들 만한 어떤 유의미한 움직임도 없었기에 파퀴아오의 스태미너는 여전히 미지수로 남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인 무기만으로도 팩맨이 -147 디비전에서 여전히 경쟁력 있는 컨텐더 중 하나임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3. Gunslinger Returns

키스 서먼은 파퀴아오와 마찬가지로 당장 비슷한 유형의 선수를 대보라고 하면 선뜻 나오지 않을 정도로 굉장히 스타일이 독특한 복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는 2017년 3월 대니 가르시아와의 경기 이후 2년여의 공백을 가졌고, 2019년 1월 호세시토 로페즈와의 경기를 가졌는데 이 사이 많은 변화가 관찰되었기에 이 점도 같이 짚고자 한다.

먼저 2017년까지의 서먼의 스타일은 영리하고, 타이밍 감각이 좋은 후커hooker이다. 먼저 서먼은 다리를 좁게 잡고, 체중을 하체보다는 상체 쪽에 비중을 두면서, 레터럴 무브먼트를 바탕으로 링을 넓게 사용할 줄 아는 복서이다. 주로 자신이 들어갈 때는 리드 레프트 훅을 비롯해서 또는 왼손에서 시작하는 콤비네이션을 주로 사용하고, 상대방이 들어올 때는 서클링을 통해 상대의 공세를 빗겨내면서 체크 훅(check hook, 흔히 체육관에서 돌린다라고 표현하는) 등을 통해 상대에게 효과적인 타격을 입힌다. 그의 펀치력은 하체로부터 오는 체중이동보다는 허리회전과 앵글에서 오는데, 이로 인해 정확도가 확보되지 않을 때는 상대방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입히기 어렵다. 이를 염두에 두고 서먼의 2016년까지의 주요 경기를 보면 이런 서먼의 특징들을 확연하게 관찰할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3Dij0D-_LI

키스 서먼이 일반적인 복서와 다른 점이라면 왼손에 편중된 공격들을 갖고 있으면서도 잽을 거의 활용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오른손 공격이 왼손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는 그의 체중 분배가 뒷발보다는 앞발에 주로 체중이 쏠려 있음을 의미하고, 이는 나아가 상대가 들어올 때 효과적인 오른손 카운터를 날릴 수 없음을 의미한다. 잽은 단순히 공세의 유지뿐만 아니라 자신의 안전지대safety zone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결정한다. 그러므로 서먼의 가장 큰 약점은 숀 포터 전에서 노출되었던 것처럼 리치나 체격과 상관없이, 상대방이 들어오고자 할 때 그것을 막을 수 없다는 데 있다.

따라서 서먼 복싱의 성공 여부는, 본인이 들어오는 상대방을 잽을 통해 저지할 수 없고, 오른손 카운터를 통해 저지해 내기도 어렵기 때문에, 계속해서 들어오는 상대방을 따돌리며 링을 넓게 활용하면서 자신에게 유리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그래서 그의 경기는 분명히 우세하게 진행되면서도, 무언가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총잡이의 결투를 연상케 하는 면이 있는데, 이는 그가 자신이 안전한 지대를 확실하게 점유할 수 없기 때문에 기인하는 것이다. 이는 과거 좋은 기본기와 체급 내 탑 스피드를 갖고 있었지만 상대에게 정타 한 대라도 허용할 경우 경기가 대책없는 살얼음판으로 빠졌던 아미르 칸Amir Khan을 떠올리게 하는 구석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서먼이 아미르 칸처럼 불안정한 복서라는 것은 아니다. 서먼이 지금까지 무패로 커리어를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아무리 링을 헤집고 다녀도 지치지 않는 그의 발만으로도 안전거리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던 것이 첫째, 레프트 훅이나 레프트 바디 훅처럼 몸을 강하게 회전하는 펀치들을 치면서도 훅과 어퍼를 조합한 콤비네이션들이 안정된 밸런스를 바탕으로 빠르면서도 정확했던 것이 둘째, 그가 경기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써먹을 수 있는 다양한 레퍼토리들을 갖고 있었던 것이 세번째이다.

이 중 첫 번째를 먼저 얘기하면 그동안 서먼이 경기 중 상대에게 큰 타격을 입었던 적이 몇 차례 있는데(루이스 콜라조, 호세시토 로페즈 전 등) 비틀거리면서도 어떻게든 발을 사용하며 라운드를 끝마칠 수 있었고, 다음 라운드부터는 다시 좋은 회복력으로 절대 기세를 내주지 않았다. 내가 본 서먼의 가장 패배에 근접했던 경기는 숀 포터 전인데, 모든 공간이 위험 지대에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콤비네이션과 상체 무브먼트를 통해 마지막 결정적인 펀치들을 피해낼 수 있었다.

