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05/07 08:03:58수정됨
Name   사이시옷
Subject   엄마
"아들, 이제 좀 괜찮니?"
엄마의 정성 어린 간호 덕분인지 밤새 끓던 열이 뚝 떨어졌다. 이마 위 엄마 손의 온기와 시원섭섭한 감정을 동시에 느낀다.
"아니이이이, 아직 아프다니까요."
거짓말이 못내 마음에 걸려 눈을 감으며 대답했다. 몸이 괜찮아지면 바쁜 엄마는 내 곁에서 멀어지실 것이 분명하니까.

맞벌이가 참 드문 시절이었다. 비가 갑자기 쏟아지는 날에는 엄마들이 우산을 들고 학교로 와서 당신 자식들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씩 하나씩 집으로 데려가곤 했다. 빗속에 혼자 오두커니 남겨지는 것이 싫었지만 다른 친구의 엄마가 나를 챙겨주는 것은 더 비참했다. 그래서 하루는 실내화 주머니를 우산 삼아 냅다 집으로 달려갔다. 물에 젖은 새앙쥐 꼴로 집에 와 보니 실내화 한 짝이 사라졌다. 그날 밤 엄마에게 혼난 나는 서러운 눈물을 뚝뚝 흘렸다.

한 번 더 안아주길 바랐다. 한 번 더 엄마에게 안겨 엄마 냄새를 맡고 싶었다. 그래서 허약한 내 몸이 좋았다. 아파서 누워 있으면 엄마의 손길을 더 느낄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일부러 더 아픈 척을 하기도 했다. 더 찡그리고 더 징징거렸다. 품에 쏙 안기면 몸은 아팠지만 빗속에서 혼자 달리던 내 마음은 따뜻하게 데워졌다.

두 팔을 내 목을 감싸고 안긴 아들의 체온을 느낀다.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칭얼거리며 아빠에게 기어 온 내 새끼. 아들의 모습에서 과거의 내 모습을 어렴풋이 그려본다. 아들은 나와 아내의 젊음을 한 입 두 입 먹으며 성장하고 그사이 나의 엄마, 아빠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한 걸음씩 걸어가고 있다. 그래서 문득 엄마가 영영 가버리실까 두렵다. 아프던 아픈 척을 하던 떼를 쓰면 내 곁으로 돌아오셨던 엄마가 어느날 영영 돌아오시지 않을까 두렵다.


"엄마가 나를 버리고 달아나면 어쩌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때 엄마는 세 번이나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영영 가버릴 것을 왜 세 번이나 고개를 흔들었는지 지금도 나는 알 수가 없다."
- 피천득 <엄마 中>



15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2933 여행[베트남 붕따우 여행] 중장년 분들에게 추천하는 여행지. 긴글주의 17 사이공 독거 노총각 22/06/19 21909 15
    12972 일상/생각[회상] R.A.T.M 그리고 틱광득 소신공양 18 사이공 독거 노총각 22/07/06 6443 11
    11167 IT/컴퓨터pdf 번역하는법 4 사이바팡크 20/11/24 5157 0
    11867 일상/생각보증기간 만료 14 사이시옷 21/07/10 5231 17
    10152 일상/생각가습기를 닦다가 2 사이시옷 20/01/06 6083 12
    9947 꿀팁/강좌뭉청멍청한 나를 위한 독서 정리법 8 사이시옷 19/11/06 6915 10
    9867 일상/생각소머리국밥 좋아하세요? 7 사이시옷 19/10/20 4848 12
    9889 일상/생각끌어 안는다는 것, 따뜻함을 느낀다는 것에 대해 3 사이시옷 19/10/25 5549 13
    9959 일상/생각쭈글쭈글 1 사이시옷 19/11/08 5052 6
    10007 일상/생각나이 9 사이시옷 19/11/20 5381 5
    10067 일상/생각도미노 인생 4 사이시옷 19/12/10 5876 21
    10133 일상/생각숫자로 보는 나의 2019년 / 독서 추천 5 사이시옷 19/12/31 6120 9
    10143 IT/컴퓨터새해 맞이 랜섬웨어 후기 16 사이시옷 20/01/03 6240 6
    10278 일상/생각다른 세계의 내가 준 깨달음 2 사이시옷 20/02/10 5560 10
    10400 일상/생각툭툭 2 사이시옷 20/03/19 5965 5
    10532 일상/생각왜 또, 매킨토시 21 사이시옷 20/04/27 5749 0
    10557 일상/생각엄마 4 사이시옷 20/05/07 4832 15
    10580 일상/생각제주도에서의 삶 12 사이시옷 20/05/13 5547 26
    11027 일상/생각나는 순혈 오리지날 코리안인가? 46 사이시옷 20/10/05 6711 22
    11193 일상/생각할아버지, 데리버거, 수영장 2 사이시옷 20/12/03 5193 23
    11287 꿀팁/강좌[새해맞이] 습관을 게임처럼! Habitica 11 사이시옷 20/12/28 6371 3
    11289 꿀팁/강좌[새해맞이] 의지력은 돈으로. beeminder 6 사이시옷 20/12/29 5589 5
    11341 일상/생각눈 가리고 아웅아웅 1 사이시옷 21/01/15 5286 7
    11356 일상/생각34살, 그 하루를 기억하며 7 사이시옷 21/01/21 5092 27
    11419 일상/생각왜 나는 시간 기록을 멈추었는가 6 사이시옷 21/02/15 5563 7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