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16/12/27 13:14:23
Name   SCV
Subject   나를 괴롭히는 것은, 나.
  한밤중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물을 들이킨다. 차가운 물을 마셔도, 두통약을 한 움큼 집어먹어도 생각은 쉬이 가라앉지 않는다. 마치 금요일 밤 뜬금없이 찾아온 사랑니의 통증처럼, 생각은 날 괴롭히며 잠을 앗아가고 다음날 맞이한 아침 해와 함께 거짓말처럼 사라지는 얄미운 녀석이다.

  과거의 일들이 자꾸 떠오른다. 감정이 격해지기도 하지만 대부분 심장박동수는 일정하게 유지되기 마련이다. 나쁘진 않군, 이라고 되뇌이며 억지로 잠을 청하려 들면 다시 감정마저 격해진다. 아무일도 아닌데, 정말 생각하지만 않는다면 아무 일도 아니라는 독백은 밤 공기 사이로 의미 없이 흩어진다. 불면이 익숙해질 때 쯤이면 좌절이 파고든다. 어떻게든 되돌릴 수 없는 과거와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현실을 소비하는 부조리는 더욱 자신을 무력화 시킨다. 결국 무기력하게 일상을 보내고, 사람들은 그 속 사정을 알든 모르든 시간이 약이라는 허울 뿐인 충고를 되풀이 할 뿐이다. 시간이 진짜로 약이 된다면 적어도 진통 효과는 형편없는 약일 것이다. 이렇게 자기를 괴롭히며 피폐해져 가는 동안, 그 누구도 당신을 괴롭히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욱 끔찍하게 다가올 뿐이다. 어느날 악몽에서 깨어나 몸서리치며 다시 물 한잔 마셔봐도 악몽보다도 나을 게 없는 현실과 당신의 처지에 다시 한번 몸서리치게 된다.

  그래. 아무도 당신을 괴롭히지 않는다.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도, 불면의 밤을 보내게 하는 것도, 자신이 실수 혹은 잘못한 과거의 필름을 구간반복으로 기억 속에 재생시켜 주는 것도 모두 당신 자신이다. 생각을 떨쳐내려 애쓰고 현실을 잊으려 다른 것을 해봐도 무용하다. 결국 당신은 당신을 괴롭히는 자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어 더욱 괴로워질 뿐이다. 괴롭히는 주체와 괴롭힘 당하는 객체가 동일하다보니 그 괴로움은 더욱 커져간다. 괴롭히는 강박관념과 괴롭히지 않으려는 강박관념이 뒤엉켜 싸우고 머리속은 점점 복잡해지다 못해 괴롭게 된 원인인 대상을 원망하고 미워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때로는 그 원망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기도 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아무도, 당신을 괴롭히지 않는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고 실수는 실수일 뿐이며 잘못은 잘못일 뿐이다. 그 누구도 당신 자신만큼 당신을 비난하거나 힐난하지 않는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은 돌이키려 애쓰지도 말고 마음쓰지도 말라. 어차피 돌이킬 수 없다면 차라리 무신경한 편이 낫겠다. 과거에 얽매인 마음이 당신을 괴롭히고 그 마음이 당신을 괴롭히는 현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더욱 고통스러운 수고를 하겠지만, 그것은 스스로도 잘 알다시피 올바른 해답이 아니다. 해답은, 너무나 뻔하지만 지금의 자신과 현재의 현실에 충실하라는 실행에 옮기기 힘든 충고들 사이에 놓여있을 뿐이다. 그것들이, 알면서도 실행하기 힘든 것인 이유는 당신 자신이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낼 수 없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생각은 희망과 활력을 낳지만 긍정적인 결과를 위해서는 많은 힘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부정적인 결과를 위해서는 아무런 힘도 노력도 필요치 않다. 오히려 편하다. 괴로운 심신을 달래는 올바른 처방은 아무것도 않은 채 부정적인 생각들에 휩싸여 편하게 있는 것이 아니라 힘든 와중에서도 더욱 힘을 내어 자신과 자신의 일을 위해 노력하고 매진하는 힘든 길을 걷는 것이다.
  
  나를 괴롭히는 것은 나 자신이다. 그런 나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만, 적어도 내가 나를 괴롭히도록 놔두는 우는 범하지 말자. 괴롭고 힘들어도 마냥 놓고 있지 말고 내가 나를 괴롭힐 수 없도록 더욱 바쁘고 힘들게 살자. 결국 괴롭히는 나도 내가 아니겠는가.


* 수박이두통에게보린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7-01-09 09:35)
* 관리사유 : 추천 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10
  • 최근에 제가 느끼는 바와 비슷하네요.
  • 비슷한 생각을 하시고 계시고 좋은글이라 생각해 추천합니다.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345 일상/생각타임라인과 속마음 나누기 36 Toby 17/01/13 7546 34
344 음악등려군과 대북방송 이야기 17 기아트윈스 17/01/13 7067 7
343 문화/예술[15금] 고대 그리스 남성의 이상적인 모양 20 moira 17/01/11 11410 13
342 기타알료사 6 알료사 17/01/10 6185 13
341 일상/생각[회고록] 나 킴치 조아해요우 19 수박이두통에게보린 17/01/09 5747 18
339 일상/생각냉장고에 지도 그린 날 4 매일이수수께끼상자 17/01/06 6116 15
338 일상/생각홍차넷 10000플 업적달성 전기 123 파란아게하 17/01/05 8318 46
337 게임게임 '헌티드 맨션' 만든 얘기 28 Toby 17/01/04 8876 28
336 정치/사회대리모 문제 37 烏鳳 17/01/03 7402 12
335 철학/종교산타가 없다는 걸 언제쯤 아셨어요? 51 기아트윈스 16/12/30 8076 11
334 영화영화, 소설, 그리고 영화 22 팟저 16/12/30 8467 7
333 기타육아일기 - 아이와 나눈 대화 8 까페레인 16/12/28 6178 5
332 영화2016년 1년 결산을 해봤습니다. 추천작 15개. 25 구밀복검 16/12/28 7775 4
331 일상/생각나를 괴롭히는 것은, 나. 12 SCV 16/12/27 6477 10
330 역사러일전쟁 - 완. 포츠머스 조약 4 눈시 16/12/26 6389 7
328 역사러일전쟁 - 쓰시마 해전 6 눈시 16/12/23 6282 8
327 역사러일전쟁 - 제독의 결단 6 눈시 16/12/21 5728 5
326 일상/생각. 14 우웩 16/12/19 5758 21
325 일상/생각지가 잘못해 놓고 왜 나한테 화를 내? 42 tannenbaum 16/12/18 6843 22
324 역사러일전쟁 - 펑톈 전투 4 눈시 16/12/16 6478 5
323 기타딸바보와 바보딸 28 민달팽이 16/12/16 6638 26
322 역사러일전쟁 - 203고지, 점령 11 눈시 16/12/14 6843 3
321 일상/생각. 17 우웩 16/12/12 5654 33
320 일상/생각면접으로 학부신입생 뽑은 이야기 47 기아트윈스 16/12/10 7713 22
319 IT/컴퓨터회귀신경망으로 만든 챗봇 11 Azurespace 16/12/07 10359 8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