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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3/09/14 01:38:14
Name   골든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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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트라우마는 어떻게 삶을 파고드는가 - 폴 콘티


※ 책 이야기 반, 책 읽으며 든 제 생각 이야기가 반인 형편 없는 서평.

레이디 가가의 치료사로 유명한 폴 콘티가 책을 썼기에 집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생각 외로 괜찮았기에, 조심스레 서평을 적어 봅니다. 원래 제 무식을 드러내는 일 같아서 서평은 안 쓰려 했는데 …… 애교로 봐주실 거라 믿고 제 생각을 적어봅니다.

트라우마 Trauma 라는 용어만큼 모두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면서도 정확히 그 뜻을 짚기 어려워 하는 단어도 없을 겁니다. 트라우마는 심리적 외상을 뜻하며, '---- 트라우마'와 같이 사상자가 생기는 대형 사건사고와 관련하여 호명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아래와 같은 경우는 트라우마일까요, 아닐까요?

"한 여학생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학교 성적이 우수하다. 운동도 하고 공동체에서 봉사도 하는 이 학생은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항상 응원을 받았고 높은 성취도로 칭찬을 받았다. 그러나 최근 이 학생의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 이것에 대해 학교 친구들이 모두 쑥덕거리는 것만 같다. 지금까지 같이 놀고 공부하던 여자 친구들은 이 학생을 피하거나 놀린다. 어떤 남학생은 도통 이해가 안 되는 얘기를 하면서 절대 만지면 안 되는 부위를 덥석 잡을 때도 있다. 그리고 아무도 이런 행위를 저지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 학생은 학교 성적과 운동, 공동체 봉사는 결국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요소라는 것을 학습했고, 또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믿지 못할 존재들임을 깨닫는다. 또는 누군가 자기가 싫어하는 짓을 할 때 보호해줄 사람들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또는 자신의 몸이 나쁜 것이고 자기 자신 역시 나쁘다고 생각한다. (87p)"

이러한 한 개인의 내밀한 이야기를 듣는다면 우리는 그것에 대해 진지하게 받아들이며 이것이 '사회가 개입할 일'이라고 말할까요? 혹은 그 개인의 왜곡된 가치관 형성을 비판하며 '학창시절에 한 번 있을 만한 일에 예민하다'고 반응할까요? 어느 쪽을 택하든, 그쪽이 100%는 아닐 겁니다. 사람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이겠죠. 그정도로 우리는 무엇이 트라우마고 트라우마가 아닌지에 대해서 정치적으로 반응합니다.

베트남 참전 군인들이 '명예롭지 못한 전쟁'의 귀환병 취급을 받으며 더한 PTSD 증상을 보였다는 이야기처럼, 우리는 무의식중에 남들의 트라우마의 경중을 파악합니다. 문제는, 각 개인에게 있어 그 트라우마는 삶을 규정짓는 요소가 된다는 것입니다.

"트라우마의 가장 큰 종복은 수치심이다." 그리고 그 수치심은 각 개인이 삶을 보는 렌즈를 왜곡시킨다. 저자 폴 콘티는 담담하게 몇 번이고 트라우마의 위험성을 적어 내려갑니다. 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후 어머니가 암에 걸려 사망한 트라우마 이후, 그는 세상을 전과 다르게 보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누구보다도 환자의 마음을 잘 아는 그는 트라우마가 어떻게 세상을 슬금슬금 파괴시켜 놓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묘사해놓습니다.

"이런 트라우마를 겪으면 자신에 대한 존재감과 세계관이 틀어지는데, 그 방식이 비밀스럽게 위장되어 소름이 끼칠 정도다. 이런 비밀스러운 깨달음은 다른 사람들과의 의논이나 평가의 잣대를 거치지 않고 대개는 혼자 체득되는 경우가 많다. 자기 자신을 지킨답시고 우리는 이런 나쁜 깨달음을 세상이 볼 새라 깊이 묻어두는데, 이런 행위가 바로 스스로에게 저지르는 가장 해로운 짓이다. 즉 애초에 요청하지도 않은 유독한 씨앗을 무심코 심어서 양분을 주고 키우는 꼴이다. ...수치심은 이런 유독한 씨앗에 낮의 빛을 쏘이지 말라고 지시한다. 수치심은 이런 씨앗은 버릴 수 없다고 설득하며, 만약 버리려고 할 경우 우리가 얼마나 형편없는 인간인지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될 것이며, 결국 우리의 실체가 드러나 온갖 모욕을 받을 거라고 주장한다. 이런 식으로 수치심은 우리를 속여 거짓된 깨달음의 씨앗을 심도록 유도한다."

저자가 강조하는 트라우마의 위험한 점은 '인생의 지도를 뒤틀고 렌즈를 왜곡시킨다'는 점에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악질 범죄자들의 이런 말을 듣고는 합니다. -선생님이 가난하다고 차별했을 때, 내 안에서 악마가 태어났다- (신창원), - 이런 반응 역시, 읽기 괴로우실 수는 있겠지만, 전형적인 트라우마 반응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때 몇몇 아이들은 '세상은 강자와 약자로 나뉘며 강자는 약자를 함부로 할 수 있다' 와 같은 잘못된 신념을 체득하지요. 어린 시절의 경험 한두 개가 평생을 통트는 신념을 만드는 일은 일상적으로 흔한 일이지만 이것을 트라우마라 하니 또 새롭지요?

