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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3/21 13:40:22수정됨 |
Name | 기아트윈스 |
Subject | [번역] 유발 노아 하라리: 코로나바이러스 이후의 세계 |
인류는 국제 위기를 만났어요. 아마 현세대 최고의 위기일 거예요. 사람들과 정부들이 향후 몇 주 동안 내리는 결정들은 아마 앞으로 수년간 우리가 사는 세계를 직조하게 될 거예요. 그 결정들은 우리 공중보건 시스템만 형성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경제 정치 문화 역시도 직조하겠죠. 우리는 신속하고 과단성있게 행동해야 해요. 하지만 또 우리는 우리의 행동들의 장기적인 영향도 고려해야만 합니다. 여러 대안들 사이에서 하나를 고를 적에 우리는 당장의 위험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뿐 아니라 이 폭풍이 지나간 뒤에 어떤 세상에서 우리가 살게될 것인가 역시 생각해야 하지요. 이 폭풍도 지나갈 거고 인류는 살아남을 거고 우리 중 대부분은 여전히 살아있을 거지만 우리는 좀 다른 세상을 살게 될 거예요. Humankind is now facing a global crisis. Perhaps the biggest crisis of our generation. The decisions people and governments take in the next few weeks will probably shape the world for years to come. They will shape not just our healthcare systems but also our economy, politics and culture. We must act quickly and decisively. We should also take into account the long-term consequences of our actions. When choosing between alternatives, we should ask ourselves not only how to overcome the immediate threat, but also what kind of world we will inhabit once the storm passes. Yes, the storm will pass, humankind will survive, most of us will still be alive — but we will inhabit a different world. 수많은 단기 처방들이 견고한 일상이 되어버릴 거예요. 그게 비상사태라는 놈의 본성이에요. 비상사태는 역사의 진행과정을 '빨리감기' 해버리죠. 평시에는 수년간 숙고될 법한 결정들이 그냥 몇 시간 안에 통과되어버려요. 미성숙하고 심지어 위험한 기술들이 현역으로 도입되어버려요. 왜냐면 아무 것도 안할 때의 리스크가 더 크니까요. 모든 나라들이 거대한 규모의 사회실험의 기니피그 노릇을 하지요. 모든 사람들이 재택근무를 하고 멀리서 통신만 하면 무슨 일이 생길까? 모든 학교와 대학들이 온라인으로 전환되면 무슨 일이 생기지? 평시에는 정부와 기업과 교육기관들이 절대로 동의하지 않았을 실험들이죠. 그런데 지금은 평시가 아니니까요. Many short-term emergency measures will become a fixture of life. That is the nature of emergencies. They fast-forward historical processes. Decisions that in normal times could take years of deliberation are passed in a matter of hours. Immature and even dangerous technologies are pressed into service, because the risks of doing nothing are bigger. Entire countries serve as guinea-pigs in large-scale social experiments. What happens when everybody works from home and communicates only at a distance? What happens when entire schools and universities go online? In normal times, governments, businesses and educational boards would never agree to conduct such experiments. But these aren’t normal times. 이 위기의 시간에 우리가 직면한 선택지 중에 두 가지가 특히 중요해요. 하나는 전체주의적 감시 vs 강화된 시민의 힘, 다른 하나는 국가단위 고립 vs 전지구적 연대. In this time of crisis, we face two particularly important choices. The first is between totalitarian surveillance and citizen empowerment. The second is between nationalist isolation and global solidarity. [피부 아래 감시] [Under-the-skin surveillance] 이 역병을 멈추기 위해 모든 인구가 어떤 가이드라인을 따를 필요가 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길이 있지요. 한 가지 방법은 정부가 사람들을 모니터하고 규칙을 안지키는 사람을 처벌하는 거예요. 오늘날,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기술의 발전 덕분에 모든 사람을 24시간 모니터하는 게 가능해졌어요. 50년 전에는 그 KGB도 2억 4천만 소비에트 시민들을 24시간 감시하지 못했을 뿐더러 (설령 했다 하더라도) 그렇게 수집한 모든 정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건 꿈도 꾸지 못했어요. KGB는 요원들과 분석가들에게 의지했는데 요원들한테 모든 시민을 하나하나 따라다니라고 할 수 없잖아요. 그런데 이제 각국 정부는 천지삐까리에 깔아둔 센서들과 강력한 알고리즘에 의지하지요. 