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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4/04/29 04:20:32
Name   kaestro
Link #1   https://kaestro.github.io/%EC%8B%A0%EB%B3%80%EC%9E%A1%EA%B8%B0/2024/04/29/%EB%82%98%EB%8A%94-%EC%99%9C-%EB%B0%A9%EB%AC%B8%EC%9D%84-%EC%97%B4%EA%B2%8C-%EB%90%90%EB%8A%94%EA%B0%80.html
Subject   방문을 열자, 가족이 되었습니다


너 어제 밖에 나갔다 왔니?

저는 원래 집에 들어오는 순간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일이 없으면 방에서 나오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히키코모리였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친구들과 만나기 위한 외출은 종종 했으며 디스코드로 친구와 대화하며 게임을 하고, 회사를 나가서 일하는 등의 사회적인 활동도 충분히 했습니다. 한동안 집에 돌아왔을 때 제 방문은 항상 단단하게 걸어잠궈져 있었습니다. 요즘 많이 이야기되는 ‘한국 사람은 집에서 혼자서 쉬고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느낀다’ 는 사람의 전형 중 하나가 저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던 제가 굉장히 충격을 받았던 사건이 바로 어머니께 ‘어제 나갔다 왔어? 나갔는지 몰랐네’라는 이야기를 외박하고 집에 돌아온 다음날 오후에 집에 들어오면서 들은 일이었습니다. 전날 점심때 쯤 친구를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섰다가 잠을 자고 돌아올 때까지 집에 있는 그 누구도 제가 집에 없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는 이 사실은, 저에게 우리 가족은 서로에게 그로톡 무관심하지는 않은데 왜 집에 있는지와 같은 가장 기초적인 사실 조차 모를 정도로 소통이 불가능한 단절을 가운데에 두고 지내고 있게 됐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었습니다.


아파트, 방, 문, 단절

최근 셜록 현준님의 영상을 많이 보면서 현재 제 주거 공간이 어떻게 제 삶을 영향을 주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중에서 굉장히 인상 깊게 들은 이야기 중 하나는 ‘아파트 방들에는 거실을 향하는 창문이 필요하다’ 라는 말씀이었습니다. 해당 글에서 셜록 현준님의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건축에서 벽은 공간을 나누고 단절하는 장치이며, 문은 벽을 뚫고 두 공간을 적극적으로 연결해주는 장치이고, 창문은 시각적으로만 소통하게 해주는 소극적 연결 장치이다. 사람 간에 가장 좋은 관계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관계가 너무 가까우면 사생활이 없어지고, 관계가 끊어지면 외롭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주는 건축 장치는 창문이다.”

저는 이 말씀을 듣고 항상 굳게 걸어잠겨 있는 제 방의 문을 되돌아보면서 우리 가족이 단절돼있던 것이 세대간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대화 같은 것에서도 기인하는 부분이 있겠습니다만, 그보다는 소통 자체의 총량이 모자란 것이 주 원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마치 제 블로그의 디자인이 변화하면 기존에 제가 작성해 뒀던 글이 주는 경험이 여태까지 주던 것과는 다르게 변하는 것과 동시에 이후에 작성한 글들이 변화했던 것처럼, 제 방의 디자인을 바꾸는 것을 통해 가족과 단절된 시간을 줄이고 연결되어 소통하는 시간을 늘리는 노력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방 문을 열어 프라이버시를 잃고, 가족을 얻었습니다

유현준 교수님께서 가장 이상적인 소통 방식으로 방에 창문을 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만, 애석하게도 전세집인 이 아파트에 창문을 뚫는 시공을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차선책으로 제 방 문이 기본적으로는 열려있는 상태가 되도록 변화를 줬습니다. 이전에 방에 들어오면 문부터 닫았다면, 지금은 제가 방에서 혼자 조용하게 해야 집중해야 하는 시험을 보는 등의 일이나, 전화 통화 같이 프라이버시를 지켜줘야하는 상황이 아니면 대부분 문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저는 이제 동생이 공부하다가 간식을 먹으려고 주방에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같이 먹자고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게 됐습니다. 어머니께서 보고 있는 tv 프로그램에 어떤 사람이 나오고 있는지 알 수 있게 됐습니다. 식사 준비를 위해 칼질하는 소리를 듣고 옆에서 이를 도와줄 수 있게 됐습니다. 그렇게 저는 방 문을 열어 프라이버시는 잃었지만 대신 가족을 얻게 되었습니다.