그런데 그렇게 트라우마를 바라보게 되면 세상에 정말 많은 것들이 트라우마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왠지 모르게 본인이 여성이면서 더 심하게 남녀차별을 하는 할머니들의 모습이나, 유독 자신이 돋보여야만 견딜 수 있는 사람의 꼬인 가족 역학 관계 같은 흔한 일상다반사의 일들이 그렇습니다. 꼬인 신념 자체를 트라우마와 그 수치심이 만들어내는 독이라 치면, 그 배배 꼬인 신념이 퍼져 나가며 온갖 상처 되는 언행과 범죄, 고통들이 가지뻗듯 생기는 셈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트라우마를 '산불'에 비유합니다. 사람들 한 명 한 명의 트라우마를 방치하는 건, 결국 트라우마와 상관 없는 사람들까지 휘말리는 사회의 큰 산불을 불러오는 것과 같다고 말입니다.

그렇기에 저자가 트라우마에 대한 해결책으로 몇 번이고 주장하는 건 '사회가 함께 해결하는 것'입니다. 공감과 연민, 사회의 도움 없이는 트라우마는 해결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개개인이 심리상담을 아무리 혼자서 받고, 열심히 마음 수련을 해봤자 사회에 마음을 통하게 하지 못하면 그 트라우마가 낫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것이 인간이 본질적으로 공동체적인 존재여서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산짐승을 만났다, 위험한 지역을 찾았으니 조심해라, 저 열매는 위험하다 같은 모든 이야기들을 인간은 공동체에게 전하기 위해서 목이 말랐을 것입니다. 도시 생활은 책임을 분산시키지만, 우리 인간은 본질적으로 감정적 연대 속에 존재하는 이들인 셈입니다.

책 밖의 예를 들어볼까요.
호오포노포노는 고대 하와이인들의 용서와 화해를 위한 문제해결법입니다.

이에 의하면 고대 하와이인들은 누가 이유 없이 몸이 아프면 모두 모여 그 사람에게 그 사람이 섭섭했을 만한 일들을 사과했다고 합니다. 즉 그들은 마음의 병이 몸의 통증으로 쉽게 나타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가해자는 쉽게 그 일을 잊는다는 것과, 피해자는 수치심에 말을 못하고 앓고만 있어도 내심으로는 가해자의 진정어린 사과를 깊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셈이죠.

혹은 귀환병(*전쟁에서 귀환한 병사들) 출신 목사가 PTSD를 앓는 귀환병을 위해 하는 의식에서도 우리는 트라우마의 사회적 연대의 필요성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이 의식에서 귀환병들은 자신이 목숨을 앗은 이들을 애도하고, 그들을 보며 일반 시민들이 다가와 아래와 같은 말을 읊습니다.

"우리가 당신을 위험한 곳으로 보냈습니다. 우리가 당신을 만행이 벌어질 수 있는 곳에 보냈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책임을 함께합니다. 당신이 본 모든 것에 대해, 당신이 한 모든 일에 대해, 당신이 하지 못한 모든 일에 대해 우리가 함께 책임집니다." (더티워크, 215p) 얼마나 타당한 방법인지! 왜냐면 전쟁을 시킨 장본인들이 발 뻗고 아무 것도 안 하고 있단 것에서 그 트라우마가 오고 있었을 테니까요.

실은, 그렇습니다. 우리는 연결되어있기에, 항상 서로의 존재에 얼마간 책임이 있습니다. 트라우마는 삶을 보는 방식을 전과 다르게 송두리 파괴하지만, 그 파괴된 삶을 되돌리는 건 서로에 대한 참된 연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쑥스럽게도 감사 말씀을 올리자면 홍차넷에서의 지난 제 시간은, 진정한 치료의 시간이었던 셈입니다. 많은 분들께서 보여주신 연민과, 함께 나눠주신 연대 의식 덕에 지금의 저는 놀랍도록 몸과 마음이 좋아졌습니다.

책은 다소 산만합니다. 치료에 중점을 두는가 싶다가도, 사회적 책임 얘기를 합니다. 다소 두서없이 이어지는 이야기인데, 이상하게 읽고 나면 마음이 치유가 됩니다. 트라우마를 앓는 많은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실은 트라우마가 없는 사람이 없을지도 모르겠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서로의 마음을 매만지며 이해해주고, 공감해주고, 속삭여줘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만들어진 생물들 주제 원자화된 도시에 억지로 스스로를 욱여넣고 살다 생긴 부작용이 트라우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에 따르면 성폭행 피해자가 자신의 진술을 믿게 하기 위해서 같은 말을 8번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침묵의 장막 속에서 모든 것이 문제 없이 굴러가고 있다는 합리적 세상 가설(just-world hypothesis)* 하에 우리의 따뜻한 대답을 필요로 하는 힘든 이들을 밀어냅니다. 그들이 노력이 부족했을 거라, 그들이 뭔가 잘못을 했을 거라고 치부합니다. 실제로는, 우리는 그저 대화가 필요합니다.

*심리학 용어로 사람들은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얻는다고 믿고자 하는 인지적 편향.




*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3-09-25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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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생님의 글에 제가 치유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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