둘째로 서먼의 단점을 주로 지적한다고 해서 그의 명백한 장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서먼의 훅은 왼손, 오른손을 가리지 않고 굉장히 예리한 각도와 빠른 스피드를 가지고 있다. 또한 강한 펀치들을 치면서도 밸런스가 흔들리지 않는 장점이 있다. 링줄에 몰아넣고도 번개같은 왼손과 함께 빠져나갈 수 있으며, 오버핸드overhand는 충분한 타격을 줄 수 있는 파워도 갖췄다.  

세번째로 그의 다양한 레퍼토리에는 뒤로 물러나는 것 뿐만 아니라 공세에 써먹을 수 있는 무기들이 많다. 가벼운 스텝을 활용해서 치고 빠지는 것은 물론이고, 두 글러브를 관자놀이까지 붙이는 하이 가드High Guard 등을 통해 상대방을 코너에 몰아넣는 등 효과적인 압박 수단이 많다. 특히 최고의 수비는 공격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링줄에 몰려 가드를 세우고 있는 상황에서도 기회를 틈타 계속해서 카운터 레프트 훅이나 카운터 라이트 어퍼 등을 사용하면서 경기를 이끌어 나가는 점이 그동안 서먼이 승패에 대한 이견 없이 무패 커리어를 지속할 수 있었던 요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편 수술로 인한 2년여의 공백기 이후 돌아온 서먼은 2019년 1월 호세시토 로페즈 전을 치르게 되는데, 그동안의 서먼의 모습과는 크게 다른 모습들을 몇 가지 보여주었다. 첫째로 잽의 활용을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리면서 레프트 훅 일변도였던 선제공격을 크게 다변화시켰다. 리드 레프트 훅이나 리드 레프트 바디훅 외에도, 원투원 콤비네이션이나 잽잽투 콤비네이션 등의 활용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여전히 잽의 저지력은 효과적이지 않아서 로페즈가 계속해서 압박을 가해오는 것을 잽을 통해 저지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가드에 있어서도 기존의 다리를 넓게 자리잡고 상체 움직임을 많이 가져가는 가드나 하이 가드 외에도 과거 메이웨더가 주로 사용하던 필리 쉘Philly Shell 등을 가져와서 숄더롤 등으로 상대의 오른손을 튕겨내려는 시도를 했다. 이런 크랩가드 활용이 전반적으로 득일지 실일지 아직 판단하기엔 이르지만, 서먼처럼 안정적으로 잽으로 거리를 확보할 수 없는 복서에게 숄더롤은 보통 좋은 선택은 아니다.


4. Styles make a fight

이처럼 두 유니크한 스타일이 충돌한다고 했을 때, 당연히 스타일이 경기를 만든다styles make a fight. 파퀴아오의 입장에서 서먼에게 승리할 수 있는 공식은 무엇일까. 반대로 서먼의 스타일로 파퀴아오 스타일에게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파퀴아오는 복서 파퀴아오와 펀처 파퀴아오를 적절히 배합해야만 한다. 파퀴아오에게 유리한 점은 파퀴아오가 사우스포라는 점과 서먼의 잽이 그를 저지하는 데 위력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첫 번째로 파퀴아오가 사우스포라는 사실은 서먼이 의존하는 왼손의 위력을 거의 무력화시킨다. 서먼이 그동안 사우스포와 맞붙은 경기(로버트 게레로, 루이스 콜라조)들을 보면, 서먼의 가진 다채로운 선제공격 옵션들은 사우스포를 만나면 단조로운 오른손 공격들로 대체되는 양상이 많다. 게레로처럼 느린 복서에게는 서먼의 오른손이 충분히 통할 수 있으나, 파퀴아오처럼 계속해서 움직이고 앵글과 거리를 지배하는 복서에게 서먼의 오른손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반면 파퀴아오는 위의 루카스 마티셰 전 하이라이트에서 보는 것처럼 수많은 오소독스 선수들과 상대해 왔으며 상대 잽에 대한 앞손 카운터부터, 상대 앞손이 회수될 때 거리를 좁혀 콤비네이션을 퍼부을 수도 있는 복서이다.