피와 살로 이루어진 스파이들 대신에. In order to stop the epidemic, entire populations need to comply with certain guidelines. There are two main ways of achieving this. One method is for the government to monitor people, and punish those who break the rules. Today, for the first time in human history, technology makes it possible to monitor everyone all the time. Fifty years ago, the KGB couldn’t follow 240m Soviet citizens 24 hours a day, nor could the KGB hope to effectively process all the information gathered. The KGB relied on human agents and analysts, and it just couldn’t place a human agent to follow every citizen. But now governments can rely on ubiquitous sensors and powerful algorithms instead of flesh-and-blood spooks. 몇몇 정부들은 코로나바이러스랑 싸우면서 이미 새로운 감시 수단들을 채택했어요. 가장 주목할 만한 케이스는 중국입니다. 사람들의 맛폰을 면밀하게 모니터하고 수억 대의 안면인식 카메라들을 이용하고 사람들에게 자기 체온과 컨디션을 체크하고 보고하게 함으로써 중국 당국은 코로나바이러스를 옮기고 다니는 용의자를 빠르게 찾아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동선을 추적하고 그들과 접촉한 모두를 확인할 수 있어요. 다양한 앱들이 감염자가 근처에 있다고 시민들에게 경고메시지를 보내주지요. In their battle against the coronavirus epidemic several governments have already deployed the new surveillance tools. The most notable case is China. By closely monitoring people’s smartphones, making use of hundreds of millions of face-recognising cameras, and obliging people to check and report their body temperature and medical condition, the Chinese authorities can not only quickly identify suspected coronavirus carriers, but also track their movements and identify anyone they came into contact with. A range of mobile apps warn citizens about their proximity to infected patients. 이런 종류의 기술은 동아시아에만 국한된 게 아니에요.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최근에 이스라엘 안보국이 테러리스트와 싸우는데 쓰려고 킵해둔 기술을 코로나바이러스 환자들을 추적하는데 쓰는 방안을 승인했어요. 이 분야를 담당하는 의회의 분과에서 승인을 거부하자 네타냐후는 "비상명령"이라며 쑤셔넣어버렸어요. This kind of technology is not limited to east Asia. Prime Minister Benjamin Netanyahu of Israel recently authorised the Israel Security Agency to deploy surveillance technology normally reserved for battling terrorists to track coronavirus patients. When the relevant parliamentary subcommittee refused to authorise the measure, Netanyahu rammed it through with an “emergency decree”. 아마 여러분은 '별로 새로운 이야기도 아닌데'라고 할지도 몰라요. 근자에 정부와 기업 모두 가면 갈수록 더 복잡한 기술을 써서 사람들을 추적, 모니터, 조작하지요. 그럼에도불구하고 우리가 조심하지 않으면 이번 역병은 감시의 역사에 중요한 분수령이 되어버릴지도 몰라요. 왜 분수령이냐하면, 여태까지는 그런 걸 반대했던 나라들에서 대규모 감시 도구의 사용을 일상으로 만들지도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하게는 "피부 위" 감시에서 "피부 아래" 감시로의 극적인 전환을 의미하기 때문이기도 해요. You might argue that there is nothing new about all this. In recent years both governments and corporations have been using ever more sophisticated technologies to track, monitor and manipulate people. Yet if we are not careful, the epidemic might nevertheless mark an important watershed in the history of surveillance. Not only because it might normalise the deployment of mass surveillance tools in countries that have so far rejected them, but even more so because it signifies a dramatic transition from “over the skin” to “under the skin” surveillance. 여태까지는 여러분의 손가락이 맛폰을 툭 쳐서 링크를 누를 때 정부는 여러분의 손가락이 정확히 무얼 눌렀는지 알고싶어 했어요.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에는 관심이 달라져요. 이제 정부는 당신 손가락의 체온과 피부 아래쪽에 흐르는 혈압을 알고 싶어해요. Hitherto, when your finger touched the screen of your smartphone and clicked on a link, the government wanted to know what exactly your finger was clicking on. But with coronavirus, the focus of interest shifts. Now the government wants to know the temperature of your finger and the blood-pressure under its skin. [비상 푸딩] [The emergency pudding] 우리가 감시에 대해 입장을 정할 때 직면하는 문제 중 하나는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정확히 우리가 어떻게 감시당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또 향후 무슨 신박한 것들이 나타날지 모른다는 거예요. 