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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1/04/07 20:38:22 |
Name | ar15Lover |
Subject | (번역)사회 발전은 결코 인간의 합리적인 통제의 대상이 될 수 없다 |
The Development of a Society Can Never Be Subject to Rational Human Control 사회 발전은 결코 인간의 합리적인 통제의 대상이 될 수 없다시어도어 존 카진스키 VI. 이 장에 대한 주된 비판은 아마도, 저자가 “누구나” 다 알고있는 뻔한 사실을 굳이 종이와 잉크를 낭비해가며 구구절절 설명했다는 비판일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인간은 사회 발전을 결코 합리적으로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지는 않다. 심지어 이 명제를 추상적 원칙으로는 인정하는 사람들조차 이 원칙을 구체적인 사례에 적용하지 못한다. 얼핏 보기에 똑똑해 보이는 사람들이, 사회 문제들을 해결할 정교한 계획은 절대, 절대, 절대 성공적으로 시행될 수 없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은채 그러한 계획을 제안하는 것을 우리는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목격하고 있다. 유명한 기술 비판자 이반 일리치(Ivan Illich)는 수십 년에 전 읽기만 해도 정신이 혼미해질 것 같은 환상적인 제안을 했다. 이반 일리치는 이렇게 적었다. “자율적인 개인들과 1차 집단들이,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설계된 새로운 생산 체제의 총제적 효율성에 기여할 수 있는 형태로 사회를 재구성해야한다.” 그리고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타인의 통제를 받지 않는 수단을 통해 최대한 자율적인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사회를 설계해야한다."124라고 적었다. 마치 사회를 의식적으로, 합리적으로 “재구성”하거나 “설계”하는게 가능한 것 마냥 말이다. 지독하게 멍청한 또 다른 사례는 아르너 네스(Arne Naess)125와 첼리스 글랜디닝(Chellis Glendinning)126이 각각 1989년, 1990년에 저질렀다. 이 사례는 이 책의 제3장 파트 IV에서 다루고 있다. 지금 현재(2013년), 현명해야할 사람들이 자꾸만 사회 발전을 합리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 이로인해, 우리는 기술성애자들이 “인류는 스스로의 운명을 책임진다.”, “우리는 우리의 진화를 스스로 책임질 것이다.”, “사람들이 진화를 통제할 것이다.”127 같은 헛소리를 하는 모습을 자꾸 보게된다. 기술성애자들은 “연구를 지도해 기술이 사회를 개선”하는 것을 돕고자 한다. 그래서 그들은 “진보를 형성하고, 사회가 기술 발전의 결과에 적응하도록 돕고”, “인공지능을… 인간에게 우호적으로 만들기” 위해 “특이점 대학(Singularity University)”과 “특이점 연구소(Singularity Institute)”를 세웠다.128 물론, 기술성애자들은 기술의 “진보를 형성”하거나 “사회를 개선”하지 못할 것이며, 기술이 인간에게 우호적이게끔 만들지도 못할 것이다. 장기적으로, 기술적 진보는 오직 상대방을 앞지르기 위해 기술을 도입하는 경쟁 집단들 간의 예측불가능하고 통제불가능한 권력 투쟁에 의해 “형성”될 것이다. 제2장을 참고하라. 아마 대부분의 기술성애자들은 “사회 개선”을 위해 기술의 “진보를 형성”하겠다는 헛소리를 진지하게 믿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는, “사회 개선”이라는 환상이 급진적인 기술 혁신에 대한 대중의 저항을 사전에 차단하는 프로파간다로 쓰이는 동안, 특이점 대학은 기술지향적 기업가들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고 있다.129 하지만 그러한 프로파간다는 오직 평범한 사람들이 그 환상을 진지하게 믿을만큼 순진하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사회를 개선”하겠다는 기술성애자들의 계획의 배후에 있는 동기가 무엇이든 간에, 이와 유사한 다른 진지한 계획들이 있다. 최근의 사례는,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2011)130과 빌 아이비(Bill Ivey)131의 저서를 참고하라. 리프킨과 아이비의 제안보다는 얼핏 더 정교해보이지만 똑같이 현실적으로 실행불가능한 계획들이 있다. 2011년에 출판된 책에서, 니콜라스 애쉬포드( Nicholas Ashford)와 랄프 P. 홀(Ralph P. Hall)132은 “산업국가들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달성하기 위한 일관적, 학문통합적(transdisciplinary) 접근을 제시한다. … 저자들은 경제, 고용, 기술, 환경, 산업 발전, 국내법, 국제법, 무역, 금융, 노동자와 공공의 건강과 안전을 아우르는 지속가능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목적 해결책의 설계를 주장한다.”133 애쉬포드와 홀은 그저 플라톤의 “국가”134나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같은 관념적인 추측을 제시할 의도로 책을 쓰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이 실용적인 계획을 제시했다고 믿고있다.135 또 다른 사례로(2011), 나오미 클라인(Naomi Klein)은 거대한, 정교한, 전세계적 “계획”136을 제안했다. 