한편 전체적으로 봤을 때 파퀴아오는 중거리를 유지하는 것보다 결국 들어가야만 한다는 점이 그가 겪을 많은 어려움이 될 것이다. 몇몇 사람들은 파퀴아오는 이미 웰터급에서 경기를 치른 지 10년이 넘었기 때문에 복서 스타일로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그가 콤비네이션 사이사이에 스텝을 배합하면서 거리를 점유하고 브래들리와 같은 탑급 복서들도 무력화시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브래들리, 바르가스, 알지에리, 마티셰, 브로너 등은 웰터급에서 경기를 했을 뿐 실제로는 모두 라이트급, 주니어웰터급에서 올라온 선수들이었다. 반면 서먼은 이런 선수들과 비교를 불허하는 트루 웰터웨이트이다. 급격한 차이가 나는 리치에서 거리를 넘나들기에 서먼의 사이즈는 정말로 문제가 된다. 따라서 파퀴아오가 중거리에서 잠깐잠깐 이득을 볼 수는 있겠지만, 경기를 전체적으로 보면 결국 들어가야 하는 쪽은 파퀴아오이다.  

과거 루이스 콜라조가 서먼에게 좋은 레프트 바디 훅으로 궁지에 몰아넣었지만 파퀴아오의 리치로 서먼의 간장liver을 노리고 서먼의 오른손 공간에 들어가는 것은 어려우며, 파퀴아오는 약간은 먼 거리에서 머물다가 단숨에 거리를 순식간에 잘라 가며 리드 레프트 스트레이트, 라이트 훅 등으로 서먼이 자랑하는 공간을 파괴하고 안면을 적중시켜야 한다. 서먼은 앞발에 체중을 많이 두기 때문에 들어오는 파퀴아오를 라이트 어퍼 카운터로 효과적으로 저지할 수 없다.  

또한 거리를 좁힐 수 있는가 외에도 링을 전체적으로 잘라서 코너에 몰아넣을 수 있는가도 중요한 여부이다. 메이웨더가 입증했듯이 트루 웰터웨이트 복서가 잽과 클린치를 바탕으로 진흙탕 싸움으로 몰고 갔을 때 파퀴아오는 무력했다. 서먼의 잽이 메이웨더의 잽과 비교될 수준은 결코 아니지만, 서먼은 계속해서 공세를 반복하면서 계속해서 거리를 허용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코너에 몰리더라도 클린치나 펀치를 통해 계속해서 그 공간을 탈출하려고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서먼의 스타일과 가장 상극인 사우스포 스타일이 과거 루치안 부테Lucian Bute라고 보는데, 리치가 길고 사우스포이기 때문에 중거리에서 타격을 주기 힘들고, 링줄에 몰려서는 레트프가 어뢰처럼 예측하기 힘든 각도로 날아올지 모르는 스타일이다. 파퀴아오는 서먼을 링 코너에 몰아넣고 레프트 스트레이트로 한번에 들어오는 방식으로 움직여야 한다.



한편 파퀴아오에 맞서 서먼은 더 많은 선택권을 가진 채 경기에 임할 수 있다. 무엇보다 서먼이 갖는 큰 장점은 그동안 팩이 수많은 프로 생활을 하면서 치른 경기 덕택에, 팩이 가진 약점이 무엇인지 알고 경기를 준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2009년, 파퀴아오가 델 라 호야, 해튼, 코토를 연달아 격침시키며 복싱 시장을 충격파에 빠트렸을 때는 누구도 알지 못하던 것이었다. 하지만 마르케즈가 4차전에서 보여주었듯이, 메이웨더가 보여주었듯이 팩이 완패한 경기를 토대로 서먼은 전략을 세울 수 있다.

서먼에게 있어서 현실적인 전략이란 크게 두 가지일 것이다. 후안 마뉴엘 마르케즈가 들어오는 파퀴아오의 원투 타이밍에 맞춰 정확히 오버핸드를 터트렸던 것처럼, 파퀴아오가 들어올 때 몸을 왼쪽으로 숙이며 오버핸드 라이트를 걸 것을 준비하고 링에 들어서는 것이다. 이 오버핸드는 체중이 많이 실릴 필요가 없기 때문에 타이밍 감각이 뛰어난 서먼으로서는 충분히 해 볼 만한 시도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5IlV5Iq9oAA

