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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5/14 20:43:43수정됨
Name   ar15Lover
Subject   유교(儒敎)에 대한 비판
우선 유교의 장점부터 이야기 해보겠습니다.(저는 무언가를 비판할 때는 장점부터 말합니다.)

일단 대표적인 유학자인 공자, 맹자가 살던 시대상황을 감안할 필요가 있습니다.

공자, 맹자는 춘추전국시대에 태어난 인물이었습니다.

춘추전국시대는, 천자의 권위는 땅으로 떨어지고, 주나라 왕실의 통제를 벗어난 제후국들의 다툼으로 인해

하루가 멀다하고 전쟁이 일어나던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 나타난 사상들은 "어떻게 해야 세상을 안정시키고 평화를 누릴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집중하는 성향이 강하죠.

공자를 시초로 등장한 유가(儒家) 역시 이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등장했습니다.

유가의 가르침, 즉 유교는 기본적으로 평화주의적 입니다.

기본적으로 전쟁을 싫어하죠. 또한 인(仁), 다시말해 '사람다움'을 중시했죠.

그래서 사람을 산채로 매장하는 순장 풍습, 극도의 통증과 신체훼손을 동반하는 잔인한 형벌에 기본적으로 반대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유교가 말하는 인(仁)은 동아시아 나름대로의 인권 개념 입니다.

또 유교는 기독교, 이슬람, 불교 등 다른 주요 종교들과는 다르게 세속주의 성향이 굉장히 강합니다.

"군자불어괴력난신(君子不語怪力亂神)"이라는 문장으로 대표되죠.

그래서 유교는 기적, 사후세계, 또는 인격화된 신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얼핏 들은 이야기인데, 서양의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유교 특유의 세속주의 성향에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어쨋든 위에서 나열한 점들은 분명히 유교의 장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교에는 장점을 압도할만한 단점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유교라는 단어에는 더이상 긍정적인 이미지가 없죠.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유교라는 단어를 들으면 고리타분한 꼰대의 이미지를 떠올리죠.

유교에는 여러가지 혐의가 있습니다.

유교 때문에 근대화에 실패해 일본의 지배를 당하게 되었다.

유교 때문에 숨막히는 똥군기, 상명하복, 존대 문화가 생겼다.

유교 때문에 성차별이 극심해졌다. 등등...


이렇게 동네북이 된지 오래인 유교인데, 이상하게도 가끔씩 어떻게든 유교를 변호하려는 한국인들이 있더군요?

이들의 레퍼토리는 늘 똑같습니다.

"원래의 유교는 그렇지 않았다. 그건 유교가 아니라 일제강점기와 군사독재를 거치며 생겨난 악습이다."

"원래의 유교는 그렇지 않았다. 조선 전기만해도 안그랬는데 임진왜란을 겪으며 교조화되었을 뿐이다."

"원래의 유교는 그렇지 않았다. 논어에 따르면 어쩌구저쩌구"


그러나 저는 좀 더 큰 맥락에서 유교를 비판해야한다고 봅니다.

가장 중요한건, 유교는 시작부터 지배자를 위한 사상이자 반동적인 사상이었다는 겁니다.

공자는 주(周)나라뽕에 심취해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상은 천자의 나라, 주나라의 종법(宗法)질서가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죠.

공자가 생각하기에 주나라 천자(天子)의 권위가 드높고, 휘하 제후국들이 천자에게 복종하던 시대야 말로 유토피아였습니다.

따라서 주나라의 법도가 회복되면 다시 평화로운 시대가 찾아올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가는 곳 마다 주나라의 질서를 회복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다녔죠.

따라서 유교의 핵심은 바로 천자의 나라를 섬기는 것입니다.

부모님에 대한 효도? 군주에 대한 충성? 이런건 전부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해요.

유교의 핵심은 천자의 나라를 섬기는 거에요.

조선이 중국을 사대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조선의 유학자들 입장에서 중국은 곧 천자의 나라고, 주나라의 종법질서에 따라

제후국 조선은 중국을 섬기는게 당연했던거죠.

그래서 조선의 왕은 즉위할 때 반드시 천자의 나라 중국으로부터 책봉을 받는 의식을 행해야 했죠.

우리가 귀에 못이박히도록 들은 부모에 대한 효도나 장유유서는 천자와 제후들의 관계를 일상에 적용한 것에 불과합니다.

이런 이유로, 앞서 말한 유교의 여러가지 장점에도 불구하고, 고대 중국의 봉건제와 신분질서를 긍정하는 유교는

현대의 민주정과는 양립할 수 없습니다.

이러면 반드시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아니다. 유교는 왕이 왕답지 못하면 쫓아내도 된다고 가르치는 혁명적인 사상이다."

얼핏보면 그럴듯한 말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한계가 있죠. 어디까지나 왕을 갈아치울 뿐이지, 주나라의 종법제 자체는 건드리지 않는다는거죠.

