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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5/14 20:43:43수정됨 |
Name | ar15Lover |
Subject | 유교(儒敎)에 대한 비판 |
우선 유교의 장점부터 이야기 해보겠습니다.(저는 무언가를 비판할 때는 장점부터 말합니다.) 일단 대표적인 유학자인 공자, 맹자가 살던 시대상황을 감안할 필요가 있습니다. 공자, 맹자는 춘추전국시대에 태어난 인물이었습니다. 춘추전국시대는, 천자의 권위는 땅으로 떨어지고, 주나라 왕실의 통제를 벗어난 제후국들의 다툼으로 인해 하루가 멀다하고 전쟁이 일어나던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 나타난 사상들은 "어떻게 해야 세상을 안정시키고 평화를 누릴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집중하는 성향이 강하죠. 공자를 시초로 등장한 유가(儒家) 역시 이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등장했습니다. 유가의 가르침, 즉 유교는 기본적으로 평화주의적 입니다. 기본적으로 전쟁을 싫어하죠. 또한 인(仁), 다시말해 '사람다움'을 중시했죠. 그래서 사람을 산채로 매장하는 순장 풍습, 극도의 통증과 신체훼손을 동반하는 잔인한 형벌에 기본적으로 반대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유교가 말하는 인(仁)은 동아시아 나름대로의 인권 개념 입니다. 또 유교는 기독교, 이슬람, 불교 등 다른 주요 종교들과는 다르게 세속주의 성향이 굉장히 강합니다. "군자불어괴력난신(君子不語怪力亂神)"이라는 문장으로 대표되죠. 그래서 유교는 기적, 사후세계, 또는 인격화된 신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얼핏 들은 이야기인데, 서양의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유교 특유의 세속주의 성향에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어쨋든 위에서 나열한 점들은 분명히 유교의 장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교에는 장점을 압도할만한 단점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유교라는 단어에는 더이상 긍정적인 이미지가 없죠.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유교라는 단어를 들으면 고리타분한 꼰대의 이미지를 떠올리죠. 유교에는 여러가지 혐의가 있습니다. 유교 때문에 근대화에 실패해 일본의 지배를 당하게 되었다. 유교 때문에 숨막히는 똥군기, 상명하복, 존대 문화가 생겼다. 유교 때문에 성차별이 극심해졌다. 등등... 이렇게 동네북이 된지 오래인 유교인데, 이상하게도 가끔씩 어떻게든 유교를 변호하려는 한국인들이 있더군요? 이들의 레퍼토리는 늘 똑같습니다. "원래의 유교는 그렇지 않았다. 그건 유교가 아니라 일제강점기와 군사독재를 거치며 생겨난 악습이다." "원래의 유교는 그렇지 않았다. 조선 전기만해도 안그랬는데 임진왜란을 겪으며 교조화되었을 뿐이다." "원래의 유교는 그렇지 않았다. 논어에 따르면 어쩌구저쩌구" 그러나 저는 좀 더 큰 맥락에서 유교를 비판해야한다고 봅니다. 가장 중요한건, 유교는 시작부터 지배자를 위한 사상이자 반동적인 사상이었다는 겁니다. 공자는 주(周)나라뽕에 심취해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상은 천자의 나라, 주나라의 종법(宗法)질서가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죠. 공자가 생각하기에 주나라 천자(天子)의 권위가 드높고, 휘하 제후국들이 천자에게 복종하던 시대야 말로 유토피아였습니다. 따라서 주나라의 법도가 회복되면 다시 평화로운 시대가 찾아올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가는 곳 마다 주나라의 질서를 회복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다녔죠. 따라서 유교의 핵심은 바로 천자의 나라를 섬기는 것입니다. 부모님에 대한 효도? 군주에 대한 충성? 이런건 전부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해요. 유교의 핵심은 천자의 나라를 섬기는 거에요. 조선이 중국을 사대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조선의 유학자들 입장에서 중국은 곧 천자의 나라고, 주나라의 종법질서에 따라 제후국 조선은 중국을 섬기는게 당연했던거죠. 그래서 조선의 왕은 즉위할 때 반드시 천자의 나라 중국으로부터 책봉을 받는 의식을 행해야 했죠. 우리가 귀에 못이박히도록 들은 부모에 대한 효도나 장유유서는 천자와 제후들의 관계를 일상에 적용한 것에 불과합니다. 이런 이유로, 앞서 말한 유교의 여러가지 장점에도 불구하고, 고대 중국의 봉건제와 신분질서를 긍정하는 유교는 현대의 민주정과는 양립할 수 없습니다. 이러면 반드시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아니다. 유교는 왕이 왕답지 못하면 쫓아내도 된다고 가르치는 혁명적인 사상이다." 얼핏보면 그럴듯한 말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한계가 있죠. 어디까지나 왕을 갈아치울 뿐이지, 주나라의 종법제 자체는 건드리지 않는다는거죠. 이런건 진정한 의미의 혁명이 아닙니다. 슬라보예 지젝이 말했죠. 선택지 중에서 하나를 고를 수 있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고. 선택지 자체를 바꿀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자유라고요. 마찬가지로, 이 왕을 저 왕으로 바꾸는건 혁명이 아니죠. 아예 왕정 자체를 폐지하고 공화정, 민주정 등으로 교체할 수 있어야 혁명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행위야 말로 유교에서 결코 용납할 수 없는 행위인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유교의 핵심은 천자-제후-경-대부-사 로 이루어진 주나라의 종법제를 회복하는데에 있습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신분질서를 긍정합니다. 이것만으로도 유교는 현대 민주정에서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사상입니다. 그런 의미로 저는 왜 일부 한국인들이 유교를 금이야 옥이야 못지켜 안달인지 모르겠습니다. 아, 물론 그분들이 진심으로 지금의 민주주의는 잘못되었다고 믿고, 주나라의 봉건질서를 회복하고자 하는거라면, 동의는 못하겠지만 이해는 갑니다. 최소한 일관성은 있는 것이니까요. ==== 피드백 ==== 레퍼런스가 부족하다는 점에 대해 피드백드리겠습니다. 유교를 '주나라의 종법제를 따라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자는 사상'로 정의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일단 대표적인 유교경전인 논어를 봐도, 공자는 여러차례 주나라를 칭송하는 발언을 합니다. 子曰周監於二代郁郁乎文哉吾從周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주나라는 하와 은 이대(二代)를 보았으니, 찬란하다 그 문채여. 나는 주나라를 따르리라.” 子曰甚矣吾衰也久矣吾不復夢見周公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심하구나, 나의 노쇠함이여! 오래도록 나는 주공을 꿈에서 다시 뵙지 못하였다.” 子曰夫召我者而豈徒哉如有用我者吾其爲東周乎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를 부르는 사람이 어찌 공연히 부르겠느냐? 나를 써 주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곳의 동쪽의 주나라로 만들 것이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공자가 주나라를 이상으로 삼았다는 글들이 여럿 있습니다. https://www.mk.co.kr/opinion/columnists/view/2012/01/55740/ ([최진석의 ‘풀어쓰는 동양학’] 중국 고대 봉건질서를 규정한 ‘종법’…토지의 구속에서 民 풀어 상업 꽃피워)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8182 (공자는 왜 주나라의 토지제도를 지키려고 했던가?) http://www.newsfreezone.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58 (다시 생각나는 공자, 그는 성공한 정치가?) 구글 북에 검색하면 다음과 같은 결과들이 나옵니다. https://books.google.co.kr/books?id=BYRqDwAAQBAJ&pg=PT84&dq=%EC%A3%BC%EB%82%98%EB%9D%BC+%EA%B3%B5%EC%9E%90&hl=en&sa=X&ved=0ahUKEwjpzpjyt7XpAhWTxYsBHYlaDloQ6AEIMTAB#v=onepage&q=%EC%A3%BC%EB%82%98%EB%9D%BC%20%EA%B3%B5%EC%9E%90&f=false (공자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 https://books.google.co.kr/books?id=UI6sitphRksC&pg=PP24&dq=%EC%A3%BC%EB%82%98%EB%9D%BC+%EA%B3%B5%EC%9E%90&hl=en&sa=X&ved=0ahUKEwjpzpjyt7XpAhWTxYsBHYlaDloQ6AEIaDAG#v=onepage&q=%EC%A3%BC%EB%82%98%EB%9D%BC%20%EA%B3%B5%EC%9E%90&f=false (공자제자들에게정치를묻다) 주나라의 노래를 담은 '시경', 주나라의 세계관을 다룬 '주역'은 각각 유교의 주요 경전인 사서삼경에 포함되어있으며, 주나라의 예법을 다룬 '주례'는 십삼경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교에 있어 사서삼경과 십삼경이 차지하는 권위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것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조선시대의 유학자들은 오랜기간 중국을 천자의 나라로 여겨 숭배해왔으며, 조선의 왕조차도 취임할때 중국의 천자로부터 책봉을 받는 의식을 치루었습니다. 출처: https://books.google.co.kr/books?id=QVYTBgAAQBAJ&lpg=RA2-PT322&ots=nVS6L2AYSF&dq=%EC%A1%B0%EC%84%A0%20%EC%99%95%20%EC%B1%85%EB%B4%89%20%EC%B2%9C%EC%9E%90&pg=RA2-PT322#v=onepage&q&f=false 이런 점에서, 유교는 주나라의 질서와 예법을 핵심으로 하는 사상이 맞다고 봅니다. 제가 만약 유교에 있어 주나라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유학자들이 제일 먼저 분개할 것입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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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임말이 있으니 반말도 있는 것이겠지만, 언어의 힘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더 강력한 것 같습니다. 끊임없이 상대와 나의 서열을 각인시키는 효과도 있고. 최근에 비극적인 경비원 사건도 있었죠. (이건 가해자가 보통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높임의 단계(?)도 줄어들고, 언어도 시대를 반영해 서서히 바뀌어가고 있는 것 같지만, 다 반말을 쓰는 것은 어려워도, 가능한 서로 존중하는 혹은 높임말 쓰는 분위기가 되면 하는 개인적 희망이 있습니다.
높임의 단계(?)도 줄어들고, 언어도 시대를 반영해 서서히 바뀌어가고 있는 것 같지만, 다 반말을 쓰는 것은 어려워도, 가능한 서로 존중하는 혹은 높임말 쓰는 분위기가 되면 하는 개인적 희망이 있습니다.
유교는 정치나 제사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동아시아의 한자문화권 전체사회문화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중에 주나라로 돌아가고자 하는 공자의 발언은 당시의 불안정한 정치상황을 비판하기 위해서 과거의 상황을 인용한 것으로 해석해야지, 그것 자체가 유교의 핵심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유교는 비판해도 되고, 비판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일부 한국인들이 말씀하신 것처럼 모순된 행동을 하고 있다고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현대 민주정이 절대선도 아니라고 생각하거니와, 민주정과 유교가 양립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혁명이 가능하지 않다고 하셨는데, 가까운 예로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으로 혁명한 대표적인 공신은 유학자 정도전입니다.
유교는 비판해도 되고, 비판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일부 한국인들이 말씀하신 것처럼 모순된 행동을 하고 있다고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현대 민주정이 절대선도 아니라고 생각하거니와, 민주정과 유교가 양립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혁명이 가능하지 않다고 하셨는데, 가까운 예로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으로 혁명한 대표적인 공신은 유학자 정도전입니다.
일단 유교가 뭔지부터가 충분히 이야기되어야 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 글이 적절한 갈음이 될겁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900717.html
이 글이 적절한 갈음이 될겁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900717.html
유교가 현대적 관점에서 잘 안 맞는 부분은 있지만 굳이 반동적인 사상이라고 봐야할지는 모르겠네요.
2천년도 더 전에 서열화된 군주제가 당연시되던 시대에 그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이상적인 방향을 주창한 것 뿐이지, 민주정이나 평등의 개념이 보편화된 모습을 그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이억만리 아테네의 민주정을 풍문으로라도 들었다면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군주 중심이긴 해도 인(仁)이라는 애민 정신을 바탕으로 했던, 당시로서는 충분히 매력적인 사상이었기에 이후 2천년을 내려오며 동아시아의 주류 사상이 될 수 있었던 거겠죠. 서열화... 더 보기
2천년도 더 전에 서열화된 군주제가 당연시되던 시대에 그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이상적인 방향을 주창한 것 뿐이지, 민주정이나 평등의 개념이 보편화된 모습을 그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이억만리 아테네의 민주정을 풍문으로라도 들었다면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군주 중심이긴 해도 인(仁)이라는 애민 정신을 바탕으로 했던, 당시로서는 충분히 매력적인 사상이었기에 이후 2천년을 내려오며 동아시아의 주류 사상이 될 수 있었던 거겠죠. 서열화... 더 보기
유교가 현대적 관점에서 잘 안 맞는 부분은 있지만 굳이 반동적인 사상이라고 봐야할지는 모르겠네요.
2천년도 더 전에 서열화된 군주제가 당연시되던 시대에 그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이상적인 방향을 주창한 것 뿐이지, 민주정이나 평등의 개념이 보편화된 모습을 그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이억만리 아테네의 민주정을 풍문으로라도 들었다면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군주 중심이긴 해도 인(仁)이라는 애민 정신을 바탕으로 했던, 당시로서는 충분히 매력적인 사상이었기에 이후 2천년을 내려오며 동아시아의 주류 사상이 될 수 있었던 거겠죠. 서열화된 질서도 단순하고 편하다는 나름의 장점이 있지 않나요. ㅎㅎ 시대를 흐르며 애민정신은 빛바래고 서열화된 질서라는 형식만 두드러지는데, 본질이 퇴색하고 곁다리만 남는 건 어느 가르침이나 마찬가지잖아요. 한국의 개신교가 엉망이라고 예수를 손가락질하진 않는 것처럼, 공자도 무척이나 억울하지 않을까요?
2천년도 더 전에 서열화된 군주제가 당연시되던 시대에 그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이상적인 방향을 주창한 것 뿐이지, 민주정이나 평등의 개념이 보편화된 모습을 그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이억만리 아테네의 민주정을 풍문으로라도 들었다면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군주 중심이긴 해도 인(仁)이라는 애민 정신을 바탕으로 했던, 당시로서는 충분히 매력적인 사상이었기에 이후 2천년을 내려오며 동아시아의 주류 사상이 될 수 있었던 거겠죠. 서열화된 질서도 단순하고 편하다는 나름의 장점이 있지 않나요. ㅎㅎ 시대를 흐르며 애민정신은 빛바래고 서열화된 질서라는 형식만 두드러지는데, 본질이 퇴색하고 곁다리만 남는 건 어느 가르침이나 마찬가지잖아요. 한국의 개신교가 엉망이라고 예수를 손가락질하진 않는 것처럼, 공자도 무척이나 억울하지 않을까요?
아니오. 반동적인 사상 맞습니다. 공자는 당대에 이미 그 힘을 잃은 주나라의 봉건질서를 되살려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이미 지나간 옛것을 부활시키려 한다는 점에서 반동적인 사상 맞습니다. 노자 역시 공자를 만났을 때 그 점을 지적했습니다.
“당신이 말하는 성현들은 이미 뼈가 다 썩어지고 오직 그 말만이 남아 있을 뿐이오, 또 군자는 때를 만나면 관리가 되지만, 때를 만나지 못하면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는 다북쑥처럼 떠돌이 신세가 되오. 훌륭한 상인은 물건을 깊숙이 숨겨 두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군자는 아름다운 덕을... 더 보기
“당신이 말하는 성현들은 이미 뼈가 다 썩어지고 오직 그 말만이 남아 있을 뿐이오, 또 군자는 때를 만나면 관리가 되지만, 때를 만나지 못하면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는 다북쑥처럼 떠돌이 신세가 되오. 훌륭한 상인은 물건을 깊숙이 숨겨 두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군자는 아름다운 덕을... 더 보기
아니오. 반동적인 사상 맞습니다. 공자는 당대에 이미 그 힘을 잃은 주나라의 봉건질서를 되살려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이미 지나간 옛것을 부활시키려 한다는 점에서 반동적인 사상 맞습니다. 노자 역시 공자를 만났을 때 그 점을 지적했습니다.
