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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9/11/25 19:08:46수정됨 |
Name | 치리아 |
Subject | 역사 교과서 속 신문들, 어디로 갔을까? |
예전에 취미로 조사했던 걸 정리해서 올려봅니다. 경성신문은 한국 최초의 상업신문으로, 사장은 윤치호였고 훗날의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도 필진으로 활동했습니다. 경성신문은 사람 몇 명(남궁억, 장지연 등)을 영입하며 표제를 대한한성신문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러나 대한황성신문으로 바꾼지 5달만에 의견대립으로 이승만을 비롯한 기자들이 대거 이탈합니다. 이탈하고 나서 남은 이들은 신문 이름을 '황성신문'으로 바꿨고, 이탈한 기자들은 제국신문을 창간했습니다. 황성신문은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을 실었고, 덕분에 일제의 탄압을 심하게 받았습니다. 결국 1910년 강제로 신문 이름이 '한성신문'으로 바뀌었다가, 같은 해 폐간되고 말았습니다. 훗날 1946년 안재홍이 만든 '한성신문'과는 이름만 같습니다. 안재홍의 한성신문은 미군정 시절 동아, 조선, 경향, 국제와 함께 5대 유력지이자 3대 우익신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안재홍이 납북당하면서 1949년 맥이 끊깁니다. 2.경성신문 - 대한한성신문 - 제국신문 (1898~1910) 위의 대한한성신문에서 떨어져나온 기자들이 만든 신문입니다. 한성신문이 한자 문해층을 대상으로 했다면, 제국신문은 한글만을 사용하며 일반대중을 주독자층으로 삼았습니다. 한성신문과 마찬가지로 일제의 탄압을 받다가 1910년 폐간되었습니다. 3.한성신보 - 경성일보 (1894~1945) 특이하게도 한국인이 아니라 일본인이 만든 신문입니다. 청일전쟁 때 일본 공사관의 원조를 받아 아다치 겐조 등이 창간했습니다. 당연히 일본의 침탈을 변호하는 논조로 일관했지만, 최초로 한글 소설이 연재되었다는 의의도 있습니다. 1906년 통감부가 인수해 경성일보가 되었습니다. 경성일보는 통감부 기관지로, 1910년 통감부가 조선총독부가 되자 총독부 기관지가 되었습니다. 일제의 프로파간다 최전선에서 활동하다 1945년 폐간되었습니다. 4.대동신보 - 경성일보 (1904~1945) 이것도 일본인이 만든 신문입니다. 발행인은 무라사키 주타로, 편집인은 에토 도시히코였지만 실세는 키쿠치 겐조였습니다. 1906년 통감부가 인수해 경성일보가 되었습니다. 이후 역사는 위와 동일. 5.시대일보 - 중외일보 - 중앙일보 - 조선중앙일보 (1924~1937) 1924년 발행되어 1920년대 조선, 동아와 더불어 3대 민간지였습니다. 1926년 이상협이 인수해서 중외일보로 바꾸었고, 1931년 재정난으로 종간되었지만 같은 해 중앙일보로 부활했습니다. 1933년 여운형이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조선중앙일보가 되었고, 다시 한국의 3대 일간지로 꼽히며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손기정의 일장기말소사건으로 탄압을 받고, 1937년 폐간되었습니다. 현재의 중앙일보하고는 관련이 없습니다. 6.대한매일신보 - 대한매일신문 - 매일신보(每日申報) - 매일신보(每日新報) - 서울신문 - 대한매일 - 서울신문 (1904~현재) 여기서 소개하는 신문 중에 유일한 생존사례입니다. 1904년 베델(한국이름 배설)이 창간하여, 베델의 영국 국적을 이용해 검열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초기에는 영문판과 국한문판으로 발행했습니다. 1907년 순한글판을 발행하면서 대한매일신문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1910년 매일신보가 되었습니다. 1920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생기기 전까지의 일제강점기 기단동안은 유일한 한국어 신문이기도 했죠. 이때 경성일보 자매지로 들어갔다가, 1938년에 독립하기도 했습니다. 어느쪽이나 일본의 괴뢰인 건 같았지만요. 1945년 광복 이후에 진보적 기자들이 위원회를 만들어 운영하다가 미군정의 정간 처분을 받습니다. 하지만 한달도 채 되지 않아 '서울신문'으로 바꾸어 현재에 이릅니다. 1998년부터 2004년까지는 '대한매일'이라는 이름을 쓰다가 다시 서울신문으로 돌아왔지요.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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