이 계획은 지구온난화를 통제하고137, 환경 문제들을 해결하고138, 동시에 우리에게 “참 민주주의”를 가져오고139, 기업들에게 “고삐”140를 채우고, 실업률을 낮추고141, 부유한 국가들의 소비를 줄이고142, 가난한 국가들의 경제를 성장시키고,143 “초-개인주의 대신 상호의존성을, 지배 대신 호혜(互惠)를, 계층 대신 협력을”144 조성하고, “지구의 생명체들을 보호하기 위한 이 모든 투쟁들을 일관적인 서사로 우아하게 엮어내고”145, 동시에 “진보”적 의제를 촉진146하여 “건강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것이 목표이다.147 애쉬포드, 홀, 클라인148 같은 사람들이 떠올린 계획들이 일종의 정성들인 농담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아니다. 이들은 꽤 진지하다. 이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이러한 계획들이 현실 세계에서 실행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인간사에 대한 현실 감각이 아예 없는걸까? 그럴수도 있다. 하지만 나오미 클라인 스스로가 더 그럴듯한 설명을 내놓았다: “자신의 세계관이 박살나는 모습을 보는 것보다는, 현실을 부정하는게 언제나 더 쉽다...”149 대부분의 지식인들을 포함해, 대부분의 중상류층의 세계관은, 엄밀하게 조직되어있고, 문화적으로 “진보”한, 높은 수준의 사회 질서를 갖춘 대규모 사회에 철저하게 종속되어 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우리가 따라가고 있는 재앙으로 향하는 길에서 벗어날 유일한 방법은 조직 사회의 완전한 붕괴와 혼란으로의 추락 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심리적으로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삶과 세계관이 종속되어 있는 사회를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하는 계획이라면, 그 계획이 아무리 비현실적이더라도 붙잡으려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이 그들의 세계관을 그들의 목숨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야 한다. 각주124. Illich, pp. 10,20. 125. Naess, pp. 92–103. 126. Glendinning, as referenced in our List of Works Cited. 127. Grossman, p. 49, col. 1, col. 3. Vance, p. 1. 128. Grossman, p. 48, col. 3. Markoff, “Ay Robot!,” p. 4, col. 2, col. 3. (광고가 실린 부분은 무시할 것). 129. e.g., Vance, p. 1 참고(특이점 대학은 “기업가들에게 전망좋은 기술들을 소개시켜주는데 집중하고 있다…”, etc.). 130. Rifkin, as referenced in our List of Works Cited. 131. Ivey, as referenced in our List of Works Cited. 132. Ashford & Hall, as referenced in our List of Works Cited. 133. 출판사 서문은 2016년 3월 28일 http://yalebooks.com/book/9780300169720/technology-globalization-and-sustainable-development에 실렸다. 인용된 부분은 실제로 책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134. 플라톤은 그의 저서 “국가”를 그저 관념적인 추측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는 그가 최소한의 실용적 가능성을 설명한다고 생각했다. Buchanan 참고: “The Republic," Book V, pp. 491–92; Book VI, pp. 530–31; Book VII, p.584. 하지만 내가 아는 바에 따르면, 근대에 들어서 플라톤의 “국가”는 실용적 가능성에 대한 설명이 아닌 이론적 추측으로 다루어졌다. 135. Ashford & Hall, p. 1. (“우리가 이 책에서 논의한 처방을 유토피아로 여기지 않기를 바란다.”) 136. Klein, pp. 14–15. 137. Ibid., pp. 14–17. 138. Ibid., p. 15. 139. Ibid., p. 15, col. 1. 140. Ibid.; 또한 p. 18, col. 1 참고. (“ 시장의 힘에 고삐를 채워야 한다.”) 141. Ibid., pp. 15, col. 1, col. 2; 16; 21, col. 2. 142. Ibid., pp. 16; 17, col. 2. 143. Ibid., p. 16. 144. Ibid., p. 19, col. 2. 145. Ibid., p. 20, col. 1. 146. Ibid. 147. Ibid., p. 20, col. 2. 148. 이런 망상들의 더 최근(2015) 사례들은, Gardner, Prugh & Renner, p. 17 참고. (“지금 세계는 생산과 소비 체계 전체를 근본적으로 바꿀 해결책을 도입해야한다… 이것은… 대규모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공학을 필요로 한다...”) 149. Klein, p. 18, col.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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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도 고민이 있지만, 부유한 사람도 고민이 있죠.
생명체가 살아가는한 위험이 없는 삶은 없습니다.
도시화만 사라져도 맹수와 전염병에 떼죽음을 당하겠지요. 평균 수명은 30세 이하로 돌아가는건 당연한 수순이고요.
기후변화는 커녕 도시화가 사라지면 추운 겨울 제대로 된 난방도 없어 떼죽음 당하는게 눈에 선하네요.
그럴듯한 전염병이 아니라 단순 질병에 죽어나가는 일도 예삿일이 될테고요.
빌게이츠는 이미 인류 상위 0.01% 이상의 부와 명예를 이룬 사람인데 당연히 환경에 관심이 많겠죠.
길에서 과일 ... 더 보기
생명체가 살아가는한 위험이 없는 삶은 없습니다.
도시화만 사라져도 맹수와 전염병에 떼죽음을 당하겠지요. 평균 수명은 30세 이하로 돌아가는건 당연한 수순이고요.
기후변화는 커녕 도시화가 사라지면 추운 겨울 제대로 된 난방도 없어 떼죽음 당하는게 눈에 선하네요.
그럴듯한 전염병이 아니라 단순 질병에 죽어나가는 일도 예삿일이 될테고요.
