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01/17 20:36:20
Name   저퀴
Subject   삼국지 14를 잠깐 해보고

삼국지 14를 잠깐 해봤습니다. 엔딩까지 보지 않았으니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게임의 기본은 더 많은 땅을 점령할수록 세력이 강해진다, 즉 본래의 삼국지가 도시에서 도시로만 세력을 나타났다면 14는 그 단위를 매우 쪼갠 셈이죠. 이 아이디어가 나쁘진 않지만은 속이 텅텅 비었습니다. 아마 구상은 한 칸의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멈추지 않고 국지전이 벌어지는 게임을 만들려 했겠지만, 현실은 그림판 놀이만 있을 뿐입니다. 누가 먼저 칠하냐, 누가 먼저 칠한 것을 다시 칠하냐만 남아 있죠.

거기다가 확보한 영토에 따른 병참선 관리의 발상은 좋지만, 그걸 감당할 AI가 존재하질 않습니다. 눈으로 얼핏 봐도 알 수 있는 최선의 동선조차 따라가질 않으며, 플레이어가 조금만 궁리하면 AI는 아무 것도 못하고 포위당하거나 협공당해서 격파당합니다. 

내정에 있어선 단순화시키는 건 절대 나쁜 방향이 아니죠. 그런데 그냥 단순하기만 해선 안 됩니다. 잘 만든 전략 게임은 반복해서 해야 할 일을 줄이려 노력하지, 플레이어의 선택을 줄이려 하지 않아요. 그런데 삼국지 14는 플레이어의 선택지라고 할만한 게 없습니다. 그렇다고 도시마다 발전시키는 재미가 있는가 하면은 모든 도시가 같아요. 

외교는 말할 내용이 없을 정도로 변화가 없으니 생략하고, 당연하다는 듯이 삼국지 14는 군주제란 이유만으로 개인 위주의 이벤트가 거의 없습니다. 결혼, 육아, 교류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군주제라서 없는거라고 주장한다면 같은 장르의 게임 중에서 얼마든지 사례가 있어서 설명하기 힘들 정도라고 답할 수 있겠죠.

인물을 강조하는 게임으로도 삼국지 14는 단순하고 유치합니다. 조운이 대표적이죠. 코에이 테크모는 영웅을 아무도 이길 수 없는 무적으로 만들어줘야 빛난다고 생각하는거 같은데 인디 게임 개발자나 모더들도 안 할 유치한 발상입니다. 13도 심각한 단점이었는데 14는 더합니다. 이것 또한 얼마 없는 역사적 기록만으로 상상력을 발휘할 능력도, 재해석할 역량도 없으니 나오는 참사입니다.

심지어 삼국지 시리즈는 번역이라도 보통 이상은 되는 편이었는데 14는 번역이 엉망입니다. 일본식 한자어를 그대로 표기하지 않나, 오타도 보이고 검수란 것을 했는지 의심스러운 수준이에요. 과연 한국인이 적 공군이란 표현을 보면 어떻게 해석할까요? 제 생각에는 Air Force가 아니면 아예 짐작 못하는 사람이 태반일 것 같거든요?

마지막으로 최적화는 정말 심각한데, 요구하는 권장 사양도 말도 안 될 정도로 높은데, 최적화도 프레임 제한이 걸려 있는 게임임에도 프레임이 유지가 안 될 때가 있습니다. 기술적으로는 반의 반 정도 되는 가격으로 판매되는 얼리 억세스 게임들보다도 못한 수준입니다.

전 삼국지 14는 미완성된 게임, 전략 게임으로의 정체성도 미약한 완성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후 관리나 DLC나 전통의 파워 업 키트로도 완성되지 못할거라고 생각해요. 본편을 이렇게밖에 못 만드는 개발사가 무언가를 더 만들어낼 능력이 있다고 믿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요? 13이 그랬습니다. 코에이 테크모의 시부사와 코우 팀은 좋은 전략 게임을 만들 능력이 없는 곳입니다. 간혹 스위치로 나온 파이어 엠블렘을 거론할 때가 있는데 다른 개발사의 전통 있는 SRPG에 기반을 두어 개발한 것과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 없다 봐요.

당연히 삼국지 14는 추천할 수 없고, 나아질 것 같지도 않으며, PK가 나온다고 해서 좋은 게임이 되지 않을거라 생각합니다. 전 시즌 패스의 내용을 보고는 얼마나 개발력이란 게 없으면 모딩으로 해결될만한 것들과 원래 본편에 들어가던 것들을 시즌 패스로 내놓나 싶은 생각 밖에 안 들어요.





4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218 일상/생각멘탈이 탈탈 털린 개인카페 리모델링 후기 42 swear 20/01/23 5752 24
    10217 음악제가 만든 음악을 소개할게요. 11 롤백 20/01/23 5135 13
    10216 오프모임1/24 부산(?) 34 해유 20/01/23 5136 5
    10215 역사궁궐 건축물 위에 <서유기> 등장인물이? 15 메존일각 20/01/23 6583 11
    10214 스포츠[MLB] 2020 명예의 전당 투표결과 발표.jpg 김치찌개 20/01/23 5006 0
    10213 음악신항로 개척 12 바나나코우 20/01/22 4586 7
    10212 음악꽃보다 고양이 6 바나나코우 20/01/22 4320 7
    10211 과학/기술기업의 품질보증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3 Fate(Profit) 20/01/22 5217 17
    10210 의료/건강건강검진은 비싼 물건이다 11 아이폰6S 20/01/21 5590 0
    10209 일상/생각거시적 시각이란 무엇인가 necessary evil 20/01/21 5675 8
    10208 일상/생각좋아하는 사람이 연인이 있대요 7 loremipsum 20/01/21 4332 0
    10207 게임그리핀 전력분석가로 일하게 됐습니다. 30 Jaceyoung 20/01/21 7356 60
    10206 스포츠[MLB] 킹 펠릭스 애틀랜타와 계약.jpg 2 김치찌개 20/01/21 4920 0
    10205 일상/생각설 연휴, <우리술 대난투> 10 작고 둥근 좋은 날 20/01/20 5569 9
    10204 철학/종교역사적 유물론과 행위자 연결망 이론(완) - 시너지: ‘계약서에 서명하기’를 매개의 실천으로 읽기 호라타래 20/01/20 4410 3
    10203 스포츠[NHL] Vegas Golden Knights vs Montreal Canadiens 3 Darker-circle 20/01/20 4758 1
    10202 스포츠[사이클] 대략적인 로드 사이클의 체계 소개 안경쓴녀석 20/01/20 5218 6
    10201 오프모임영어 기사 읽기 모임(여의도) 5 큰일이다 20/01/19 4693 0
    10200 경제파이어족이 선물해준 세가지 생각거리 5 MANAGYST 20/01/19 5601 9
    10199 게임하스스톤 전장 고랭커 포셔의 플레이 7 한아 20/01/19 7109 0
    10198 기타[스토브리그] 강두기가 약물 선수일거 같습니다 + (임동규 컴백설) 14 Jace.WoM 20/01/19 6697 0
    10197 사회요즘도 이런 사고가 있네요 1 노루야캐요 20/01/18 4519 1
    10196 일상/생각선물 1 16 호라타래 20/01/18 4190 16
    10195 경제홍차넷 50000플 업적달성 전기 78 파란아게하 20/01/17 6665 71
    10194 게임삼국지 14를 잠깐 해보고 6 저퀴 20/01/17 6443 4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