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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8/02/04 22:09:11
Name   구밀복검
Subject   2017-18 발베르데의 바르셀로나 단평
바르셀로나의 간판은 다들 아시다시피 메시입니다. 그리고 메시는 우측 하프 스페이스에 위치하는 선수고요. 여기서 하프 스페이스라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중앙과 측면 사이의 공간을 의미합니다. 하프 스페이스를 굳이 특정해서 언급하는 것은, 이 공간이 측면과 중앙을 맞보는 가운데 상대에게 이지선다를 걸면서 공격 방향을 결정짓고 상대의 수비라인을 돌파해내는 교두보이자 시금석이기 때문입니다. 현대 축구는 과거보다 훨씬 전술적으로 정교하고, 따라서 중앙이든 측면이든 일방향으로만 우직하게 돌진해봐야 상대 수비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상대 수비를 공략하려면 측면에서 중앙으로 파고들기도 하고(컷인), 중앙에서 측면으로 빠져들어 가기도 하고(컷아웃), 측면으로 파고들면서 상대를 터치라인으로 끌어낸 다음 중앙이나 반대쪽 측면으로 공격 방향을 전환시키기도 해야 하는데, 이 모든 작업은 하프 스페이스를 거쳐 이뤄집니다. 하프 스페이스에서 공격을 진행하면서 중앙으로 갈지 측면으로 갈지 간을 보고 상대를 교란하면서 조금씩 상대 수비를 우회하고 제쳐내며 점점 골문으로 가까이 접근하는 식이죠. 그리고 이걸 세상에서 제일 잘했던 선수가 메시입니다.


* 하프 스페이스. 당연하게도 레프트 하프 스페이스와 라이트 하프 스페이스가 존재한다. 측면과 중앙을 맞보면서 상대의 수비라인을 우회하고 교란하는 발판이 되는 공간.


* 라이트 하프 스페이스를 넘나들며 어디로든 공격 방향을 전환시켜줄 수 있는 썅넘.

따라서 바르사의 주공主攻 루트는 메시가 있는 우측면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메시의 역량을 극대화하기 위해 재능 있는 동료들이 메시와 연동되어 움직이도록 하였죠. 메시의 후방에는 챠비를 두어 메시와 더불어 볼을 주고 받다가도 경기장 어느 곳으로든 볼을 회전하고 공격 방향을 전환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메시의 우측에는 아우베스를 배치하여 메시가 우측면 수비 진형을 흐뜨러뜨릴 때 빈 공간으로 침투하여 측면을 지배하게끔 하고요. 이런 식으로 메시-챠비-아우베스가 존재하는 라이트가 바르사의 공격을 주도했습니다.

하지만 우측으로만 공격하다 보면 상대가 그 방면에 수비를 집중시키기만 해도 쉬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좌측면의 조공助攻 루트를 통해 상대의 수비를 분산시키는 것이 필요했지요. 이 역할을 담당한 것은 이니에스타였습니다. 이니에스타는 극단적으로 볼을 잘 다루며 안정적으로 전진 드리블을 할 수 있는 선수였기에, 좌측 하프스페이스(측면과 중앙 사이의 공간)을 중심으로 하여 측면과 중앙을 맞보기로 넘나들면서 매끄럽게 상대의 압박을 우회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전술적 자원이 우측면에 집중된 상황에서도 단독으로 좌측 공격 루트를 개척하는 것이 가능했지요. 다만, 이니에스타라는 선수는 드리블은 정교하지만 메시나 로번이나 리베리처럼 폭발력power을 갖춘 선수는 아닙니다. 그래서 측면과 중앙을 오가면서 상대를 박스 안까지 밀어붙이는 데 능하지만 그렇게 내려앉은 상대의 수비진을 무너뜨리는 데에는 적절치 않죠. 즉 단독으로 조공 루트를 일궈내는 데에는 능하지만, 주공 루트의 코어가 되기에는 파괴력이 부족합니다(이와 비슷한 선수로는 포그바가 있지요. 이건 다음에 상세히 서술하겠습니다.). 그런 이유로 바르사의 주공은 항상 메시가 있는 쪽이 될 수밖에 없었고, 이니에스타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메시가 존재하는 우측면 공격을 좀 더 원활하게 만들기 위해 좌측에서 상대 수비를 교란하는 정도였죠. 대신 이니에스타가 혼자 힘으로 좌측 공격을 떠맡으면서 다른 선수들이 좌측면에 개입할 필요성을 그만큼 경감시켰고, 이로 인해 팀 공격에 필요한 자원과 인력을 효율적으로 분배하고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손빈의 경마와 같은 이치입니다. 자신의 하등마가 상대의 상등마를 붙들어두면, 자신의 상등마는 상대의 중등마를 격파할 수 있게 됩니다.