감시기술은 모가지가 부러질 기세로 발전하고 있어서 10년 전에는 SF같던 게 오늘날엔 옛날 뉴스가 되어버리죠. 사고실험을 해보지요. 여기 어떤 가상의 정부가 있는데 시민들에게 모두 생체정보수집팔찌를 차서 24시간 체온과 심박수를 모니터한다고 해봐요. 그 데이터는 정부의 알고리즘에 의해 수집되고 분석되구요. 그 알고리즘은 여러분이 눈치채기도 전에 여러분이 아프다는 걸 알게 될 거고, 또 당신이 어디 갔었고 누굴 만났는지도 알게 되겠지요. 연쇄감염의 고리는 엄청나게 짧아질 거고, 어쩌면 완전히 잡힐지도 몰라요. 그런 시스템은 이 역병을 며칠 안에 잡아버릴 수 있을 거라고도 할 수 있겠어요. 엄청 좋아보이죠? One of the problems we face in working out where we stand on surveillance is that none of us know exactly how we are being surveilled, and what the coming years might bring. Surveillance technology is developing at breakneck speed, and what seemed science-fiction 10 years ago is today old news. As a thought experiment, consider a hypothetical government that demands that every citizen wears a biometric bracelet that monitors body temperature and heart-rate 24 hours a day. The resulting data is hoarded and analysed by government algorithms. The algorithms will know that you are sick even before you know it, and they will also know where you have been, and who you have met. The chains of infection could be drastically shortened, and even cut altogether. Such a system could arguably stop the epidemic in its tracks within days. Sounds wonderful, right? 단점은 물론 이런 방식이 무시무시한 새 감시 시스템에게 정당성을 부여해준다는 거예요. 예컨대 내가 CNN링크 대신 폭스 뉴스 링크를 눌렀다는 걸 여러분이 알게 된다면 여러분은 제 정견, 심지어 제 성격에 대해 알게 되겠지요. 하지만 여러분이 내가 어떤 비디오 클립을 보면서 체온 혈압 심박이 어떻게 변하는지 알게 된다면 여러분은 제가 무엇에 웃고 울고 매우매우 빡쳐하는지까지 알게 될 거예요. The downside is, of course, that this would give legitimacy to a terrifying new surveillance system. If you know, for example, that I clicked on a Fox News link rather than a CNN link, that can teach you something about my political views and perhaps even my personality. But if you can monitor what happens to my body temperature, blood pressure and heart-rate as I watch the video clip, you can learn what makes me laugh, what makes me cry, and what makes me really, really angry. 분노 기쁨 심심 사랑 등은 열이나 기침처럼 생물학적 현상이라는 걸 명심하세요. 기침을 감지하는 바로 그 기술이 웃음도 감지할 수 있어요. 기업과 정부가 우리 생체 데이터를 대규모로 수집하면 우리 자신보다도 우리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수 있고, 우리 감정을 예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 감정을 주작해서 우리에게 이것저것 팔고 싶은 걸 팔 수도 있을 거예요. 물건이든 정치인이든. 생체정보 모니터링을 보고 나면 캠브릿지 애널리티카의 데이터 해킹 전략은 석기시대 기술 정도로 보일 걸요. 상상해봐요. 2030년 북한. 모든 시민이 생체팔찌를 24시간 착용해야 해요. 여러분이 위대한 지도자 동지의 연설을 듣고 있는데 팔찌가 여러분이 지금 빡쳤다는 정보를 일러바치는 거예요. 여러분은....ㅎㅎ... It is crucial to remember that anger, joy, boredom and love are biological phenomena just like fever and a cough. The same technology that identifies coughs could also identify laughs. If corporations and governments start harvesting our biometric data en masse, they can get to know us far better than we know ourselves, and they can then not just predict our feelings but also manipulate our feelings and sell us anything they want — be it a product or a politician. Biometric monitoring would make Cambridge Analytica’s data hacking tactics look like something from the Stone Age. Imagine North Korea in 2030, when every citizen has to wear a biometric bracelet 24 hours a day. If you listen to a speech by the Great Leader and the bracelet picks up the tell-tale signs of anger, you are done for. 물론 여러분은 생체감시의 사례를 비상시국에 쓰는 임시조치라고 할 수도 있어요. 이시국이 끝나면 이것도 지나가리라. 그런데 임시조치는 시국이 끝나도 계속되는 아주 못된 버릇이 있어요. 