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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8/02/11 15:50:29
Name   quip
Subject   한국 사회주의의 역사적 기원과 종말.
정치에 대한 해석은 언제나 정치적이다. 역사에 대한 해석이 언제나 역사적인 것처럼. 가령, 노무현은 어떻게 당선될 수 있었는가? 당신에게는 당신의 입장과 해석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 나의 해석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글의 서두에 두기에는 너무 정치적인 문장인가? 걱정할 필요 없다. 이 글은 정치적인 글이 아니니까. 이 글은 정치라거나 하는 무의미한 것보다 훨씬 본질적인 부분을 다루기에, 우리가 입장의 차이로 싸우거나 얼굴을 붉히게 될 일은 없을 것이다. 화요일 다음이 수요일이라는 사실을 가지고 싸우는 사람은 없다. 물론 일요일 다음이 월요일이라는 사실은 모두를 화나게 만들지만, 그건 역시 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우리는 시몬느 드 보부아르의 '일상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방식의, 정치적 영토의 어떤 확장에 대해 이야기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과잉 정치화된 이 시대에 정치적으로 보이는 것 중에 어떤 것들은 사실 비정치적이며 자명하다는 사실도 고려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오늘은 민중진군 38년 2월 11일일 수도, 분단조국 73년 2월 11일일 수도, 서기 2018년 2월 11일일 수도, 단기 4xxx년일수도, 혹은 더 위험한 연호를 통해 오늘을 세어볼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오늘은 궁극적으로 오늘인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 사회주의가 1996년 야마하 뮤직 퀘스트의 대논쟁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사실은 그 무엇보다도 자명하다(스펜서와 콩트를 위시한 사회물리학자들은 이 사건을 '퍼스트 임팩트'라 칭한다).






상식적인 시민들은 '어떻게 aiko와 시이나 링고에게 우수상 따위를 던져주고, 새소리나 내는 장발 남자 따위에게 대상을 줄 수 있는지?'라는 분노에 찬 질문을 던졌고, 근본주의자들은 '어떻게 이런 대격돌로부터 지구가 멀쩡할 수 있는가? 사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지구가 아닌 게 아닐까'하는 허무주의적 사고를 발전시켰다. 그렇게 분노와 허무로 가득 찬 대학생들이 연세대에 모여들었고 국가는 피의 진압을 시작하였다. 후대의 역사가들은 이를 96년 연대항쟁, 혹은 연대사태라고 부른다. 항쟁인가 사태인가. 이를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는 역시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문제다. 하지만 1996년의 연세대에 '어떤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은 물리적 사실이다. 가령, 피가 불타고 불이 흘러내리는 1996년, 파괴와 건설의 사회주의가 태어났다는 사실 같은 것 말이다. 1998년, aiko와 시이나 링고의 메이저 데뷔를 기념하며 청년진보당 준비위원회가 발족되었다. 우타다 히카루와 하마사키 아유미도 이 때 데뷔했지만 이는 이 글에서 굳이 다룰 정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청년진보당은 후에 사회당이 되었고 착실하게 당원과 당비를 늘려가며 투쟁의 선봉에 섰다. '가장 억압받는 자와 가장 먼저 연대한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호는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그들은 세상을 바꿀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나 마침내, 2002년, 종말의 해가 왔다.

2002년은 발전노조 파업투쟁으로 시작했다. 지도부의 구호 가운데 하나는 '발전투쟁 승리하자'였다. 발전투쟁이라니. 우리는 투쟁적으로 전기를 만들거나, 사회를 발전시켜야 하는가? 보부아르적 사고에 기반한 지난한 사상투쟁 끝에 사회주의자들이 내린 결론은 빠이와 꽃병이었다. 21세기에 빠이와 꽃병이라니, 그것은 시대착오적인 것이 아닌가? 그렇게 말하는 너는 혁명의 콘트라티에프 파동에 대한 이해가 없는 반동분자인 것이다. 그렇게 쇠파이프와 화염병으로 무장한 사회주의자들은 연세대 정문을 사수했고, 그날 연세대에서는 CAN의 콘서트가 열리고 있었다. 다른 가수일 수도 있지만 이 역시 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 중요한 것은, 불이다.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는가? 불이다. 사회주의는 어디서 탄생하는가? 불이다.