* 2011 UCL 파이널 포메이션. 우측에 주공 루트 메시-챠비-아우베스, 좌중앙에 조공 루트 이니에스타.

이 우주공-좌조공 시스템이 필연적이라는 것은 펩의 후임자인 티토 빌라노바가 지휘봉을 맡았던 12-13 시즌 막판에 입증됩니다. 바르셀로나가 바이언과 UCL 4강전에서 맞붙었을 때, 메시-챠비는 부상을 거듭하며 제 몸 상태가 아니었고, 아우베스는 기량 하락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레프트윙에서 뛰던 이니에스타가 주공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이전까지 최고조의 기량을 과시하던 이니에스타는 슈바인슈타이거와 하비 마르티네스를 비롯한 바이언의 우중앙 포지션 선수들에게 철저히 봉쇄당했고, 이로 인해 공격에서 활로를 찾지 못했던 바르사는 배후 공간을 쉽게 내주면서 0-4의 대패를 겪게 됩니다.

그리고 13-14 시즌에 네이마르가 영입되고 감독도 타타 마르티노로 바뀝니다. 이 시기부터 시작하여 루이스 엔리케가 사임하는 16-17시즌까지 바르사의 시스템은 우메시 좌이마르라고 도식적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 시스템이 시작할 시점에는 역시 메시가 주공이고 네이마르는 조공이었죠. 기존 조공 루트 담당자였던 이니에스타는 자리에서 물러나서 네이마르를 보좌하는 희생적인 역할을 맡게 됩니다. 즉 이니에스타가 네이마르로 바뀐 것뿐, 기본적인 컨셉 자체는 대동소이했죠. 여전히 우측의 메시가 킹이었으며, 좌측은 독립적으로 작전을 수행하되 그 목적은 메시를 보조하는 것입니다.


2015 UCL 파이널 포메이션.

그러나 15-16 시즌을 거치면서 점차 무게 중심은 좌측으로 이동하기 시작합니다. 메시의 기량은 하락하고 네이마르는 만개하게 되었기 때문이죠. 특히 연령이 올라가면서 메시 특유의 민활함과 폭발력이 점차 저하되면서 우측 터치라인과 골라인, 하프라인 아래 같은 가장자리 지역에서 드리블로 볼을 전진시키는 능력이 크게 떨어졌고, 지구력 역시 크게 떨어져 소극적인 움직임을 보여주게 됩니다. 이 시기 검증된 사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메시를 라이트윙으로 배치하면 우측면 공략은 거의 행해지지 않는다.
2) 또한 메시는 우측 수비에 거의 기여할 수 없다.
3) 1번과 2번으로 인해 우측에는 수적 열세가 발생하게 되는데, 이것은 고스란히 라이트 하프인 라키티치와 라이트백인 세르지에게 부담으로 돌아가게 된다.
4) 이로 인해 바르사의 우측면은 공격에서나 수비에서나 구멍이 되며, 우측면의 빈약함을 커버하다 보면 중앙과 좌측면도 공수 양면에서 약화된다. 바르사는 좌측과 중앙만으로 경기를 풀어나가야한다.
5) 네이마르는 하프라인 아래에서도 단독으로 볼운반이 가능하며, 그에 그치지 않고 박스 근처에서도 파괴력 있는 액션을 취할 수 있다. 따라서 우측 공격은 버리고 네이마르가 주도하는 좌측 공격을 통해 하프라인을 넘어가는 것이 더 신속하고 용이하며, 메시는 우측면에 머무르기보다는 중앙으로 이동하여 네이마르와 2인 전술의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낫다.
6) 네이마르는 수비시 좌측 세컨드 디펜더의 역할을 맡아줄 수 있을 정도의 지구력과 활력이 있다. 따라서 좌측 수비는 우측 수비에 비해 견고하다.
7) 결과적으로 바르사는 네이마르를 통한 좌측면 공격만을 무한정 반복하다가, 메시는 이미 자리를 비우고 라키티치와 세르지만이 남아 있는 우측면에서 역습을 허용하여 실점하는 식의 패턴을 보이게 된다.