두 번째는 큰 유효타를 허용하지 않으면서 지속적으로 하이 가드를 통해 파퀴아오를 압박하고, 중거리에서 몸을 숙이면서 스윙성으로 훅을 걸면서 파퀴아오가 걸리기를 의도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왼손을 던지면서 라이트를 바디 스트레이트로 꽂는 것이 파퀴아오에게 꽤 효과적일 것으로 생각하는데 서먼이 정확히 어떤 펀치를 자신의 밥줄로서 준비했는지는 보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양쪽에게 모두 기울지 않는 시나리오로는 모두 자신이 상대보다 더 뛰어난 펀쳐라고 확신하면서, 서로의 위험지대로 들어가서 자신의 빈틈을 노출하는 것을 감수하고 펀치를 퍼붓는, 완전한 난타전으로 흘러가는 경우인데 복서는 언제나 자신이 이길 그림을 생각하면서 임한다고  믿기 때문에 경기 시작부터 스스로를 불확실한 도박으로 끌고 가지는 않으리라 본다.  


5. Exogenous Variable

이번에는 양 선수가 준비해오는 것만으로 통제 불가능한 경기 외적 변수들에 대해 말해 보자. 일단 컨디셔닝에 있어서 양쪽 다 약간의 불안 요소는 존재한다. 파퀴아오는 이제 만으로 40세가 되었고, 경기를 앞두고 공개된 키스 서먼의 트레이닝 세션open workout은 다소 스피드가 부족한 모습이었다. 2008년 오스카 델 라 호야가 컨디셔닝 실패로 rehydration없이 들어왔다가 산송장이 되어 나간 나이가 35세였고, 서먼의 복귀전은 팔꿈치가 완전히 회복되었는지, 혹시 이전과 같은 훅을 날리지 못하는 건 아닌가에 대한 의심을 지폈다. 그러나 이 경기가 양측의 커리어에서 갖는 중요성을 고려해볼 때, 컨디셔닝 이슈, 부상 이슈는 일단 일차적으로 고려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오히려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슈는 헤드 버팅이다. 서먼이나 파퀴아오나 상대방을 일차적으로 박스하기보다는 상체를 움직이면서 펀치를 낼 줄 아는 선수들이기 때문에 인사이드에서 펀치 교환 과정에서 머리가 부딪치는 것이 없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파퀴아오는 마르케즈 3차전에서 헤드 버팅으로 중간 어려움을 겪었고, 서먼 역시 숀 포터 전에서 눈두덩이 부분이 찢겨진 바 있다. 우연적 충돌이 경기의 향방을 움직일 가능성은 사우스포-오소독스 경기에서는 언제나 상존한다.    





6. Theater of the Unexpected

대단히 예측하기 어려운 경기이다. 파퀴아오가 서먼에게 효과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가, 서먼이 파퀴아오에게 카운터를 맞출 수 있는가, 중간 중간 터지는 펀치가 어느 쪽이 먼저일 것인가에 따라 경기의 나머지 흐름이 완전히 뒤바뀔 수 있다.

1라운드 탐색전에서는 서먼이 바디 잽, 레프트 훅 등으로 적극적으로 링을 움직이며 가져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2라운드에서는 파퀴아오가 인사이드 진입을 통해 몇몇 콤비네이션을 적중시키며 라운드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3라운드부터는 이제 본격적으로 서로 준비한 것들을 꺼내들 것이라고 보는데 들어가는 도중 결정적인 카운터만 맞지 않는다면 전반부는 파퀴아오 쪽으로, 후반부로 갈수록 왕성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한 서먼에게 유리하게 흘러가지 않을까 싶다.

서클링과 체크 훅을 많이 사용하는 나 같은 경우에는 서먼 경기를 보며 동감하는 부분이 많다. 라운드는 가져가도 체중이동이 수반되지 않은 펀치로는 진정한 타격을 주기 힘들다는 것. 결국 사우스포와의 대결에서 진짜 펀치의 교환은 뒷손 스트레이트와 어퍼컷에 달려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이 과정에서 오버핸드 카운터는 언제나 열려 있다는 것까지. 일단 내가 관찰한 서먼의 라이트는 오버핸드 식으로 어께 너머로 각을 좁혀서 칠 줄 알고 있었고, 파퀴아오는 좋은 카운터를 갖고 있지만 카운터펀쳐는 아니었다.

