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5/09/23 14:08:22
Name   엄마곰도 귀엽다
Subject   아기의 첫 생일 입니다.

2014년 9월 23일.
예정일을 이틀 넘기고 새벽 다섯시에 투둑.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었어요. 양수가 터지는 소리.
머리를 감고 짐을 챙기고 남편을 깨워 병원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때 흔들리는 조수석에서 이제 새벽에 화장실 가러 안 일어나도 되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바보같은 생각이었지만요. 지금도 만성 수면부족과 피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ㅠㅠ

진통 끝에 제왕절개를 하고 (  아... 앙돼 )
퇴원해서 산후조리원에서 2주.
전문의 시험 공부해야하는 남편까지 케어하기 힘들것 같아 얼떨결에 시작한 시댁에서의 산후조리 100여일.
전문의 시험 끝나고 다시 출근해야해서 인천에서 3주 지내다가
훈련소에 가있는 8주 +관사로 이사 준비 하는 동안은 친정에서 보냈어요.
그리고 이사하고 4개월여가 지난 지금도 이삿짐 정리가 안되고 있습니다.아아아.앙대.

안그래도 육아도 처음이고 제왕절개로 몸의 회복도 느려 힘들고 어려운 와중에
핏덩이 아기를 데리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다보니
모든 일이 더 힘들고 벅차게 느껴지고 미칠것 같은 기분이 들때도 있었어요.
사소한 일로 남편에게 서운하고 짜증내고.
아기 안아서 재우는게 너무 힘들어서 재워달라고 했을때 안재워주면 너무 슬프고...
그랬었어요.
사실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지만~
제 엄마레벨이 높아져서인지 힘들긴하지만 견딜만해졌어요.
적어도 밤에 아기 재우면서 울진 않게 됐으니까요.
그리고 우리 아기도 많이 자랐어요.
아직 1레벨짜리 쪼꼬미지만
자기 주장이 생기고, 혼자서 서있고,
숟가락질도 얼추 입에 넣어가면서 하고,
방 문도 열게 되었습니다 (  아... 앙대 )

이제 밤에 혼자 누워서만 자면 완벽한데 이게 참 어렵네요.
제가 모질지 못해서 수면교육 하기가 참 힘들어요.
그냥 내가 조금 힘들고 말지... 이런 생각으로
백일때 9키로가 넘은 초우량 아기를 안고 들고 재우며 이 날까지 왔네요.
마음속으로 '돌 쯤 되면 많이 크고 말귀도 알아들을테니 그땐 많이 안 울리고 눕혀서 재울 수 있겠지'  그랬는데
막상 때가 오니 여전히 쫀득쫀득 찹쌀떡 같은 아기라서 약간 걱정이 되네요.

태어난지 벌써 일년.
저와 저희 남편이 엄마와 아빠가 된지 벌써 일년.
힘들고 아프고 돈도 많이 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하고 사랑스럽고
냉담자인 제가 '지금 이 행복 오래오래 누리게 해주세요' 하고 밤마다 마음 속으로 기도하게 되는
사금처럼 반짝거리던 일년이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해요.
아기가 다칠까봐 꼭 붙어있고 위험한건 치워주고
화장실 문도 못 닫고 (  이 문은 언제쯤 다시 닫을 수 있을까요 )
기저귀 갈아주고 씻기고 입히고 먹이고 안아주고 재우고 하는 일상 속에서
아기가 웃고 울고 떼쓰고 예쁜짓하는 순간순간의 기억들이 저 혼자만의 추억이 되겠죠.
아기는 기억도 못 할테니까요.

그리고는 저보다 키가 커지고 저보다 똑똑한 척 하면서 저혼자 큰 듯이 말도 안듣고 잘난척하고 그러겠죠.
지금 제가 엄마에게 그러듯이. ( 아... 앙대 )

온전히 저만의 추억이라고 생각하며 사진도 많이 찍고
육아일기도 가끔 쓰고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기억하려고 하는데
벌써부터 많이 까먹고 희미해지고 그래요.
아까워요. 아기가 자라는 순간들이 너무 빨리 지나가버리는것 같아요.
백일무렵 아기 동영상 보면 너무나 작고 신기한데
지금 동영상을 내년에 보면 또 그런 기분이 들겠죠.

짧게 쓰려고했는데 하고픈 말미 많다보니 잡설만 길었네요.

저희 아기 태어나서 처음 맞는 생일입니다.
돌잔치는 생략하고 지난 주말에 양가 부모님 모시고 점심 식사했는데
막상 생일날 아침이 되니 기분이 좀 이상하네요.
분명 특별한 날인데 보통 평범한 날들과 다르지 않아요.
아빠는 출근하고 (유격 ㅠㅠ)  
저는 아기 먹이고 놀아주고 재우고. 후후훗.
뭔 일이 있어도 삶은 계속 되는게 맞나봐요.

우리 아기
앞으로 건강하고 바르고 행복하게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아기뿐 아니라 다른 모든 아기들도 사랑 듬뿍 받으며 아픈데 없이 자라길.

그리고 이 글을 보고 있을 내 남편.
그동안 수고 많았어요.
앞으로도 우리 아기를 지켜줄수있게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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