물론 그 시점에도 메시가 네이마르보다 더 높은 전술 비중을 부여 받았으며, 그에 상응하는 경기 기여도를 보였습니다. 여전히 킹 메시 체제 자체는 유지된 것이죠. 하지만 이것은 네이마르의 기여 없이는 기능할 수 없는 시스템이었습니다. 마치 05-06 전반기 맨유의 에이스는 루드였지만 시스템을 지탱한 것은 사실상 루니였던 것처럼 말이죠. 시즌 전체로 보면 메시의 생산성이 더 컸지만, 결장 시 혹은 부진 시 더 치명적이었던 것은 네이마르였죠. 메시가 부진했던 UCL 16강 2차전에서 바르사는 네이마르의 힘만 가지고 PSG를 6-1로 꺾었지만, 8강에서 유벤투스를 만났을 때 네이마르가 봉쇄당하자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죠. 이 시기 바르사의 주공은 분명 좌측이었으며, 우측은 조공조차 되지 못했습니다.


* 2016년 이후 메시와 네이마르의 드리블 동선을 단순화한 것. 노란선이 네이마르, 파란선이 메시. 네이마르는 자기 진영에서 부스터 쳐서 중앙으로 들어오는 것도 가능하고, 측면으로 질주하는 것도 가능하고, 높은 지역에서는 컷인도 가능하고, 골라인 쪽 파고드는 움직임도 가능합니다. 반면 메시는 딱 깊숙한 위치에서 컷인해서 박스로 진입하는 드리블만 되죠. 물론 박스 근처에서 짤짤이는 아직까지 메시가 현역 최고입니다. 워낙 어질리티와 코디네이션이 좋으니까요. 하지만 낮은 위치에서 장거리로 볼운반을 시도할 시 성공률이 떨어집니다. 메시는 네이마르처럼 후방에서 드리블 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간혹 치긴 하지만 추격 당해서 파울 당하거나 재수 없으면 뺏기는 바람에 아군 위치에서 역습을 허용하기 마련이고요. 이는 첫 상대를 퍼스트 세컨드 스텝의 대쉬로 압도할 수 있는 파워, 그리고 이후에 붙는 스피드가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특히 전방이 아닌 후방에서 볼을 운반하고 상대의 최전방 압박을 제쳐내고 전진하기 위해서는, 안정된 볼컨트롤과 잽싼 어질리티를 활용하여 볼을 다루면서 침투해 들어오는 동료의 지원을 기다리고 슈팅과 2:1패스 등 상대 수비수에게 이지삼지선다를 의식하게 하는 가운데에 허를 찌르고 타이밍을 뺏는 식의 기교 위주의 모험적인 드리블은 적합하지 않습니다. 이런 것은 골문 가까이 있을 때에 더 위력적이죠. 후방에서는 그런 것보다는 순수하게 자신의 폭발력power을 활용하여 치고 나가는 거리 자체로 상대를 압도한 이후 가속 붙인 주력으로 떨쳐버리고 메트로놈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볼을 터치하며 전진하는 식의 직선적인 드리블이 훨씬 안정적이고 리스크가 적습니다. 이는 마드릿의 카르바할 같은 선수들이 잘 보여주는 것이죠. 이 점에 있어서 네이마르와 메시는 현재 비교조차 되지 않습니다.


* 상대 코너, 아군 코너, 레프트 터치라인, 중앙 진입, 하프라인 아래 지역 어디에서나 전진이 가능하다.



* 네이마르는 발에 부스터를 붙이고 가뿐히 빠져나올 법한 공간을 메시는 빠져나오지 못한다.


* 2014-15 시즌만 해도 저 공간을 메시가 공략해주며 우측면에 혈을 뚫어주었지만 16년 이후로는 그렇지 못하다.