빌게이츠는 이미 인류 상위 0.01% 이상의 부와 명예를 이룬 사람인데 당연히 환경에 관심이 많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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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도 고민이 있지만, 부유한 사람도 고민이 있죠.
생명체가 살아가는한 위험이 없는 삶은 없습니다.
도시화만 사라져도 맹수와 전염병에 떼죽음을 당하겠지요. 평균 수명은 30세 이하로 돌아가는건 당연한 수순이고요.
기후변화는 커녕 도시화가 사라지면 추운 겨울 제대로 된 난방도 없어 떼죽음 당하는게 눈에 선하네요.
그럴듯한 전염병이 아니라 단순 질병에 죽어나가는 일도 예삿일이 될테고요.
빌게이츠는 이미 인류 상위 0.01% 이상의 부와 명예를 이룬 사람인데 당연히 환경에 관심이 많겠죠.
길에서 과일 야채파는 분들한테 빌게이츠가 우려한 것들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세요.
생명체가 살아가는한 위험이 없는 삶은 없습니다.
도시화만 사라져도 맹수와 전염병에 떼죽음을 당하겠지요. 평균 수명은 30세 이하로 돌아가는건 당연한 수순이고요.
기후변화는 커녕 도시화가 사라지면 추운 겨울 제대로 된 난방도 없어 떼죽음 당하는게 눈에 선하네요.
그럴듯한 전염병이 아니라 단순 질병에 죽어나가는 일도 예삿일이 될테고요.
빌게이츠는 이미 인류 상위 0.01% 이상의 부와 명예를 이룬 사람인데 당연히 환경에 관심이 많겠죠.
길에서 과일 야채파는 분들한테 빌게이츠가 우려한 것들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세요.
이를테면 산업혁명으로 인해 런던에서는 공해로 인한 사망자가 속출할 정도로 문제가 심각했지만, 현재는 그런 경우는 없습니다. 기술이 해결했기 때문이죠.
과학 기술로 친환경 기술을 만들어 낸 예는 수도 없이 많지요.
기후 변화는 꼭 인간이 아니더라도 일어났을 뿐더러, 기후가 냉각되었을 때가 정말 치명적이지 기후가 온난화로 인한 피해가 일어났던 적은 사실상 없습니다. 소빙기 같은 표현은 있어도 그에 반대되는 표현은 사실상 없죠.
평소에도 40~50도를 오르내리는 중동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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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기술로 친환경 기술을 만들어 낸 예는 수도 없이 많지요.
기후 변화는 꼭 인간이 아니더라도 일어났을 뿐더러, 기후가 냉각되었을 때가 정말 치명적이지 기후가 온난화로 인한 피해가 일어났던 적은 사실상 없습니다. 소빙기 같은 표현은 있어도 그에 반대되는 표현은 사실상 없죠.
평소에도 40~50도를 오르내리는 중동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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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산업혁명으로 인해 런던에서는 공해로 인한 사망자가 속출할 정도로 문제가 심각했지만, 현재는 그런 경우는 없습니다. 기술이 해결했기 때문이죠.
과학 기술로 친환경 기술을 만들어 낸 예는 수도 없이 많지요.
기후 변화는 꼭 인간이 아니더라도 일어났을 뿐더러, 기후가 냉각되었을 때가 정말 치명적이지 기후가 온난화로 인한 피해가 일어났던 적은 사실상 없습니다. 소빙기 같은 표현은 있어도 그에 반대되는 표현은 사실상 없죠.
평소에도 40~50도를 오르내리는 중동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고요.
오히려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인간에게 치명적인 오염, 바이러스 등이 무엇이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더 체계적으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진시황같은 사례를 보더라도 무지로 인해 수은을 먹는다거나, 서양에서는 멀쩡한 이를 뽑고 병에 걸리면 피를 다량으로 뽑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많았죠.
온난화 외의 자연을 관리하는 차원도 과학으로 인해 체계적으로 발전했습니다. 국가 규모로 산림을 관리하고, 법적으로 기업들과 개인에게 자연 보호를 교육하고 강제할 만큼 수백년 전 보다 진보되었습니다.
과학 기술로 친환경 기술을 만들어 낸 예는 수도 없이 많지요.
기후 변화는 꼭 인간이 아니더라도 일어났을 뿐더러, 기후가 냉각되었을 때가 정말 치명적이지 기후가 온난화로 인한 피해가 일어났던 적은 사실상 없습니다. 소빙기 같은 표현은 있어도 그에 반대되는 표현은 사실상 없죠.
평소에도 40~50도를 오르내리는 중동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고요.
오히려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인간에게 치명적인 오염, 바이러스 등이 무엇이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더 체계적으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진시황같은 사례를 보더라도 무지로 인해 수은을 먹는다거나, 서양에서는 멀쩡한 이를 뽑고 병에 걸리면 피를 다량으로 뽑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많았죠.
온난화 외의 자연을 관리하는 차원도 과학으로 인해 체계적으로 발전했습니다. 국가 규모로 산림을 관리하고, 법적으로 기업들과 개인에게 자연 보호를 교육하고 강제할 만큼 수백년 전 보다 진보되었습니다.