“당신이 말하는 성현들은 이미 뼈가 다 썩어지고 오직 그 말만이 남아 있을 뿐이오, 또 군자는 때를 만나면 관리가 되지만, 때를 만나지 못하면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는 다북쑥처럼 떠돌이 신세가 되오. 훌륭한 상인은 물건을 깊숙이 숨겨 두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군자는 아름다운 덕을 지니고 있지만 모양새는 어리석은 것처럼 보인다고 나는 들었소. 그대의 교만과 지나친 욕망, 위선적인 표정과 끝없는 야심을 버리시오. 이러한 것들은 그대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소. 내가 그대에게 할 말은 단지 이것뿐이오.”
공자와 노자가 실제로 만나기는 했는지, 만났다 하더라도 저런 말이 정말로 오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쨋든 정곡을 찌르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말하는 성현들은 이미 뼈가 다 썩어지고 오직 그 말만이 남아 있을 뿐이오, 또 군자는 때를 만나면 관리가 되지만, 때를 만나지 못하면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는 다북쑥처럼 떠돌이 신세가 되오. 훌륭한 상인은 물건을 깊숙이 숨겨 두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군자는 아름다운 덕을 지니고 있지만 모양새는 어리석은 것처럼 보인다고 나는 들었소. 그대의 교만과 지나친 욕망, 위선적인 표정과 끝없는 야심을 버리시오. 이러한 것들은 그대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소. 내가 그대에게 할 말은 단지 이것뿐이오.”
공자와 노자가 실제로 만나기는 했는지, 만났다 하더라도 저런 말이 정말로 오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쨋든 정곡을 찌르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논의를 더 진행하기 전에 용어에 대한 정의가 서로 다름을 감안하면 좋을것 같습니다. 혁명이라는 단어의 유래는 "은(殷)의 탕왕(蕩王)이 하(夏)의 걸왕(桀王)을 내 쫓고 주(周)의 주왕을 치고 혁명을 일으켜서 하늘에 순하고 사람에 응했다." 나오는 것처럼 왕조의 교체를 혁명으로 정의합니다. Revolution 이라는 단어도 revolve에서 기원한 "회전하다->권력의 이동" 등과 같은 새로운 사회 시스템의 등장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왕조교체는 한반도에서 권력의 교체 그리고 사상의 전환이 일어... 더 보기
논의를 더 진행하기 전에 용어에 대한 정의가 서로 다름을 감안하면 좋을것 같습니다. 혁명이라는 단어의 유래는 "은(殷)의 탕왕(蕩王)이 하(夏)의 걸왕(桀王)을 내 쫓고 주(周)의 주왕을 치고 혁명을 일으켜서 하늘에 순하고 사람에 응했다." 나오는 것처럼 왕조의 교체를 혁명으로 정의합니다. Revolution 이라는 단어도 revolve에서 기원한 "회전하다->권력의 이동" 등과 같은 새로운 사회 시스템의 등장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왕조교체는 한반도에서 권력의 교체 그리고 사상의 전환이 일어난 혁명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서양의 명예혁명, 프랑스혁명, 독립혁명 같은 민중으로 주권을 확장하는 것만을 혁명으로 정의하시고 논의를 전개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맞습니다. 유교는 아브라함 계통의 유일신 종교와는 다른 형태로 야훼도 없고, 천국도 없습니다. 오히려 절대자에 대한 종교가 아니라 학문에 가까운 동아시아인의 삶의 방식으로 저는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맞습니다. 유교는 아브라함 계통의 유일신 종교와는 다른 형태로 야훼도 없고, 천국도 없습니다. 오히려 절대자에 대한 종교가 아니라 학문에 가까운 동아시아인의 삶의 방식으로 저는 보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노자가 했다는 말은 속세에 집착하는 공자의 관점을 도가적 관점에서 비판한 말이라고 생각되는데요.
옛것을 부활시키려 하면 반동적인가요? 천하가 사분오열되어 질서가 없고 군웅들의 아귀다툼 속에서 백성들이 도탄에 빠져있을 때, 질서를 찾아 백성들을 편하게 하자는게 뭐가 그리 반동적인가요. 그가 부활시키려한 것은 주나라 황실이 아니라 군왕 중심으로 위계질서가 잡힌 상태에서 각자의 소임을 다하게 하는 국가 아닌가요.
옛것을 부활시키려 하면 반동적인가요? 천하가 사분오열되어 질서가 없고 군웅들의 아귀다툼 속에서 백성들이 도탄에 빠져있을 때, 질서를 찾아 백성들을 편하게 하자는게 뭐가 그리 반동적인가요. 그가 부활시키려한 것은 주나라 황실이 아니라 군왕 중심으로 위계질서가 잡힌 상태에서 각자의 소임을 다하게 하는 국가 아닌가요.
의도가 좋았어도 여전히 반동은 반동입니다. "당신이 말하는 성현들은 이미 뼈가 다 썩어지고 오직 그 말만이 남아 있을 뿐이오"가 공자의 사상이 반동적인걸 지적하고 있는 부분이에요. 어떤 한국 사람이 '진지하게 생각해봤는데, 야, 한국인들한테는 민주주의가 안어울리는 것 같아. 툭하면 갈라져 싸우기나하고. 한국인한테는 박정희식 군사독재가 딱이야. 우리 앞으로 군사독재하자!' 하면 그 의도가 아무리 선하든 그건 반동적인거죠. 당대 공자가 딱 그짝이었고요. 공자는 주나라 왕실을 부활시키진 못하더라도 주나라 왕실의 그것과 동일한 역할을 해줄 나라를 찾아다녔죠. 진짜 주나라 왕실을 부활시키던 그것의 대체제를 찾던 뭐가 중요합니까? 중요한건 공자가 주나라 시절의 봉건제를 다시 시작하려 했다는 거에요.
현대적 관점에서 민주정이 전제군주제보다 진보적이고 발전된 체제라고 전제하는 것이 쉽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말씀하신 예는 반동적인 주장이 되겠죠. 그러나 공자시대에는 전제군주제가 상수처럼 받아들여진 시대였어요. 주나라 황실이 몰락하고 백가쟁명하는 춘추전국시대가 온 것은 진보한 것이 아니라 권력의 공백으로 인해 질서가 무질서로 바뀐 것 뿐이죠. 선한 의도이기 때문에 반동이 아닌 것이 아니라,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 질서의 회복을 꾀한 것을 단지 앞선 시대의 것을 따르자고 해서 반동이라고 볼 수 없다는 뜻이에요.
유교에 대한 비판
성리학에 대한 비판
조선 성리학에 대한 비판
조선 후기 성리학에 대한 비판
한국전쟁 후 조선 성리학의 유산에 대한 고찰
위에서 밑으로 갈수록 더 의미있는 주제가 될 겁니다. 더 구체적으로 categorizing해야 서로 말하는 것도 맞는 거지요.
성리학에 대한 비판
조선 성리학에 대한 비판
조선 후기 성리학에 대한 비판
한국전쟁 후 조선 성리학의 유산에 대한 고찰
위에서 밑으로 갈수록 더 의미있는 주제가 될 겁니다. 더 구체적으로 categorizing해야 서로 말하는 것도 맞는 거지요.
제사 지내면 민주주의에 반하는 반동분자네요.
게다가 그 뿌리가 유태민족의 토속신앙이며 로마에 의해 바뀐 뒤에도 용서, 검소 등 노예근성을 미덕으로 내세우며 봉건시대 사람들의 사상을 억압할 목적으로 사용되어 온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도 전부 민주주의에 반하는 반동분자겠지요? 예를 들어 흑인인권운동가셨던 마틴루터킹 목사님같은 분들이요.
게다가 그 뿌리가 유태민족의 토속신앙이며 로마에 의해 바뀐 뒤에도 용서, 검소 등 노예근성을 미덕으로 내세우며 봉건시대 사람들의 사상을 억압할 목적으로 사용되어 온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도 전부 민주주의에 반하는 반동분자겠지요? 예를 들어 흑인인권운동가셨던 마틴루터킹 목사님같은 분들이요.
단순히 문화 보존 차원의 제사라면 별 문제가 안되겠죠. 그런데 진지하게 동아시아에는 유교가 잘 어울린다, 민주주의라고 해서 다 좋은건 아니다 이런 소리를 하고 다니면, 의도를 의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레파토리도 부실한데요. 우선 본문 앞에서 얘기하신 유교의 혐의라는 것들은
유교 때문에 근대화에 실패해 일본의 지배를 당하게 되었다.
->근거가?
유교 때문에 숨막히는 똥군기, 상명하복, 존대 문화가 생겼다.
유교 때문에 성차별이 극심해졌다.
-> 까는 레파토리가 똑같으니 옹호하는 레파토리도 똑같음
그리고 글쓴이께서 주장하신 레파토리를 볼까요.
'유교의 핵심은 천자의 나라를 섬기는 것' '그러므로 현대민주정과 양립할 수 없음'
앞의 것에는 답이 이미 본문에 있는 것 같은데요? '유교는 그... 더 보기
유교 때문에 근대화에 실패해 일본의 지배를 당하게 되었다.
->근거가?
유교 때문에 숨막히는 똥군기, 상명하복, 존대 문화가 생겼다.
유교 때문에 성차별이 극심해졌다.
-> 까는 레파토리가 똑같으니 옹호하는 레파토리도 똑같음
그리고 글쓴이께서 주장하신 레파토리를 볼까요.
'유교의 핵심은 천자의 나라를 섬기는 것' '그러므로 현대민주정과 양립할 수 없음'
앞의 것에는 답이 이미 본문에 있는 것 같은데요? '유교는 그... 더 보기
그 레파토리도 부실한데요. 우선 본문 앞에서 얘기하신 유교의 혐의라는 것들은
유교 때문에 근대화에 실패해 일본의 지배를 당하게 되었다.
->근거가?
유교 때문에 숨막히는 똥군기, 상명하복, 존대 문화가 생겼다.
유교 때문에 성차별이 극심해졌다.
-> 까는 레파토리가 똑같으니 옹호하는 레파토리도 똑같음
그리고 글쓴이께서 주장하신 레파토리를 볼까요.
'유교의 핵심은 천자의 나라를 섬기는 것' '그러므로 현대민주정과 양립할 수 없음'
앞의 것에는 답이 이미 본문에 있는 것 같은데요? '유교는 그런거 아니다'
공자가 언제때 사람인데 현대민주정과 양립할 수 없다는게 깔거리가 됩니까.
BC500년, 2500년전 사람인데요. 시대보정을 해야하는 거죠.
1949년생 슬라보예 지젝의 말가지고 BC551년생 공자를 까요?
딱 2500년 차이네요. 무슨 이세계 먼치킨썰도 아니고 현대에 태어나 현대문물의 세례를
받은 지식으로 원시인들 앞에서 지식자랑 윤리자랑하는 꼴이죠.
민주주의라는 미국에서 노예제가 있었던게 언제까지입니까.
유교의 조선에도 노비는 있었지만 거적말아 두들겨패죽일지언정
자식의 손발을 잘라 부모에게 던져주진 않았습니다.
조선인들이 서양인보다 덜 잔인해서가 아니고 착해서도 아니고
꼰대 유교에서 인격수양을 강조하며 그런 짓은 천박하다고 인격적이지 않다고 주입해서죠.
유교를 옹호하는 레파토리에서 지금 천자의 나라를 섬기고 주나라로 돌아가자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허수아비도 적당히 쳐야죠. 그런 유교근본주의자가 있기나 한가요.
유교사상은 과거 충분한 역할을 해왔고 2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용한 면이 남은겁니다.
유교 때문에 근대화에 실패해 일본의 지배를 당하게 되었다.
->근거가?
유교 때문에 숨막히는 똥군기, 상명하복, 존대 문화가 생겼다.
유교 때문에 성차별이 극심해졌다.
-> 까는 레파토리가 똑같으니 옹호하는 레파토리도 똑같음
그리고 글쓴이께서 주장하신 레파토리를 볼까요.
'유교의 핵심은 천자의 나라를 섬기는 것' '그러므로 현대민주정과 양립할 수 없음'
앞의 것에는 답이 이미 본문에 있는 것 같은데요? '유교는 그런거 아니다'
공자가 언제때 사람인데 현대민주정과 양립할 수 없다는게 깔거리가 됩니까.
BC500년, 2500년전 사람인데요. 시대보정을 해야하는 거죠.
1949년생 슬라보예 지젝의 말가지고 BC551년생 공자를 까요?
딱 2500년 차이네요. 무슨 이세계 먼치킨썰도 아니고 현대에 태어나 현대문물의 세례를
받은 지식으로 원시인들 앞에서 지식자랑 윤리자랑하는 꼴이죠.
민주주의라는 미국에서 노예제가 있었던게 언제까지입니까.
유교의 조선에도 노비는 있었지만 거적말아 두들겨패죽일지언정
자식의 손발을 잘라 부모에게 던져주진 않았습니다.
조선인들이 서양인보다 덜 잔인해서가 아니고 착해서도 아니고
꼰대 유교에서 인격수양을 강조하며 그런 짓은 천박하다고 인격적이지 않다고 주입해서죠.
유교를 옹호하는 레파토리에서 지금 천자의 나라를 섬기고 주나라로 돌아가자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허수아비도 적당히 쳐야죠. 그런 유교근본주의자가 있기나 한가요.
유교사상은 과거 충분한 역할을 해왔고 2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용한 면이 남은겁니다.
결국 유교가 시대적으로 뒤쳐진건 인정하시는군요. 마지막 문단에서 "지금 천자의 나라 섬기자는 사람이 어딨냐?"라고 하신 이 말씀을 조선시대 유생들 앞에서 하신다면 큰일날겁니다. 유교의 핵심을 부정하고 나라의 근간을 통째로 부정하는 발언이니까요. 천자도 없고, 주나라도 없는 유교는 마치 앙꼬없는 찐빵, 카페인 없는 커피, 김빠진 콜라 같은 겁니다. 2500년이 지난 지금 유교의 유용한 면이 남았다는데, 대체 천자도 없고 주나라도 없는 유교의 유용한 면이 뭐죠? 설령 유교에 유용한 면이 남아있다고 해도, 아무런 권위도 없는 유교의 가르침을 따를 이유는요?
원시유교도 그렇겠지만, 특히 성리학의 경우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평등개념이 결여되어 있어서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렵죠. 굳이 비판할 가치도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뭐 다른사람들에게 착하게 대해라(기소불욕 물시어인), 공부 열심히 해라(학이시습지 불역열호아) 등등 파편화된 메시지로서 참고할 만한 부분은 있겠습니다만...
그렇죠 조선시대니까요. 중세 유럽에서 진화론 얘기해도 큰일났을겁니다.
기독교의 유용한면은 7일만에 천지가 창조된 데 있는게 아니라 원수를 사랑하라는데 있습니다.
유교의 유용한면은 주나라를 따르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수오지심과 측은지심을 가지는데 있지요.
(일례를 들은 것이지 저거밖에 없는 건 아닙니다-_-)
유교 안따른다고 잡아가지도 주리를 틀지도 않는 시대니까 안 따르셔도 됩니다.
유교의 가르침에 공감하고 동감하니까 따르죠.
기독교의 유용한면은 7일만에 천지가 창조된 데 있는게 아니라 원수를 사랑하라는데 있습니다.
유교의 유용한면은 주나라를 따르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수오지심과 측은지심을 가지는데 있지요.
(일례를 들은 것이지 저거밖에 없는 건 아닙니다-_-)
유교 안따른다고 잡아가지도 주리를 틀지도 않는 시대니까 안 따르셔도 됩니다.
유교의 가르침에 공감하고 동감하니까 따르죠.
유교의 본질은 그것의 정상사관 및 신분질서를 떠나서 찾을 수 없다고 봅니다. 나중에 성리학으로 공론화하지요.
현대에는 생명력이 없는 사상으로 간주되나, 남북한에서만은 그 화석이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현대에는 생명력이 없는 사상으로 간주되나, 남북한에서만은 그 화석이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선 "기독교의 유용한면은 7일만에 천지가 창조된 데 있는게 아니라 원수를 사랑하라는데 있습니다."라는 문장에 동의하지 않을 기독교인이 많으리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네, 유교의 유용한면은 아래 댓글에서 다른분이 지적하신것처럼 기소불욕 물시어인, 학이시습지 불역열호아 같은 파편화된 메시지를 참고하는 선에서 끝납니다.