여름, 여의도에는 불꽃놀이가 한창이었다. 불꽃놀이 사이로 지방선거가 진행되고 있었다. 기세 등등한 사회주의자들은 이웃집 토토로의 OST를 개사해 선거운동에 사용했다(사회주의자들에게 카피레프트는 당연한 문제다). 사회당 원용수, 사회당 원용수. 보수 정치 믿지 말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요. 원용수와 함께. 기호 5번 사회주의 원용수와 함께해요. 당시 원용수는 프로메테우스라는 좌파 매체의 편집장이었는데, 이 또한 혁명의 '불꽃성'과 관련된 강렬한 인상을 준다. 5번 역시 중요한 문제인데, 96년 야마하 뮤직 퀘스트에서 aiko는 5번 후보로 출전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회당은 우수상 같은 걸 받는 데 실패했다. 졌지만 잘 싸운 그들은 더 큰 목표를 향해 달리게 된다.

대선

대선을 앞둔 마지막 당대회, 지도부는 '어차피 공탁금 그거 우리가 2퍼센트인가 득표해야 돌려받는 건데 우리는 절대 못 함. 근데 님들 그거 암? 선거법 위반 벌금 공탁금에서 나간다는 거? 그러므로 우리는 선거법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 어차피 없어지는 돈으로 내는 벌금이니까. 그러므로 벌금을 두려워하지 않는 우리는 오늘부터 선거운동을 시/작/한/다.'

부르조아지의 법률따위 똥으로도 여기지 않는 패기였다. 그렇게 당대회를 마친 사회주의자들은 인터내셔널가를 부르며 거리로 쇄도해나갔다. 깨어라 노동자의 군대, 굴레를 벗어던져라, 정의는 분화구의 불길처럼 힘차게 타온다! 그들의 강대한 위세에 눌린 국가권력은 감히 진압을 시도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혹자는 그들이 너무 적고 무기력했기 때문에 국가가 무시했다는 의혹을 제기하지만, 두 가지 측면에서 사실이 아니다. 먼저, 국가는 큰 도전에 순응하나 작은 도전을 용납하지 않는다. 둘째로, 2002년의 사회주의는 2017년의 비트코인에 비견될 정도로 무시무시한 세를 갖추고 있었다는 것이다. 오래된 일이지만, 기억의 한 구석을 잘 뒤져보도록 하자.

먼저 첫 번째에 대해 이야기하자. 당신은 월드컵 경기장 건설을 위한 재개발 구역에서 발생한 수많은 철거민 투쟁에 대해 알지 못한다. 열 몇명도 되지 않은 집회에 사십 명의 기동대가 투입되는 것이 당시의 일상이었다. 험악하게 생긴 사회주의자들은 얼굴에 방패 혹은 곤봉에 긁힌 상처를 달고 살았다. 키가 150쯤 되는 쪼끄만 친구 하나는 '니들은 왜 맨날 쳐맞고 다니냐 나 봐라 내가 니들보다 집회 두 배는 나갔는데 멀쩡한 거. 좀 잘 좀 피해봐'라고 깝쭉거렸다. 집회판의 한가운데서 그녀를 목격한 적이 있는 독일 언론인 크리스틴은 '경찰은 주로 패주고 싶게 생긴 애들은 패지. 봐. 저 쪼끄만 여자애는 안 패고 옆으로 치워두잖아.'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물론 결국 언젠가 그녀도 기동대에 쳐맞고 끌려가 벌금형을 받았다.

사회주의의 세가 너무나도 강대했다는 사실에 이론을 제시하는 사람은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2002년 하반기, 사회주의의 기세는 무시무시했다. 붉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광장이란 광장을 모두 메우고 통일된 구호를 외쳤다. 사회주의자들의 강위력한 도전에, 국가는 그들을 감히 진압하려는 대신 그들의 안전을 보장하여 불만을 가라앉히려 시도했다. <빨갱이가 되자Be the red>는 당시의 자이트가이스트였다. 혁명이 눈 앞에 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서울 시내 곳곳에 <1871, 1921, 그리고 2002>이라는 자보가 붙었다(내 방에도 하나 있다). 러시아에서 혁명을 일으킨 파리 꼬뮨의 전사들이 이제 서울을, 한국을 바꾼다.

