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22/07/15 01:12:20
Name   세상의빛
Subject   딸아이는 자스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58개월 자폐스펙트럼장애(줄여서 자스라고 많이 합니다.) 여아를 키우는 두 아이의 아빠입니다. 직업은 의사이지만, 정신건강의학 전공은 아닙니다. 딸을 키우면서 정신의학, 소아정신의학을 따로 공부하기는 했지만,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어렵기도 하고 제 전공과는 학문의 토대가 다르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퇴행의 시작
12개월까지 딸은 다른 아이와 차이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엄마와 아빠가 부르면 고개를 돌려 주시했고, 딸기를 보면 좋아했으며, 토끼 인형을 싫어했습니다.  그러던 중 18개월이 되면서 우리 부부는 이상한 점을 느끼게 됩니다. 어느 새부터 딸아이의 말이 늘지 않았던 겁니다. 정확히는 엄마 외에 다른 단어를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외에 내는 소리는 전부 괴성이었습니다. 그리고 집중도 하지 못하고 돌아다니기 일쑤였으며 계단을 내려가지 못했습니다. 까치발로 뛰는 것도 좋아했죠. 이 행동들은 추후 진단의 증거가되긴 합니다만, 그 때는 그냥 말만 늦은 줄 알았습니다. 24개월이 되어도 변화가 전혀 없어서 동료에게 딸의 진료를 봤습니다. 그리고 자폐스펙트럼 장애 진단을 받았습니다.  

말을 틔우자!
60개월이 될 때까지 말이 터지는 것이 좋다는 권고를 받았습니다. 아이의 지능 발달이 더 뒤쳐지지 않으려면 아이 본인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간식이 먹고 싶으면 딸은 아내에게 명확한 의사 표현을 합니다. '으아아아악' 그리고 올해는 "딸"(딸기를 뜻합니다.)을 말할 수 있게 되었고 "아이.."(아이스크림을 뜻합니다.)도 말할 수 있습니다. 다만 문장이 되지 못하고 먼저 말을 못합니다. 소리를 내다가 저나 아내가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라고 말하면 "웅:"이라고 답합니다.  아이스크림이 맛있다거나 어떤 아이스크림이 더 좋다라는 의사 표시는 못합니다. 쿠앤크 아이스크림을 주면 소리지르고 엑설런트를 까서 주면 좋아하고 이렇게 해서 딸의 취향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현재 딸은 언어치료를 다니고 있는데, 언어치료센터에서 9살 남아를 키우는 부모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습니다. 어느날 말하게 되더라. 아이가 노력하는 것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었지만 어느날 맛있다는 말을 하면서 말문이 텄다고 합니다. 지금은 발음 교정을 목적으로 센터에 오고 있는 그 남자아이는 딸아이를 볼 때마다 이름을 불러주며 머리를 쓰담습니다.(안 된다. 허락 못한다! ㅎㅎ)

노력(?)
사실 우리 부부는 딸의 진단 시점 즈음 많이 힘들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해서 딸이 자폐스펙트럼이 된 것일까? 아내는 불안장애가 다시 재발하기까지 했습니다. 그 시기를 이겨내는데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것은 종교의 힘도 아니었고, 아이에 대한 책임감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내려놓음이었습니다. 우리 딸은 애초에 저렇게 태어난 것이다. 우리가 부모지만 우리 뜻대로 되는 부분이 아니었다. 이렇게 생각하며 조금씩 현실을 받아들이고 지금 이 시기 딸에게 제일 필요로 한 것을 해주자라고 부부가 뜻을 모았습니다.  생각이 미치자 떠오른 말씀이 있습니다. 서울대 정신건강의학과 김붕년 교수님 강의 중 '이 아이에게 있는 보석처럼 빛나는 부분을 부모가 알아야 한다.' 라고 하셨던 한 말씀. 저희는 딸의 다른 점 아니 부족한 점을 메워주려 노력했지 딸의 빛나는 부분을 아는데 노력은 덜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랑해(~)
딸은 말은 못하지만 33개월 터울의 남동생을 무척 귀여워합니다. 지금까지 동생을 때리기는 커녕 짜증한번 낸 적 없습니다. 간식도 양보하고 장난감도 양보합니다.  언제 아내가 딸에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동생이 좋아?" "웅웅웅" 아내는 웅웅웅이 사랑해로 들렸다고 하는군요. 우리 딸의 빛나는 부분은 동생을 사랑한다는 점인 듯 합니다. 언젠가 아빠도 동생만큼 사랑해줄거라 믿으면서... 오늘도 기다립니다. 내일도 기다리겠죠.