정말로 자기수양을 하고 싶다면 유교 경전을 읊을바에야 차라리 시중의 자기개발서를 읽던가, 유튜브에서 조던 피터슨의 동기부여 영상을 본다던가 하는게 나을겁니다. 뭐 '나는 그래도 끝까지 유교 안놓겠다' 하시는 분 있으면 뭐 그건 그분 자유인거고, 아무도 안말립니다. 다만 유교를 파편화된 메시지를 넘는 그 무언가로 포장하지 않았으면 하는거죠.
네, 유교의 유용한면은 아래 댓글에서 다른분이 지적하신것처럼 기소불욕 물시어인, 학이시습지 불역열호아 같은 파편화된 메시지를 참고하는 선에서 끝납니다.
정말로 자기수양을 하고 싶다면 유교 경전을 읊을바에야 차라리 시중의 자기개발서를 읽던가, 유튜브에서 조던 피터슨의 동기부여 영상을 본다던가 하는게 나을겁니다. 뭐 '나는 그래도 끝까지 유교 안놓겠다' 하시는 분 있으면 뭐 그건 그분 자유인거고, 아무도 안말립니다. 다만 유교를 파편화된 메시지를 넘는 그 무언가로 포장하지 않았으면 하는거죠.
그렇다면 불특정다수의 회원들에게 화를 내시기 보다는 그런 분들을 찾아가셔서 화를 내시는 게 어떨까요. 본문에 반론을 제시하는 분들도 동아시아에 유교가 어울린다, 주나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런 얘기도 안 하시는데 마치 그런 분들인 것처럼 화나신 게 보여요. 총기 글에서는 총기를 반대하는 분을 금치산자로 몰아가더니, 이번엔 유교를 싫어하고 역사의 죄인으로 바라보지 않는 사람들을 반동분자 취급 하시는 군요.
거기에 동의하지 않을 기독교인이 많을지몰라도 기독교의 유용함이 거기 있는 건 사실이죠.
솔직히 말해서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의 유용함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라 봅니다.
저는 날라리지만 천주교 신자고, 저희 집은 제사도 안지내요.
지금 끝까지 유교 안놓겠다라고 하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겠고
과거 유교를 옹호하거나 근대화실패가 유교탓이 아니라는건 유교를 안놓는 것도 아니고
자기수양도 아니에요. 그냥 틀리거나 근거가 부족한 말이니까 그렇게 말하는거고
지금 본문내용을 보고 유교안놓겠다 하는 사람을 아무... 더 보기
솔직히 말해서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의 유용함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라 봅니다.
저는 날라리지만 천주교 신자고, 저희 집은 제사도 안지내요.
지금 끝까지 유교 안놓겠다라고 하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겠고
과거 유교를 옹호하거나 근대화실패가 유교탓이 아니라는건 유교를 안놓는 것도 아니고
자기수양도 아니에요. 그냥 틀리거나 근거가 부족한 말이니까 그렇게 말하는거고
지금 본문내용을 보고 유교안놓겠다 하는 사람을 아무... 더 보기
거기에 동의하지 않을 기독교인이 많을지몰라도 기독교의 유용함이 거기 있는 건 사실이죠.
솔직히 말해서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의 유용함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라 봅니다.
저는 날라리지만 천주교 신자고, 저희 집은 제사도 안지내요.
지금 끝까지 유교 안놓겠다라고 하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겠고
과거 유교를 옹호하거나 근대화실패가 유교탓이 아니라는건 유교를 안놓는 것도 아니고
자기수양도 아니에요. 그냥 틀리거나 근거가 부족한 말이니까 그렇게 말하는거고
지금 본문내용을 보고 유교안놓겠다 하는 사람을 아무도 안말린다고 하면 좀
이상한 겁니다. 아무리봐도 at15Lover님께서 말리고 있다고 보이거든요.
솔직히 말해서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의 유용함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라 봅니다.
저는 날라리지만 천주교 신자고, 저희 집은 제사도 안지내요.
지금 끝까지 유교 안놓겠다라고 하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겠고
과거 유교를 옹호하거나 근대화실패가 유교탓이 아니라는건 유교를 안놓는 것도 아니고
자기수양도 아니에요. 그냥 틀리거나 근거가 부족한 말이니까 그렇게 말하는거고
지금 본문내용을 보고 유교안놓겠다 하는 사람을 아무도 안말린다고 하면 좀
이상한 겁니다. 아무리봐도 at15Lover님께서 말리고 있다고 보이거든요.
일단 그 주나라가 그 주나라를 얘기한 것도 맞지만 그렇다고 그 주나라만을 얘기하는 건 아닙니다. 일종의 유토피아에 가까운 거기도 하고요. 2천5백년의 사상가의 얘기가 당연히 지금 시대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는 건 당연한 얘기입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로 법원 판례만 봐도 2020년에 나왔다간 나라가 뒤집힐만한 판결이 가득해요. 유학이라는 게 공자가 얘기한 그 글자 그대로 전해지고 해석된 것도 아니고, 수많은 학자들을 통해 다르게 해석되기도 하고 강조되는 내용도 시대마다 달랐습니다. 유교의 악영향 정도라면 당연히 실재하기도 했고... 더 보기
일단 그 주나라가 그 주나라를 얘기한 것도 맞지만 그렇다고 그 주나라만을 얘기하는 건 아닙니다. 일종의 유토피아에 가까운 거기도 하고요. 2천5백년의 사상가의 얘기가 당연히 지금 시대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는 건 당연한 얘기입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로 법원 판례만 봐도 2020년에 나왔다간 나라가 뒤집힐만한 판결이 가득해요. 유학이라는 게 공자가 얘기한 그 글자 그대로 전해지고 해석된 것도 아니고, 수많은 학자들을 통해 다르게 해석되기도 하고 강조되는 내용도 시대마다 달랐습니다. 유교의 악영향 정도라면 당연히 실재하기도 했고 충분히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걸 유교의 본질적인 문제라고 하기에는 기본적으로 유학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계신 것 같진 않습니다.
실제로 한번 본문에 제기된 혐의들이 정말 유학 때문인지 논증이라도 해주시면 좋겠어요.
그리고 선택지를 바꿀 수 있다는 게 자유라고 한다면 어떤 사상이건 깊게 파고 들어갔을 때도 선택지를 바꿀 수 있는 게 얼마나 있을까요? 아무리 자유로운 종교라도 그 종교의 신을 부정하고 그에 반대되는 악한 존재를 섬기는 게 그 종교 내에서 인정받는 곳도 있나요?
멀리 갈 것 없이 서양 근대철학이나 현대철학자들의 '여성'에 대한 생각은 흠좀무스럽습니다. 이성을 얘기하는 칸트가 생각하는 여성을 현대의 학자가 얘기한다면 학계는 커녕 사교계에 다신 발도 못 붙일 겁니다. 그렇다고 칸트를 공부하고 칸트를 얘기하는 사람들이 사라지거나 그런 학습이 의미를 잃는 건 아닙니다. 그 사람들이 칸트의 모든 것에 동의하는 것도 아니고요. 시대적 한계를 인지하고, 걸러낼 건 걸러내고 시대적 보정을 거치더라도 의미를 가지는 것들을 솎아내는 거죠. 그리고 지금 역시도 사고의 한계에 갇혀 무언가를 잘못 바라볼 수 있다는 반면교사도 되겠고요. 유교는 본질이 신분제다.. 라고 하실 텐데 사서삼경 잠깐이라도 훑어보시면 그런 종법, 예법 같은 것과 무관하게 '수신'만으로도 얼마나 가치있는 내용이 있는지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실제로 한번 본문에 제기된 혐의들이 정말 유학 때문인지 논증이라도 해주시면 좋겠어요.
그리고 선택지를 바꿀 수 있다는 게 자유라고 한다면 어떤 사상이건 깊게 파고 들어갔을 때도 선택지를 바꿀 수 있는 게 얼마나 있을까요? 아무리 자유로운 종교라도 그 종교의 신을 부정하고 그에 반대되는 악한 존재를 섬기는 게 그 종교 내에서 인정받는 곳도 있나요?
멀리 갈 것 없이 서양 근대철학이나 현대철학자들의 '여성'에 대한 생각은 흠좀무스럽습니다. 이성을 얘기하는 칸트가 생각하는 여성을 현대의 학자가 얘기한다면 학계는 커녕 사교계에 다신 발도 못 붙일 겁니다. 그렇다고 칸트를 공부하고 칸트를 얘기하는 사람들이 사라지거나 그런 학습이 의미를 잃는 건 아닙니다. 그 사람들이 칸트의 모든 것에 동의하는 것도 아니고요. 시대적 한계를 인지하고, 걸러낼 건 걸러내고 시대적 보정을 거치더라도 의미를 가지는 것들을 솎아내는 거죠. 그리고 지금 역시도 사고의 한계에 갇혀 무언가를 잘못 바라볼 수 있다는 반면교사도 되겠고요. 유교는 본질이 신분제다.. 라고 하실 텐데 사서삼경 잠깐이라도 훑어보시면 그런 종법, 예법 같은 것과 무관하게 '수신'만으로도 얼마나 가치있는 내용이 있는지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선생님, 일반 댓글이기는 하지만 이건 운영진으로 다는 댓글입니다. 시정권고 단계로 넘어가기 전 사전주의를 드리고자 합니다. 운영메세지를 보내기 시작하면 이번처럼 자세하게 댓글을 달지 않을 것입니다.
다양한 의견을 개진해서 티타임을 활기차게 만들어주시는 것은 좋습니다. 다만 지금까지 올려주셨던 글을 종합해 볼 때 우려되는 사항이 있습니다.
1. 레퍼런스 없는 대담하고 단정적인 주장
https://redtea.kr/?b=3&n=10478 이 글에서 특히 강했었... 더 보기
다양한 의견을 개진해서 티타임을 활기차게 만들어주시는 것은 좋습니다. 다만 지금까지 올려주셨던 글을 종합해 볼 때 우려되는 사항이 있습니다.
1. 레퍼런스 없는 대담하고 단정적인 주장
https://redtea.kr/?b=3&n=10478 이 글에서 특히 강했었... 더 보기
선생님, 일반 댓글이기는 하지만 이건 운영진으로 다는 댓글입니다. 시정권고 단계로 넘어가기 전 사전주의를 드리고자 합니다. 운영메세지를 보내기 시작하면 이번처럼 자세하게 댓글을 달지 않을 것입니다.
다양한 의견을 개진해서 티타임을 활기차게 만들어주시는 것은 좋습니다. 다만 지금까지 올려주셨던 글을 종합해 볼 때 우려되는 사항이 있습니다.
1. 레퍼런스 없는 대담하고 단정적인 주장
https://redtea.kr/?b=3&n=10478 이 글에서 특히 강했었고, 이번 글에서 다시 두드러집니다. 강한 주장을 하려면 다른 사람들이 접근가능하고, 검증가능하며, 타당성을 담보할 수 있는 레퍼런스를 제시해주시기 바랍니다. 그게 아니라면 대담하고 단정적인 주장은 조심해주시기 바랍니다.
예를 들어, 이번 글에서도 유교를 '주나라의 종법제를 따라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자는 사상'로 정의하고자 하신다면 정의의 근거는 무엇인지, 왜 그 정의를 활용하는지, 이러한 정의를 활용했을 때 유교를 논했던 기존 관점과 비교할 때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지 근거를 제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깐깐한 틀을 꼭 따르시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여태까지 써주셨던 글들은 주장의 수준에 비춰볼 때 본문에 근거가 너무 적습니다.
주장을 맥락화하지 않은 채 보편성을 주장하는 서술 방식은 이해배경이 다른 사람들의 반발을 불러오게 됩니다. 각자 자신이 지닌 이해배경에만 기반하여 대화를 시작하면 생산적인 토론이 아니라 평행선을 달리다가 감정적인 대립으로 치닫기 쉽습니다. 이건 주장의 타당성 문제가 아니라 건전성 문제입니다. 총기규제 관련 글에서 코리몬테아스님께서 잘 짚어주셨었지요. (https://redtea.kr/?b=3&n=10478&c=141774).
ar15Lover님은 발제자시기 때문에 근거를 제시하셔야 할 책임이 더 큽니다. 댓글다는 사람들에게 주장을 맥락화할 부담을 지우지 마시기 바랍니다. 본인이 근거가 있으시다면 댓글에서 사람들을 반박하는데 사용하지 마시고 본문에 달아주세요.
2. 공격적인 수사법
수사의 공격성을 줄여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글타래 내 사례만 언급하겠습니다
https://redtea.kr/?b=3&n=10587&c=143112 -> "아무런 권위도 없는 가르침을 왜 따라야합니까?"
https://redtea.kr/?b=3&n=10587&c=143136 -> "링크에 색다른 컨텐츠가 있나 기대해서 살펴봤더니 밑도끝도 없는 양비론이네요."
https://redtea.kr/?b=3&n=10587&c=143113 -> "진짜 주나라 왕실을 부활시키던 그것의 대체제를 찾던 뭐가 중요합니까?"
https://redtea.kr/?b=3&n=10587&c=143129 -> "대체 천자도 없고 주나라도 없는 유교의 유용한 면이 뭐죠? 설령 유교에 유용한 면이 남아있다고 해도, 아무런 권위도 없는 유교의 가르침을 따를 이유는요?"
수사의문문을 많이 활용하시는데, 선생님이 사용하시는 공격적인 수사는 선생님 주장의 근거가 되지 못합니다. 댓글에서 감정적 다툼을 야기할 가능성만 높습니다.
3. 댓글에서 선별적인 피드백
1과 이어지는 문제입니다. 레퍼런스 없이 단정적이고 대담하게 주장을 전개하기 때문에 많은 댓글들을 받게 되십니다. 모든 댓글에 성실하게 피드백하는 것은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힘듭니다. 하지만 자신이 공감하는 댓글에만 좋아요를 누르고 넘어가거나, 선택적으로 일부 댓글에만 피드백하는 양상이 보여 우려되어 짚고 넘어갑니다.
예를 들어
https://redtea.kr/?b=3&n=10544&c=142808 이 댓글이나
https://redtea.kr/?b=3&n=10478 의 후반부에 피드백하지 않고 넘어간 댓글들
등은 피드백을 해주셨으면 더 좋았을 겁니다. 이런 선별적 피드백은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가 아니지만, 1과 2 같은 사항과 결합할 때 ar15Lover님께서 홍차넷에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 의심스럽게 만듭니다.
//
1, 2, 3이 결합하여 그 정도가 심해질 경우, 토론이나 의견교류보다는 댓글 수집이나 공박과정에서 감정적 욕구해소에 방점이 찍힌 어그로로 간주할 수 밖에 없습니다.
상기 사항에 유념해주시기 바랍니다.
영어능력이 상당하신 듯하니 참고해주셨으면 하는 논문을 하나 링크합니다.
WG Perry의 Cognitive and Ethical Growth: The Making of Meaning입니다. (http://will.tip.dhappy.org/paper/William%20Perry/Cognitive%20and%20Ethical%20Growth:%20The%20Making%20of%20Meaning/)
해당 인지/윤리 발달도식에서 정의하는 Commitment를 티타임에 발제하는 태도의 견본으로 삼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양한 의견을 개진해서 티타임을 활기차게 만들어주시는 것은 좋습니다. 다만 지금까지 올려주셨던 글을 종합해 볼 때 우려되는 사항이 있습니다.
1. 레퍼런스 없는 대담하고 단정적인 주장
https://redtea.kr/?b=3&n=10478 이 글에서 특히 강했었고, 이번 글에서 다시 두드러집니다. 강한 주장을 하려면 다른 사람들이 접근가능하고, 검증가능하며, 타당성을 담보할 수 있는 레퍼런스를 제시해주시기 바랍니다. 그게 아니라면 대담하고 단정적인 주장은 조심해주시기 바랍니다.
