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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8/08 15:05:06
Name   치리아
Subject   '문화적 전유' 개념을 반대하는 이유
 어제 영남일보를 읽으니 문화적 전유에 대한 칼럼이 나오더군요. 그래서 평소 문화적 전유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을 써보려합니다.

 일단 문화적 전유에 대해서는,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됬던 영남일보의 소개를 빌려볼까요. 기사 링크는 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200804010000460 이거고, 소개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문화적 전유(Cultural Appropriation)' 논란이다. 이는 '다른 집단의 문화를 무단으로 사용함. 특히 그 문화에 대한 이해나 존중 없이 사용하는 것'을 뜻한다. 그 문화권 사람을 배제 또는 차별적 표현 등을 포괄하기도 한다.

 다른 한국 언론의 소개도 비슷합니다. 포덤대학교 법학대학의 수잔 스카피디 교수는 문화적 전유를 “타문화의 춤, 의상, 음악, 언어, 민속문화, 음식, 전통의학, 종교적 상징을 허가 없이 사용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고 합니다. 배제와 차별적 표현까지 포괄하는건 모호하니까, 일단 이걸로 잡아봅시다.



 저는 문화적 전유라는 개념을 반대합니다. 제가 문화적 전유라는 개념을 비판하는 이유는 크게 2가지입니다. 첫째는 이론적인 면에서 동의할 수 없고, 둘째는 현실적인 면에서 유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론적인 면은 저의 문화에 대한 관점에 근거합니다. 그런데 제 문화관은 좋게 말하면 급진적이고, 솔직히 말하면 다른 사람의 동의를 얻기엔 어려울 정도로 이상적입니다. 그래서 이건 저 혼자만 생각하기로 하고, 현실적인 면에 집중해서 말해보려합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문화적 전유라는 개념은 (그 의도와 상관없이) 현재의 주류-서구문화를 계속해서 주류로서 유지하게 하며, 소수문화를 박제화하고 더욱 마이너하게 만든다."

 문화적 전유라고 검색해보면 다음과 같은 사례들이 눈에 띕니다.

 -졸업식에서 치파오를 입었다가 문화적 전유라고 비판을 받은 미국 백인 학생의 사례(https://www.bbc.com/korean/news-43958649),
 -외국 전통의상을 입었다고 비판을 받은 모모랜드 뮤직비디오 사례(https://blog.naver.com/lhkny96/221310692742),
 -흑인이 중국 옷을 입었다고 비판받은 리한나 화보 사례(https://redfriday.co.kr/743).
 -학생 식당이 스시를 내놓거나(오벌린대학교), 요가 클래스를 제공하거나(오타와대학교), “멕시코 음식의 밤” 행사를 열었다(클렘슨대학교)는 이유로 항의 시위가 일어나는 사례(https://newspeppermint.com/2018/11/04/halloween-costumes-cultural-appropriation/)


 위에서 보이듯 '문화적 전유'라는 개념은 결국 '그 문화사람이 아니면 쓰지마'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근데 써도 되는게 있죠. 현재의 주류-서양문화입니다.
 결국 이렇게 됩니다.


 '한국인이 아오자이를 입으면 문제, 서양옷을 입으면 문제가 아니다.'
 '스시를 만들고 먹으면 차별주의자. 햄버거를 만들고 먹으면 차별주의자가 아니다.'
 '주류 백인은 주류-서양 문화만 향유해. 그 외 문화는 향유하지마.'


 물론 문화적 전유의 의도는 그런게 아닐 수 있죠. '그 문화를 정말로 배려하고 이해해서 쓰라고!'
 하지만 치파오를 입고 스시가 식당에 나온다고 비난/비판이 가해지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멀리하는걸 선택할겁니다. 창작자와 기업도 마찬가지겠죠.

 이게 제가 문화적 전유가 '주류 문화의 유지와 소수 문화의 마이너화에 기여한다'고 평가하는 이유입니다. 주류-서양문화만 끝없이 재생산되고, 그 외 문화는 '배려'라는 이름 하에 미디어에서든 실생활에서든 배제되는거죠.


 또한 저는 문화적 전유가 소수문화를 박제화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모랜드 뮤직비디오에서는 미라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등장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이 문화적 전유 개념에서는 비판받을 점이라고 하네요. (https://redfriday.co.kr/743)

 그렇다면 외국인이 쓰거나 출연하는 작품에 '인면조'가 재밌는 존재로 나타나면 문제일겁니다. 미라가 재미있는 자세를 취하는거나, 인면조가 재미있는 자세를 취하는거나 똑같지 않나요?


 기실 '미라'는 고대 이집트의 신앙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사후세계에서 영원히 살리라고 믿었고, 미라는 그 수단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론 내세에서 움직이고, 도구를 사용하고, 초자연적인 보호를 받으려면 육체를 보존해야하고, 육체를 보존하려면 시신을 미라로 잘 처리해서 관에 고히 보관해야했지요. (이 내용은 브루클린박물관 큐레이터 Edward Bleiberg의 글에서 가져왔습니다.)

 한국의 인면조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면조는 하늘과 땅을 잇는 신성한 존재로 추앙받은 영물입니다. 부장품이나 무덤벽화에 그려질 정도로 고대 한국인의 신앙 및 사후관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죠. 그러니 '문화적 전유'에 따르자면 비한국인이 인면조를 유머스러운 존재나 그로테스크한 존재로 표현하면 안될겁니다. 존중을 담아, 신성한 존재로서 표현하는 것만이 인정될 수 있겠지요.

 반면 서양의 문화, 예컨데 할로윈 호박귀신은 마음대로 해도 됩니다. 나쁘게 묘사하든, 좋게 묘사하든, 신성한 존재로 묘사하든, 개구쟁이로 묘사하든 상관없죠. 하지만 인면조는 엄근진하고 신성한 존재로만 묘사해야합니다.


 마치 한복에 조금의 변형만 가해도 '이런 것은 한복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의 한복이 외국의 영향을 받으며 끝없이 변해왔단걸 망각하고 말이죠. 문화란 것은 계속 변하고, 교류하면서 합쳐지거나 때로는 파격적인 재해석을 통해 발전하고 활용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문화적 전유"에서는 (외국인이 활용한다면) 결국 박제화된, 현재나 과거 그대로의 모습을 그대로 본따는 것만이 인정되게 됩니다.
 물론 위에서 보듯이 그것도 인정안될 수도 있고요.


 결국 문화적 전유는 그 의도가 어쩄건 소수문화를 억압하고 주류문화만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문화근본주의적으로 소수문화를 제약하여 위축시키고, 주류문화만 사용하도록 요구하니까요. 그렇기에 저는 문화적 전유라는 개념에 반대할 수 밖에 없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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