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19/09/04 23:24:25수정됨
Name   에스와이에르
File #1   20190903_214613.jpg (1.21 MB), Download : 20
File #2   stare_into_the_abyss_wallpaper_1920x1080.jpg (351.7 KB), Download : 24
Subject   평일 저녁 6시의 한강 다리에는




https://youtu.be/6icONTC43dI

#1사진은 제 갤럭시S8로 찍은 오후 6시의 한강뚝섬유원지 청담대교입니다.전철이 다니는 대교에요.
 7호선.여기서 한강 남쪽으로 전철을 타면 청담역이 나옵니다.사진에 흑백을 먹여봤어요.
 제가 좋아하는 필터가 흑백이거든요.이상 TMI.
#2는 구글에 Abyss,심연 을 검색하니까 나온 사진입니다.

======================================

평일 저녁 6시의 한강 다리 아래에는 누가 있을까요? 특히 제가 간 날은 비 오는 날.
굳이 평일 비 오는 날, 한강 다리 아래로 오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꺼라 생각하시나요?
제가 비상식적인 것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많습니다.
끽해야 하나 둘 있을까 했는데, 다리 아래 비를 피해 꽤 많은 사람들이 돗자리를 깔기도 하고,
의자에 기대기도하고, 계단에 앉아있기도 하더라구요.

아 물론 저도 그 중 하나였죠.제가 기자마냥 취재를 간 것도 아니고,
저도 자의로 '비오는 평일 저녁 한강다리에' 간 사람입니다.

태풍 '링링'인지 뭔지 때문에, 주말 부산여행을 반납했는데.개강 첫 주 기념 혼자 여행이었는데.
못 가게 되었으니,어디든지 가야 했어요.학교에서 20분 남짓이면 가는, 뚝섬유원지가 딱이라고 생각했죠.
비가 오는 것만 빼고.

보통 제 주변 동기 혹은 친구들이 평일 저녁의 한강을 간다하면 두 가지 일꺼에요.
로맨스거나 파티? 소풍? 이거나.뭐 어느 것이든 즐거운 쪽이겠죠.
그런데 저는 그런 이유로 간 게 아니였어요.그랬다면 누구든 하나 데려갔겠죠.말동무라도 하라고.
저는 제 안에 심연? 같은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어요.

가라앉고 있는 듯한, 저 멀리 풍경은 가만히 있고 내가 서있는 이 땅이 자꾸만 가라앉았어요.
저는 이 땅에 발이 붙어서 자의로는 탈출할 수 없는데, 누가 손만 잡아 당겨준다면 난 나올 수 있는데,
왜들 그리 냉정한지..사람들은 그저 쳐다만 보고 갈 뿐이었어요.가족들도.친구들도.내가 좋아하는 그 사람도.

그래서 저는 한강에 갔어요.어차피 난 사람들 사이에 둘러쌓여있어도,
초고속 통신망을 통해 사람들과 이어져 있어도 혼자였으니까.그 누구도 내 이야기를 안 들어줘 ㅋㅋ
그럼 차피 혼자 있어도 별 다를게 없잖아? ㅋㅋ

그렇게 강물이 보이는 계단에 걸터앉았어요.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사온 스텔라 아르토이스,육포,삼각김밥과 함께.
그날은 아침에 라면 먹은게 전부였는데, 한강 라면의 존재를 의식했다면 안 먹었을텐데..
아무쪼록 캔을 따고, 육포를 뜯으며 등에 가방을 끼운 채로, 약간 비스듬히 누웠어요.
교량 거더도 보이고 기둥도, 그리고 저 멀리 종합운동장 남산타워 롯데월드 타워가 보이더라구요.

태양이 가려지는 구름이 잔뜩 낀 날씨에 다리 밑은 어두웠어요.그렇게 보이는 한강 물의 깊이는 알 수가 없었죠.
마치 제 마음처럼.제가 누워있는 위치에서 사진을 찍어 Instagram에 올리자 알람이 웅웅 울리더라구요.
다이렉트 메시지로 동기들이 "혼자 감?ㄷㄷ" "죽지마~" "자살ㄴㄴ" 이렇게 오는데
갑자기 울컥하더라구요.아니 다들 나를 걱정해주다니 뭐 이런 감정이 아니라 
진짜 나 여기 혼자 왜 왔지.내 마음이 어쩌다 이렇게 우울해졌지 싶으면서 내 자신이 불쌍해지더라구요.