예를 들어, 이번 글에서도 유교를 '주나라의 종법제를 따라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자는 사상'로 정의하고자 하신다면 정의의 근거는 무엇인지, 왜 그 정의를 활용하는지, 이러한 정의를 활용했을 때 유교를 논했던 기존 관점과 비교할 때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지 근거를 제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깐깐한 틀을 꼭 따르시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여태까지 써주셨던 글들은 주장의 수준에 비춰볼 때 본문에 근거가 너무 적습니다.
주장을 맥락화하지 않은 채 보편성을 주장하는 서술 방식은 이해배경이 다른 사람들의 반발을 불러오게 됩니다. 각자 자신이 지닌 이해배경에만 기반하여 대화를 시작하면 생산적인 토론이 아니라 평행선을 달리다가 감정적인 대립으로 치닫기 쉽습니다. 이건 주장의 타당성 문제가 아니라 건전성 문제입니다. 총기규제 관련 글에서 코리몬테아스님께서 잘 짚어주셨었지요. (https://redtea.kr/?b=3&n=10478&c=141774).
ar15Lover님은 발제자시기 때문에 근거를 제시하셔야 할 책임이 더 큽니다. 댓글다는 사람들에게 주장을 맥락화할 부담을 지우지 마시기 바랍니다. 본인이 근거가 있으시다면 댓글에서 사람들을 반박하는데 사용하지 마시고 본문에 달아주세요.
2. 공격적인 수사법
수사의 공격성을 줄여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글타래 내 사례만 언급하겠습니다
https://redtea.kr/?b=3&n=10587&c=143112 -> "아무런 권위도 없는 가르침을 왜 따라야합니까?"
https://redtea.kr/?b=3&n=10587&c=143136 -> "링크에 색다른 컨텐츠가 있나 기대해서 살펴봤더니 밑도끝도 없는 양비론이네요."
https://redtea.kr/?b=3&n=10587&c=143113 -> "진짜 주나라 왕실을 부활시키던 그것의 대체제를 찾던 뭐가 중요합니까?"
https://redtea.kr/?b=3&n=10587&c=143129 -> "대체 천자도 없고 주나라도 없는 유교의 유용한 면이 뭐죠? 설령 유교에 유용한 면이 남아있다고 해도, 아무런 권위도 없는 유교의 가르침을 따를 이유는요?"
수사의문문을 많이 활용하시는데, 선생님이 사용하시는 공격적인 수사는 선생님 주장의 근거가 되지 못합니다. 댓글에서 감정적 다툼을 야기할 가능성만 높습니다.
3. 댓글에서 선별적인 피드백
1과 이어지는 문제입니다. 레퍼런스 없이 단정적이고 대담하게 주장을 전개하기 때문에 많은 댓글들을 받게 되십니다. 모든 댓글에 성실하게 피드백하는 것은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힘듭니다. 하지만 자신이 공감하는 댓글에만 좋아요를 누르고 넘어가거나, 선택적으로 일부 댓글에만 피드백하는 양상이 보여 우려되어 짚고 넘어갑니다.
예를 들어
https://redtea.kr/?b=3&n=10544&c=142808 이 댓글이나
https://redtea.kr/?b=3&n=10478 의 후반부에 피드백하지 않고 넘어간 댓글들
등은 피드백을 해주셨으면 더 좋았을 겁니다. 이런 선별적 피드백은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가 아니지만, 1과 2 같은 사항과 결합할 때 ar15Lover님께서 홍차넷에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 의심스럽게 만듭니다.
//
1, 2, 3이 결합하여 그 정도가 심해질 경우, 토론이나 의견교류보다는 댓글 수집이나 공박과정에서 감정적 욕구해소에 방점이 찍힌 어그로로 간주할 수 밖에 없습니다.
상기 사항에 유념해주시기 바랍니다.
영어능력이 상당하신 듯하니 참고해주셨으면 하는 논문을 하나 링크합니다.
WG Perry의 Cognitive and Ethical Growth: The Making of Meaning입니다. (http://will.tip.dhappy.org/paper/William%20Perry/Cognitive%20and%20Ethical%20Growth:%20The%20Making%20of%20Meaning/)
해당 인지/윤리 발달도식에서 정의하는 Commitment를 티타임에 발제하는 태도의 견본으로 삼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레퍼런스가 부족하다는 점에 대해 피드백드리겠습니다.
유교를 '주나라의 종법제를 따라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자는 사상'로 정의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일단 대표적인 유교경전인 논어를 봐도, 공자는 여러차례 주나라를 칭송하는 발언을 합니다.
子曰周監於二代郁郁乎文哉吾從周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주나라는 하와 은 이대(二代)를 보았으니, 찬란하다 그 문채여. 나는 주나라를 따르리라.”
子曰甚矣吾衰也久矣吾不復夢見周公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심하구나, 나의 노쇠함이여! 오래도록 나는 주공을 꿈에서 다시 뵙지 못하였다.”
子曰夫召我者而豈徒哉如有用我者吾其爲東周乎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더 보기
유교를 '주나라의 종법제를 따라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자는 사상'로 정의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일단 대표적인 유교경전인 논어를 봐도, 공자는 여러차례 주나라를 칭송하는 발언을 합니다.
子曰周監於二代郁郁乎文哉吾從周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주나라는 하와 은 이대(二代)를 보았으니, 찬란하다 그 문채여. 나는 주나라를 따르리라.”
子曰甚矣吾衰也久矣吾不復夢見周公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심하구나, 나의 노쇠함이여! 오래도록 나는 주공을 꿈에서 다시 뵙지 못하였다.”
子曰夫召我者而豈徒哉如有用我者吾其爲東周乎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더 보기
레퍼런스가 부족하다는 점에 대해 피드백드리겠습니다.
유교를 '주나라의 종법제를 따라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자는 사상'로 정의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일단 대표적인 유교경전인 논어를 봐도, 공자는 여러차례 주나라를 칭송하는 발언을 합니다.
子曰周監於二代郁郁乎文哉吾從周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주나라는 하와 은 이대(二代)를 보았으니, 찬란하다 그 문채여. 나는 주나라를 따르리라.”
子曰甚矣吾衰也久矣吾不復夢見周公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심하구나, 나의 노쇠함이여! 오래도록 나는 주공을 꿈에서 다시 뵙지 못하였다.”
子曰夫召我者而豈徒哉如有用我者吾其爲東周乎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를 부르는 사람이 어찌 공연히 부르겠느냐? 나를 써 주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곳의 동쪽의 주나라로 만들 것이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공자가 주나라를 이상으로 삼았다는 글들이 여럿 있습니다.
https://www.mk.co.kr/opinion/columnists/view/2012/01/55740/
([최진석의 ‘풀어쓰는 동양학’] 중국 고대 봉건질서를 규정한 ‘종법’…토지의 구속에서 民 풀어 상업 꽃피워)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8182
(공자는 왜 주나라의 토지제도를 지키려고 했던가?)
http://www.newsfreezone.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58
(다시 생각나는 공자, 그는 성공한 정치가?)
구글 북에 검색하면 다음과 같은 결과들이 나옵니다.
https://books.google.co.kr/books?id=BYRqDwAAQBAJ&pg=PT84&dq=%EC%A3%BC%EB%82%98%EB%9D%BC+%EA%B3%B5%EC%9E%90&hl=en&sa=X&ved=0ahUKEwjpzpjyt7XpAhWTxYsBHYlaDloQ6AEIMTAB#v=onepage&q=%EC%A3%BC%EB%82%98%EB%9D%BC%20%EA%B3%B5%EC%9E%90&f=false
(공자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
https://books.google.co.kr/books?id=UI6sitphRksC&pg=PP24&dq=%EC%A3%BC%EB%82%98%EB%9D%BC+%EA%B3%B5%EC%9E%90&hl=en&sa=X&ved=0ahUKEwjpzpjyt7XpAhWTxYsBHYlaDloQ6AEIaDAG#v=onepage&q=%EC%A3%BC%EB%82%98%EB%9D%BC%20%EA%B3%B5%EC%9E%90&f=false
(공자제자들에게정치를묻다)
주나라의 노래를 담은 '시경', 주나라의 세계관을 다룬 '주역'은 각각 유교의 주요 경전인
사서삼경에 포함되어있으며, 주나라의 예법을 다룬 '주례'는 십삼경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교에 있어 사서삼경과 십삼경이 차지하는 권위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것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조선시대의 유학자들은 오랜기간 중국을 천자의 나라로 여겨 숭배해왔으며,
조선의 왕조차도 취임할때 중국의 천자로부터 책봉을 받는 의식을 치루었습니다.
출처: https://books.google.co.kr/books?id=QVYTBgAAQBAJ&lpg=RA2-PT322&ots=nVS6L2AYSF&dq=%EC%A1%B0%EC%84%A0%20%EC%99%95%20%EC%B1%85%EB%B4%89%20%EC%B2%9C%EC%9E%90&pg=RA2-PT322#v=onepage&q&f=false
이런 점에서, 유교는 주나라의 질서와 예법을 핵심으로 하는 사상이 맞다고 봅니다.
제가 만약 유교에 있어 주나라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유학자들이 제일 먼저 분개할 것입니다.
유교를 '주나라의 종법제를 따라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자는 사상'로 정의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일단 대표적인 유교경전인 논어를 봐도, 공자는 여러차례 주나라를 칭송하는 발언을 합니다.
子曰周監於二代郁郁乎文哉吾從周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주나라는 하와 은 이대(二代)를 보았으니, 찬란하다 그 문채여. 나는 주나라를 따르리라.”
子曰甚矣吾衰也久矣吾不復夢見周公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심하구나, 나의 노쇠함이여! 오래도록 나는 주공을 꿈에서 다시 뵙지 못하였다.”
子曰夫召我者而豈徒哉如有用我者吾其爲東周乎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를 부르는 사람이 어찌 공연히 부르겠느냐? 나를 써 주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곳의 동쪽의 주나라로 만들 것이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공자가 주나라를 이상으로 삼았다는 글들이 여럿 있습니다.
https://www.mk.co.kr/opinion/columnists/view/2012/01/55740/
([최진석의 ‘풀어쓰는 동양학’] 중국 고대 봉건질서를 규정한 ‘종법’…토지의 구속에서 民 풀어 상업 꽃피워)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8182
(공자는 왜 주나라의 토지제도를 지키려고 했던가?)
http://www.newsfreezone.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58
(다시 생각나는 공자, 그는 성공한 정치가?)
구글 북에 검색하면 다음과 같은 결과들이 나옵니다.
https://books.google.co.kr/books?id=BYRqDwAAQBAJ&pg=PT84&dq=%EC%A3%BC%EB%82%98%EB%9D%BC+%EA%B3%B5%EC%9E%90&hl=en&sa=X&ved=0ahUKEwjpzpjyt7XpAhWTxYsBHYlaDloQ6AEIMTAB#v=onepage&q=%EC%A3%BC%EB%82%98%EB%9D%BC%20%EA%B3%B5%EC%9E%90&f=false
(공자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
https://books.google.co.kr/books?id=UI6sitphRksC&pg=PP24&dq=%EC%A3%BC%EB%82%98%EB%9D%BC+%EA%B3%B5%EC%9E%90&hl=en&sa=X&ved=0ahUKEwjpzpjyt7XpAhWTxYsBHYlaDloQ6AEIaDAG#v=onepage&q=%EC%A3%BC%EB%82%98%EB%9D%BC%20%EA%B3%B5%EC%9E%90&f=false
(공자제자들에게정치를묻다)
주나라의 노래를 담은 '시경', 주나라의 세계관을 다룬 '주역'은 각각 유교의 주요 경전인
사서삼경에 포함되어있으며, 주나라의 예법을 다룬 '주례'는 십삼경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교에 있어 사서삼경과 십삼경이 차지하는 권위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것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조선시대의 유학자들은 오랜기간 중국을 천자의 나라로 여겨 숭배해왔으며,
조선의 왕조차도 취임할때 중국의 천자로부터 책봉을 받는 의식을 치루었습니다.
출처: https://books.google.co.kr/books?id=QVYTBgAAQBAJ&lpg=RA2-PT322&ots=nVS6L2AYSF&dq=%EC%A1%B0%EC%84%A0%20%EC%99%95%20%EC%B1%85%EB%B4%89%20%EC%B2%9C%EC%9E%90&pg=RA2-PT322#v=onepage&q&f=false
이런 점에서, 유교는 주나라의 질서와 예법을 핵심으로 하는 사상이 맞다고 봅니다.
제가 만약 유교에 있어 주나라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유학자들이 제일 먼저 분개할 것입니다.
의외로 대체역사물에서 유교에 대한 고민이 많이 나옵니다. (정확히는 작품 내적으로 그런 고민이 이뤄지기보단, 작품을 소비하는 마니아층에서 자주 다뤄지죠.)
한국 장르소설계에서 대체역사물은 대부분 격동의 19세기 중반~20세기 초엽으로 빙의, 환생, 전이되어 역사를 바꾸는 내용이고,
그 과정에서 유교와의 충돌은 필연적으로 일어나죠.
그것이 전통적 가치관으로서의 유교이건, 구 지배층이자 토호층인 유림이건 간에요.
장르소설들이야 영리목적이니, 속칭 '빌런' 역할을 이러한 유교가 담당하고, 독자들도 심도있는 고민보다는 단순한 사... 더 보기
한국 장르소설계에서 대체역사물은 대부분 격동의 19세기 중반~20세기 초엽으로 빙의, 환생, 전이되어 역사를 바꾸는 내용이고,
그 과정에서 유교와의 충돌은 필연적으로 일어나죠.
그것이 전통적 가치관으로서의 유교이건, 구 지배층이자 토호층인 유림이건 간에요.
장르소설들이야 영리목적이니, 속칭 '빌런' 역할을 이러한 유교가 담당하고, 독자들도 심도있는 고민보다는 단순한 사... 더 보기
의외로 대체역사물에서 유교에 대한 고민이 많이 나옵니다. (정확히는 작품 내적으로 그런 고민이 이뤄지기보단, 작품을 소비하는 마니아층에서 자주 다뤄지죠.)
한국 장르소설계에서 대체역사물은 대부분 격동의 19세기 중반~20세기 초엽으로 빙의, 환생, 전이되어 역사를 바꾸는 내용이고,
그 과정에서 유교와의 충돌은 필연적으로 일어나죠.
그것이 전통적 가치관으로서의 유교이건, 구 지배층이자 토호층인 유림이건 간에요.
장르소설들이야 영리목적이니, 속칭 '빌런' 역할을 이러한 유교가 담당하고, 독자들도 심도있는 고민보다는 단순한 사이다를 원하기에 대부분의 소설에서 유교라는건 반동분자로 몰립니다만, 이는 한편으로, 필연적으로 '빌런이 반드시 유교여야 하는가, 유교는 구한말 당시 진짜 빌런이었나' 라는 의문을 갖게 만들죠.
조선이 근대화에 실패한 것은, 정말 유교때문인건가?
유교 말고 다른 요인이 있지 않았을까? 예컨대, 국제정세라던지, 산업과 무역구조라던지, 지정학적 위치라던지. 조선이 기독교국가나 이슬람 국가였더라도 당시 조선은 결국 근대화에 실패하지 않았을까? 같은 고민이요.
식견이 부족하여 저는 토론에 끼진 못하겠지만, 우리가 '현대 대한민국 사람' 으로서 우리가 떠올리는 '유교' 라는 관념은, 전쟁과 급격한 서구화로 인해 본래의 개념과 비교했을 때 상당부분 단절과 소실을 겪고, 근대적인 개념과 가치관에 의해 상당히 혼합되고 오염되어서, 테세우스의 배 처럼 아마 그 옛날 조선의 유교와는 아주 다른 유교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장르소설계에서 대체역사물은 대부분 격동의 19세기 중반~20세기 초엽으로 빙의, 환생, 전이되어 역사를 바꾸는 내용이고,
그 과정에서 유교와의 충돌은 필연적으로 일어나죠.
그것이 전통적 가치관으로서의 유교이건, 구 지배층이자 토호층인 유림이건 간에요.
장르소설들이야 영리목적이니, 속칭 '빌런' 역할을 이러한 유교가 담당하고, 독자들도 심도있는 고민보다는 단순한 사이다를 원하기에 대부분의 소설에서 유교라는건 반동분자로 몰립니다만, 이는 한편으로, 필연적으로 '빌런이 반드시 유교여야 하는가, 유교는 구한말 당시 진짜 빌런이었나' 라는 의문을 갖게 만들죠.