'돈세상을 뒤엎어라, 사회주의 대통령 김영규'는 '빨갱이가 되자'를 승계한 구호였다. 당장 내일 우리의 붉은 새태양이 지평선에 떠올라도 이상하지 않은 형국이었다. 아늑한 사장실 책상을 마구치며 노조를 노조를 포기하라던 비열한 자본가들은 쥐구멍을 찾아 숨어들었다. 2002년 10월, 사회당의 지지율은 78퍼센트까지 치솟았다. 오랜 일이라, 혹은 너무 어린 시절의 일이라 기억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진정한 역사를 외면하면 안 된다.

이 모든 혼란 혹은 희망을 수습 혹은 절멸시킨 것은 단 한명이었다.
조선이 허락한 유일한 챔피언, 김길수.

그는 백마를 탄 영웅처럼 등장하지 않았다. 그저 '불심으로 대동단결'이라는 간결한 표어를 들고 조용히 격랑의 소용돌이에 입장했을 뿐이다. 처음에는 아무도 그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다. 뱁새가 황새의 뜻을 알 수 없는 법이다. 그러나 김길수가 기품있게 사상의 날개를 펼치자, 모두가 그의 품 안에 들어가고자 했다. 뱁새도 황새의 우아하고 거대한 날개짓에 감탄할 수 있는 것처럼.

사회주의가 타오르는 불길이라면, 김길수는 흐르지 않는 물, 거대한 대양과도 같은 존재였다. 마치 모든 것에 선행해 이미 마련된 그곳에 존재하는 그런 존재. 지식사회학자 김경만은 몇년 전 '민주주의는 철학에 선행한다'라는 리차드 로티의 말이 사실은 김길수 개인에게 바쳐진 헌사라는 것을 밝혀냈다(글로벌 지식장과 상징폭력 28p). 그는 그저 거기 있었고, 사람들은 그를 찾아갔다. 온 세상을 태울 것 같은 사회주의의 불길은 알리오 올리오를 볶기 좋을 정도의 온도로 식어가기 시작했고, 김길수의 지지율은 치솟기 시작했다. 당시 김길수의 지지율은 178%까지 치솟았다. 한국인 열 명 중에 열일곱 명이 김길수를 지지했다.

사회당의 학생조직 전학협에서는 김길수를 해치우기 위해 자객을 보냈으나, 외려 그는 김길수의 덕에 설복당해 파사의 전령이 되었다. 아마 당신은 이 사실을 처음 들어보았을 것이다. 실은 나도 얼마 전에야 비밀스러운 문건을 통해서야 알게 된 사실이다. 김길수가 춤을 추자 우리가 그 전까지 대서양이라고 알고 있었던 곳이 태평양으로 변해버렸다는 이야기 정도라면 한글을 읽을 수 있는 당신도 알고 있을 것이다. 역사에 관심이 많거나 기억력이 좋은 당신이라면 김길수가 배드민턴 채를 들고 지구로 돌진하는 운석을 리시브했다는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세력은 팽팽했다. 도박사들은 김길수의 약우세를 점쳤지만, 사회주의자들의 저력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당시 당비를 내던 사회당원은 칠백만명에 육박했고, 자신을 사회주의자로 규정한 사람은 경찰 추산 천오백만 정도였다. 과연 2002년 대선의 향방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지만 역시 참새가 대붕의 뜻을 헤아릴 수는 없었다. 김길수의 목표는 당선이 아니었다.

2002년 11월 22일, 민중대회가 열흘 지난, aiko여사의 스물 일곱번째 생일, 세컨드 임팩트가 찾아온 것이다.

사회당은 대선을 향한 대여정의 마지막 숨고르기를 하고 있었다. 보라매공원에 운집한 천오백만 사회주의자는 승리의 찬가를 부르고 있었다. 그 때, 김길수가 홀연이 나타났다. 혹자는 그가 신풍역에서 내려 보라매공원까지 걸어왔다고 하고, 혹자는 신대방 삼거리역에서 내려 보라매공원까지 내려왔다고 하는데, 둘 다 옳은 말일 것이다. 김길수는 시공간을 초월한 존재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둘 다 틀린 말일 것이다. 김길수의 용안을 선명하게 본 자는 눈이 불타고 혀가 녹아내리니 말이다. 그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 그는 항시 비구름을 두르고 다녔다.