이 점에서 이번 시즌 발베르데의 팀 개편은 경탄할 만합니다. 메시는 예전 같지 않고, 네이마르는 PSG로 떠난 시점에서 발베르데에게 미래는 없어보였습니다. 하지만 발베르데는 특별한 빅 사이닝 없이도 기존 자원들의 배치와 분배를 조정하면서 난국을 타개합니다.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포메이션의 변화로, 크라위프 이후 항상 바르사의 디폴트 포메이션이었던(물론 실제로는 다른 포메이션으로 진행된 시즌도 있지만) 4-3-3이 4-4-2로 개편되었습니다. 즉, 네이마르의 자리에 선수를 굳이 채워넣지 않고, 쓰리탑으로 뛰던 수아레스와 메시를 투탑으로 올리면서 전방을 커버하며, 남는 한 자리는 라이트윙으로 돌린 것이죠. 이 배치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런 포메이션의 변화에 기반하여 발베르데는 시스템을 개편했고, 이는 시즌 초부터 딜레이 없이 빠르게 정상 작동되면서 금세 팀은 이전의 위용을 되찾습니다. 이것은 이전 시즌에 명확히 결론이 난 문제점들을 발베르데가 정확히 파악하여 가용 가능한 자원들만을 가지고 대안을 강구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1) 메시 라이트윙은 불가하다. 메시는 우측면 터치라인을 공략해줄 수도 없고, 우측 수비에 기여해줄 수도 없으며, 오로지 컷인과 사이드 체인지처럼 우에서 좌로 파고드는 형식의 공격에서 위력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렇게 방기되는 우측 운영은 라키티치와 세르지의 헌신만으로는 더 이상 지탱이 안 된다.
2) 하지만 우측 하프스페이스가 여전히 메시의 주 동선일 수밖에 없으며 이 팀은 메시의 팀일 수밖에 없다.
3) 답은 레프트윙을 없애고 라이트윙을 하나 추가하여, 좌측에 치중되어 있는 역량을 우측으로 이전시키는 것이다.
4) 레프트윙 롤은 알바의 침투와 이니에스타의 하프윙 플레이로 커버한다. 네이마르는 알바-이니에스타와 중복자원이었으므로 알바와 이니에스타의 활용도를 높이는 식으로 공백을 충당할 수 있으며, 특히 알바를 전진시키면 시킬수록 메시의 주무기가 우측 하프스페이스에서 좌측면으로 찔러주는 대각선 스루패스의 활용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네이마르의 존재감을 일정 부분 상쇄시킬 수 있다.

그렇게 해서, 발베르데는 킹 메시 체제라는 답이 이미 정해져 있고 자신은 타개책을 제시해야 하는 일방적인 상황에서도 활로를 찾았습니다. 메시의 역할 자체는 예나 지금이나 대동소이합니다. 언제나 메시는 우측에 기울어진 딥라잉 스트라이커였고 프리롤이었죠. 하지만 이전과 달리 라이트윙이 메시의 옆에 존재하기에 우측면은 수적 열세에 놓이지 않고 균형을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약해진 왼쪽은 알바와 이니에스타가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가운데에 메시가 자신의 전공을 발휘하여 지원하는 식으로 역시 나름의 균형을 갖추게 되고요. 즉 발베르데는 메시를 중심으로 다시 우측을 주공 루트로 삼으면서도, 메시로 인해 발생하는 우측의 공수 부담을 완전히 제거해버렸으며, 동시에 지금까지 은폐되어 있던 팀의 유휴 자원을 끌어내면서 좌측의 지배력도 그럭저럭 유지한 것입니다.

그러나 팀 전력의 하락이 완벽하게 메워진 것은 아닙니다. 물론 발베르데가 현재 가진 스쿼드에 매우 적합하게 전술 재조정을 행하여 팀의 전력이 가용 범위 내에서 최적화 된 것은 사실입니다만, 문제는 근본적으로 전력의 총량 자체는 하락했다는 것이죠. 이게 무슨 소리인지 납득을 못하시는 분들이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리그 우승은 확정적인 상태고, 라이벌 마드릿도 완벽하게 격파했고, 코파 델 레이 우승도 목전에 두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현재의 바르셀로나의 호조는 내부적인 역량보다 외부적인 변화의 영향이 더 큽니다.


