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09/08 17:33:38수정됨
Name   Picard
Subject   회사일기 -2 '도둑놈들이 너무 많다'
오늘 왜 이리 일이 안되는 건지...


제가 다니는 회사는 역사가 오래되어서 그런가 두번 망했어요.
전두환 시절에 한번 망했는데, 어찌어찌 전대갈이 살려줘서 다른 회사에 인수되었대요.
이때 창립기념일이 바뀌어요. 인수된날로...

그리고 한 30년 가까이 있다가 미국발 금융위기때 쎄게 한번 얻어맞고 골골 대다가 결국 망해요.
이때 1/3 정도가 구조조정 당했어요.
나갈 사람 다 내보내고 댓명 정도가 무급명휴 받아도 버티니까 1년뒤에 일괄 복직 시키더라고요.
웃기는건(?) 1년 넘게 회사의 압박과 회유에도 버틴 사람이 복직후 반년 못 버티고 나가 버린 사람도 있고, 자기 일 잘해서 명예회복한 사람도 있는가 하면, 원래부터 소문이 안 좋아서 명퇴 1순위였던 사람이 버티고 버텨서 복직했는데 여전히 소문이 안 좋은 사람도 있어요.

워크아웃 들어가고 저도 직급이 좀 올라가면서 이런 저런 돌아가는 일을 알게 되었는데...
아, 회사가 망할 수 밖에 없었구나 싶더라고요.

이 회사가 영업이익이 몇백억... 억대급 찍으면 1000억 좀 넘는 회사인데...
뒷구멍으로 (제가 아는 것만) 대주주가 빼먹는 돈이 연간 수십억이었더군요. 리베이트 오가고, 일감 몰아주고... 제가 모르는 것까지 하면 수백억일지도 몰라요.
망하기 직전 사장은 외산 자재 리베이트로 수백억 받아 먹었다는 소문이 있고.
워크아웃중에 영업 부사장이 갑자기 퇴사했는데, 알고보니 페이퍼 컴퍼니까지 낀 복잡한 방법으로 제품을 저가로 넘기고 그 차액을 자기 주머니에 넣다가 걸렸다더군요. 그런데, 사람들은 '과연 부사장 혼자 벌인 짓일까? 총괄부사장은 몰랐을까? 사장은 몰랐을까?' 라고 합니다. 제가 대충 계산해보니 연 1-200억 정도 꿀꺽 했겠더라고요.
그 부사장이 대졸 공채로 금수저도 아닌데 사모님이 부동산 투기의 신급이라 타워팰리스를 포함해 강남 3구에만 집이 3채라던데, 그 사건이 터지고 나서 '와, 뉴스에서나 보던 사건이 우리회사에서 벌어지네' 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사건이 대충 묻혔는데, 공식적으로는 회사 이미지 안 좋아지면 안된다는 채권단의 판단이었다고 하지만, 다들 '받아 먹는 놈들이 더 있으니까 묻은거지' 라고 합니다.

작게 보면 어떤 팀장은 팀원들 출장갈때 많이 돌아다녔다고 허위로 출장보고서 쓰게 하고 출장비 차액 모아서 분기마다 팀원들 데리고 룸싸롱 회식을 하다 걸리기도 하고... 어떤 팀장은 자재 빼돌리다 걸려서 짤리고... 어떤 팀장은 대리점에 향응 받다가 걸려서 짤리고...
공장에서 내일만 하던 공돌이가 받아 들이기에는 너무 엄청난 일이라 처음에는 안 믿기더라고요.

잘 알던 팀장이 대리점에 향응 강요했다가 감사실로 고발 들어와서 짤렸는데...
고객 의견 청취한다며 지방 대리점들을 순회하는 출장을 가는데...
A지역을 가면 그 지역 대리점들이 갹출해서 2차까지 접대를 했답니다.
팀장이 이번에 A랑 B랑 고생했으니 창원쪽 대리점 돌고와(=가서 향응 좀 받고 와) 였다고 하더라고요.
대리점 갑질은 남양만 하는줄 알았더니 우리회사도 하고 있었네? 하고 충격 받았습니다.