특히 지평선 저편에 새로운 '시국'이 계속 잠복해있는 곳에서 그래요. 우리 나라(이스라엘)로 예를 들자면, 1948년 독립전쟁기간에 비상사태를 선포했어요. 많은 임시조치들이 정당화되었는데, 언론검열과 토지몰수, 푸딩을 만드는데 관한 특별한 규제들(이거 농담 아님) 등이 있었어요. 독립전쟁에서 승리한지 한참이 지났지만 이스라엘은 '이시국'이 끝났다는 말을 절대 안했어요. 그래서 1948년에 도입한 많은 "임시" 조치들을 철회하지 않았죠 (푸딩에 관한 비상명령은 참으로 자비롭게도 2011년에 폐지되었어요). You could, of course, make the case for biometric surveillance as a temporary measure taken during a state of emergency. It would go away once the emergency is over. But temporary measures have a nasty habit of outlasting emergencies, especially as there is always a new emergency lurking on the horizon. My home country of Israel, for example, declared a state of emergency during its 1948 War of Independence, which justified a range of temporary measures from press censorship and land confiscation to special regulations for making pudding (I kid you not). The War of Independence has long been won, but Israel never declared the emergency over, and has failed to abolish many of the “temporary” measures of 1948 (the emergency pudding decree was mercifully abolished in 2011).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이 0이 된다 하더라도 데이터에 굶주린 어떤 정부들은 코로나바이러스의 역습이 걱정되니까 생체감시시스템을 계속 유지해야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고, 중앙아프리카에서 새로운 에볼라가 자라나기 때문에...라고 할 수도 있고, 아니면... 이제 감이 오지요? 우리의 프라이버시에 대해서 큰 논쟁이 최근 계속 있었어요. 코로나바이러스 위기는 이 논쟁의 결정적인 시점이 될 수 있어요. 왜냐하면 사람들은 프라이버시냐 건강이냐가 선택지일 때 보통은 건강 쪽을 고르니까요. Even when infections from coronavirus are down to zero, some data-hungry governments could argue they needed to keep the biometric surveillance systems in place because they fear a second wave of coronavirus, or because there is a new Ebola strain evolving in central Africa, or because . . . you get the idea. A big battle has been raging in recent years over our privacy. The coronavirus crisis could be the battle’s tipping point. For when people are given a choice between privacy and health, they will usually choose health. [비누경찰] [The soap police] 사람들한테 프라이버시냐 건강이냐로 양자택일을 거는 건 사실 이 문제의 핵심이에요. 왜냐면, 이 양자택일은 거짓이거든요. 우리는 프라이버시와 건강 두 가지 모두를 향유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해요. 우리는 전체주의적 감시 레짐을 세워서가 아니라 시민의 힘을 강화해서 우리의 건강을 지키고 코로나바이러스 전염병을 멈추는 쪽을 선택할 수 있어요. 최근 몇주간 코로나바이러스 전염병을 억제하기 위한 가장 성공적인 사례들은 대한민국, 타이완, 싱가포르에서 나왔어요. (역자주: 양놈들아 한국 그만좀 핥아라 이러다 닳겠다) 이 나라들도 물론 몇몇 추적 수단들을 썼지만 그들이 그보다 훨씬 크게 의지했던 건 엄청난 양의 테스팅과 진솔한 정보공개, 그리고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자발적으로 협조하는 시민대중이었어요. Asking people to choose between privacy and health is, in fact, the very root of the problem. Because this is a false choice. We can and should enjoy both privacy and health. We can choose to protect our health and stop the coronavirus epidemic not by instituting totalitarian surveillance regimes, but rather by empowering citizens. In recent weeks, some of the most successful efforts to contain the coronavirus epidemic were orchestrated by South Korea, Taiwan and Singapore. While these countries have made some use of tracking applications, they have relied far more on extensive testing, on honest reporting, and on the willing co-operation of a well-informed public. 사람들이 유익한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도록 만드는 방법이 중앙집중형 모니터링과 강력한 처벌만 있는 건 아니에요. 빅브라더가 지켜보고있지 않아도 과학적인 사실을 전해듣고 당국이 그런 사실들을 알려준다는 걸 믿을 때 시민들은 '맞는' 행동을 할 수 있어요. 