*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2-07-24 21:07)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152
  • 아이가 세상의 빛입니다
이 게시판에 등록된 세상의빛님의 최근 게시물


가만히 손을 잡으면..
잘 읽었습니다. 세상의빛님 가족에 행복이 같이하기를 빌겠습니다.
1
동생을 사랑하는 마음씨 예쁜 누나로군요.
아이가 인생을 행복하게 잘 누리면 좋겠습니다.
1
이쁜 따님이네요 ㅎㅎ 동생도 누나도 아빠도 엄마도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1
Thy킹덤
선생님의 가정이 행복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1
"지금은 발음 교정을 목적으로 센터에 오고 있는 그 남자아이는 딸아이를 볼 때마다 이름을 불러주며 머리를 쓰담습니다.(안 된다. 허락 못한다! ㅎㅎ)"

괄호안 얘기는 딸바보 아빠로서 극공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님이 세상의빛님 가정의 행복의 원천이 될거라 믿습니다.
1
따님이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크는 모습이 선생님 글속에서 그려집니다. 다른 관계 에서도 내려놓는다는것이 아마도 그대로 인정하기인데 참 어려운것 같아요. 글 감사합니다.
1
세상의빛
두서 없는 글이지만 댓글 달아주시고 추천으로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아침에 자는 모습을 보며 출근했는데, 오늘 퇴근하면 딸아이를 안아주면서 사랑한다고 말해주겠습니다. ㅎㅎ
20
sputnik
제 친구도 둘째가 자스입니다. 친구는 많이 힘들었지만 잘 받아들였고 지금도 꿋꿋이 살고 있는데 친구 남편은 그게 안되는거 같아요. 둘은 이혼을 생각중이고 아이 때문이라기 보다는 이 일로 둘의 관점 차이를 너무 많이 알게 된거죠.
저희 애와 함께 같이 키즈카페도 가고 여행도 가면서 함께 하는데 왜 전 아이보다 내 친구의 앞으로의 삶이 더 걱정되는지 모르겠어요. 저도 그 아이의 가장 빛나는 부분을 알아내야겠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4
옆쪽승리
학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자폐 아이들을 한 해에 한 명 만나고 있어요. 하루에 잠깐 보는 입장에서도 답답하다가, 안쓰럽다가, 귀엽다가, 사랑스러운 여러 가지 감정을 가지게 되더라구요. 함께하는 가족은 더 복잡하고 큰 마음이겠죠. 글쓴님의 매일을 응원합니다.

제 이야기를 좀 더 해보면, 처음 이런 아이를 만났을 땐 어떻게 대할지 몰라 뭐든지 제가 챙겨 주려고 했어요. 제가 데리고 가고, 안 한다고 하면 그냥 하고 싶은 일 하게 두고. 그런데 일 년이 지나고 우연히 지나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이들이 팔짱끼며 직접 데리고 가... 더 보기
학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자폐 아이들을 한 해에 한 명 만나고 있어요. 하루에 잠깐 보는 입장에서도 답답하다가, 안쓰럽다가, 귀엽다가, 사랑스러운 여러 가지 감정을 가지게 되더라구요. 함께하는 가족은 더 복잡하고 큰 마음이겠죠. 글쓴님의 매일을 응원합니다.