* Clubelo.com의 ELO 순위입니다. 바르셀로나만이 2053점을 찍고 있고 나머지 팀들은 다 2000점 밑이다보니 바르셀로나가 독보적으로 잘나가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죠.


* 하지만 2015-16 시즌 종료 시점과 대조해보면 현재의 바르셀로나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시즌에 루이스 엔리케의 바르셀로나는 라 리가와 코파 델 레이를 석권하며 더블을 기록하기는 했지만, UCL 8강에서 탈락하며 헤게모니를 잃고 비판 받았던 시점이죠. 그런데도 지금의 발베르데 바르셀로나보다 레이팅이 높습니다.


* 바르셀로나 ELO 그래프. 바르셀로나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15즈음에 못 미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바르셀로나와 경쟁 관계에 있는 여타 메가 클럽들이 약화되면서 바르셀로나가 돋보일 따름이지, 실제로 현재의 바르셀로나는 지난 수년에 비해 그리 강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지요. 사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입니다. 스쿼드의 질 자체가 수년 간 꾸준히 하락했는데 더 강해졌을 리는 없지요. 물론 메시는 여전히 세계를 호령하는 선수이며, 전술적으로 지원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선수들은 그렇지 않죠. 일단 최전방에서 뛰고 있는 수아레즈는 연령에 따른 노쇠화를 보이는 가운데 '짬'으로 축구하고 있는 터라 때로 기가 막힌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기복이 심하죠. 그리고 중원 구간에서 뛰고 있는 이니에스타, 파울리뉴, 라키티치, 세르지 등등은 모두 필드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선수들이지, 상대를 으깰 수단이 탁월한 선수들은 아닙니다. 메시는 진가를 발휘하기 위해서 이런 견실한 동료들의 헌신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반대로 이 동료들 역시 상대를 확실하게 파괴해줄 메시가 없다면 그저 성실한 팀 플레이어 혹은 롤 플레이어일 뿐입니다. 킹 메시 시스템이라는 것은 다른 선수들을 희생시켜 메시의 기량을 극대화 시킨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메시 없이는 상대를 완파할 수 없는 선수들에게 메시라는 구심점을 확립시킨다는 뜻이기도 하다는 것이죠. 다시 말해 메시는 동료들에게, 동료들은 메시에게 자신의 약점을 전가하고 도급하고 외주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상호 의존 관계를 가지게 되고요.

따라서 발베르데의 바르셀로나는 그 어느 시즌보다 메시의 존재감이 절대적입니다. 그 이전에도 메시는 절대적인 존재였지만, 그 때는 반대쪽에 이니에스타나 네이마르라는 조공이 있었으며, 더불어 자신의 주변에 그 어느 팀에 가도 주공의 지휘관 노릇을 할 수 있는 챠비-아우베스 등을 끼고 있는 상태였죠. 그러하기에 메시가 아닌 다른 선수들을 활용하여 팀 전체적으로 이지 삼지 사지 선다를 걸면서 상대를 파괴할 수 있었습니다. 그에 반해 지금은 메시만 막으면 되죠. 게다가 메시 본인도 예전 같지 않기에 공격 수단 자체가 과거와 비할 바 없이 축소되었고, 몇몇 관습적인 패턴 플레이의 의존도가 높아졌죠. 가장 핵심적인 것은 라이트 하프 스페이스에서 컷인 하다가 좌측면으로 크게 벌려주며 레프트 윙 혹은 레프트 백을 활용하는 스루패스인데, 위에서 말했듯이 이것은 현재 주로 알바가 받아주고 있지요. 이 말인즉슨 바르셀로나가 속도를 올리고 공격 페이스를 가속시키는 거의 유일한 루트가 메시-알바로 이어지는 공격 패턴이라는 뜻입니다. 이 [메알단]만 저지하면 바르셀로나는 절대 신속하게 상대를 공략할 수 없지요. 물론 프로 레벨의 경기라는 것이 그리 단순하지는 않기에 때로는 수아레즈의 오프사이드 오심을 노리는 묻지마 침투에 타이밍을 맞춘 스루패스가 들어가기도 하고, 파울리뉴나 라키티치 같은 볼란테들이 적시에 적재로 침투하여 공격의 다양성을 만들어주기도 하며, 그 가운데 메시와 알바가 프리로 풀려나는 식이지만, 결국은 메시와 알바를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은 '섬타임 어태커'일 뿐입니다.