지금 저는 빌 게이츠가 쓴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을 읽고 있는데, 지금 이 책에 써진 이야기랑 정 반대되는 말씀만 골라서 하고 계세요. 빌 게이츠는 제2장에서 Curic님처럼 기후변화를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온도 40~50도 올라도 사람 사는데 문제 없다는 주장은 좀 우스꽝스럽네요. 그런 환경에서는 농사를 지을 수가 없어요. 농사를 지을 수 없는데 지금처럼 많은 인구를 먹여살릴 수 있어요? 지금 추세로라면 기후변화로 21세기 중반 즈음 남유럽의 밀, 옥수수 생산량은 절반으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사하라사막... 더 보기
지금 저는 빌 게이츠가 쓴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을 읽고 있는데, 지금 이 책에 써진 이야기랑 정 반대되는 말씀만 골라서 하고 계세요. 빌 게이츠는 제2장에서 Curic님처럼 기후변화를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온도 40~50도 올라도 사람 사는데 문제 없다는 주장은 좀 우스꽝스럽네요. 그런 환경에서는 농사를 지을 수가 없어요. 농사를 지을 수 없는데 지금처럼 많은 인구를 먹여살릴 수 있어요? 지금 추세로라면 기후변화로 21세기 중반 즈음 남유럽의 밀, 옥수수 생산량은 절반으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사하라사막 이남에서는 농작물이 자랄 수 있는 시간이 20퍼센트 줄어들고 농지들이 심하게 건조해집니다. 중국의 농업이 세계 인구의 5분의 1을 먹이고 있는데, 중국의 농업 시스템을 위협해 대규모 식량 위기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바다 수온이 섭씨 2도만 올라도 산호초가 완전히 사라져 바다 생태계가 파괴되어 해산물이 부족해집니다.지금 국가와 기업들은 자연을 제대로 보호하고 있지 않습니다. 생물멸종속도는 수백년전보다 훨씬 빨라졌고, 과학자들은 이걸 6차대멸종이라고 부르고 있어요.
아, 그러니까 Curic님은 지구 온도가 40~50도 올라도, 수직농업이나 비닐하우스와 유사한 미래 신기술을 이용해 78억보다 훨씬 많은 수의 사람들에게 식량공급을 할 수 있다고 믿고계시는군요?
스스로 자아비판 하는건가요?
사회의 진보를 통제할 수 없다면 퇴보 역시 마찬가지로 통제해서 이룰 수 있는 대상이 아닐텐데...
그리고 사회의 유지를 목숨만큼 소중히 할 수 밖에 없는게
저자가 원하는 상태로 인류를 퇴보시키려면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던 규모의 파괴와 인명살상이 일어나야 가능한걸로 보이는데 말입니다.
사회의 진보를 통제할 수 없다면 퇴보 역시 마찬가지로 통제해서 이룰 수 있는 대상이 아닐텐데...
그리고 사회의 유지를 목숨만큼 소중히 할 수 밖에 없는게
저자가 원하는 상태로 인류를 퇴보시키려면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던 규모의 파괴와 인명살상이 일어나야 가능한걸로 보이는데 말입니다.
음... 의식있는 분들이 많은 것과 실제로 성과를 내고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라고 봅니다. "의식"있는 분들이 어떤 노력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노력이 의미가 있었으면 애초에 기후변화 문제가 이렇게 심각해지지도 않았을 것이고,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터질 일도 없었을 것이고, 생물멸종속도가 이렇게 빨라지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과거에 무능했고, 지금도 무능한 사람이 미래에 갑자기 유능해지리라 믿기는 힘들고, 모든 문제의 근본 원인인 전세계의 에너지 소모량은 늘었으면 늘었지, 줄어들 기미는 보이지 않는 다는 점에서, 무엇보다도 본문에서 지적한 것처럼 "사회 발전은 결코 인간의 합리적인 통제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극복하기는 불가능해보인다는 점에서, 상황이 시간이 가면 갈 수록 심각해지면 심각해졌지, 좋아질 일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기후변화는 인류의 행동이 결정적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인류를 포함해서 지구 역사상 많은 대형 재해들은 인류의 행동과는 무관한 경우가 대다수였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인류가 만든 수준의 재해는 인간이 관리가 가능합니다.
많은 분들의 노력이 없었으면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대장균과 독감에 10대 20대에 일찍 죽어났겠지요.
20~30이 평균수명이던 시절을 70~80이 평균수명으로 끌어올린 것을 무능이라고 한다면, 대체 그 무능이 아닌 것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에너지 소모량은 문명의 발전에 비례해서 증... 더 보기
많은 분들의 노력이 없었으면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대장균과 독감에 10대 20대에 일찍 죽어났겠지요.
20~30이 평균수명이던 시절을 70~80이 평균수명으로 끌어올린 것을 무능이라고 한다면, 대체 그 무능이 아닌 것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에너지 소모량은 문명의 발전에 비례해서 증... 더 보기
기후변화는 인류의 행동이 결정적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인류를 포함해서 지구 역사상 많은 대형 재해들은 인류의 행동과는 무관한 경우가 대다수였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인류가 만든 수준의 재해는 인간이 관리가 가능합니다.
많은 분들의 노력이 없었으면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대장균과 독감에 10대 20대에 일찍 죽어났겠지요.
20~30이 평균수명이던 시절을 70~80이 평균수명으로 끌어올린 것을 무능이라고 한다면, 대체 그 무능이 아닌 것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에너지 소모량은 문명의 발전에 비례해서 증가한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인간 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회성을 갖춘 생명체는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에너지의 사용량을 높이는 것은 사회성을 갖춘 생명체로서는 본능의 하나입니다. 개나 고양이만 키워봐도 갖고놀던 장난감 안 주면 싫어합니다.