아무튼 그는 혼자였고, 맨손이었다. 사회주의자들은 그를 조롱했다. 땡중 새끼, 여기 뭐 하러 온거냐? 저 포스터를 보라지. 불심으로 대동단결이라니. 어떠한 높으신 양반 고귀한 이념도 허공에 매인 십자가도 우릴 구원하지 못한다네 친구. 김길수는 사람좋은 웃음을 지으며 허공에 손을 휘둘렀다. 그가 손을 휘두르자, 그를 둘러싼 구름이 넓게 퍼지며 선명해졌다. 이내 구름들은 사람의 형체를 띄기 시작했고, 공원에 모인 사회주의자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사회주의자들은 화염병과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저항했지만, 유물론자인 그들은 괴력난신의 신묘한 법력을 이겨내는 방법에 대해 알지 못하였다. 낮게 깔린 구름 사이로 피안개가 번져갔다(호들갑스러운 인류학자들은 이 사건을 세컨드 임팩트라고 칭한다. 사회학자들은 퍼스트 임팩트의 영향력에 비해 초라한 이 사건을 세컨드 임팩트라고 언명하는 데 동의하지 않지만, 언론에 널리 알려진 표현이므로 이 글에서는 세컨드 임팩트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렇게 사회주의자의 난은 제압당했다. 학살극에서 살아남은 사회주의자는 기껏해야 오천 남짓, 그마저도 그날의 공포로 제대로 살아갈 수 없는 몸이 되었다. 그렇게 투표가 시작되었고, 세를 잃은 사회당은 0.2퍼센트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사회주의자 진압에 쌓아올린 모든 법력을 쏟아낸 김길수는 거짓말처럼 당선에 실패했다. 하지만 적어도 사회당보다는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살아남은 사회주의자 한 명은 당게에 이런 명문을 남기고 분신했다.

아니 씨발 오천 사회주의자가 땡중 한명을 못 이기냐 뒈져라 병신들 진짜.

그 글을 읽은, 겨우 살아남은 사회주의자들은 비분강개와 자기회환, 기타 여러 감정을 느끼며 각혈을 하며 스러졌다. 이렇게 한국의 사회주의가 종말을 맞이한 것이다. 인기 컴퓨터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의 등장인물, 소라카의 배경 스토리가 김길수에서 따왔다는 것을 모르는 한국인은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은 김길수의 신력과 법력을 모두 소모함을 통해 간신히 구원받은 것이다.

자,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가자. 노무현은 어떻게 당선될 수 있었는가? 정치적인 차원에서 당신에게는 당신의 답이 내게는 내게의 답이 있다. 그러나 정치를 걷어내고 보면, 단순하다. 재귀학자 최시우에 따르면, 노무현의 당선은 노태우의 당선 혹은 새소리내는 장발남의 96년 야마하 뮤직 퀘스트 대상 수상에 비견할 수 있는 일이다. 김길수와 천오백만 사회주의자들의 처절한 사투가 없었다면, 노무현은 당선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사투 끝에 절멸했고, 역사에서 퇴장했다. aiko와 시이나 링고가 한 자리에서 격돌하지 않았다면, 새소리 장발남이 대상을 타는 경우없는 경우가 발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한국의 사회주의도 존재할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우주적 순리에 따르면 김영규 혹은 김길수가 당선되는 것이 너무 당연한 선거였으나, 그렇게 노무현이 당선된 것이다. 그것이 역사와 정치가 진행되는 방식인 것이다.

* 수박이두통에게보린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8-02-26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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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 불심으로대동단결
  • 이분은 또 무슨 약을 하시는건가...ㅋ
  • aiko를 총리로
  • 자영업자에게 휴일은 이렇게 위험한 겁니다.
  • 이건 진하다.. 진한 약기운이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약물 신고는 어디에... ( ...)
  • 제목만 보고 머리아파서 스킵한것 용서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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