동기부여가 잘 되어있고 알 만큼 아는 사람들은 통제되고 무지한 사람들보다 훨씬 넘사벽으로 강력하고 효과적이에요. Centralised monitoring and harsh punishments aren’t the only way to make people comply with beneficial guidelines. When people are told the scientific facts, and when people trust public authorities to tell them these facts, citizens can do the right thing even without a Big Brother watching over their shoulders. A self-motivated and well-informed population is usually far more powerful and effective than a policed, ignorant population. 비누로 손씻는 걸 생각해보세요. 인간 위생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진 중 하나예요. 아주 간단한 짓인데 매년 수백만 명을 살리고 있지요. 우린 이걸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19세기나 되어서야 과학자들이 비누로 손씻기의 중요성을 발견했어요. 그 전에는 심지어 의사나 간호사들도 이쪽에서 한 번 수술하고, 손 안씻고, 다음수술을 했다니까요. 요즘은 수십억 인구가 매일 손을 씻어요. 손 씻으라는 강제조치가 두려워서가 아니라 팩트를 알기 때문이에요. 내가 내 손을 씻는 건 바이러스와 박테리아에 대해 들어봤고, 이 미생물들이 병을 일으킨다는 걸 알고, 비누가 얘들을 제거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죠. Consider, for example, washing your hands with soap. This has been one of the greatest advances ever in human hygiene. This simple action saves millions of lives every year. While we take it for granted, it was only in the 19th century that scientists discovered the importance of washing hands with soap. Previously, even doctors and nurses proceeded from one surgical operation to the next without washing their hands. Today billions of people daily wash their hands, not because they are afraid of the soap police, but rather because they understand the facts. I wash my hands with soap because I have heard of viruses and bacteria, I understand that these tiny organisms cause diseases, and I know that soap can remove them. 그런데, 이정도 수준의 협력을 달성하기 위해선 신뢰라는 게 있어야 해요. 사람들은 과학을 신뢰하고 당국을 신뢰하고 미디어를 신뢰할 필요가 있어요. 지난 몇년 간 무책임한 정치인들이 고의로 과학에 대한 신뢰를, 당국에 대한 신뢰를, 그리고 미디어에 대한 신뢰를 갉아먹었어요. 이제 바로 그 무책임한 정치인들은 권위주의로 뚤린 고속도로를 타고 싶어질지도 몰라요. 여러분이 올바른 행동을 하고자 한다면 공적 영역(역자주: 기관, 미디어, 과학계 등등?)은 정말이지 믿을 수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말이죠. But to achieve such a level of compliance and co-operation, you need trust. People need to trust science, to trust public authorities, and to trust the media. Over the past few years, irresponsible politicians have deliberately undermined trust in science, in public authorities and in the media. Now these same irresponsible politicians might be tempted to take the high road to authoritarianism, arguing that you just cannot trust the public to do the right thing. 보통 수년간 풍화되어버린 신뢰는 하루아침에 다시 세울 수 없어요. 하지만 지금 시국은 '보통'이 아니지요. 위기의 순간에는 마음도 순식간에 바뀔 수 있어요. 여러분은 여러분의 형제자매와 수년간 악전고투할 수 있어요. 하지만 어떤 응급상황이 발생한다면 여러분은 마음속 깊이 감춰진 신뢰와 애정을 깨닫고 서둘러 뛰어가 상대방을 구할 수 있어요. 감시 레짐을 세우는 대신에 과학과 당국과 미디어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를 다시 세우는 건 아직 늦지 않았어요. 우리는 반드시 새로운 기술들을 써야하지만, 이 기술들은 시민의 힘을 강화하는데 써야 해요. 나는 내 체온과 혈압을 모니터하는 데 찬성이지만, 그 데이터는 전능한 정부를 만드는 데 일조해서는 안돼요. 그 데이터는 내가 개인적인 선택을 내릴 때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그렇게 할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하고, 정부가 내리는 결정들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해요. Normally, trust that has been eroded for years cannot be rebuilt overnight. But these are not normal times. In a moment of crisis, minds too can change quickly. You can have bitter arguments with your siblings for years, but when some emergency occurs, you suddenly discover a hidden reservoir of trust and amity, and you rush to help one another. Instead of building a surveillance regime, it is not too late to rebuild people’s trust in science, in public authorities and in the media. We should definitely make use of new technologies too, but these technologies should empower citizens. I am all in favour of monitoring my body temperature and blood pressure, but that data should not be used to create an all-powerful government. Rather, that data should enable me to make more informed personal choices, and also to hold government accountable for its decisions. 