제 이야기를 좀 더 해보면, 처음 이런 아이를 만났을 땐 어떻게 대할지 몰라 뭐든지 제가 챙겨 주려고 했어요. 제가 데리고 가고, 안 한다고 하면 그냥 하고 싶은 일 하게 두고. 그런데 일 년이 지나고 우연히 지나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이들이 팔짱끼며 직접 데리고 가더라구요. ㅇㅇ야 여기 가야 돼. 기분탓인지 아이의 표정도 제가 보던 것보다 훨씬 밝았습니다. 그 반 담임 선생님께 물어보니 아이들하고 학습에도 잘 참여한다고 하더라구요. 제가 못 본 빛나는 부분을 아이들은 이미 알고, 어떻게 대하는지도 알고 있는 거죠. 별 거 아닌 일이지만, 우리 사회는 이렇게 다른 빛나는 부분을 가진 아이들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따님의 미래를 응원합니다.
11
늘푸른하루
선생님을 아빠를 둔 아이는 이미 원더풀한 삶을 누리고 있을겁니다.
3
카리나남편
전 선생님 개인의 행복도 누리시며 사시길 기도해봅니다.
3
오렌지플래닛
선생님 글에 괜히 눈물이 나네요 진심으로 딸아이와 함께 행복하길 기도하겠습니다
1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229 정치/사회장애학 시리즈 (2) - 시각장애인 여성은 타인의 시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돌려주는가? 5 소요 22/08/07 3869 15
1228 의료/건강아산병원사건 서울대 교수 실명글과 개인적인 견해 20 cummings 22/08/04 5060 23
1227 일상/생각(영양無) 나는 어쩌다 체조를 끝내고 레전드로 남았는가 14 Picard 22/07/27 4771 11
1226 정치/사회<20대 남성 53% "키스는 성관계 동의한 것">이라는 기사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 보고서 원문 자료를 바탕으로 46 소요 22/07/25 5622 39
1225 일상/생각 6 하마소 22/07/21 3977 20
1224 경제코인·투자 손실금까지 변제해주는 게 맞냐? 25 Wolf 22/07/20 5214 23
1223 일상/생각딸아이는 자스입니다. 13 세상의빛 22/07/15 7897 152
1222 정치/사회장애학 시리즈 (1) - 자폐를 지닌 사람은 자폐를 어떻게 이해하나? 16 소요 22/07/14 4843 26
1221 일상/생각아이스크림 마이따 아이스크림 (50개월, 말문이 터지다) 72 쉬군 22/07/05 5283 90
1220 기타2022 걸그룹 2/4 12 헬리제의우울 22/07/04 4263 29
1219 기타24fps/30fps, 60fps. 영상 프레임 레이트에 대한 잡설. 11 메존일각 22/06/29 8018 6
1218 정치/사회너말고 니오빠 - 누구랑 바람피는 것이 더 화나는가? 23 소요 22/06/28 5900 23
1217 일상/생각농촌생활) 6월 - 콩파종 20 천하대장군 22/06/27 3846 20
1216 일상/생각기록하는 도구에 대한 욕망... (1) 25 *alchemist* 22/06/22 4503 18
1215 여행[베트남 붕따우 여행] 중장년 분들에게 추천하는 여행지. 긴글주의 18 사이공 독거 노총각 22/06/19 4547 15
1214 일상/생각아이들을 돕는 단체 "얀코"에 2차로 자원봉사 다녀왔습니다. 17 트린 22/06/16 3994 37
1213 일상/생각적당량의 술과 음악이 있음으로 인해 인생은 유쾌한 관심거리다. 알버트킹 50 사이공 독거 노총각 22/06/12 5198 43
1212 일상/생각나머지는 운이니까 16 카르스 22/06/05 4857 37
1211 문학달의 뒷편으로 간 사람 [마이클 콜린스] 12 사이공 독거 노총각 22/06/08 4040 16
1210 일상/생각농촌생활) 5월 초 - 6월 초 8 천하대장군 22/06/07 3296 15
1208 일상/생각손절의 시대 24 nothing 22/06/01 6103 52
1207 정치/사회장애인 탈시설화 논쟁 12 방사능홍차 22/05/29 6116 27
1206 정치/사회연장근로 거부에 대한 업무방해죄 건 헌법재판소 결정 설명 4 당근매니아 22/05/26 4543 15
1205 정치/사회임금피크제 관련 대법원 판례 설명 4 당근매니아 22/05/26 3821 18
1204 일상/생각형의 전화를 끊고서, 진토닉 한 잔을 말았다. 4 양양꼬치 22/05/26 4340 33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