* 알고도 못 막는 메시아 알바단

이것은 깜 노우에서 펼쳐진 알라베스 전에서 철저하게 입증되었습니다. 이때 바르사는 모처럼 알바와 세르지에게 휴식을 주고 디녜와 세메두를 좌우 풀백으로 기용했는데, 정말 할 수 있는 것이 문자 그대로 아무 것도 없었고, 공격에서 해법을 찾지 못하는 와중에 되려 단 한 번의 아주 단순한 역습에 그 견고했던 수비까지 무너지며 0-1로 전반을 마치게 됩니다. 그저 풀백만이 바뀌었는데도 홈에서 강등권 팀에게 고전을 면치 못하는 신세가 된 것이죠. 현명한 발베르데는 이것을 곧바로 알아차렸고, 아주 이른 타이밍인 후반 7분에 디녜와 세메두를 빼고 알바와 세르지를 투입시키죠. 이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판단이었습니다만, 동시에 바르셀로나의 밑천을 드러낸 장면이기도 합니다. 이 팀은 주전 풀백들이 빠지면 위협성이 크게 급감하며, 좌우풀백들의 투입을 통한 윙질 이외에는 선수 교체나 포지션 교환을 통한 전술적 변화를 줄 여지가 거의 없다는 것이 명백해진 것이죠. 그 이후의 전개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바르셀로나는 알라베스를 중앙으로 몰아넣었고, 그 다음은 뻔히 보이는 메알단 플레이를 반복했으며, 그런 식으로 상대를 무너뜨리기 시작했고 결국은 승점 3점을 추가했습니다. 메알단만 정상 가동 시키면 강력하지만, 알바만 없어도 메시를 비롯한 다른 모든 선수들이 무기력해진다는 교훈을 얻은 경기였죠.

그럼에도 바르셀로나는 좋은 팀입니다. 특히 슈테겐과 움티티가 중핵을 이루는 수비는 지난 시즌과 비교해서 큰 진전을 보이고 있지요. 득점을 하지 못하고 있더라도 리드를 허용하지 않는 팀이라는 것만큼 든든한 것이 또 없습니다. 그러나 공격 측면에서는 선수들의 이름값에 가려져 있을 뿐 결코 명망에 부합하는 화력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하프 스페이스에서 간을 보면서 상대를 박스 근처까지 몰아붙이는 것은 여전히 능숙합니다. 그런 것을 잘 해낼 수 있는 선수들로 빼곡하고요. 하지만 그게 끝이죠. 그 시점부터 활로를 개척할 수 있는 방법론이 지나치게 한정적입니다. 현재의 공격력은 어디까지나 메알단의 존재를 전제로 한 것이며, 이 팀에 알바가 없다면 할 수 있는 공격은 몇 가지 남지 않습니다. 수아레스의 요행 노리는 침투, 지단 마드릿을 모방하는 세르지의 무한 크로스, 난전 상황에서 어쩌다 얻어걸리는 파울리뉴의 문전 선점 골 같은 것 따위죠. 메시가 없다면 말할 나위도 없고요.

물론 아직 쿠티뉴가 적응 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점, 라이트와 레프트를 가리지 않고 뛰어줄 수 있는 뎀벨레가 아직 부상을 겪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팀에 유휴자원이 아직 남아 있다고 할 수도 있고요. 따라서 이 팀이 미래가 어둡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현재 다소 과대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 인식만큼 강한 팀이 아니라는 점은 지적할 수 있겠죠. 세계 최고의 크랙이었던 메시는 예전만 못합니다. 이니에스타 역시도 예전처럼 좌측에서 단독으로 조공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지난 3~4시즌마냥 네이마르가 좌측에 있지도 않고요. 뿐만 아니라 라이트윙에서 가장 좋은 모습을 보이는 선수는 윙도 볼란테도 풀백도 아닌 스트라이커 빠꼬였습니다. 발베르데는 지금까지 상상 이상으로 잘해주었습니다만, 이 이상이 가능할지 어떨지는 의문입니다. 만약 불가능하다면 그것은 감독의 무능 때문이 아니라 팀이 확보한 자원량의 한계일 테고요.


* 수박이두통에게보린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8-02-19 10:24)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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