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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4/01/27 13:08:08 |
Name | 커피를줄이자 |
Subject | 한국사회에서의 예의바름이란 |
한국사회에서의 예의바름이란 다른 사람이 지켜온 삶의 확신에 불안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자기 삶을 제어하는 것을 뜻한다. 절대 남이 부담스러워할 만한 이야기를 꺼내서는 안된다. 더 나아가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정당성에 대한 고민을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에게 모독이 될 수 있다. 한 예로 교육현장에서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것이 진정한 교육인지를 고뇌하는 A교사가 그 모습을 다른 교사에게 드러낼 경우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다른 교사에게는 이같은 A의 성찰이 곧 자신은 고민도 없는 사람이라는 식의 비난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따라서 관계란 타자성이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세심하게 배려되어야 한다. 한국사회의 예의바름이란 낯선 이를 친구로 만드는 과정이 아니다. 오히려 타인이 적정거리를 유지한 채 물러나 있을 것을 요구한다. 그렇기에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것 자체가 타인의 영역을 침범하는 예의없는 행동으로 받아들여진다. 나 또한 남에게 관여하지 않고 거리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곳이 아파트다. 아파트 주민들이 가장 경계하는 것은 생활공간에 낯선 사람이 들어오는 것이다. 한국의 공교육은 무너진지 오래이며 따라서 아파트단지의 학부모들은 사교육을 통한 자녀교육에 혈안이 되어 있다. 내 아이는 당신들의 아이와는 좀 다르게 키우겠다고 말하는 학부모가 나타나면 그는 가장 경계하는 대상이 된다. 왜냐하면 그런 “낯섦”이 우리 공간에 들어옴으로서 나의 지켜온 확신이 흔들리고 불안이 증폭되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중산층들이 모여 사는 폐쇄적인 아파트단지 안에 들어가는 순간 내 아이를 다른 방식으로 키울 자유 따위는 온데간데 없어지는 셈이다. 한국사회에서의 예의바름이란 다른 사람이 지켜온 삶의 확신에 불안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자기 삶을 제어하는 것을 뜻한다. 절대 남이 부담스러워할 만한 이야기를 꺼내서는 안된다. 더 나아가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정당성에 대한 고민을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는 것은 상대방에게 모독이 된다. 한 예로 교육현장에서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것이 진정한 교육인지를 고뇌하는 A교사가 그 모습을 다른 교사에게 드러낼 경우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다른 교사에게는 이같은 A의 성찰이 곧 자신은 고민도 없는 사람이라는 식의 비난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따라서 관계란 타자성이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세심하게 배려되어야 한다. 한국사회의 이런 딜레마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양심적 병역거부다.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말에 사람들이 격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양심이라는 말 때문이다. 병역거부자 너희들이 양심적이라면 군대에 다녀온 우리는 그럼 비양심적이라는 말이냐,라는 반발이 줄을 잇는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양심이란 말은 종교나 이데올로기 등 한 개인이 평생동안 지켜온 신념에 비추어 볼 때 병역의 의무가 스스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모순이어서다. 또한 개인의 이같은 결단을 존중해주지 않는 시스템에 대한 항변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를 대다수 군복무자들에 대한 모독으로 받아들인다. 만약 양심적 병역거부를 개인의 신념에 의한 거부로 바꿔 부르면 이야기가 달라질까? 아니다. 곧 우리 대다수는 신념이 없느냐라는 반발이 이어질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시스템의 요구에 응하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되면 이것을 시스템에 적응하는 사람들에 대한 모독으로 느끼는데서 오는 결과다. 따라서 누구든 자신이 사회구조에 의해 고통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 부당함을 공개적으로 말하는 행동은 의식적으로 기피된다. 개인의 상처는 드러낼 것이 아니라 감추어야 한다. 본래 서구의 자유주의가 규정한 자유의 개념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다르게 살아간다는 의미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한국사회에서는 차이와 다름을 드러내는 것이 곧 타인의 삶에 대한 개입, 즉 예의바르지 않은 행동으로 판단된다. 타자성을 드러내서는 안된다는 말은 다음과 같다. 튀지 않는 것이 나를 보호하는 원리이자 남을 배려하는 방식이다. 타인에 대해 왈가왈부해서는 안되며 남에게 심려를 끼칠 만한 이야기는 꺼내지 말아야 하는 곳이 한국사회다. 공개적으로 자신이나 남의 상처를 이야기하고 공감을 바라는 것은 민폐로 금기시된다. 따라서 본인의 상처와 치유는 철저히 사적인 방식으로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그러므로 맞춤형의 위로와 상담이 공적토론 자리를 대체한다. 바우만의 말처럼 개인의 문제들에 대해 복지로서 사회적 해결책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스템에 의해 발생한 상처들을 개인이 알아서 해결하게 된 것이다. 바로 그래서 우리는 외로워졌다. 그리고는 이 외로움이 인생의 실존이라고 착각하게 되었다. 매우 인상깊은 구절이라 공유하고 싶어 가져왔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4-02-04 21:01)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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