제가 만약 24시간 제 컨디션을 추적할 수 있다면 저는 제가 남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요인이 되어버렸는지 알게 될 수 있을 뿐더러 어떤 습관이 제 건강에 보탬이 되는지도 알 수 있게 되겠지요. 그리고 제가 코로나바이러스의 전파에 관한 신뢰할 수 있는 수치를 얻어서 분석할 수 있다면 저는 정부가 나한테 참말을 하고 있는지, 점염병과 싸우는데 적합한 정책들을 채택하고 있는지 판단할 수 있게 되겠지요. 감시에 대해 말할 때면, 명심하세요, 감시하는데 쓰이는 바로 그 기술이 대개는 정부가 개인을 모니터하는 데 쓰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개인이 정부를 모니터하는데도 쓰일 수 있다는 것. If I could track my own medical condition 24 hours a day, I would learn not only whether I have become a health hazard to other people, but also which habits contribute to my health. And if I could access and analyse reliable statistics on the spread of coronavirus, I would be able to judge whether the government is telling me the truth and whether it is adopting the right policies to combat the epidemic. Whenever people talk about surveillance, remember that the same surveillance technology can usually be used not only by governments to monitor individuals — but also by individuals to monitor governments.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역병은 그러므로 시민사회에 대한 중대한 테스트예요. 향후에 우리 모두는 근거 없는 음모론과 자신의 이득을 좇는 정치인 대신 과학적 데이터와 공중보건 전문가를 신뢰하는 쪽을 택해야 해요. 우리가 정답을 고르는데 실패한다면 우린 '이것만이 우리 건강을 지키는 길이야'라고 생각하면서 가장 소중한 우리의 자유를 냅다 버리게 될지도 몰라요. The coronavirus epidemic is thus a major test of citizenship. In the days ahead, each one of us should choose to trust scientific data and healthcare experts over unfounded conspiracy theories and self-serving politicians. If we fail to make the right choice, we might find ourselves signing away our most precious freedoms, thinking that this is the only way to safeguard our health. [전지구적 빅픽쳐가 필요해] [We need a global plan] 우리가 직면한 두 번째 중요한 선택지는 국가단위 고립이냐 전지구적 연대냐는 거예요. 이 전염병 자체랑 그로부터 파생된 경제위기는 둘 다 전지구적 문제예요. 오직 전지구적 협력을 통해서만 효과적으로 풀어낼 수 있지요. The second important choice we confront is between nationalist isolation and global solidarity. Both the epidemic itself and the resulting economic crisis are global problems. They can be solved effectively only by global co-operation. 이 바이러스를 물리치기 위해서 우리는 최우선적으로 전지구적으로 정보를 공유할 필요가 있어요. 이건 바이러스에 대해 인간이 앞선 부분이에요. 중국에 있는 코로나바이러스랑 미국에 있는 코로나바이러스는 인간을 감염시키는 팁을 공유할 수 없어요. 하지만 중국은 미국에게 코로나바이러스에 관한 소중한 교훈들과 어떻게 얘들을 다룰지에 대해 알려줄 수 있어요. 이탈리아 의사가 오늘 아침에 밀라노에서 발견한 사실이 저녁에 테헤란에서 많은 목숨을 구할 수도 있어요. 영국 정부가 몇 가지 정책들 가운데서 망설이고 있을 때 비슷한 딜레마를 한 달 전에 이미 맞이했던 한국인들에게서 조언을 구할 수 있지요. 하지만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려면 우리에겐 전지구적 협력과 신뢰의 정신이 필요해요. First and foremost, in order to defeat the virus we need to share information globally. That’s the big advantage of humans over viruses. A coronavirus in China and a coronavirus in the US cannot swap tips about how to infect humans. But China can teach the US many valuable lessons about coronavirus and how to deal with it. What an Italian doctor discovers in Milan in the early morning might well save lives in Tehran by evening. When the UK government hesitates between several policies, it can get advice from the Koreans who have already faced a similar dilemma a month ago. But for this to happen, we need a spirit of global co-operation and trust. 