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16/04/18 19:09:57
Name   마르코폴로
Subject   한식판 왕자와 거지, 곰탕과 설렁탕
- '잼배옥' 설렁탕
- '하동관' 곰탕
-차이가 나는 국물 때깔

곰탕은 ‘고은+탕’, ‘고기 곤 뜨거운 국물’이라는 의미입니다. ‘기름 고(膏)’의 동사형이 ‘고다’입니다. 명사 ‘고(膏)’에서 동사 ‘고다’가 나왔다고 하죠. 즉 고은탕, 혹은 곤 탕이 시간이 지나면서 곰탕이 된 것이지요. 뜻은 ‘기름기 많은 탕’ 정도라고 보면 될 듯합니다. 이런 곰탕은 반가의 음식인지라 그 기록도 정확한 편입니다. ‘음식디미방’의 우족탕, ‘규합총서’의 꼬리곰탕 같은 것들이 현재 곰탕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곰탕의 원형이라 볼 만한 음식들의 경우 그 조리방식까지 명확하고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그야말로 한식계의 금수저라고 할 수 있겠죠. 현재 남아 있는 많은 음식들이 사실 그 원형을 찾기가 쉽지 않은데 반가에서 주로 먹던 음식인 탓인지 곰탕은 그 유래와 기록을 상세하게 알 수 있습니다. 곰탕은 매식(판매하는 음식)의 형태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설렁탕에 주류의 위치를 빼앗기게 되는데, 이는 서울에서 장국밥이 설렁탕에 그 위치를 내준 것과 유사해 보입니다. 상대적으로 손이 많이 가고, 재료의 가격이 비싼 까닭에 대중적인 음식으로 자리 잡기가 불리했기 때문이겠죠.

설렁탕의 역사는 곰탕과는 다릅니다. 겉보기에는 거의 유사한 음식들의 유래가 이렇게 다른 경우를 보는 것도 그리 흔한 일은 아닐 겁니다. 일단 설렁탕의 경우 제대로 된 기록이 거의 없습니다. 조선시대 후기에 도축된 소의 부산물로 탕을 만들어 팔았다는 기록이 그 유래로 짐작될 뿐, 조리법이나 이름에 대한 정확한 유래를 알 방법이 없습니다. 설렁탕을 끓이는 국솥에 국물이 끓는 모습이 ‘설렁설렁’ 하다고 해서 설렁탕이라고 부른다는 식의 황당한 유래만이 알려져 있을 따름이죠. 선농단이 설렁탕이 되었다는 유래(인터넷이나 식당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유래입니다) 같은 그럴듯한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음식사가들은 그럴듯한 이야기의 조합일 뿐 근거가 없다는 말로 일축하더군요.

그렇다면 설렁탕과 곰탕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시간이 흐르면서 그 차이가 모호해지긴 했지만, 조리법을 살펴보면 두 음식은 확실히 다른 음식입니다. 기본적으로 국물을 만드는 방법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소뼈를 사용하는 것은 유사하지만, 설렁탕의 경우 육수의 주체가 뼈인 반면에, 곰탕은 고기를 주로 해서 육수를 뽑아냅니다. (나주곰탕의 경우처럼 뼈를 사용하지 않고, 고기로만 국물을 내는 경우도 있습니다)사용하는 고기의 부위도 곰탕의 경우 양지머리, 사태, 양 정도로 국한하는 반면에 설렁탕은 가죽과 오물(?)을 제외한 모든 부위를 사용해서 국물을 뽑아냅니다. 그래서 곰탕의 경우 국물이 맑고 담백한 맛이 느껴지는 반면, 설렁탕의 경우 진하고 무겁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저는 곰탕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단맛 탓에 설렁탕을 더 선호합니다.