그래서 강을 쳐다보며 욕을 몇 마디 했어요.굳이 열거해봤자 읽는 분들 기분만 안 좋아지니 접어둘께요.
옆에 있던 할아버지는 평생 볼 일이나 있을까 말까한 각종 전직대통령들을 언급하며 육성으로 육두문자를 투척하고 계셨지만 ㅋㅋㅋ
저는 그럴 용기도 없어서, 가만히 머리 속으로 뱉어냈죠.누구에게 한 건지는 모르겠어요.가족인지.친구인지.그녀인지.나인지
그래도 좀 시원해지데요.

이윽고 주변을 둘러보았어요.분명 처음 왔을 때는 커플이 있었는데, 그 할아버지가 등장하자 하나 둘 떠났어요.
저도 그 할아버지를 의식하지 못한 건 아니였어요.말 걸까봐 두렵기도하고, 시끄러운 목소리에 육두문자..좋을 것 하나 없잖아요?
그런데 순간 할아버지에게 동질감을 느꼈어요.대화할 상대가 없어.그런데 답답해.어딘가 외치고 싶어.그래도 한강은 들어주지 않겠어?
라는 심정.모르겠어요 그 순간은 그렇게 생각이 들었어요.그래서 그냥 할아버지를 놔두기로 했어요.
제가 뭘 할 수도 없지만, 그냥 그렇게 강에 흘려 보내드렸어요.그 순간의 내 의식에서.

그렇게 할아버지를 흘려보내고 강을 보고 있는데, 한 할머니가 오시더니 바로 강물로 돌진하시더라구요.
순간 흠칫 했는데 뭔 가루를 뿌리시던...그러더니 강물에 주저앉아 울면서 채롱아 잘가라~ 다음 번엔 내 아이로 태어나서
또 보자~ 아이구..가라니까~ 왜 머물러~ 하면서 한참을 머물르시더니 젖은 바지를 움켜쥐고는 조용히 떠나가시더라구요.

그렇게 두 분을 보고 나니까.그냥 조용히 있던 한강이 다르게 보였어요.아 그 옛소설에 나오는 젖줄기라는게 무엇인지 알 것 같기도하고
또 그렇게 강물에 들어가고 싶데요.저기 들어가면 좀 세상이 조용하고 날 품어줄 것만 같아.이상하리만큼 따뜻해보였어요 물이.
그럴리가 없는데 ㅋㅋ 
아 그래요 침몰하던 내 마음이 내 정신이 드디어 반 이상 물에 잠겼나봐.

그 때,더 이상은 위험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의식과 본능의 싸움이었나.아무쪼록 생각의 흐름이 딱 끊기더라구요.
그래서 본능적으로 일어나선 바지에 묻은 먼지를 탈탈 털고 쓰레기를 정리하고 가방을 매고 떠났어요.
저 멀리 강이 울부짖는 것만 같았어요.
아마 그래서 사람들이 물귀신이라는 존재를  만들었나봐요.

그렇게 강으로부터 도망쳐서 전철에 몸을 실었어요.술을 마셔 약간 벌개진 얼굴에 땀을 흘리며 남자 혼자 타니까
사람들이 잠깐 저를 응시했어요.그러나 이윽고 폰으로 눈을 옮겼어요. 저는 벽에 기대 생각했어요.
이제 내 마음의 배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침몰하는 배를 붙잡고 있어 봤자, 눈 앞의 구멍을 손으로 막으려 해봤자
배가 잠기는 것을 막을 수 없어.

누가 멋진 새 배를 혹은 구명보트에 태워주면 좋겠지만,그게 아니라면 난...배에서 탈출하는게 맞겠지.
물이 좀 차니까 땅에 붙어있던 내 발의 본드도 조금은 녹은 것 같기도 해.이제 움직여볼까.힘을 줘야할까
풀어야할까? 놀랍게도 힘을 푸니까 떠오르데요 몸이.
침전하는 배에 몸을 실은 것은 남이 아니라 나였나? 내가 잠기게 하고 있던걸까?