조선이 근대화에 실패한 것은, 정말 유교때문인건가?
유교 말고 다른 요인이 있지 않았을까? 예컨대, 국제정세라던지, 산업과 무역구조라던지, 지정학적 위치라던지. 조선이 기독교국가나 이슬람 국가였더라도 당시 조선은 결국 근대화에 실패하지 않았을까? 같은 고민이요.
식견이 부족하여 저는 토론에 끼진 못하겠지만, 우리가 '현대 대한민국 사람' 으로서 우리가 떠올리는 '유교' 라는 관념은, 전쟁과 급격한 서구화로 인해 본래의 개념과 비교했을 때 상당부분 단절과 소실을 겪고, 근대적인 개념과 가치관에 의해 상당히 혼합되고 오염되어서, 테세우스의 배 처럼 아마 그 옛날 조선의 유교와는 아주 다른 유교라고 생각합니다.
정성스레 찾아주셨으니 좀 더 세세하게 말씀드리자면
저에게 레퍼런스를 달아서 피드백을 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관심있는 건 선생님의 주장이 저에게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가가 아니라, 홍차넷 티타임이라는 이 작은 공간 속에서 선생님 주장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설득력 있게 다가가느냐는 점입니다. 저는 운영진이고, 상호 의견/정서 교류를 권장하면서 동시에 갈등이 일정 이상 커지지 않도록 관리하는데 목적을 둡니다.
사실 모두를 설득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모두가 접속 가능한 온라인 공간에서 특정한 화자를 상정하는 건 어려운 ... 더 보기
저에게 레퍼런스를 달아서 피드백을 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관심있는 건 선생님의 주장이 저에게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가가 아니라, 홍차넷 티타임이라는 이 작은 공간 속에서 선생님 주장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설득력 있게 다가가느냐는 점입니다. 저는 운영진이고, 상호 의견/정서 교류를 권장하면서 동시에 갈등이 일정 이상 커지지 않도록 관리하는데 목적을 둡니다.
사실 모두를 설득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모두가 접속 가능한 온라인 공간에서 특정한 화자를 상정하는 건 어려운 ... 더 보기
정성스레 찾아주셨으니 좀 더 세세하게 말씀드리자면
저에게 레퍼런스를 달아서 피드백을 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관심있는 건 선생님의 주장이 저에게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가가 아니라, 홍차넷 티타임이라는 이 작은 공간 속에서 선생님 주장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설득력 있게 다가가느냐는 점입니다. 저는 운영진이고, 상호 의견/정서 교류를 권장하면서 동시에 갈등이 일정 이상 커지지 않도록 관리하는데 목적을 둡니다.
사실 모두를 설득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모두가 접속 가능한 온라인 공간에서 특정한 화자를 상정하는 건 어려운 일이고, 사람들의 배경 이해도 제각기이니까요. 저처럼 유교 이해가 일천한 사람도 있고(저는 유교에서 십삼경이 차지하는 권위를 모릅니다 ㅎㅎ), 중국사상사 전공인 교수님도 있습니다. 후자를 설득할 수준의 글을 쓰실 걸 요구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기대이지요. 하지만 반복해서 다양한 분들로부터 지적을 받고 계십니다. 그 이유를 생각하고 정리한 바가 위에 제시한 세 가지 사항이었고요.
이 사항들은 그걸 기계적으로 만족시킨다 하여(애초에 양화 가능한 기계적 사항도 아니지만) 앞으로 무슨 이야기를 해도 상관없으리라는 그런 조건은 아닙니다. 선생님께서 보여주시는 단정적이고 웅변적인 태도를 줄여주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대신에 다양한 주제를 힘 있게 파고 들어주시는 장점들은 그대로 남아있었으면 하고요. 그래서 윗 댓글 말미에 WG Perry의 윤리/인지도식을 제시해 드렸었어요. 그 중 Commitment를 콕 찝어서 부탁드린 것도 그 때문입니다.
저에게 레퍼런스를 달아서 피드백을 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관심있는 건 선생님의 주장이 저에게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가가 아니라, 홍차넷 티타임이라는 이 작은 공간 속에서 선생님 주장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설득력 있게 다가가느냐는 점입니다. 저는 운영진이고, 상호 의견/정서 교류를 권장하면서 동시에 갈등이 일정 이상 커지지 않도록 관리하는데 목적을 둡니다.
사실 모두를 설득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모두가 접속 가능한 온라인 공간에서 특정한 화자를 상정하는 건 어려운 일이고, 사람들의 배경 이해도 제각기이니까요. 저처럼 유교 이해가 일천한 사람도 있고(저는 유교에서 십삼경이 차지하는 권위를 모릅니다 ㅎㅎ), 중국사상사 전공인 교수님도 있습니다. 후자를 설득할 수준의 글을 쓰실 걸 요구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기대이지요. 하지만 반복해서 다양한 분들로부터 지적을 받고 계십니다. 그 이유를 생각하고 정리한 바가 위에 제시한 세 가지 사항이었고요.
이 사항들은 그걸 기계적으로 만족시킨다 하여(애초에 양화 가능한 기계적 사항도 아니지만) 앞으로 무슨 이야기를 해도 상관없으리라는 그런 조건은 아닙니다. 선생님께서 보여주시는 단정적이고 웅변적인 태도를 줄여주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대신에 다양한 주제를 힘 있게 파고 들어주시는 장점들은 그대로 남아있었으면 하고요. 그래서 윗 댓글 말미에 WG Perry의 윤리/인지도식을 제시해 드렸었어요. 그 중 Commitment를 콕 찝어서 부탁드린 것도 그 때문입니다.
Nostalgia Critic의 리뷰가 연상되는 글이네요. 맹목적으로 "~는 완벽해, 최고야"를 부르짖는 팬보이/팬걸을 앞에 세우고 "완벽하다고? 진짜로? 전혀 아닌데?" 라 말하며 두들기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근데 상식적인 차원에서 생각하면 당연히 유교는 문제점이 있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정치, 종교, 사회, 그 외 모든 것에 대한 이데올로기들과 마찬가지로요. 오늘날 유학 연구자들이 유학 제일주의를 주장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런데 제가 묻고 싶은건 <오늘날 유교가 동네북이 된 이유>와 <유교 비판에 ... 더 보기
그런데 제가 묻고 싶은건 <오늘날 유교가 동네북이 된 이유>와 <유교 비판에 ... 더 보기
Nostalgia Critic의 리뷰가 연상되는 글이네요. 맹목적으로 "~는 완벽해, 최고야"를 부르짖는 팬보이/팬걸을 앞에 세우고 "완벽하다고? 진짜로? 전혀 아닌데?" 라 말하며 두들기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근데 상식적인 차원에서 생각하면 당연히 유교는 문제점이 있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정치, 종교, 사회, 그 외 모든 것에 대한 이데올로기들과 마찬가지로요. 오늘날 유학 연구자들이 유학 제일주의를 주장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런데 제가 묻고 싶은건 <오늘날 유교가 동네북이 된 이유>와 <유교 비판에 대한 반박>, 그리고 지금 ar15Lover님이 제시하는 유교의 문제점 사이에 연결점이 있냐는 겁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유교 때문에 근대화에 실패해 일본의 지배를 당하게 되었다], [유교 때문에 숨막히는 똥군기, 상명하복, 존대 문화가 생겼다]와 같은 얘기들이 모두 정당한 비판인가가요? 그렇다고 생각하신다면 그 부분에 대해 좀 더 명확하게 말씀하셔야 할 것 같고, 아니라면 본인이 주장하는 것과 다른 내용에 대한 반박을 굳이 끌어올 필요가 있나 싶습니다.
제가 살아오면서 본 적은 없었지만 뭐 실제로 유교를 금이야 옥이야 못지켜서 안달이신 분들도 있을거라고 봅니다. 다만 유교 실더 = 봉건주의 회복을 주장하는 사람들이라는 도식은 좀 이해가 안됩니다.
그런데 제가 묻고 싶은건 <오늘날 유교가 동네북이 된 이유>와 <유교 비판에 대한 반박>, 그리고 지금 ar15Lover님이 제시하는 유교의 문제점 사이에 연결점이 있냐는 겁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유교 때문에 근대화에 실패해 일본의 지배를 당하게 되었다], [유교 때문에 숨막히는 똥군기, 상명하복, 존대 문화가 생겼다]와 같은 얘기들이 모두 정당한 비판인가가요? 그렇다고 생각하신다면 그 부분에 대해 좀 더 명확하게 말씀하셔야 할 것 같고, 아니라면 본인이 주장하는 것과 다른 내용에 대한 반박을 굳이 끌어올 필요가 있나 싶습니다.
제가 살아오면서 본 적은 없었지만 뭐 실제로 유교를 금이야 옥이야 못지켜서 안달이신 분들도 있을거라고 봅니다. 다만 유교 실더 = 봉건주의 회복을 주장하는 사람들이라는 도식은 좀 이해가 안됩니다.
[유교 때문에 근대화에 실패해 일본의 지배를 당하게 되었다], [유교 때문에 숨막히는 똥군기, 상명하복, 존대 문화가 생겼다]는 제 주장이 아니라, 이런 이유로 비판받는 경우가 있다는걸 말한겁니다. 전 그런 측면 말고, 좀더 본질적으로 유교의 본질 자체가 주나라의 봉건제를 이상향으로 삼는 사상이기에 현대 민주정과는 맞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겁니다.
유교 실더 분들이 유교의 본질이 천자를 중심으로한 주나라식 봉건제라는 점을 모른다면, 그분들은... 더 보기
유교 실더 분들이 유교의 본질이 천자를 중심으로한 주나라식 봉건제라는 점을 모른다면, 그분들은... 더 보기
[유교 때문에 근대화에 실패해 일본의 지배를 당하게 되었다], [유교 때문에 숨막히는 똥군기, 상명하복, 존대 문화가 생겼다]는 제 주장이 아니라, 이런 이유로 비판받는 경우가 있다는걸 말한겁니다. 전 그런 측면 말고, 좀더 본질적으로 유교의 본질 자체가 주나라의 봉건제를 이상향으로 삼는 사상이기에 현대 민주정과는 맞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겁니다.
유교 실더 분들이 유교의 본질이 천자를 중심으로한 주나라식 봉건제라는 점을 모른다면, 그분들은 스스로가 실드치는 사상이 무엇인지 스스로도 모르고 있는거죠. 그 분들은 사실 유교를 실드치고 싶은게 아니라 그냥 한국적인, 전통적인, 옛스러운 느낌적인 느낌이나는 그 무언가를 지키고 싶었던거겠죠. 막연하게 유교는 한국적이고 한국적인 것은 유교라고 착각하고 계신 분들입니다.
몇몇분들이 유교를 실드친다고 해서 반드시 봉건주의 회복인건 아니다 라는 점을 지적해주셨는데, 제가 누누히 말했지만 봉건적 신분질서 없는 유교는 앙꼬없는 찐빵, 김빠진 콜라라고 몇번이나 이야기했습니다.
좀 과격한 비유를 들자면 이런거나 마찬가지에요.
"ar15lover야, 너가 생각하는 것 처럼 나치즘이 그렇게 나쁜건 아니야"
"아니, 얘가 무슨 소릴 하는거야? 너 지금 인종주의와 우생학을 옹호하는거야?"
"너야말로 무슨소릴하니? 나치즘엔 분명 인종주의, 우생학처럼 비판받을 부분이 있지만, 그걸 제외하고 보면 좋은점도 있다고. 단결을 통한 생산력 향상, 노동자에 대한 높은 수준의 복지, 환경보호정책 같은 부분들 말이야. 나치즘을 옹호하면 인종주의와 우생학을 옹호하는 것이라는 너의 발상이 이해가 안가네."
"??? 인종주의와 우생학이야 말로 나치즘의 정수이자 핵심인데?? 그걸 제외한 부분때문에 나치즘이 좋다면 차라리 사회주의를 밀지 그러니?"
유교 실더 분들이 유교의 본질이 천자를 중심으로한 주나라식 봉건제라는 점을 모른다면, 그분들은 스스로가 실드치는 사상이 무엇인지 스스로도 모르고 있는거죠. 그 분들은 사실 유교를 실드치고 싶은게 아니라 그냥 한국적인, 전통적인, 옛스러운 느낌적인 느낌이나는 그 무언가를 지키고 싶었던거겠죠. 막연하게 유교는 한국적이고 한국적인 것은 유교라고 착각하고 계신 분들입니다.
몇몇분들이 유교를 실드친다고 해서 반드시 봉건주의 회복인건 아니다 라는 점을 지적해주셨는데, 제가 누누히 말했지만 봉건적 신분질서 없는 유교는 앙꼬없는 찐빵, 김빠진 콜라라고 몇번이나 이야기했습니다.
좀 과격한 비유를 들자면 이런거나 마찬가지에요.
"ar15lover야, 너가 생각하는 것 처럼 나치즘이 그렇게 나쁜건 아니야"
"아니, 얘가 무슨 소릴 하는거야? 너 지금 인종주의와 우생학을 옹호하는거야?"
"너야말로 무슨소릴하니? 나치즘엔 분명 인종주의, 우생학처럼 비판받을 부분이 있지만, 그걸 제외하고 보면 좋은점도 있다고. 단결을 통한 생산력 향상, 노동자에 대한 높은 수준의 복지, 환경보호정책 같은 부분들 말이야. 나치즘을 옹호하면 인종주의와 우생학을 옹호하는 것이라는 너의 발상이 이해가 안가네."
"??? 인종주의와 우생학이야 말로 나치즘의 정수이자 핵심인데?? 그걸 제외한 부분때문에 나치즘이 좋다면 차라리 사회주의를 밀지 그러니?"
유교 경전의 대표로 흔히 사서삼경을 이야기하는데, 사서가 삼경(내지 오경)보다 중시되기 시작한 것은 주희의 시대부터입니다. 그전에는 오경이 중요하였고, 그래서 "오경박사"라는 벼슬도 있었던 겁니다.
그러면 오경중 무엇이 중요하냐? 당연히 삼경이지요. 그러면 삼경중 무엇이 중요하냐? 당연히 역경입니다. 「주역」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역(易)이 바뀔 역인데, 그 뜻을 자세히 살펴보면 바뀌면서도 바뀌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 바뀌지 않는가?
하늘이 운행하는 이치가 바뀌지 않습니다. (天行健)
그것을 보는... 더 보기
그러면 오경중 무엇이 중요하냐? 당연히 삼경이지요. 그러면 삼경중 무엇이 중요하냐? 당연히 역경입니다. 「주역」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역(易)이 바뀔 역인데, 그 뜻을 자세히 살펴보면 바뀌면서도 바뀌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 바뀌지 않는가?
하늘이 운행하는 이치가 바뀌지 않습니다. (天行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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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경전의 대표로 흔히 사서삼경을 이야기하는데, 사서가 삼경(내지 오경)보다 중시되기 시작한 것은 주희의 시대부터입니다. 그전에는 오경이 중요하였고, 그래서 "오경박사"라는 벼슬도 있었던 겁니다.
그러면 오경중 무엇이 중요하냐? 당연히 삼경이지요. 그러면 삼경중 무엇이 중요하냐? 당연히 역경입니다. 「주역」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역(易)이 바뀔 역인데, 그 뜻을 자세히 살펴보면 바뀌면서도 바뀌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 바뀌지 않는가?
하늘이 운행하는 이치가 바뀌지 않습니다. (天行健)
그것을 보는 군자의 몸가짐도 바뀌지 않습니다. (君子以自彊不息)
그처럼, 아비-자식, 임금-신하, 지아비-지어미, 어른-아이, 벗-벗의 관계도 바뀌지 않은 채, 영원히 이어갑니다. 심지어 죽어 귀신이 되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태양-지구-달의 관계와 같다는 겁니다.
선배-후배, 선임-후임, 사장-직원, 주인-노예, 다 마찬가지입니다.
유교에는 종말론이 없습니다. 그냥 영원히 정상(定常) 상태이지요. 정상(定常)사관입니다.
여기 대관절 무슨 '희망'이 있습니까, 아랫것이라면?
윗사람이야 좋겠지요.