많은 분들의 노력이 없었으면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대장균과 독감에 10대 20대에 일찍 죽어났겠지요.
20~30이 평균수명이던 시절을 70~80이 평균수명으로 끌어올린 것을 무능이라고 한다면, 대체 그 무능이 아닌 것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에너지 소모량은 문명의 발전에 비례해서 증가한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인간 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회성을 갖춘 생명체는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에너지의 사용량을 높이는 것은 사회성을 갖춘 생명체로서는 본능의 하나입니다. 개나 고양이만 키워봐도 갖고놀던 장난감 안 주면 싫어합니다.
그래서 기술진보로 인류가 요람에서 벗어난 탈지구 종족이 되는것 이외에 대안이 뭐죠?
대규모 핵전쟁으로 인류를 리셋시키고 수렵채집사회로 귀환? 이래봐야 인류가 아예 멸망하지 않는한 사회간의 경쟁으로 물질문명의 재탄생은 필연입니다.
아니면 '통제된'학살을 통해 문명을 파괴하고 선택된 일부 집단만이 물리적 군사력을 보존하여 나머지 인류집단이 수렵채집 상태에 머물게 만드는 방법? 그런 방법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유아용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악당 수준의 순진한 생각이겠죠?
다른 사람들이 카진스키의 발상과 그 이상을 폭력으로 이... 더 보기
대규모 핵전쟁으로 인류를 리셋시키고 수렵채집사회로 귀환? 이래봐야 인류가 아예 멸망하지 않는한 사회간의 경쟁으로 물질문명의 재탄생은 필연입니다.
아니면 '통제된'학살을 통해 문명을 파괴하고 선택된 일부 집단만이 물리적 군사력을 보존하여 나머지 인류집단이 수렵채집 상태에 머물게 만드는 방법? 그런 방법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유아용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악당 수준의 순진한 생각이겠죠?
다른 사람들이 카진스키의 발상과 그 이상을 폭력으로 이... 더 보기
그래서 기술진보로 인류가 요람에서 벗어난 탈지구 종족이 되는것 이외에 대안이 뭐죠?
대규모 핵전쟁으로 인류를 리셋시키고 수렵채집사회로 귀환? 이래봐야 인류가 아예 멸망하지 않는한 사회간의 경쟁으로 물질문명의 재탄생은 필연입니다.
아니면 '통제된'학살을 통해 문명을 파괴하고 선택된 일부 집단만이 물리적 군사력을 보존하여 나머지 인류집단이 수렵채집 상태에 머물게 만드는 방법? 그런 방법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유아용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악당 수준의 순진한 생각이겠죠?
다른 사람들이 카진스키의 발상과 그 이상을 폭력으로 이루겠다는 행위에 대해 좋지않게 보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런 방법은 불가능하며 필연적으로 나 자신과 가족, 친지의 죽음을 바탕으로 해야 이루어지는 짓거리이며 그렇게 왜곡된 체제를 만들어봐야 '충분히 오래(수십만년 이상)' 지속될 가능성도 없는 망상이니까요.
대규모 핵전쟁으로 인류를 리셋시키고 수렵채집사회로 귀환? 이래봐야 인류가 아예 멸망하지 않는한 사회간의 경쟁으로 물질문명의 재탄생은 필연입니다.
아니면 '통제된'학살을 통해 문명을 파괴하고 선택된 일부 집단만이 물리적 군사력을 보존하여 나머지 인류집단이 수렵채집 상태에 머물게 만드는 방법? 그런 방법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유아용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악당 수준의 순진한 생각이겠죠?
다른 사람들이 카진스키의 발상과 그 이상을 폭력으로 이루겠다는 행위에 대해 좋지않게 보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런 방법은 불가능하며 필연적으로 나 자신과 가족, 친지의 죽음을 바탕으로 해야 이루어지는 짓거리이며 그렇게 왜곡된 체제를 만들어봐야 '충분히 오래(수십만년 이상)' 지속될 가능성도 없는 망상이니까요.
음, 기술을 통해 지구를 벗어난 탈지구 종족이 될 수 있다는 발상이야 말로 망상 아닐까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카진스키는 멀쩡한 문명을 폭력으로 무너뜨리자는게 아니라, 이미 무너진(혹은 무너져가는) 문명이 다시 회복할 수 없도록 짓밟아주자는 것입니다. 빌 게이츠 스스로가 자신의 저서에서 2050년경 전세계적 식량 부족 사태가 발생할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굳이 무시무시한 핵전쟁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산업 선진국에서 아사자가 대량으로 속출할텐데, 이런 상황에서 현대문명을 유지하는건 불가능하죠. 제안하신 "통제된'학살을 ... 더 보기
음, 기술을 통해 지구를 벗어난 탈지구 종족이 될 수 있다는 발상이야 말로 망상 아닐까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카진스키는 멀쩡한 문명을 폭력으로 무너뜨리자는게 아니라, 이미 무너진(혹은 무너져가는) 문명이 다시 회복할 수 없도록 짓밟아주자는 것입니다. 빌 게이츠 스스로가 자신의 저서에서 2050년경 전세계적 식량 부족 사태가 발생할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굳이 무시무시한 핵전쟁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산업 선진국에서 아사자가 대량으로 속출할텐데, 이런 상황에서 현대문명을 유지하는건 불가능하죠. 제안하신 "통제된'학살을 통해 문명을 파괴하고 선택된 일부 집단만이 물리적 군사력을 보존하여 나머지 인류집단이 수렵채집 상태에 머물게 만드는 방법"은 너무 황당해서 뭐라 대답해드려야할지 모르겠네요.