별에별 생각이 다 들었어요.그렇지만 결론은 못 얻었어요.하지만 저는 떠오르고 있었어요.
배는 저 멀리 바다로 심해로 심연으로 빨려들어가고 있고 나는 위로.여기가 어딘지도 모른채.
하나님이? 부처님이? 엄마가? 누나가? 아빠가? 나를 끌어주는 걸까? 아니 애초에 중력이 없었다면
밀도가 시X, 그런게 없었으면 이렇게 빠지지도 않았을텐데.

근데 나 무교인데 ㅋㅋ 그럼 그 중력을 내가 만든건가..

(어제 한강을 다녀와서 지금 써내려봤어요.그냥 의식의 흐름대로 공돌이가 쓰다보니 참 두서도 없고
내용도 없고 감동도 없고 ㅋㅋㅋㅋ 그럴텐데...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사실 누가 읽어주길 바라고 쓴건 아니에요.그냥....어딘가 털어 놓고 싶어 ㅋㅋ)



*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9-09-17 11:57)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12
  • 아주 좋습니다. 자주 털어줘요.
  • 춪천
이 게시판에 등록된 에스와이에르님의 최근 게시물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951 일상/생각돈으로 헌신에 감사 표하기 28 구밀복검 20/04/22 6633 25
950 일상/생각자아를 형성해준 말들 30 ebling mis 20/04/21 5238 32
948 일상/생각아싸, 찐따, 혹은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 11 이그나티우스 20/04/17 5563 17
941 일상/생각한국이 코로나19에 잘 대처하는 이유 24 그저그런 20/03/31 5578 10
922 일상/생각군대 친구 이야기 3 化神 20/02/15 4599 17
920 일상/생각아들놈이 대학병원에서 ADHD 판정을 받았습니다 70 아나키 20/02/06 7401 146
919 일상/생각사회주의 대 반사회주의 9 necessary evil 20/02/06 5074 30
918 일상/생각처음 느낀 늙음 3 행복한사람 20/02/03 4529 22
917 일상/생각엄마 덴마크가 나 놀렸어요 ㅜㅠ 69 구밀복검 20/01/29 11940 122
914 일상/생각멘탈이 탈탈 털린 개인카페 리모델링 후기 51 swear 20/01/23 6059 32
909 일상/생각습관 만들기 - 2달째 후기 47 카야 20/01/14 5457 37
904 일상/생각올해 읽은책 간단정리 15 오디너리안 19/12/27 4844 17
903 일상/생각[펌글] 좋은게 좋은거라는 분위기가 세상을 망쳐왔다 21 Groot 19/12/27 5196 8
897 일상/생각아픈 것은 죄가 아닙니다. 27 해유 19/12/13 5039 30
892 일상/생각하루 삼십 분 지각의 효과 14 소고 19/11/26 6077 25
889 일상/생각미국이 더 이상 한국을 사랑하지 않는 이유 23 MANAGYST 19/11/22 7567 13
888 일상/생각4C - 글을 쓸 때 이것만은 기억해 두자 21 호타루 19/11/15 6463 22
885 일상/생각사진에 대한 매우 사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 : 무엇을 어떻게 찍을 것인가 16 사슴도치 19/11/08 5158 19
878 일상/생각체온 가까이의 온도 10 멍청똑똑이 19/10/21 5297 16
875 일상/생각죽음을 대하는 일 2 멍청똑똑이 19/10/15 4949 26
874 일상/생각 사람이 죽음을 택하는 진짜 이유 / 미뤄주세요 8 Jace.WoM 19/10/14 5572 25
869 일상/생각따뜻함에 대해서 22 19/09/29 245379 27
868 일상/생각최근 홍차넷의 분위기를 보며 50 메존일각 19/09/27 10463 69
862 일상/생각서울 9 멍청똑똑이 19/09/19 5107 32
858 일상/생각[펌] 자영업자의 시선으로 본 가난요인 43 멍청똑똑이 19/09/13 10275 89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