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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6/11 19:32:17수정됨
Name   저퀴
Subject   발로란트 리뷰

프로젝트A란 이름으로 처음 공개되더니 본격적인 플레이 영상이 공개되었을 때부터 총을 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불을 내뿜고 바람을 타고 날아다니는 초능력이 보였기에 발로란트를 오버워치와 비교하는 경우가 참 많았습니다. 그러나 발로란트는 오버워치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면 오버워치에 이끈 히어로 슈터 타입의 유행에 살짝 발을 걸친 정도가 전부고, 발로란트는 어디까지나 카운터 스트라이크 타입의 클래식 FPS를 그대로 가져온 게임입니다. 정조준 같은 개념은 도입되긴 했어도 콜 오브 듀티나 배틀필드 같은 현 세대의 인기 있는 FPS과도 거리가 꽤 멀어요.


카운터 스트라이크 스타일이 기반이 되는 게임은 숙명적으로 라운드로 진행되는 게임 모드를 주로 삼게 됩니다. 발로란트도 매 라운드마다 스코어에 따라 얻은 점수로 장비를 구입하는, 가장 핵심적인 메커니즘을 주된 요소로 넣었죠. 이 선택 자체가 무조건 결점이라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카운터 스트라이크의 스타일을 따라한 게임이 요즘 시대에 거의 없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모두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기도 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보통 Time to Kill, 줄여서 TTK라고 부르는 요소 때문입니다. 발로란트도 예외만 있을 뿐, 한 라운드에서 하나의 목숨만 걸고 진행되는 슈터 게임이에요. 한번 죽으면 다음 라운드까지 지켜만 봐야 하고, 그렇다고 한번 죽을 때까지의 과정이 긴 것도 아닙니다. 심하면 총알 한발 못 쏴보고 죽어야 하죠. 

그래서 대중성을 고려하는 많은 슈터 게임이 이런 방식의 게임 모드를 기피합니다. 거점을 점령할 때까지 주어진 티켓만큼 계속 부활할 수 있는 배틀필드, 데스매치 위주로 돌아갔던 콜 오브 듀티, 교전 시간이 매우 길고 마찬가지로 부활할 수 있는 오버워치까지 그렇습니다. 그나마 예외를 들자면 레인보우 식스 시즈나 배틀그라운드 같은 배틀로얄 정도가 있지만, 최근에는 에이펙스 레전드나 워존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인위적으로 TTK를 늘리려고 하는 편이죠. 

제 생각에는 발로란트는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어요. 이건 못 만들어서가 아니라 TTK가 짧고 극단적인 게임은 언제나 겪게 될 딜레마에요. 중요한 건 레인보우 식스 시즈가 장기 흥행을 이끌어냈듯이 얼마나 짧은 TTK가 갖는 게임의 장점을 살리냐에 달렸죠.


FPS 게임에서 처음에는 인식하기 힘들지만 플레이 시간이 쌓일수록 중요성이 인지되는 디자인 중 하나는 맵입니다. 맵 디자인이 형편 없는 FPS는 멀티플레이 환경을 반드시 망칩니다. 그러한 부작용은 수비가 일방적으로 유리해서 캠핑이 빈번해지거나, 맵 디자인이 요구되는 특정 장비만이 강요되거나, 플레이어에게 피로도만 쌓이게 만드는 불쾌한 경험을 주죠.

발로란트의 맵 디자인은 제 수준에서 아직 결론을 낼 수 없다고 보지만, 좀 피로하게 느껴질 때가 있긴 합니다. 진입로에 들어설 때마다 고려해야 하는 가로축과 세로축이 많다 느껴질 때가 있는데 두세번이고 쓸 수 있는 각 요원의 특수 능력을 반영해야 했기 때문이겠죠. 거기다가 발로란트는 CS와 달리 게임을 뒤엎을 수 있는 궁극기 개념까지 있으니까요. 레인보우 식스 시즈도 비슷한 구석이 있긴 한데 그것보다도 좀 더 과격하지 않나 싶어요. 대신 미니맵을 지원하고 상대적으로 변수가 적어서 입문 단계에서까지 스트레스를 주진 않는다고 봐요. 


비쥬얼은 고평가하기 어려워요. PC 요구 사양부터 그리 높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사양 게임임을 감안해도 비쥬얼에 대해서 변명하기도 어렵죠. 1인칭 게임에서 중요한 플레이어 캐릭터의 애니메이션도 평범하다 못해서 조잡하게 느껴질 때가 있고, 발로란트가 처음 공개되었을 때에 비하면 많이 좋아지긴 했는데 맵, 캐릭터, 무기까지 어느 쪽도 인상적이지 않아요. 각 요원들이 쓰는 고유한 능력에 대한 이펙트 표현도 너무 단순하거나 색깔만 바꾼 채로 재탕일 때가 많습니다. 