마치며

물론 집에 돌아와 나만의 온전한 시간을 갖는 것은 재충전을 하는 데에 있어 굉장히 중요합니다. 저 역시도 이런 글을 쓰는 게 가장 잘 되는 시간은 가족이 모두 잠들어 있는 새벽 시간에 혼자 음악을 틀어놓고 나만의 시간을 가지고 있을 때입니다. 하지만 저는 집에서 모든 순간에 혼자만의 시간을 추구하기보다는 가족과 함께 내 삶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삶도 이루어 가족의 일원으로써 함께하고 외롭지 않은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렵지만 제 방 문을 가능한 열어두는 것을 선택했고 그 결정에 만족합니다.

응답하라 1988과 같은 가족 드라마에서 나오는 가족들은 풍족하지도 못하고 갈등이 계속해서 발생하지만 그들이 끈끈하게 있을 수 있는 것은, 같은 공간과 시간을 요즘의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이 공유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요즈음 그 시절 가족들은 다툼이 있었지만 더 시간을 공유하고 싶어하고 친했으며, 외롭지 않고 행복했다 느꼈던 것은 어쩌면 우리들의 아파트에는 벽이 있고 그 방문이 굳게 걸어닫혀있는 것이 기본 상태이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고 조심스레 생각해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자료



*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4-05-13 21:21)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11
  • 왠지 점점 글이 느시는 것 같은 ㅎㅎ 힘빼고 쓰시는 쪽이 좋아 보여요!
이 게시판에 등록된 kaestro님의 최근 게시물


저의 일상도 생각해보게 하는 좋은 시사점이 있는 글이네요.
요즘 가족들이 각자 방문을 닫고 있을 때가 많은데 다시 방문을 열고 소통해봐야겠다 싶습니다.
kaestro
저도 항상 닫고만 살았는데 생각보다 방문을 연다는 행위가 가족들과 연결돼서 같은 시간과 공간을 보내게 해주는 차이가 있더라구요
제가 가족분들과 소통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한 거면 기쁠 것 같네요
듣보잡
저는 아예 개인방이 없고 거실에 컴퓨터 놓고 살고 있읍니다...
kaestro
가장 오픈된 마인드!
는 고생이 많으십니다...
과학상자
문을 닫아둔다는 게 공간의 단절만이 아니라 소통과 교류의 단절로 이어지기 쉬운 것 같긴 합니다. 문을 닫으면 대개 DO NOT DISTURB의 의미가 되니까요. 제가 어린 시절 복도식 아파트를 살았을 때는 현관문 열어 놓고 사는 집이 많았고 지나가면서 다 보여도 개의치 않았던 게 기억납니다. 꼬맹이들은 옆집에 막 들어가서 뭐 얻어먹고 그랬었는데... 막 시끄럽기도 하고 성가실 때도 있었지만 확실히 그때만 해도 이웃이라는 느낌이 있었죠. 요즘엔 현관문은 열어두면 예의가 아니다 보니 문닫고 지내고 조용하니 편하기도 한데 어쩌다 옆집 분들이랑 엘리베이터 같이 타면 그냥 뻘줌합니다;; 그래도 아직 집 안에서는 아직 사춘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은 아들놈이 문 열어 놓고 아빠 맨날 찾으니 고마워해야겠네요. ㅋㅋ
kaestro
말씀대로 그런 복도 문화가 사라지고 문을 걸어잠근게 우리 나라에서 이웃 간에 아무도 소통하지 않는 결과를 만들었나도 싶네요
아드님께서 부모님을 그만큼 안전하고 믿는다는 의미일테니 자랑스러워하셔도 될 것 같아요 ㅋㅋ
1
골든햄스
인터넷에서 하도 남편들이 자기 공간이 필요하다고 하길래
남친에게 두 낫 디스터브 팻말도 필요하면 쓰라고 줘보고 했는데 .. 제 남친은 저를 부르더군요 … 오히려 지금 제가 시름시름입니다 …
1
ㅋㅋㅋ
그만큼 남친분께서 함께있는걸 행복해하신다는거니까 본인의 매력을 원망하십쇼
오디너리안
러브러브하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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