제 추측이지만, 대주주부터 회사돈 빼먹고 있었으니 빼먹을 구멍이 계속 늘어났고, 그 틈을 노려 자잘하게 빼먹는을 기회 있으면 마다 안하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이렇게 해먹는 놈들 때문에 정직하게 근무한 1/3이 구조조정 당한겁니다.
전대갈 시절 망한것도 뻔하겠죠. 해먹는 놈들이 많았던 거겠고... (전)회장도 야, 이 회사 빼먹을게 많구나 하니까 인수한게 아닐지...

그래서 저는 비용 쓰면 철저하게 증빙 관리 합니다. 엄하게 도둑놈으로 몰리면 억울하니까.

지금은 워크아웃 졸업하고 또 다른 회사에 인수당했습니다.
창립기념일이 또 바뀌었죠. 저희는 '인수기념일'이라고 부릅니다.

오늘은 정말 여기까지..



7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617 도서/문학도서 리뷰 - 우울증 관련 두 권의 책 추천 6 풀잎 20/05/24 4904 7
    10613 경제ETF 이야기 - 2.5 - SPY, QQQ 너무 비싸요! 싼거 좀 알려주세요! 존보글 20/05/22 8859 7
    10905 도서/문학어셴든, 영국 정보부 요원 / 서머싯 몸 6 트린 20/08/31 4533 7
    10941 일상/생각회사일기 -2 '도둑놈들이 너무 많다' 1 Picard 20/09/08 4252 7
    10609 과학/기술고등학교 수학만으로 수학 중수에서 수학 고수 되기 11 에텔레로사 20/05/22 4564 7
    10603 스포츠호나우두의 바르셀로나 시절은 어떠했는가 (데이터) 6 손금불산입 20/05/20 8131 7
    10602 창작이번엔 재즈를 만들어보았습니다. (곡 제목 : Shall we?) 6 롤백 20/05/20 4064 7
    10898 사회공장식 축산과 동물에게 주어져야 할 최소한의 권리 93 최우엉 20/08/30 6836 7
    10549 일상/생각고등학교 졸업반 - 자전거 타는 아이 7 들풀처럼 20/05/05 3480 7
    10533 오프모임4/29(수) 동대문 러시아거리에서 샤슬릭을! 68 나루 20/04/27 5431 7
    10491 꿀팁/강좌유용한 금융/재테크사이트 총정리 3 바보의결탁 20/04/14 5848 7
    10482 음악밴드 SHISHAMO를 소개합니다 15 이그나티우스 20/04/10 4783 7
    10462 기타배철수의 음악캠프 30주년.jpg 9 김치찌개 20/04/04 3898 7
    10428 사회말라리아 치료제로 COVID-19를 극복할 수 있을까? 10 치킹 20/03/24 4449 7
    10413 게임스텔라리스. 존귀탱 엔터, 혼돈은 사다리다. 7 코리몬테아스 20/03/21 6229 7
    10388 오프모임아무래도 다가오는 주말의 마지막에는 홍차를 마시는게 좋겠어 32 나루 20/03/17 5083 7
    10362 일상/생각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여러 생각 12 inothershowes 20/03/08 4441 7
    10344 철학/종교"증거장막"이란 단어의 본래 의미 5 소원의항구 20/03/04 5859 7
    10343 과학/기술마구잡이로 써보는 수비학(數秘學) 29 소원의항구 20/03/03 5562 7
    10305 음악구만구천구백구십구개의 종이새(feat. 초코에이블) 12 바나나코우 20/02/18 4855 7
    10264 일상/생각잃어버린 ■■를 찾아서...! 13 카야 20/02/05 5163 7
    10213 음악신항로 개척 12 바나나코우 20/01/22 4546 7
    10212 음악꽃보다 고양이 6 바나나코우 20/01/22 4290 7
    10168 일상/생각꼬불꼬불 파마머리 3 20/01/08 5804 7
    10159 IT/컴퓨터CES2020에 부스참가 하고 있습니다 9 집에가고파요 20/01/07 4280 7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