사운드도 불필요하거나 부족한 부분은 없지만 경쟁작과 차별화될만한 부분도 없어요. 한국어판의 성우 연기는 대체로 직역 위주로 밋밋한 대사가 많아서 별로 인상적이지 않아요. 전 원문인 영어 대사도 찾아서 들어봤는데 전반적으로 대사가 나쁘게 느껴져요. 그나마 좋았던 점은 상호작용에 따른 대사가 적진 않았다 정도였어요.


발로란트가 일관되게 실망스러운 부분은 게임이 창조해낸 세계를 흥미롭게 연출하는 데에 실패했다, 정확히는 시도조차 못했다에 있습니다.

꼭 FPS가 아니더라도 가상의 배경은 플레이어가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빼놓지 않거나, 부족하게나마 마련합니다. 그건 네러티브가 크게 요구되지 않는 멀티플레이 위주의 게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설명은 매우 촘촘하고 방대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 이 사람은 불을 내뿜는 초능력을 가졌을까? 그 초능력의 원리는 뭘까? 이 초능력자는 왜 싸우는걸까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설명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정말 중요한 건 구심력이 되는 하나의 주된 서사가 필요해요. 고전 게임 중에서 이러한 스토리에 대한 저평가로 유명한 둠을 예로 들어보죠. 

'악마가 인류를 침공해서 우주해병인 주인공이 악마와 싸운다'

한 줄로 요약할 수 있지만, 분명한 네러티브입니다. 플레이어는 내가 왜 싸워야 하는지 더 의문을 품을 필요가 없죠. 악마가 뭔지, 지옥은 또 뭔지, 무슨 원리로 지옥과 연결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알 필요도 없죠. 그러나 발로란트는 아닙니다. 2분짜리 트레일러를 보고 와서도 유추해낼만한 내용이 없어요. 수많은 비디오 게임이 일관되게 지겨운 나레이션을 섞어가면서 초반부의 세계를 설명하는 데에 할애하는 것은 그들이 무능력해서가 아닙니다. 

천재적인 결과물은 따로 할애하지 않아도 교묘하게 스며들지만, 대부분은 안전한 선택지를 골랐을 뿐이죠. 그에 비하면 발로란트는 아예 설명을 포기한 겁니다. 물론 게임을 평가하는 데에 있어서 결정적 사유라 할 수 없겠죠. 그래도 지나친 생략이 게임의 완성도를 올려준 것도 아니라 봐요.

더 나아가서 세게를 이해시키는 데에 포기하면 약간이나마 게임의 비쥬얼에도 영향을 줍니다. 구체적으로 발로란트의 캐릭터 중 하나인 피닉스를 예를 들어보죠. 몸에서 불이 이글거리고, 총이나 칼에 맞아도 멀쩡해서 불덩이를 손에서 내뿜는 초능력자가 왜 총을 들어야 하나요? 그것도 총을 들었다 놨다 하는 인위적인 1인칭 시점의 애니메이션까지 조잡하게 생각하게 되죠. 물론 이건 카운터 스트라이크 스타일의 게임을 만들면서 미술적으로 융화시키는 데에 실패한 것에 가깝기도 하죠.


발로란트에서 게임 내적인 부분보다 더 이슈가 된 건 뱅가드라고 부르는 발로란트의 안티 치트에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도 발로란트를 플레이하면서 몇몇 오류를 겪어보긴 했어요. 그러나 플레이 시간이 매우 긴 편은 아니었기 떄문에 그것만 놓고 제가 뱅가드가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말하긴 좀 그렇죠. 거기다가 전 딱히 충돌을 일으킬만한 프로그램도 같이 실행하질 않았거든요. 

그러나 제가 직접 하면서 핵으로 의심될만한 사례를 경험하지 않았어도 뱅가드가 안티 치트로 완벽한 성능을 보여줄거라 전혀 믿지 않고, 그에 비해서 권한이 높은 안티 치트가 일으킬 부작용에 대해선 충분히 현실적인 지적이라 봅니다. 저도 게임을 더 이상 플레이하지 않아도 바로바로 지우는 건 아닌데 발로란트는 뱅가드까지 바로 제거해버릴 생각 밖에 안 들더군요. 전 뱅가드가 앞으로도 부작용이 있으면 있지, 게임에 득될만한 안티 치트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습니다. 혹시라도 이런 과도한 안티 치트가 다른 게임에도 이용된다면 전 뱅가드가 설치된 게임은 기피하게 될 것 같아요.


솔직히 말하면 인상적이진 않습니다. 지금 발로란트에 대해서 우호적인 평을 내린다면 리그 오브 레전드로 검증된 안정적인 사후 관리 능력과 카운터 스트라이크를 따라간만큼 e스포츠에 대한 기대감일텐데 저에겐 크게 해당되는 부분은 아니에요. 정식 출시 직후의 발로란트만을 생각한다면 뱅가드란 이슈를 언급 안 할 수 없는 카운터 스트라이크의 아류작 정도라고 봅니다. 저에게 이 게임에 가장 필요한 부분은 쓸데없는 국적 표시가 아니라 어떤 세계에 이 캐릭터들이 왜 싸우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서사에요.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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