일단 현대 문명이 한번 붕괴되면 다시 회복하는건 영원히 불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문명이 존재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하고, 에너지는 자원으로부터 얻어야 하는데, 이미 원시적으로 채굴할 법한 자원은 다 털려있는 상태거든요. 자원을 채굴하려면 최첨단 도구가 필요한데, 최첨단 도구를 작동시킬 자원이 없는 모순상태에 빠지는거죠. 어떤 경제학자는 기후 자체가 불안정해져서 농사가 불가능해 문명을 재건설하는게 불가능할거라고 예측하더라고요.
그리고 요즘 이상한 헛물 들이키고 특이점 왱알왱알 화성개척 역노화 왱알왱알 거리는 분들이 가끔 눈에 띄는 것 같은데, 전부 실현가능성 없는 망상이라고 봅니다.
일단 현대 문명이 한번 붕괴되면 다시 회복하는건 영원히 불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문명이 존재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하고, 에너지는 자원으로부터 얻어야 하는데, 이미 원시적으로 채굴할 법한 자원은 다 털려있는 상태거든요. 자원을 채굴하려면 최첨단 도구가 필요한데, 최첨단 도구를 작동시킬 자원이 없는 모순상태에 빠지는거죠. 어떤 경제학자는 기후 자체가 불안정해져서 농사가 불가능해 문명을 재건설하는게 불가능할거라고 예측하더라고요.
그리고 요즘 이상한 헛물 들이키고 특이점 왱알왱알 화성개척 역노화 왱알왱알 거리는 분들이 가끔 눈에 띄는 것 같은데, 전부 실현가능성 없는 망상이라고 봅니다.
채굴할 에너지가 없다는건 무슨 의미인가요? 고대 로마는 석유나 석탄 없어도 번영을 누렸습니다.
특이점에 대한 가설도 터무니없는 이론이 아닙니다. 이미 시중에 판매되는 애플 맥북만 봐도 5년전 수천만원 짜리 첨단 컴퓨터보다 뛰어난데요.
인공지능을 통한 이미지 인식 등은 이미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었습니다.
지금은 멀쩡한 문명입니다. 누가 밟는건 문명이 아니라 야만이라고 합니다. 지금 문명이 멀쩡하지 않다는건, 망상에서나 가능한 완전무결한 세상을 꿈꾸기 때문이겠지요. 문제가 없는 문명이나 인류는 없습니다.
카진스키의... 더 보기
특이점에 대한 가설도 터무니없는 이론이 아닙니다. 이미 시중에 판매되는 애플 맥북만 봐도 5년전 수천만원 짜리 첨단 컴퓨터보다 뛰어난데요.
인공지능을 통한 이미지 인식 등은 이미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었습니다.
지금은 멀쩡한 문명입니다. 누가 밟는건 문명이 아니라 야만이라고 합니다. 지금 문명이 멀쩡하지 않다는건, 망상에서나 가능한 완전무결한 세상을 꿈꾸기 때문이겠지요. 문제가 없는 문명이나 인류는 없습니다.
카진스키의... 더 보기
채굴할 에너지가 없다는건 무슨 의미인가요? 고대 로마는 석유나 석탄 없어도 번영을 누렸습니다.
특이점에 대한 가설도 터무니없는 이론이 아닙니다. 이미 시중에 판매되는 애플 맥북만 봐도 5년전 수천만원 짜리 첨단 컴퓨터보다 뛰어난데요.
인공지능을 통한 이미지 인식 등은 이미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었습니다.
지금은 멀쩡한 문명입니다. 누가 밟는건 문명이 아니라 야만이라고 합니다. 지금 문명이 멀쩡하지 않다는건, 망상에서나 가능한 완전무결한 세상을 꿈꾸기 때문이겠지요. 문제가 없는 문명이나 인류는 없습니다.
카진스키의 문제는 인간의 사회적 특성을 무시한다는 점입니다.
지금 문명을 밟는 것에 동의할 사회집단은 없으며, 산업선진국에서 아사자가 속출하도록 방치할 이유도 없습니다.
특이점에 대한 가설도 터무니없는 이론이 아닙니다. 이미 시중에 판매되는 애플 맥북만 봐도 5년전 수천만원 짜리 첨단 컴퓨터보다 뛰어난데요.
인공지능을 통한 이미지 인식 등은 이미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었습니다.
지금은 멀쩡한 문명입니다. 누가 밟는건 문명이 아니라 야만이라고 합니다. 지금 문명이 멀쩡하지 않다는건, 망상에서나 가능한 완전무결한 세상을 꿈꾸기 때문이겠지요. 문제가 없는 문명이나 인류는 없습니다.
카진스키의 문제는 인간의 사회적 특성을 무시한다는 점입니다.
지금 문명을 밟는 것에 동의할 사회집단은 없으며, 산업선진국에서 아사자가 속출하도록 방치할 이유도 없습니다.
... 뭔가 꽃밭속에서 살고 계시는 것 같은데,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에요.