그러면 오경중 무엇이 중요하냐? 당연히 삼경이지요. 그러면 삼경중 무엇이 중요하냐? 당연히 역경입니다. 「주역」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역(易)이 바뀔 역인데, 그 뜻을 자세히 살펴보면 바뀌면서도 바뀌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 바뀌지 않는가?
하늘이 운행하는 이치가 바뀌지 않습니다. (天行健)
그것을 보는 군자의 몸가짐도 바뀌지 않습니다. (君子以自彊不息)
그처럼, 아비-자식, 임금-신하, 지아비-지어미, 어른-아이, 벗-벗의 관계도 바뀌지 않은 채, 영원히 이어갑니다. 심지어 죽어 귀신이 되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태양-지구-달의 관계와 같다는 겁니다.
선배-후배, 선임-후임, 사장-직원, 주인-노예, 다 마찬가지입니다.
유교에는 종말론이 없습니다. 그냥 영원히 정상(定常) 상태이지요. 정상(定常)사관입니다.
여기 대관절 무슨 '희망'이 있습니까, 아랫것이라면?
윗사람이야 좋겠지요.
좀 더 큰 맥락에서 유교를 비판해야 한다. 왜냐하면, 유교는 고대 중국의 봉건제와 신분질서를 긍정하기에 현대의 민주정과는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위가 주장하신 점이라 짚고 조금 적어보면...
"원래 유교는" 이라는 주장은 공정이 잘못된 거지 청사진이 문제가 아니라는 거고, 말씀하신 대로 주장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사실 뿌리가 어떻고 하는 건 중요한 게 아니라고 봅니다. 오로지 자신만을 등불로 혼자 가라고 했던 솔플의 불교도 지금은 상좌부 불교랑 대승 불교로 나뉘었지만 그럭저럭 사람들 각자의 삶에 도움을 주고 있지... 더 보기
위가 주장하신 점이라 짚고 조금 적어보면...
"원래 유교는" 이라는 주장은 공정이 잘못된 거지 청사진이 문제가 아니라는 거고, 말씀하신 대로 주장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사실 뿌리가 어떻고 하는 건 중요한 게 아니라고 봅니다. 오로지 자신만을 등불로 혼자 가라고 했던 솔플의 불교도 지금은 상좌부 불교랑 대승 불교로 나뉘었지만 그럭저럭 사람들 각자의 삶에 도움을 주고 있지... 더 보기
좀 더 큰 맥락에서 유교를 비판해야 한다. 왜냐하면, 유교는 고대 중국의 봉건제와 신분질서를 긍정하기에 현대의 민주정과는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위가 주장하신 점이라 짚고 조금 적어보면...
"원래 유교는" 이라는 주장은 공정이 잘못된 거지 청사진이 문제가 아니라는 거고, 말씀하신 대로 주장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사실 뿌리가 어떻고 하는 건 중요한 게 아니라고 봅니다. 오로지 자신만을 등불로 혼자 가라고 했던 솔플의 불교도 지금은 상좌부 불교랑 대승 불교로 나뉘었지만 그럭저럭 사람들 각자의 삶에 도움을 주고 있지요.
유교라는 설계도는 너무 오래 돼서 낡았지만, 개선할 여지가 없는 건 아닐 겁니다. 교양으로 유학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 첫 수업에서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합니다. 공자가 지금 시대에는 안 맞는 말을 할 수도 있는 것이며(그 당시에는 괜찮은 말이었거나 어땠거나는 상관없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중에서 우리의 삶에 도움이 될 만한 지혜를 배우는 것이다. 뭐 그런 맥락이었습니다.
유교에서 주나라를 떼고 왕을 떼어내도 유교는 그에 맞춰 변주하며 잘 작동할 겁니다. 유교의 뿌리는 인仁 이전에 천명天命이라 해서, "인간은 세상에 그냥 놓여난 게 아니라 하늘로부터 그 뿌리를 함께했으니 어우러져 살아갈 존재다" 라는 근거 하에 각 관계마다 합당한 방식을 정해놓은 거라서 그렇습니다.
모든 관계를 아우를 수 있는 인仁을 사회적 관계에서 드러날 때 의라 하는 것이고, 먼저 간 넋(조상)과 살아있는 사람의 관계같은 데서는 예라고 부르는 식이지요.
이후 새로운 관계가 생기면 유교는 그 관계도 정의할 수 있겠구요.
위가 주장하신 점이라 짚고 조금 적어보면...
"원래 유교는" 이라는 주장은 공정이 잘못된 거지 청사진이 문제가 아니라는 거고, 말씀하신 대로 주장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사실 뿌리가 어떻고 하는 건 중요한 게 아니라고 봅니다. 오로지 자신만을 등불로 혼자 가라고 했던 솔플의 불교도 지금은 상좌부 불교랑 대승 불교로 나뉘었지만 그럭저럭 사람들 각자의 삶에 도움을 주고 있지요.
유교라는 설계도는 너무 오래 돼서 낡았지만, 개선할 여지가 없는 건 아닐 겁니다. 교양으로 유학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 첫 수업에서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합니다. 공자가 지금 시대에는 안 맞는 말을 할 수도 있는 것이며(그 당시에는 괜찮은 말이었거나 어땠거나는 상관없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중에서 우리의 삶에 도움이 될 만한 지혜를 배우는 것이다. 뭐 그런 맥락이었습니다.
유교에서 주나라를 떼고 왕을 떼어내도 유교는 그에 맞춰 변주하며 잘 작동할 겁니다. 유교의 뿌리는 인仁 이전에 천명天命이라 해서, "인간은 세상에 그냥 놓여난 게 아니라 하늘로부터 그 뿌리를 함께했으니 어우러져 살아갈 존재다" 라는 근거 하에 각 관계마다 합당한 방식을 정해놓은 거라서 그렇습니다.
모든 관계를 아우를 수 있는 인仁을 사회적 관계에서 드러날 때 의라 하는 것이고, 먼저 간 넋(조상)과 살아있는 사람의 관계같은 데서는 예라고 부르는 식이지요.
이후 새로운 관계가 생기면 유교는 그 관계도 정의할 수 있겠구요.
지금 얘기되는 유교 실더가 유교의 현대적 복권을 주장하는 교조주의가 아니라는 전제하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유교가 본질적으로 봉건주의적이라는 점을 인지하면서도 유교 이데올로기에 내포된 긍정적 가치를 조명하려는 시도가 가능하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아렌트가 고대 그리스 정치에서 정치적 행위의 의미를 끌어냈고, 푸코가 스토아, 에피쿠로스 철학에서 자기 돌봄의 개념을 이끌어내는 것처럼요.
또 그와는 별개로 유교 중심 사회에 대한 비판 중에서 반박되어야 할 부분은 반박되어야겠죠. 그게 언급되었던 [유교 때... 더 보기
또 그와는 별개로 유교 중심 사회에 대한 비판 중에서 반박되어야 할 부분은 반박되어야겠죠. 그게 언급되었던 [유교 때... 더 보기
지금 얘기되는 유교 실더가 유교의 현대적 복권을 주장하는 교조주의가 아니라는 전제하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유교가 본질적으로 봉건주의적이라는 점을 인지하면서도 유교 이데올로기에 내포된 긍정적 가치를 조명하려는 시도가 가능하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아렌트가 고대 그리스 정치에서 정치적 행위의 의미를 끌어냈고, 푸코가 스토아, 에피쿠로스 철학에서 자기 돌봄의 개념을 이끌어내는 것처럼요.
또 그와는 별개로 유교 중심 사회에 대한 비판 중에서 반박되어야 할 부분은 반박되어야겠죠. 그게 언급되었던 [유교 때문에 근대화에 실패해 일본의 지배를 당하게 되었다], [유교 때문에 숨막히는 똥군기, 상명하복, 존대 문화가 생겼다]와 같은 내용이구요. 이런 주장에 대해 반박하는 것을 두고 "너는 봉건적 신분질서를 기반으로 하는 유교주의를 옹호하고 있다"라고 말하는 것은 부적절한 비판이라고 봅니다. 이 맥락에서 소위 유교 실더들이 옹호하는게 그런 유교의 봉건적 신분질서가 아니니까요.
지금 문제되는 바를 언급하신 나치즘에 비유하자면 [나치즘은 나쁘다]가 아니라 [나치즘이 반유대주의를 탄생시켰다]는 주장에 반박하는 상황인거죠. 이걸 그냥 나치 옹호자라고 뭉뚱그려서 규정하는건 지나친 선동 아닙니까?
또 그와는 별개로 유교 중심 사회에 대한 비판 중에서 반박되어야 할 부분은 반박되어야겠죠. 그게 언급되었던 [유교 때문에 근대화에 실패해 일본의 지배를 당하게 되었다], [유교 때문에 숨막히는 똥군기, 상명하복, 존대 문화가 생겼다]와 같은 내용이구요. 이런 주장에 대해 반박하는 것을 두고 "너는 봉건적 신분질서를 기반으로 하는 유교주의를 옹호하고 있다"라고 말하는 것은 부적절한 비판이라고 봅니다. 이 맥락에서 소위 유교 실더들이 옹호하는게 그런 유교의 봉건적 신분질서가 아니니까요.
지금 문제되는 바를 언급하신 나치즘에 비유하자면 [나치즘은 나쁘다]가 아니라 [나치즘이 반유대주의를 탄생시켰다]는 주장에 반박하는 상황인거죠. 이걸 그냥 나치 옹호자라고 뭉뚱그려서 규정하는건 지나친 선동 아닙니까?
유교에서 주나라 떼고 왕(=천자, 王은 원래 천자만 쓸 수 있는 칭호였음.)을 떼는건 마치 기독교에서 야훼 떼고 예수 떼고 삼위일체 떼는거나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기독교에서 야훼, 예수, 삼위일체 떼고 나면 그건 더이상 기독교가 아니라, 기독교의 탈을 쓴 무언가이죠.
마찬가지로 유교에서 주나라 떼고 천자 떼면 그건 더 이상 유교가 아니라, 다른 무언가인 겁니다.
마찬가지로 유교에서 주나라 떼고 천자 떼면 그건 더 이상 유교가 아니라, 다른 무언가인 겁니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ar15Lover님이 좋아하는 조던 피터슨의 경우 본인은 일단 크리스천으로 규정하고, 기독교 이념의 가치를 긍정적으로 보면서도, 메시아의 부활에 대해서는 굉장히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데 예수의 부활, 전지전능하며 선한 인격적 유일신의 존재가 기독교의 본질 아닙니까? ar15Lover님의 논리대로라면 피터슨은 기독교가 뭔지도 잘 모르면서 스스로를 기독교도라 지칭하는 얼치기, 혹은 기독교의 비합리적인 측면을 내면화하면서도 아닌 척하는 위선자겠군요. 제가 오독하고 있다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더 보기
한가지 덧붙이자면 ar15Lover님이 좋아하는 조던 피터슨의 경우 본인은 일단 크리스천으로 규정하고, 기독교 이념의 가치를 긍정적으로 보면서도, 메시아의 부활에 대해서는 굉장히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데 예수의 부활, 전지전능하며 선한 인격적 유일신의 존재가 기독교의 본질 아닙니까? ar15Lover님의 논리대로라면 피터슨은 기독교가 뭔지도 잘 모르면서 스스로를 기독교도라 지칭하는 얼치기, 혹은 기독교의 비합리적인 측면을 내면화하면서도 아닌 척하는 위선자겠군요. 제가 오독하고 있다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다만 저는 제 자신이 기독교 믿음을 긍정하고 부정하는가의 여부와는 별개로 피터슨이 스스로를 기독교도로 규정하면서 기독교 이념 중 스스로가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선별적으로 옹호하는 것에 별로 이견이 없습니다. 적어도 그가 주장하는 가치 중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내용이 없다면요. 그리고 같은 맥락으로 유교를 옹호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 대해서도 역시나 별로 불만은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저는 제 자신이 기독교 믿음을 긍정하고 부정하는가의 여부와는 별개로 피터슨이 스스로를 기독교도로 규정하면서 기독교 이념 중 스스로가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선별적으로 옹호하는 것에 별로 이견이 없습니다. 적어도 그가 주장하는 가치 중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내용이 없다면요. 그리고 같은 맥락으로 유교를 옹호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 대해서도 역시나 별로 불만은 없을 것 같습니다.
두번째, 세번째 문단은 지나친 왜곡이십니다.
저는 [유교 때문에 근대화에 실패해 일본의 지배를 당하게 되었다], [유교 때문에 숨막히는 똥군기, 상명하복, 존대 문화가 생겼다] 등의 주장의 옳고 그름을 분석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것이 옳은 비판이던 그른 비판이던, 어쨋거나 유교가 본질적으로 봉건제와 신분질서를 긍정하는 사상이라는 점을 지적한 것입니다. A7658님이 이 부분에 동의하신다면, 저와 같은 생각이신거고, 다툴 이유가 없지요.
비유하자면 [나치즘이 반유대주의를 탄생시켰다]의 주장이 참이던 거짓이던 간에 어쨋건 나치즘은 인종주의와 우생학에 기반한 사상이었다는 점에서 나쁜 사상이라는걸 지적한 것이죠.
저는 [유교 때문에 근대화에 실패해 일본의 지배를 당하게 되었다], [유교 때문에 숨막히는 똥군기, 상명하복, 존대 문화가 생겼다] 등의 주장의 옳고 그름을 분석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것이 옳은 비판이던 그른 비판이던, 어쨋거나 유교가 본질적으로 봉건제와 신분질서를 긍정하는 사상이라는 점을 지적한 것입니다. A7658님이 이 부분에 동의하신다면, 저와 같은 생각이신거고, 다툴 이유가 없지요.
비유하자면 [나치즘이 반유대주의를 탄생시켰다]의 주장이 참이던 거짓이던 간에 어쨋건 나치즘은 인종주의와 우생학에 기반한 사상이었다는 점에서 나쁜 사상이라는걸 지적한 것이죠.
위의 운영진 피드백은 결국 조금도 전달이 안 된 것 같군요.
'유교 실더분', '스스로도 모르고 있는 거죠', '착각하고 계신 분들'
아무리 누누히 말하셔도 소용 없습니다. 대체 유교의 본질을 왜 멋대로 정의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본질 운운하기 전에 그러면 말씀하시는 유교가 뭔지 정의해주시겠어요? 항상 유교에 대해 논의가 성립하기 어려운 점은, 정치사상인지 철학사상인지 제도인지 종교인지 원시유교인지 공자인지 주자와 같은 후대 유학자인지 사회현상인지 장유문화인지 어떤 건지 정의하기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대개의 논의는 그냥 ... 더 보기
'유교 실더분', '스스로도 모르고 있는 거죠', '착각하고 계신 분들'
아무리 누누히 말하셔도 소용 없습니다. 대체 유교의 본질을 왜 멋대로 정의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본질 운운하기 전에 그러면 말씀하시는 유교가 뭔지 정의해주시겠어요? 항상 유교에 대해 논의가 성립하기 어려운 점은, 정치사상인지 철학사상인지 제도인지 종교인지 원시유교인지 공자인지 주자와 같은 후대 유학자인지 사회현상인지 장유문화인지 어떤 건지 정의하기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대개의 논의는 그냥 ... 더 보기
위의 운영진 피드백은 결국 조금도 전달이 안 된 것 같군요.
'유교 실더분', '스스로도 모르고 있는 거죠', '착각하고 계신 분들'
아무리 누누히 말하셔도 소용 없습니다. 대체 유교의 본질을 왜 멋대로 정의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본질 운운하기 전에 그러면 말씀하시는 유교가 뭔지 정의해주시겠어요? 항상 유교에 대해 논의가 성립하기 어려운 점은, 정치사상인지 철학사상인지 제도인지 종교인지 원시유교인지 공자인지 주자와 같은 후대 유학자인지 사회현상인지 장유문화인지 어떤 건지 정의하기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대개의 논의는 그냥 자기 맘대로 유교의 범위와 현상을 규정하고 허수아비 때리는 거에 지나지 않아요. 워낙 뿌리깊고 은근하게 역사와 사고와 삶에 배어 있어서 정의하기도 쉽지 않고, 당연히 분리하기도 어렵거든요. 근데 대체 무슨 근거로 그렇게 확신하시고 교조적으로 가르치려고 드시는지 이해가 어렵습니다.