그러므로 내 예상은 다음과 같다. 114-113 서먼 SD. 파퀴아오가 한 차례 정도는 다운 직전까지 서먼을 밀어붙이겠지만 전체적인 라운드에서 서먼을 넉아웃시키지는 못하고, 후반 라운드로 갈수록 풋워크와 활동량을 바탕으로 서먼이 계속해서 아웃박스 하면서 파퀴아오에게 라운드를 계속해서 따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파퀴아오의 컨디션이나 최근의 모습을 봤을 때 분명히 좋은 장면을 연출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은 있지만, 레프트 스트레이트가 델 라 호야 전처럼 터지지 않는 이상, 트루 웰터웨이트를 상대로 12라운드를 변명의 여지없이 가져가는 것은 쉽지 않다.  

https://www.youtube.com/watch?v=7T-F25ds_-0


7. 뛰어남과 위대함 사이 그 어딘가

매니 파퀴아오의 위대함은 종종 너무 일상처럼 존재한 나머지 간과되곤 한다. 하지만 그가 이미 가졌던 모든 업적들을 차치하고서라도 이미 선수로서의 모든 동기 부여motivation가 사라진 상황에서 계속해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남아 있는 것은 진정으로 위대한 것이다.

파퀴아오와의 경기 이후, 메이웨더는 자신의 49번째 매치를 이미 단물 다 빠진 안드레 베르토를 데려와 채웠으며, 순전히 돈을 위해 호사가들이나 관심을 가질 MMA파이터나 킥복서와 경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파퀴아오는 메이웨더와의 메가매치에서 패배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경기를 가졌고, 호주에서의 억울한 패배를 이후에도 절치부심하여 마침내 재기에 성공했다. 나에게는 그것이 뛰어남과 위대함의 차이를 보여주는 가장 극명한 사례가 아닐까 한다.

파퀴아오가 서먼을 꺾는다면 이는 단순히 거장의 스완송 뿐만이 아니라 그의 올 타임 순위를 다시 한 번 오르락 내리락 할 만한 거대한 사건이 될 것이다. 그리고 지난 10년간 그를 지켜봐 왔던 팬들에게도 어마어마한 선물이 될 것이다. 그리고 반대로 파퀴아오가 설사 이 경기에서 어떤 파국을 맞이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그의 위대함을 깎아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이미 그는 자신의 위대함을 충분히 증명했으니까.      





*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9-08-06 08:24)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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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글을 공짜로 읽는다는거 자체가 넘 황송합니다.
  • 최고의 프리뷰입니다. 복싱팬으로서 가슴이 뛰네요
  • 힘이 느껴지는 훌륭한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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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8 체육/스포츠(데이터 주의)'자율 축구'는 없다. 요르단 전으로 돌아보는 문제점들. 11 joel 24/02/19 955 8
1367 역사 AI를 따라가다 보면 해리 포터를 만나게 된다. 4 코리몬테아스 24/02/18 1054 11
1366 체육/스포츠(데이터 주의)'빌드업 축구'는 없다. 우루과이전으로 돌아보는 벤투호의 빌드업. 13 joel 24/02/12 1327 30
1365 기타자율주행차와 트롤리 딜레마 9 서포트벡터 24/02/06 1184 7
1364 영화영화 A.I.(2001) 18 기아트윈스 24/02/06 1115 23
1363 정치/사회10년차 외신 구독자로서 느끼는 한국 언론 32 카르스 24/02/05 2549 12
1362 기타자폐아이의 부모로 살아간다는건... 11 쉬군 24/02/01 2151 69
1361 일상/생각전세보증금 분쟁부터 임차권 등기명령 해제까지 (4, 完) 6 양라곱 24/01/31 2812 37
1360 기타텃밭을 가꿉시다 20 바이엘(바이엘) 24/01/31 1001 10
1359 일상/생각한국사회에서의 예의바름이란 18 커피를줄이자 24/01/27 6533 3
1358 일상/생각전세보증금 분쟁부터 임차권 등기명령 해제까지 (3) 17 양라곱 24/01/22 6160 22
1357 일상/생각전세보증금 분쟁부터 임차권 등기명령 해제까지 (2) 17 양라곱 24/01/17 5691 14
1356 요리/음식수상한 가게들. 7 심해냉장고 24/01/17 1254 20
1355 일상/생각전세보증금 분쟁부터 임차권 등기명령 해제까지 (1) 9 양라곱 24/01/15 2672 21
1354 기타저의 향수 방랑기 31 Mandarin 24/01/08 3294 2
1353 의료/건강환자의 자기결정권(autonomy)은 어디까지 일까? 7 경계인 24/01/06 1276 21
1352 역사정말 소동파가 만들었나? 동파육 이야기. 13 joel 24/01/01 130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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