국가들은 정보를 투명하게 공유하고 겸손하게 조언을 구하고자 해야 해요. 그리고 그렇게 접수한 데이터와 인사이트를 일단 믿어야 하구요. 또 의료장비를 생산하고 분배하는 전지구적 노력이 필요해요 (특히 검사도구와 호흡기계). 각국이 자체적으로만 일하고 확보 가능한 모든 물자를 깔고 앉으려고 하는 대신에 잘 조율된 전지구적 협력은 이런 물품의 생산을 크게 진작하고 생명에 직결된 장비들을 보다 공정하게 분배해줄 수 있을 거예요. 국가들이 전시에 핵심 산업을 국유화(nationalise)하는 것처럼 인류가 코로나바이러스와 전쟁을 벌일 땐 핵심 생산 라인을 '인류화(humanise)'할 필요가 있을 지도 모르지요. 코로나바이러스 케이스가 많지 않은 부국은 귀중한 장비를 케이스가 많은 빈국에 보내고자 해야 해요. 만약 다음 차례로 우리(부국)이 얻어맞을 경우 다른 나라들이 수수방관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말이죠. Countries should be willing to share information openly and humbly seek advice, and should be able to trust the data and the insights they receive. We also need a global effort to produce and distribute medical equipment, most notably testing kits and respiratory machines. Instead of every country trying to do it locally and hoarding whatever equipment it can get, a co-ordinated global effort could greatly accelerate production and make sure life-saving equipment is distributed more fairly. Just as countries nationalise key industries during a war, the human war against coronavirus may require us to “humanise” the crucial production lines. A rich country with few coronavirus cases should be willing to send precious equipment to a poorer country with many cases, trusting that if and when it subsequently needs help, other countries will come to its assistance. 의료인력을 품앗이하고자 하는 전지구적 노력을 고려해볼 수도 있어요. 당장 도움이 필요한 순간 도와주기 위해서, 그리고 귀중한 경험을 얻기 위해서 현재 사정이 나은 나라들이 상황이 나쁜 지역으로 의료진을 파견할 수 있지요. 역병의 중심점이 옮겨간다면 반대 방향으로 도움의 물결이 흘러들어올 수 있을 거예요. We might consider a similar global effort to pool medical personnel. Countries currently less affected could send medical staff to the worst-hit regions of the world, both in order to help them in their hour of need, and in order to gain valuable experience. If later on the focus of the epidemic shifts, help could start flowing in the opposite direction. 경제전선에서도 국제 협력은 반드시 필요해요. 경제와 공급망의 전지구적 성격을 감안했을 때 각각의 정부가 다른 정부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자기 일만 해버리면 그 결과는 더 큰 위기와 혼파망일 거예요. 우리는 전지구적 액션플랜이 필요해요. 가능한한 빨리. Global co-operation is vitally needed on the economic front too. Given the global nature of the economy and of supply chains, if each government does its own thing in complete disregard of the others, the result will be chaos and a deepening crisis. We need a global plan of action, and we need it fast. 또, 여행에 관한 전지구적 합의에 도달할 필요가 있어요. 모든 국제여행을 수개월간 금지하는 것은 대단한 고난이요, 또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전쟁 역시 방해할 겁니다. 각국은 최소한 반드시 이동해야 할 사람들이 계속해서 국경을 넘을 수 있게 협조해야만 해요. 과학자, 의사, 저널리스트, 정치인, 사업가 등. 여행객들을 모국에서 사전에 스크리닝하는 등의 전지구적 합의가 있으면 할 수 있어요. 면밀한 스크리닝을 통과한 사람만 비행기를 타고 온다는 걸 알면 그들을 여러분 국가에 받아들일 마음이 좀 더 들지 않겠어요? Another requirement is reaching a global agreement on travel. Suspending all international travel for months will cause tremendous hardships, and hamper the war against coronavirus. Countries need to co-operate in order to allow at least a trickle of essential travellers to continue crossing borders: scientists, doctors, journalists, politicians, businesspeople. This can be done by reaching a global agreement on the pre-screening of travellers by their home country. If you know that only carefully screened travellers were allowed on a plane, you would be more willing to accept them into your country. 불행하게도... 현재는 국가들이 이들 중 어떤 것도 하고 있지 않아요. 