학사 나부랭이지만 동양철학 특히 중국철학은 커리큘럼에서 들을 만큼 듣고 졸업했는데, 어느 교수님 어느 책을 봐도 유교의 본질이 주나라 종법제라는 건 보고 들은 기억이 없습니다. 인이라거나 예라거나 충(충서)이라거나 여러 해석이 있지만 주나라가 본질이라니요. 황망하기 그지없는 주장만 반복하시네요. 孔子曰惡似而非者.
들고 온 근거나 발췌한 문장은
유교의 본질이 주나라 종법제다(X), 공자가 이상적으로 생각한 정치체제가 주나라 종법제다(O)겠지요.
'유교 실더분', '스스로도 모르고 있는 거죠', '착각하고 계신 분들'
아무리 누누히 말하셔도 소용 없습니다. 대체 유교의 본질을 왜 멋대로 정의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본질 운운하기 전에 그러면 말씀하시는 유교가 뭔지 정의해주시겠어요? 항상 유교에 대해 논의가 성립하기 어려운 점은, 정치사상인지 철학사상인지 제도인지 종교인지 원시유교인지 공자인지 주자와 같은 후대 유학자인지 사회현상인지 장유문화인지 어떤 건지 정의하기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대개의 논의는 그냥 자기 맘대로 유교의 범위와 현상을 규정하고 허수아비 때리는 거에 지나지 않아요. 워낙 뿌리깊고 은근하게 역사와 사고와 삶에 배어 있어서 정의하기도 쉽지 않고, 당연히 분리하기도 어렵거든요. 근데 대체 무슨 근거로 그렇게 확신하시고 교조적으로 가르치려고 드시는지 이해가 어렵습니다.
학사 나부랭이지만 동양철학 특히 중국철학은 커리큘럼에서 들을 만큼 듣고 졸업했는데, 어느 교수님 어느 책을 봐도 유교의 본질이 주나라 종법제라는 건 보고 들은 기억이 없습니다. 인이라거나 예라거나 충(충서)이라거나 여러 해석이 있지만 주나라가 본질이라니요. 황망하기 그지없는 주장만 반복하시네요. 孔子曰惡似而非者.
들고 온 근거나 발췌한 문장은
유교의 본질이 주나라 종법제다(X), 공자가 이상적으로 생각한 정치체제가 주나라 종법제다(O)겠지요.
유교 실더라는 표현은 A7658님이 처음쓰신 단어고 전 편의상 따라쓴 것 뿐이고요...
타는저녁놀님의 말씀도 대단히 날서있는 것 같습니다.
"공자가 이상적으로 생각한 정치체제가 주나라 종법제다"라고 말씀하신 부분은 제 주장에 대한 반박이 되기는 커녕,
지금까지 제가 누누히 적어왔던걸 재확인하는 문장인 것 같습니다.
그렇죠 공자는 주나라의 정치체제(=종법제)를 이상적으로 여겼죠. 그래서 그 질서를 회복해서 다시 세상을 평화롭게 하자는거잖아요. 주나라의 정치체제는 기본적으로 봉건제, 신분제 체제죠. 그럼 유교는 봉건제와 신분제를 긍정하는 사상이군요.
타는저녁놀님의 말씀도 대단히 날서있는 것 같습니다.
"공자가 이상적으로 생각한 정치체제가 주나라 종법제다"라고 말씀하신 부분은 제 주장에 대한 반박이 되기는 커녕,
지금까지 제가 누누히 적어왔던걸 재확인하는 문장인 것 같습니다.
그렇죠 공자는 주나라의 정치체제(=종법제)를 이상적으로 여겼죠. 그래서 그 질서를 회복해서 다시 세상을 평화롭게 하자는거잖아요. 주나라의 정치체제는 기본적으로 봉건제, 신분제 체제죠. 그럼 유교는 봉건제와 신분제를 긍정하는 사상이군요.
아뇨... 공자의 사상이 마치 주나라가 전부이고, 주나라가 공자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것처럼 자의적으로 범주짓지 마세요. 위에 본인이 논어 얘기하셨는데 논어 읽어보시긴 하셨습니까? 논어에서 주나라나 정치체계를 얘기하는 부분이 논어에서 얼마나 비중이 될까요? 그게 과연 공자 사상을 대표하고 전부라고 주장하시려면, 그냥 이게 핵심이다 라고 같은 말만 반복하지 마시고 다른 개념들이 어떻게 그 주나라 짱짱맨에 귀결되는지 정확히 풀어서 주장하세요. 임의로 유교의 본질을 퉁치지 마시고 정의와 범위를 먼저 정확하게 발제해주세요. ar15Lover님의 세계관에서는 공자의 정치사상=유교인 겁니까?
인이나 충서 그 어디에 오직 주나라만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나요? 특정 구절만 잘라내서 그게 전부라도 되는 양 호도하면 대체 그 어느 종교나 사상이 현대에서 가치를 남길 수 있을까요?
인이나 충서 그 어디에 오직 주나라만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나요? 특정 구절만 잘라내서 그게 전부라도 되는 양 호도하면 대체 그 어느 종교나 사상이 현대에서 가치를 남길 수 있을까요?
서양 철학이 전개되어왔던 역사를 생각해보면, 저는 [유교가 본질적으로 봉건제와 신분질서를 긍정하는 사상이며, 그렇기 때문에 나쁘다]라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의 계보를 잊는 고대 그리스의 정치사상은 기본적으로 신분제도를 전제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의 천성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이 있다고 보며, 그에게 자유민의 삶을 강제하는 것은 그를 불행하게 만들 거라고 말하죠. 오늘날 이런 주장에 동의하는 학자 및 사람들은 거의 없을 거라고 봅니다. 다만, ... 더 보기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의 계보를 잊는 고대 그리스의 정치사상은 기본적으로 신분제도를 전제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의 천성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이 있다고 보며, 그에게 자유민의 삶을 강제하는 것은 그를 불행하게 만들 거라고 말하죠. 오늘날 이런 주장에 동의하는 학자 및 사람들은 거의 없을 거라고 봅니다. 다만, ... 더 보기
서양 철학이 전개되어왔던 역사를 생각해보면, 저는 [유교가 본질적으로 봉건제와 신분질서를 긍정하는 사상이며, 그렇기 때문에 나쁘다]라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의 계보를 잊는 고대 그리스의 정치사상은 기본적으로 신분제도를 전제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의 천성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이 있다고 보며, 그에게 자유민의 삶을 강제하는 것은 그를 불행하게 만들 거라고 말하죠. 오늘날 이런 주장에 동의하는 학자 및 사람들은 거의 없을 거라고 봅니다. 다만, 우리는 고대 철학자의 정신나간 주장에서 "페르소나", 혹은 정치적 행위를 통한 자기정체성의 확립 같은 개념을 도출해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걸 현대 정치제도에서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볼 수 있겠죠.
유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유교 전공자도 아니고 사실 유교에 별 관심도 없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유교의 인본주의나 긍정적 의미에서의 세속주의가 오로지 봉건적 신분질서 하에서만 기능할 수 있는 것이라는 확신을 내릴 수 없습니다. 유교의 정확히 어떤 측면이 그러한 인본주의에 기여하는가를 모르니까요.
결론적으로 저는 유교와 봉건적 신분질서를 동일시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고, 그렇기 때문에 일부의 한국인들이 유교를 포기하지 않는데는 나름의 합당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의 계보를 잊는 고대 그리스의 정치사상은 기본적으로 신분제도를 전제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의 천성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이 있다고 보며, 그에게 자유민의 삶을 강제하는 것은 그를 불행하게 만들 거라고 말하죠. 오늘날 이런 주장에 동의하는 학자 및 사람들은 거의 없을 거라고 봅니다. 다만, 우리는 고대 철학자의 정신나간 주장에서 "페르소나", 혹은 정치적 행위를 통한 자기정체성의 확립 같은 개념을 도출해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걸 현대 정치제도에서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볼 수 있겠죠.
유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유교 전공자도 아니고 사실 유교에 별 관심도 없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유교의 인본주의나 긍정적 의미에서의 세속주의가 오로지 봉건적 신분질서 하에서만 기능할 수 있는 것이라는 확신을 내릴 수 없습니다. 유교의 정확히 어떤 측면이 그러한 인본주의에 기여하는가를 모르니까요.
결론적으로 저는 유교와 봉건적 신분질서를 동일시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고, 그렇기 때문에 일부의 한국인들이 유교를 포기하지 않는데는 나름의 합당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각해 볼 지점이긴 합니다. 저는 이런 변화가 불교에서 가능했듯 유교에서도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기존의 소승 불교는 당대의 사람들을 만족시키지 못한 부분이 있었고, 거기다가 싯다르타의 전설이랑 당시 유행하던 구제하는 부처, 즉 보살 사상이 합쳐져 새로운 불교를 만들게 되지요.
불교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를 깬 타력구원의 종교관을 포함했음에도 지금은 대승불교라는 이름으로, 반야심경이라던가 관세음보살 같은 개념과 함께 존재하고 있습니다.
유교가 주나라와 군신의 관계에 대한 페이지를 떼어내면 유교 (2), 유교 MK2, 뭐 ... 더 보기
기존의 소승 불교는 당대의 사람들을 만족시키지 못한 부분이 있었고, 거기다가 싯다르타의 전설이랑 당시 유행하던 구제하는 부처, 즉 보살 사상이 합쳐져 새로운 불교를 만들게 되지요.
불교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를 깬 타력구원의 종교관을 포함했음에도 지금은 대승불교라는 이름으로, 반야심경이라던가 관세음보살 같은 개념과 함께 존재하고 있습니다.
유교가 주나라와 군신의 관계에 대한 페이지를 떼어내면 유교 (2), 유교 MK2, 뭐 ... 더 보기
생각해 볼 지점이긴 합니다. 저는 이런 변화가 불교에서 가능했듯 유교에서도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기존의 소승 불교는 당대의 사람들을 만족시키지 못한 부분이 있었고, 거기다가 싯다르타의 전설이랑 당시 유행하던 구제하는 부처, 즉 보살 사상이 합쳐져 새로운 불교를 만들게 되지요.
불교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를 깬 타력구원의 종교관을 포함했음에도 지금은 대승불교라는 이름으로, 반야심경이라던가 관세음보살 같은 개념과 함께 존재하고 있습니다.
유교가 주나라와 군신의 관계에 대한 페이지를 떼어내면 유교 (2), 유교 MK2, 뭐 다른 이름으로 불릴 수도 있을 테지만 그래도 저는 이게 새로운 세상에 맞게 적응한 또 다른 유교라고 생각합니다. 공자가 인仁에서 시작해 의, 예, 지로 버전업을 했듯, 그의 사상을 이어나가려는 오늘의 사람들에 의해 또 변할 수 있지 싶습니다. 이 부분에서 글 쓰신 분과 입장이 갈리지 않나 마 그렇게 생각합니다.
공자가 "오직 주나라"라고 말하였다고 하는 사료가 있더라도, 맨 처음 댓글에서 썼듯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따름이라 생각합니다. 중요한 건 지금의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가일테니까요. 그게 평천하일 거구요.
기존의 소승 불교는 당대의 사람들을 만족시키지 못한 부분이 있었고, 거기다가 싯다르타의 전설이랑 당시 유행하던 구제하는 부처, 즉 보살 사상이 합쳐져 새로운 불교를 만들게 되지요.
불교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를 깬 타력구원의 종교관을 포함했음에도 지금은 대승불교라는 이름으로, 반야심경이라던가 관세음보살 같은 개념과 함께 존재하고 있습니다.
유교가 주나라와 군신의 관계에 대한 페이지를 떼어내면 유교 (2), 유교 MK2, 뭐 다른 이름으로 불릴 수도 있을 테지만 그래도 저는 이게 새로운 세상에 맞게 적응한 또 다른 유교라고 생각합니다. 공자가 인仁에서 시작해 의, 예, 지로 버전업을 했듯, 그의 사상을 이어나가려는 오늘의 사람들에 의해 또 변할 수 있지 싶습니다. 이 부분에서 글 쓰신 분과 입장이 갈리지 않나 마 그렇게 생각합니다.
공자가 "오직 주나라"라고 말하였다고 하는 사료가 있더라도, 맨 처음 댓글에서 썼듯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따름이라 생각합니다. 중요한 건 지금의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가일테니까요. 그게 평천하일 거구요.
불교의 변천과 현대사회에 적응한 또다른 유교를 대응시키는건 무리 아닐까 싶습니다.
종파와 상관없이 불교의 핵심에는 석가모니 부처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이건 티베트 불교 승려, 상좌부 불교 승려, 대승불교 승려 어느쪽을 붙잡고 물어봐도
가장 중요한건 석가모니 부처의 가르침이라는 점에 동의합니다.
반면에 유교는 주례, 주역, 춘추 등 핵심경전부터가 주나라 없이는 성립이 안됩니다.
유교의 봉건제, 신분제적 특성을 모두 제거하자는건, 불교에서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제거하자는거랑 똑같은거거든요.
그러니까, 비유하자면 이런거죠... 더 보기
종파와 상관없이 불교의 핵심에는 석가모니 부처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이건 티베트 불교 승려, 상좌부 불교 승려, 대승불교 승려 어느쪽을 붙잡고 물어봐도
가장 중요한건 석가모니 부처의 가르침이라는 점에 동의합니다.
반면에 유교는 주례, 주역, 춘추 등 핵심경전부터가 주나라 없이는 성립이 안됩니다.
유교의 봉건제, 신분제적 특성을 모두 제거하자는건, 불교에서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제거하자는거랑 똑같은거거든요.
그러니까, 비유하자면 이런거죠... 더 보기
불교의 변천과 현대사회에 적응한 또다른 유교를 대응시키는건 무리 아닐까 싶습니다.
종파와 상관없이 불교의 핵심에는 석가모니 부처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이건 티베트 불교 승려, 상좌부 불교 승려, 대승불교 승려 어느쪽을 붙잡고 물어봐도
가장 중요한건 석가모니 부처의 가르침이라는 점에 동의합니다.
반면에 유교는 주례, 주역, 춘추 등 핵심경전부터가 주나라 없이는 성립이 안됩니다.
유교의 봉건제, 신분제적 특성을 모두 제거하자는건, 불교에서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제거하자는거랑 똑같은거거든요.
그러니까, 비유하자면 이런거죠.
저의 팔을 다른 사람의 팔로 바꿔도, 여전히 저는 저 입니다.
저의 하반신을 통째로 다른사람의 하반신으로 바꿔도, 여전히 저는 저입니다.
그런데 뇌와 척수를 통째로 다른 사람의 것으로 바꾸면, 그 사람을 저라고 생각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종파와 상관없이 불교의 핵심에는 석가모니 부처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이건 티베트 불교 승려, 상좌부 불교 승려, 대승불교 승려 어느쪽을 붙잡고 물어봐도
가장 중요한건 석가모니 부처의 가르침이라는 점에 동의합니다.
반면에 유교는 주례, 주역, 춘추 등 핵심경전부터가 주나라 없이는 성립이 안됩니다.
유교의 봉건제, 신분제적 특성을 모두 제거하자는건, 불교에서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제거하자는거랑 똑같은거거든요.
그러니까, 비유하자면 이런거죠.
저의 팔을 다른 사람의 팔로 바꿔도, 여전히 저는 저 입니다.
저의 하반신을 통째로 다른사람의 하반신으로 바꿔도, 여전히 저는 저입니다.
그런데 뇌와 척수를 통째로 다른 사람의 것으로 바꾸면, 그 사람을 저라고 생각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 말씀하시는 유학자들이란 누구죠? 공자, 주희 뭐 이런 사람들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유교라고 퉁치지 말고 공자의 사상, 주희의 사상을 논해야죠. 유학 일반에 대해 말하고 싶으시다면 현대의 유학 연구자들이 유교사상에서 봉건제나 주나라 얼마나 중요한가 대해 어떻게 보고 있는지도 파악해야 할테구요.