- 영춘옥

- 정주영 회장의 단골집이었다는 만수옥(정주영씨가 미식가가 아니라는게 함정)

설렁탕의 경우 서울이 가장 유명합니다. 이문설농탕, 잼배옥, 만수옥 같은 노포들도 많이 자리 잡고 있지요. 마장동의 우시장이 음식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던 것 같습니다. 이 시장에서 나오는 부속물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설렁탕이 생겨났으리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곰탕은 서울과 현풍, 나주가 유명합니다. 서울에서 유명한 가게로는 하동관과 영춘옥을 들 수 있겠네요. 나주는 하얀집, 현풍은 박소선 할매 곰탕이 널리 알려진 집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서울은 마장동의 우시장이 유명하고, 경북은 지역의 김천같은 곳의 우시장이 과거 평양의 우시장과 함께 쌍벽을 이뤘을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했었죠. 나주의 경우 일제 강점기에 일제가 생산하던 소고기 통조림이 이 지역에서 주로 만들어 지면서, 이 지역으로 전국의 엄청난 소고기가 쏟아졌습니다. 흔히 재료가 요리의 절반 이상이라는 말을 하고 하는데, 곰탕 역시 이런 요인들-풍부하고 좋은 소고기를 제공받을 수 있는 환경-로 말미암아 앞서 언급했던 지역의 음식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 수박이두통에게보린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6-05-02 11:46)
* 관리사유 : 추천 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13
  • 꿀잼 음식이야기 추천
  • 키야 술을 잘 못먹는 사람인데도 국물이랑 딱 한잔 하고 싶어지는 글이에요!
  • 기분이 곰탕곰탕
  • 바다 건너 유학생은 그저 웁니다
  • 춫천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418 기타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 오직 문학만이 줄 수 있는 위로 8 다람쥐 24/11/07 843 31
1417 기타기계인간 2024년 회고 - 몸부림과 그 결과 5 Omnic 24/11/05 627 31
1416 기타비 내리는 진창을 믿음으로 인내하며 걷는 자. 8 심해냉장고 24/10/30 906 20
1415 기타명태균 요약.txt (깁니다) 21 매뉴물있뉴 24/10/28 1735 18
1414 기타트라우마여, 안녕 7 골든햄스 24/10/21 933 36
1413 기타뭐야, 소설이란 이렇게 자유롭고 좋은 거였나 14 심해냉장고 24/10/20 1548 40
1412 기타"트렌드코리아" 시리즈는 어쩌다 트렌드를 놓치게 됐을까? 28 삼유인생 24/10/15 1850 16
1411 기타『채식주의자』 - 물결에 올라타서 8 meson 24/10/12 943 16
1410 요리/음식팥양갱 만드는 이야기 20 나루 24/09/28 1219 20
1409 문화/예술2024 걸그룹 4/6 5 헬리제의우울 24/09/02 2075 13
1408 일상/생각충동적 강아지 입양과 그 뒤에 대하여 4 골든햄스 24/08/31 1412 15
1407 기타'수험법학' 공부방법론(1) - 실무와 학문의 차이 13 김비버 24/08/13 2042 13
1406 일상/생각통닭마을 10 골든햄스 24/08/02 1978 31
1405 일상/생각머리에 새똥을 맞아가지고. 12 집에 가는 제로스 24/08/02 1594 35
1404 문화/예술[영상]"만화주제가"의 사람들 - 1. "천연색" 시절의 전설들 5 허락해주세요 24/07/24 1439 7
1403 문학[눈마새] 나가 사회가 위기를 억제해 온 방법 10 meson 24/07/14 1907 12
1402 문화/예술2024 걸그룹 3/6 16 헬리제의우울 24/07/14 1686 13
1401 음악KISS OF LIFE 'Sticky' MV 분석 & 리뷰 16 메존일각 24/07/02 1583 8
1400 정치/사회한국 언론은 어쩌다 이렇게 망가지게 되었나?(3) 26 삼유인생 24/06/19 2787 35
1399 기타 6 하얀 24/06/13 1861 28
1398 정치/사회낙관하기는 어렵지만, 비관적 시나리오보다는 낫게 흘러가는 한국 사회 14 카르스 24/06/03 3079 11
1397 기타트라우마와의 공존 9 골든햄스 24/05/31 1929 23
1396 정치/사회한국 언론은 어쩌다 이렇게 망가지게 되었나?(2) 18 삼유인생 24/05/29 3076 29
1395 정치/사회한국언론은 어쩌다 이렇게 망가지게 되었나?(1) 8 삼유인생 24/05/20 2650 29
1394 일상/생각삽자루를 추모하며 4 danielbard 24/05/13 2051 29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