이런건 진정한 의미의 혁명이 아닙니다.

슬라보예 지젝이 말했죠. 선택지 중에서 하나를 고를 수 있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고.

선택지 자체를 바꿀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자유라고요.

마찬가지로, 이 왕을 저 왕으로 바꾸는건 혁명이 아니죠.

아예 왕정 자체를 폐지하고 공화정, 민주정 등으로 교체할 수 있어야 혁명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행위야 말로 유교에서 결코 용납할 수 없는 행위인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유교의 핵심은 천자-제후-경-대부-사 로 이루어진 주나라의 종법제를 회복하는데에 있습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신분질서를 긍정합니다. 이것만으로도 유교는 현대 민주정에서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사상입니다.

그런 의미로 저는 왜 일부 한국인들이 유교를 금이야 옥이야 못지켜 안달인지 모르겠습니다.

아, 물론 그분들이 진심으로 지금의 민주주의는 잘못되었다고 믿고, 주나라의 봉건질서를 회복하고자 하는거라면, 동의는 못하겠지만 이해는 갑니다. 최소한 일관성은 있는 것이니까요.



==== 피드백 ====

레퍼런스가 부족하다는 점에 대해 피드백드리겠습니다.

유교를 '주나라의 종법제를 따라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자는 사상'로 정의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일단 대표적인 유교경전인 논어를 봐도, 공자는 여러차례 주나라를 칭송하는 발언을 합니다.

子曰周監於二代郁郁乎文哉吾從周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주나라는 하와 은 이대(二代)를 보았으니, 찬란하다 그 문채여. 나는 주나라를 따르리라.”
子曰甚矣吾衰也久矣吾不復夢見周公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심하구나, 나의 노쇠함이여! 오래도록 나는 주공을 꿈에서 다시 뵙지 못하였다.”
子曰夫召我者而豈徒哉如有用我者吾其爲東周乎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를 부르는 사람이 어찌 공연히 부르겠느냐? 나를 써 주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곳의 동쪽의 주나라로 만들 것이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공자가 주나라를 이상으로 삼았다는 글들이 여럿 있습니다.

https://www.mk.co.kr/opinion/columnists/view/2012/01/55740/
([최진석의 ‘풀어쓰는 동양학’] 중국 고대 봉건질서를 규정한 ‘종법’…토지의 구속에서 民 풀어 상업 꽃피워)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8182
(공자는 왜 주나라의 토지제도를 지키려고 했던가?)

http://www.newsfreezone.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58
(다시 생각나는 공자, 그는 성공한 정치가?)

구글 북에 검색하면 다음과 같은 결과들이 나옵니다.

https://books.google.co.kr/books?id=BYRqDwAAQBAJ&pg=PT84&dq=%EC%A3%BC%EB%82%98%EB%9D%BC+%EA%B3%B5%EC%9E%90&hl=en&sa=X&ved=0ahUKEwjpzpjyt7XpAhWTxYsBHYlaDloQ6AEIMTAB#v=onepage&q=%EC%A3%BC%EB%82%98%EB%9D%BC%20%EA%B3%B5%EC%9E%90&f=false
(공자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

https://books.google.co.kr/books?id=UI6sitphRksC&pg=PP24&dq=%EC%A3%BC%EB%82%98%EB%9D%BC+%EA%B3%B5%EC%9E%90&hl=en&sa=X&ved=0ahUKEwjpzpjyt7XpAhWTxYsBHYlaDloQ6AEIaDAG#v=onepage&q=%EC%A3%BC%EB%82%98%EB%9D%BC%20%EA%B3%B5%EC%9E%90&f=false
(공자제자들에게정치를묻다)

주나라의 노래를 담은 '시경', 주나라의 세계관을 다룬 '주역'은 각각 유교의 주요 경전인
사서삼경에 포함되어있으며, 주나라의 예법을 다룬 '주례'는 십삼경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교에 있어 사서삼경과 십삼경이 차지하는 권위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것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조선시대의 유학자들은 오랜기간 중국을 천자의 나라로 여겨 숭배해왔으며,

조선의 왕조차도 취임할때 중국의 천자로부터 책봉을 받는 의식을 치루었습니다.
출처: https://books.google.co.kr/books?id=QVYTBgAAQBAJ&lpg=RA2-PT322&ots=nVS6L2AYSF&dq=%EC%A1%B0%EC%84%A0%20%EC%99%95%20%EC%B1%85%EB%B4%89%20%EC%B2%9C%EC%9E%90&pg=RA2-PT322#v=onepage&q&f=false

이런 점에서, 유교는 주나라의 질서와 예법을 핵심으로 하는 사상이 맞다고 봅니다.
제가 만약 유교에 있어 주나라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유학자들이 제일 먼저 분개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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