유교의 창시자인 공자가 주나라 종법제를 추구했기 때문에 유교의 핵심이 주나라다라고 하신다면 기독교를 예로 들어보죠. 다른 댓글에서 기독교의 핵심을 삼위일체라고 하셨는데 왜 그게 기독교의 본질입니까. 정작 예수도, 바울도 삼위일체설을 공... 더 보기
유교의 창시자인 공자가 주나라 종법제를 추구했기 때문에 유교의 핵심이 주나라다라고 하신다면 기독교를 예로 들어보죠. 다른 댓글에서 기독교의 핵심을 삼위일체라고 하셨는데 왜 그게 기독교의 본질입니까. 정작 예수도, 바울도 삼위일체설을 공... 더 보기
지금 말씀하시는 유학자들이란 누구죠? 공자, 주희 뭐 이런 사람들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유교라고 퉁치지 말고 공자의 사상, 주희의 사상을 논해야죠. 유학 일반에 대해 말하고 싶으시다면 현대의 유학 연구자들이 유교사상에서 봉건제나 주나라 얼마나 중요한가 대해 어떻게 보고 있는지도 파악해야 할테구요.
유교의 창시자인 공자가 주나라 종법제를 추구했기 때문에 유교의 핵심이 주나라다라고 하신다면 기독교를 예로 들어보죠. 다른 댓글에서 기독교의 핵심을 삼위일체라고 하셨는데 왜 그게 기독교의 본질입니까. 정작 예수도, 바울도 삼위일체설을 공표한 적이 없는데요. 심지어 삼위일체는 엄밀히 말해 기독교만의 전유물도 아닙니다. 세계의 수많은 종교에서 일관적으로 나타나는 상징체계죠. 마찬가지로 봉건적 질서나 신분제도 유교만의 전유물은 아니죠. 굳이 그걸 본질로 규정한다면 유교의 본질이 아니라 근대 이전 정치사상들의 일반적 특징으로 보이는데요. 물론 예외는 있겠지만요.
그럼 다시 돌아와서, 왜 유교가 근대 이전까지의 논의되었던 영역으로 한정되어야 하죠? 현대에 들어서도 연구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기존의 내용이 변형되거나 배제될 수도 있는데 말이죠. 옛날 유학자들이 피꺼솟한다고 현대 유학자들이 주나라 신봉하고 봉건제 복귀 주장해야 하나요?
유교의 창시자인 공자가 주나라 종법제를 추구했기 때문에 유교의 핵심이 주나라다라고 하신다면 기독교를 예로 들어보죠. 다른 댓글에서 기독교의 핵심을 삼위일체라고 하셨는데 왜 그게 기독교의 본질입니까. 정작 예수도, 바울도 삼위일체설을 공표한 적이 없는데요. 심지어 삼위일체는 엄밀히 말해 기독교만의 전유물도 아닙니다. 세계의 수많은 종교에서 일관적으로 나타나는 상징체계죠. 마찬가지로 봉건적 질서나 신분제도 유교만의 전유물은 아니죠. 굳이 그걸 본질로 규정한다면 유교의 본질이 아니라 근대 이전 정치사상들의 일반적 특징으로 보이는데요. 물론 예외는 있겠지만요.
그럼 다시 돌아와서, 왜 유교가 근대 이전까지의 논의되었던 영역으로 한정되어야 하죠? 현대에 들어서도 연구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기존의 내용이 변형되거나 배제될 수도 있는데 말이죠. 옛날 유학자들이 피꺼솟한다고 현대 유학자들이 주나라 신봉하고 봉건제 복귀 주장해야 하나요?
수많은 불교 종파들이 공유하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애초에 석가모니 본인은 자신의 가르침을 경전으로 남기는 것에 반대했습니다. 일본 불교 종파중에는 승려의 결혼을 허용하는 부류도 있죠.
현대의 불교가 공유하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이라면 현세의 고통의 원인을 집착으로 보고, 그걸 끊어내야만 한다는 주장이라고 봅니다. 출가하여 세속의 인연을 끊는것, 육식을 자제하는 것, 욕망을 제어하는 것은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죠. 그런 실천방식에 있어서는 후대 불교 종파들에 따라 차이가 드러나는 것이... 더 보기
현대의 불교가 공유하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이라면 현세의 고통의 원인을 집착으로 보고, 그걸 끊어내야만 한다는 주장이라고 봅니다. 출가하여 세속의 인연을 끊는것, 육식을 자제하는 것, 욕망을 제어하는 것은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죠. 그런 실천방식에 있어서는 후대 불교 종파들에 따라 차이가 드러나는 것이... 더 보기
수많은 불교 종파들이 공유하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애초에 석가모니 본인은 자신의 가르침을 경전으로 남기는 것에 반대했습니다. 일본 불교 종파중에는 승려의 결혼을 허용하는 부류도 있죠.
현대의 불교가 공유하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이라면 현세의 고통의 원인을 집착으로 보고, 그걸 끊어내야만 한다는 주장이라고 봅니다. 출가하여 세속의 인연을 끊는것, 육식을 자제하는 것, 욕망을 제어하는 것은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죠. 그런 실천방식에 있어서는 후대 불교 종파들에 따라 차이가 드러나는 것이구요.
자, 그럼 유교의 핵심이 봉건제, 신분제적 특성이라는 주장을 생각해보죠. 왜 공자가 주나라를 그토록 숭상했나요? 공자가 주나라 빠돌이라서? 빠돌인데, 왜 빠돌이인지를 따져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이유가 ar15Lover님이 말하시는 것처럼 봉건적 신분질서라면 좀 이상하게 들립니다. 그건 마치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출가]라고 하는 거랑 비슷하게 들려요. 그게 틀리진 않아요. 단지 여전히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죠. 따라서 [왜] 공자가 주나라 중심의 봉건적 신분제도를 추구했으며, 그 추구하고자 했던 목적이 현대 민주정체에서 구현될 수 있는지를 따져본다면, 그건 현대의 유학으로 규정되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됩니다.
현대의 불교가 공유하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이라면 현세의 고통의 원인을 집착으로 보고, 그걸 끊어내야만 한다는 주장이라고 봅니다. 출가하여 세속의 인연을 끊는것, 육식을 자제하는 것, 욕망을 제어하는 것은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죠. 그런 실천방식에 있어서는 후대 불교 종파들에 따라 차이가 드러나는 것이구요.
자, 그럼 유교의 핵심이 봉건제, 신분제적 특성이라는 주장을 생각해보죠. 왜 공자가 주나라를 그토록 숭상했나요? 공자가 주나라 빠돌이라서? 빠돌인데, 왜 빠돌이인지를 따져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이유가 ar15Lover님이 말하시는 것처럼 봉건적 신분질서라면 좀 이상하게 들립니다. 그건 마치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출가]라고 하는 거랑 비슷하게 들려요. 그게 틀리진 않아요. 단지 여전히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죠. 따라서 [왜] 공자가 주나라 중심의 봉건적 신분제도를 추구했으며, 그 추구하고자 했던 목적이 현대 민주정체에서 구현될 수 있는지를 따져본다면, 그건 현대의 유학으로 규정되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됩니다.
봉건적 신분제의 전근대성을 부정하는 사람이 이 글에 댓글을 단 사람 중 한명이라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대부분은 그러한 봉건적 신분질서가 유교의 본질이라는 주장에 대해 동의하지 않았다고 생각되는데요.
공자의 주장은 "층류(laminar flow)를 유지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논어에 나오는 "군군신신부부자자 (君君臣臣父父子子)"라는 말대로입니다.
그게 인간의 숙명이고, 정명이고, 도라는 것이지요. 거기 동의할 현대인이 얼마나 될까요?
논어에 나오는 "군군신신부부자자 (君君臣臣父父子子)"라는 말대로입니다.
그게 인간의 숙명이고, 정명이고, 도라는 것이지요. 거기 동의할 현대인이 얼마나 될까요?
아래는 '공자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https://books.google.co.kr/books?id=BYRqDwAAQBAJ&pg=PT84&dq=%EC%A3%BC%EB%82%98%EB%9D%BC+%EA%B3%B5%EC%9E%90&hl=en&sa=X&ved=0ahUKEwjpzpjyt7XpAhWTxYsBHYlaDloQ6AEIMTAB#v=onepage&q=%EC%A3%BC%EB%82%98%EB%9D%BC%20%EA%B3%B5%EC%9E%90&f=false)
소강사회는 가정을 중심으로 한 사회이며, 말 그대로 그런대로 편안한 사회다. 공자는 '예기'에서 소강사회를 이렇게 설명했다.
[대도가 행해지지 않을 때는 천하는 가정을 중심으로 하여 자기의 부모와 자식을 사랑하며, 재화와 능력은 개인에게 속하고, 큰 덕이 있는 대인이 세습하는 것을 예로 여긴다. 예와 의를 기강 삼아 군신관계를 바르게 하고, 부자간의 정을 돈독히 하며, 형제간에 우애하게 하며, 부부간에 화목하게 한다. 제도를 만들어 토지의 구획을 정하고, 용기있는 자와 지혜있는 자를 어진이로 대한다.... 이런 사회를 일컬어 소강사회라 한다.]
따라서 소강사회는 재산의 사적 소유가 인정되고, 덕 있는 군주의 세습이 인정되며, 예와 의를 기강으로 하여 사람과 사람간의 인륜이 지켜지는 사회이다. 공자는 우, 탕, 문, 무, 주공이 통치하던 시대를 소강사회의 표본으로 보았다. 오늘날 중국이 추구하는 정책 방향도 소강사회를 목표로 하고 있다.
공자가 만들고 싶었던 사회는 소강사회였다. 덕이 있는 군주가 다스리고, 예와 의를 기강으로 인륜이 구현되는 사회였다. 공자는 그러한 소강사회의 본보기로 주나라를 생각했다. 주나라는 공자가 만들고자 했던 나라였다.
=========================================================================
A7658님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위 글에 나와 있네요. 공자가 주나라 빠돌이었던 이유는, '덕이 있는 군주가 다스리고, 예와 의를 기강으로 인륜이 구현된 사회였'기 때문이군요.
유교를 현대 민주정체에서 구현 가능할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대단히 어려운 작업임이 틀림없어 보입니다. 또한 말씀하신 '현대의 유학'을 구현하기 위한 시도가 존재하긴 하는지도 의심스럽습니다. 말씀하신 '현대의 유학'을 한번 구경해보고 싶네요.
https://books.google.co.kr/books?id=BYRqDwAAQBAJ&pg=PT84&dq=%EC%A3%BC%EB%82%98%EB%9D%BC+%EA%B3%B5%EC%9E%90&hl=en&sa=X&ved=0ahUKEwjpzpjyt7XpAhWTxYsBHYlaDloQ6AEIMTAB#v=onepage&q=%EC%A3%BC%EB%82%98%EB%9D%BC%20%EA%B3%B5%EC%9E%90&f=false)
소강사회는 가정을 중심으로 한 사회이며, 말 그대로 그런대로 편안한 사회다. 공자는 '예기'에서 소강사회를 이렇게 설명했다.
[대도가 행해지지 않을 때는 천하는 가정을 중심으로 하여 자기의 부모와 자식을 사랑하며, 재화와 능력은 개인에게 속하고, 큰 덕이 있는 대인이 세습하는 것을 예로 여긴다. 예와 의를 기강 삼아 군신관계를 바르게 하고, 부자간의 정을 돈독히 하며, 형제간에 우애하게 하며, 부부간에 화목하게 한다. 제도를 만들어 토지의 구획을 정하고, 용기있는 자와 지혜있는 자를 어진이로 대한다.... 이런 사회를 일컬어 소강사회라 한다.]
따라서 소강사회는 재산의 사적 소유가 인정되고, 덕 있는 군주의 세습이 인정되며, 예와 의를 기강으로 하여 사람과 사람간의 인륜이 지켜지는 사회이다. 공자는 우, 탕, 문, 무, 주공이 통치하던 시대를 소강사회의 표본으로 보았다. 오늘날 중국이 추구하는 정책 방향도 소강사회를 목표로 하고 있다.
공자가 만들고 싶었던 사회는 소강사회였다. 덕이 있는 군주가 다스리고, 예와 의를 기강으로 인륜이 구현되는 사회였다. 공자는 그러한 소강사회의 본보기로 주나라를 생각했다. 주나라는 공자가 만들고자 했던 나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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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7658님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위 글에 나와 있네요. 공자가 주나라 빠돌이었던 이유는, '덕이 있는 군주가 다스리고, 예와 의를 기강으로 인륜이 구현된 사회였'기 때문이군요.
유교를 현대 민주정체에서 구현 가능할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대단히 어려운 작업임이 틀림없어 보입니다. 또한 말씀하신 '현대의 유학'을 구현하기 위한 시도가 존재하긴 하는지도 의심스럽습니다. 말씀하신 '현대의 유학'을 한번 구경해보고 싶네요.
앨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보면, 인간은 시험관에서 태어나기 전부터 알파인, 베타인, 감마인, 델타인, 엪실론인이 정해져서 태어납니다. 지능, 체력, 신장, 직업까지 다,정해져 있습니다.
벌들이 여왕벌, 수펄, 일벌로 태어남과 다를 바 없지요.
공자가 꿈꾸었던 이상 사회가 그러한 것일 테지요.
벌들이 여왕벌, 수펄, 일벌로 태어남과 다를 바 없지요.
공자가 꿈꾸었던 이상 사회가 그러한 것일 테지요.
유학을 이전과 같은 국가 통치 이데올로기로 활용해야 할 당위성도, 가능성도 없다고 봅니다. 이전에도 말했지만 유학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굳이 그정도의 차원까지 밀고나갈 이유도 없어요.
이런 논의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네요. [가정의 평화는 온전히 개인에게 책임이 있는가, 아니면 국가와 사회가 그 구성원들의 가정을 평화롭게 하기 위해 기여해야 하는가] 이걸 유교적 관점에서 분석해보고 그 타당성을 검토해보는 거죠. 다만 이때의 결론이 꼭 "유교에서 ~하라니 그렇게 하자"일 필요는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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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논의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네요. [가정의 평화는 온전히 개인에게 책임이 있는가, 아니면 국가와 사회가 그 구성원들의 가정을 평화롭게 하기 위해 기여해야 하는가] 이걸 유교적 관점에서 분석해보고 그 타당성을 검토해보는 거죠. 다만 이때의 결론이 꼭 "유교에서 ~하라니 그렇게 하자"일 필요는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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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을 이전과 같은 국가 통치 이데올로기로 활용해야 할 당위성도, 가능성도 없다고 봅니다. 이전에도 말했지만 유학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굳이 그정도의 차원까지 밀고나갈 이유도 없어요.
이런 논의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네요. [가정의 평화는 온전히 개인에게 책임이 있는가, 아니면 국가와 사회가 그 구성원들의 가정을 평화롭게 하기 위해 기여해야 하는가] 이걸 유교적 관점에서 분석해보고 그 타당성을 검토해보는 거죠. 다만 이때의 결론이 꼭 "유교에서 ~하라니 그렇게 하자"일 필요는 없겠죠.
그리고 말씀하진 점을 고려했을 때 유교의 본질은 어쩌면 그러한 인륜, 즉 개인적 차원으로 환원될 수 없는 포괄적 선관념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점이 현대 자유주의와는 명백히 차이가 있죠. 다만 저로서는 샌델, 메킨타이어로 대표되는 공동체주의자들의 주장과 유교의 윤리관 사이에 어느 정도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고, 이런 점은 연구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입니다.
이런 논의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네요. [가정의 평화는 온전히 개인에게 책임이 있는가, 아니면 국가와 사회가 그 구성원들의 가정을 평화롭게 하기 위해 기여해야 하는가] 이걸 유교적 관점에서 분석해보고 그 타당성을 검토해보는 거죠. 다만 이때의 결론이 꼭 "유교에서 ~하라니 그렇게 하자"일 필요는 없겠죠.
그리고 말씀하진 점을 고려했을 때 유교의 본질은 어쩌면 그러한 인륜, 즉 개인적 차원으로 환원될 수 없는 포괄적 선관념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점이 현대 자유주의와는 명백히 차이가 있죠. 다만 저로서는 샌델, 메킨타이어로 대표되는 공동체주의자들의 주장과 유교의 윤리관 사이에 어느 정도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고, 이런 점은 연구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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