국제 커뮤니티는 집단마비에 걸렸어요. 방 안에 어른이라곤 한 사람도 없는 것 같군요. 액션 플랜을 만들기 위해 글로벌 리더들이 몇주 전에 긴급 회동을 하기를 기대하셨더라면... G7 리더들은 고작 이번주에 간신히 화상 회의를 한 번 했고 아무 계획도 도출해내지 못했어요. Unfortunately, at present countries hardly do any of these things. A collective paralysis has gripped the international community. There seem to be no adults in the room. One would have expected to see already weeks ago an emergency meeting of global leaders to come up with a common plan of action. The G7 leaders managed to organise a videoconference only this week, and it did not result in any such plan. 과거의 전지구적 위기 때는 (2008년 금융위기나 2014년 에볼라 전염병 등) 미국이 지구대장 역할을 맡았어요. 하지만 작금의 미국 행정부는 대장직을 사임했네요. 아주 분명하고 똑똑하게 그들은 인류의 미래보다 미국의 위대함을 더 신경쓴다고 했어요. In previous global crises — such as the 2008 financial crisis and the 2014 Ebola epidemic — the US assumed the role of global leader. But the current US administration has abdicated the job of leader. It has made it very clear that it cares about the greatness of America far more than about the future of humanity. 이 행정부는 심지어 가장 가까운 동맹도 내다버렸지요. EU로부터의 모든 여행을 밴먹였을 때 미행정부는 EU에게 귀찮게시리 사전 통지도 하지 않았어요. 이 과격한 방식에 대해 EU랑 상의하는 건 말할 것도 없구요. 미행정부는 (알려진 바에 따르면) 한 독일 제약회사에게 새로운 코비드19 백신에 대한 독점권을 10억불에 산다고 오퍼를 했다가 독일을 발칵 뒤집어놨지요. 현 행정부가 나중에는 결국 방침을 바꿔서 전지구적 액션 플랜을 짜보려고 하는 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책임은 절대로 부담하지 않고 실수는 절대로 인정하지 않고 모든 성취를 밥먹듯이 자기 앞으로만 돌리면서 탓은 다 남에게로 돌리는 리더를 따르려는 나라는 얼마 없을 거예요. This administration has abandoned even its closest allies. When it banned all travel from the EU, it didn’t bother to give the EU so much as an advance notice — let alone consult with the EU about that drastic measure. It has scandalised Germany by allegedly offering $1bn to a German pharmaceutical company to buy monopoly rights to a new Covid-19 vaccine. Even if the current administration eventually changes tack and comes up with a global plan of action, few would follow a leader who never takes responsibility, who never admits mistakes, and who routinely takes all the credit for himself while leaving all the blame to others. 미국의 공백을 다른 나라들이 채우지 못하면 작금의 역병을 멈추는 일이 훨씬 어려워질 뿐더러 그 여파 또한 향후 국제 관계에 계속해서 해독을 끼치게 될 거예요. 하지만 모든 위기는 기회이기도 하지요. 우리는 작금의 역병 덕분에 전지구적 파열로 인해 제기된 심각한 위험을 인류 전체가 깨닫게 되기를 바랄 수 밖에. If the void left by the US isn’t filled by other countries, not only will it be much harder to stop the current epidemic, but its legacy will continue to poison international relations for years to come. Yet every crisis is also an opportunity. We must hope that the current epidemic will help humankind realise the acute danger posed by global disunity. 인류는 선택을 내려야 해요. 파열의 길을 걸을 것인가, 연대의 길을 택할 것인가. 파열을 택한다면 이번 위기가 연장될 뿐더러 필시 향후에 더 큰 재난으로 돌아올 거예요. 전지구적 연대를 택한다면 단지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될 뿐만 아니라 21세기에 인류를 공격해올 모든 미래의 역병과 위기들에 대해서도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Humanity needs to make a choice. Will we travel down the route of disunity, or will we adopt the path of global solidarity? If we choose disunity, this will not only prolong the crisis, but will probably result in even worse catastrophes in the future. If we choose global solidarity, it will be a victory not only against the coronavirus, but against all future epidemics and crises that might assail humankind in the 21st century. https://www.ft.com/content/19d90308-6858-11ea-a3c9-1fe6fedcca7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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