현대 사회는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사회가 아닙니다. 사회는 인간의 욕구에는 무관심하고 오직 자신의 욕구만을 추구합니다. 사회가 인간의 욕망을 돌봐주는건 오직 인간의 욕망을 돌봐주는게 자신에게 이익이 될때만 한정됩니다. 많은 사람이 굶으면 사회가 불안정해지기에 사회는 인간에게 음식을 공급합니다. 많은 사람이 우울해지면 사회가 불안정해지기에 오락거리를 제공합니다. 사람들이 건강하지 못하면 사회가 불안정해지기에 인간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더 보기
현대 사회는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사회가 아닙니다. 사회는 인간의 욕구에는 무관심하고 오직 자신의 욕구만을 추구합니다. 사회가 인간의 욕망을 돌봐주는건 오직 인간의 욕망을 돌봐주는게 자신에게 이익이 될때만 한정됩니다. 많은 사람이 굶으면 사회가 불안정해지기에 사회는 인간에게 음식을 공급합니다. 많은 사람이 우울해지면 사회가 불안정해지기에 오락거리를 제공합니다. 사람들이 건강하지 못하면 사회가 불안정해지기에 인간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더 보기
... 뭔가 꽃밭속에서 살고 계시는 것 같은데,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에요.
현대 사회는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사회가 아닙니다. 사회는 인간의 욕구에는 무관심하고 오직 자신의 욕구만을 추구합니다. 사회가 인간의 욕망을 돌봐주는건 오직 인간의 욕망을 돌봐주는게 자신에게 이익이 될때만 한정됩니다. 많은 사람이 굶으면 사회가 불안정해지기에 사회는 인간에게 음식을 공급합니다. 많은 사람이 우울해지면 사회가 불안정해지기에 오락거리를 제공합니다. 사람들이 건강하지 못하면 사회가 불안정해지기에 인간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사회가 폭력을 죄악시하는 이유는, 폭력이 사회를 위협하기 때문이지 딱히 인간을 아껴서가 아닙니다. 정작 사회는 자신에게 유리하다 싶으면 거리낌없이 폭력을 휘두릅니다. 인간의 욕구와 사회의 욕구가 일치하지 않을 때에는 언제나 사회의 욕구가 우선시된다. 예를들어, 사회는 과학자, 엔지니어를 필요로 하기에 어린이들에게는 수학, 과학 공부가 강요됩니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숙련 노동자들이 해고당하는건 당연한 것으료 여겨집니다.
Curic님은 사회가 Curic님을 돌봐줄 것이라고 믿고 계시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요. 사회는 Curic님 하나쯤 죽어도 눈 하나 깜짝 안합니다.
특이점이 올지 안올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두 가지는 확신할 수 있어요. 첫째는 그렇게 발전한 기술을 Curic님이 누릴 일은 없습니다. 둘째, 기술 발전과 비례해서 Curic님 형편은 시간이 갈수록 빠듯해질 겁니다.
이건 본인이 제일 뼈저리게 현실로 느끼고 있으시리라고 봐요.
현대 사회는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사회가 아닙니다. 사회는 인간의 욕구에는 무관심하고 오직 자신의 욕구만을 추구합니다. 사회가 인간의 욕망을 돌봐주는건 오직 인간의 욕망을 돌봐주는게 자신에게 이익이 될때만 한정됩니다. 많은 사람이 굶으면 사회가 불안정해지기에 사회는 인간에게 음식을 공급합니다. 많은 사람이 우울해지면 사회가 불안정해지기에 오락거리를 제공합니다. 사람들이 건강하지 못하면 사회가 불안정해지기에 인간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사회가 폭력을 죄악시하는 이유는, 폭력이 사회를 위협하기 때문이지 딱히 인간을 아껴서가 아닙니다. 정작 사회는 자신에게 유리하다 싶으면 거리낌없이 폭력을 휘두릅니다. 인간의 욕구와 사회의 욕구가 일치하지 않을 때에는 언제나 사회의 욕구가 우선시된다. 예를들어, 사회는 과학자, 엔지니어를 필요로 하기에 어린이들에게는 수학, 과학 공부가 강요됩니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숙련 노동자들이 해고당하는건 당연한 것으료 여겨집니다.
Curic님은 사회가 Curic님을 돌봐줄 것이라고 믿고 계시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요. 사회는 Curic님 하나쯤 죽어도 눈 하나 깜짝 안합니다.
특이점이 올지 안올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두 가지는 확신할 수 있어요. 첫째는 그렇게 발전한 기술을 Curic님이 누릴 일은 없습니다. 둘째, 기술 발전과 비례해서 Curic님 형편은 시간이 갈수록 빠듯해질 겁니다.
이건 본인이 제일 뼈저리게 현실로 느끼고 있으시리라고 봐요.
결국은 또 집단, 계층 간 갈등인가요?
저는 사회가 저를 돌봐주는 대상이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사회는 진취적인 사람들이 달성해 놓은 결과물이지요.
사회에 기여하지 않는 사람일수록 반사회적입니다. 당연한 말인데요. 사회는 당연히 인간을 위해 존재한 적 없으며, 진취적인 집단에 의해 조정되는 것이 사회입니다.
또한, 누가 누굴 돌봐주는 형태의 사회활동은 근본적으로 없습니다. 각자가 각자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에 작용하는거지요. 계약입니다.
공산주의도 그렇고 연이어 언급하시는 적극적 퇴보주의도 그렇고,... 더 보기
저는 사회가 저를 돌봐주는 대상이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사회는 진취적인 사람들이 달성해 놓은 결과물이지요.
사회에 기여하지 않는 사람일수록 반사회적입니다. 당연한 말인데요. 사회는 당연히 인간을 위해 존재한 적 없으며, 진취적인 집단에 의해 조정되는 것이 사회입니다.
또한, 누가 누굴 돌봐주는 형태의 사회활동은 근본적으로 없습니다. 각자가 각자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에 작용하는거지요. 계약입니다.
공산주의도 그렇고 연이어 언급하시는 적극적 퇴보주의도 그렇고,... 더 보기
결국은 또 집단, 계층 간 갈등인가요?
저는 사회가 저를 돌봐주는 대상이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사회는 진취적인 사람들이 달성해 놓은 결과물이지요.
사회에 기여하지 않는 사람일수록 반사회적입니다. 당연한 말인데요. 사회는 당연히 인간을 위해 존재한 적 없으며, 진취적인 집단에 의해 조정되는 것이 사회입니다.
또한, 누가 누굴 돌봐주는 형태의 사회활동은 근본적으로 없습니다. 각자가 각자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에 작용하는거지요. 계약입니다.
공산주의도 그렇고 연이어 언급하시는 적극적 퇴보주의도 그렇고, 사회로부터 뭔가를 받으려고 하면서 동시에 갈등이 어디서부터로 왔나로만 보니까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특히, 금융 경제를 부정하는 집단과 개인에게서 이런 사상이 자주 보입니다. 그냥 별 생각 없는 관점에서 마치 편하게 먹고 사는 것이 아니꼽기 때문이지요.
특히 글쓰신 분을 포함 카진스키도 개인이 아닌 사회를 수정하고자 하시는데, 개인을 수정하지 않고서는 사회는 당연히 수정할 수 없습니다. 개인이, 그 중에서도 사회에 기여하는 진취적인 개인이 계약에 따라 사회를 조정하는데 그 역이 될 수는 없지요.
개인의 진취성이 담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회로부터 돌봄받거나, 사회를 어떻게해서 내가 무언가를 누리겠다는 생각은 그냥 체리픽커입니다.
발전한 기술은 우리가 흔히 누립니다. 과학 뿐만 아니라 정치 문화 모든 면에서요.
동네에는 부유하지 않은 사람도 공공정원(공원)을 누릴수있고, 먼 이국 땅의 음식도 마트에서 편하게 살 수 있죠.
기술 발전을 하면 당연히 진취적인 사람에게는 그것이 도움이 되죠. 기술 발전이 일어날때 러다이트를 떠올리는 사람은 그냥 게으른 사람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이를테면 지금 당장 사진 편집이나 영상 편집에 인공지능을 사용하면, 서너시간 걸릴 일이 수분만에 이뤄지거든요.
무언가 강요되는 사회는 문화의 문제입니다. 한국에선 홈스쿨링이 불법이지만, 미국에선 아닌 것 처럼요.
저는 사회가 저를 돌봐주는 대상이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사회는 진취적인 사람들이 달성해 놓은 결과물이지요.
사회에 기여하지 않는 사람일수록 반사회적입니다. 당연한 말인데요. 사회는 당연히 인간을 위해 존재한 적 없으며, 진취적인 집단에 의해 조정되는 것이 사회입니다.
또한, 누가 누굴 돌봐주는 형태의 사회활동은 근본적으로 없습니다. 각자가 각자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에 작용하는거지요. 계약입니다.
공산주의도 그렇고 연이어 언급하시는 적극적 퇴보주의도 그렇고, 사회로부터 뭔가를 받으려고 하면서 동시에 갈등이 어디서부터로 왔나로만 보니까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특히, 금융 경제를 부정하는 집단과 개인에게서 이런 사상이 자주 보입니다. 그냥 별 생각 없는 관점에서 마치 편하게 먹고 사는 것이 아니꼽기 때문이지요.
특히 글쓰신 분을 포함 카진스키도 개인이 아닌 사회를 수정하고자 하시는데, 개인을 수정하지 않고서는 사회는 당연히 수정할 수 없습니다. 개인이, 그 중에서도 사회에 기여하는 진취적인 개인이 계약에 따라 사회를 조정하는데 그 역이 될 수는 없지요.
개인의 진취성이 담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회로부터 돌봄받거나, 사회를 어떻게해서 내가 무언가를 누리겠다는 생각은 그냥 체리픽커입니다.
발전한 기술은 우리가 흔히 누립니다. 과학 뿐만 아니라 정치 문화 모든 면에서요.
동네에는 부유하지 않은 사람도 공공정원(공원)을 누릴수있고, 먼 이국 땅의 음식도 마트에서 편하게 살 수 있죠.
기술 발전을 하면 당연히 진취적인 사람에게는 그것이 도움이 되죠. 기술 발전이 일어날때 러다이트를 떠올리는 사람은 그냥 게으른 사람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이를테면 지금 당장 사진 편집이나 영상 편집에 인공지능을 사용하면, 서너시간 걸릴 일이 수분만에 이뤄지거든요.
무언가 강요되는 사회는 문화의 문제입니다. 한국에선 홈스쿨링이 불법이지만, 미국에선 아닌 것 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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