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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5/09/29 16:40:00
Name   난커피가더좋아
Subject   문명충돌의 서막, 루시디의 <악마의 시> 이야기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적 있을 법한 얘기.
루시디라는 인도출신 영국 작가의 '악마의 시'가 이슬람교를 모독했고, 강경파 이슬람 이란의 호메니이에 의해 사형선고가 내려져 루시디가 암살위기에 처했다는 뉴스.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까지 분명 국제 뉴스 중 한 부분을 차지하던 중요한 소식이었습니다. 서구 자유주의의 '표현의 자유' 관점에서 우리는 그들의 시각을 통해 사건을 접했고, '이슬람 전체'는 이때부터 '극단주의자가 많은', '포용과 관용이 없는' 종교로 매도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도대체 악마의 시라는 작품이 어떤 내용을 담았기에 그 난리가 났었는지, 그리고 실제 사건의 전개양상은 어땠는지를 제대로 알려준 매체나 책은 없었습니다. 어차피 한국에서는 그것보다는 계속되는 냉전이 중요했기 때문일 겁니다. 오늘은 그 얘기를 한 번 풀어보겠습니다.


0. 냉전이 끝나갈 때

1980년대 후반 동유럽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은 냉전체제의 급격한 와해를 가져옵니다. 그렇다면 이제 세계는 항구적 평화와 공동번영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일까요? 그렇게 역사는 끝나는 것일까요? 그럴리가 없습니다. 가장 극심했던 대립의 시대가 지나니 오히려 더한 혼란과 국지적 갈등이 폭발적으로 쏟아집니다. 그 갈등의 중심 축에는 종족과 인종이 있었고 그와 중첩되기도 하면서 또한 별개이기도 한 종교와 종교에 기반을 둔 문화, 더 크게 말해 문명의 충돌이 시작됩니다. 1990년대 중반, 이 현상을 정리해 사무엘 헌팅턴은 (비판도 많이 받지만, 그 통찰력 만큼은 인정받았던) '문명의 충돌'을 집필하기도 합니다.

이념대결에서 문명충돌로 옮아가던 시기, 서구문명과 이슬람문명의 충돌의 중심에는 바로 '악마의 시(Satanic Verses)'사건, 다소 학문적인 표현으로는 '루시디 어페어(Rushdie Affair)'가 놓여있습니다.

이 소설은 환상리얼리즘(Magic Realism)의 장르인데

줄거리는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두 사람의 인도 이민자 살라딘 참차와 지브릴 파리쉬타가 다양한 문화적 관점에서 본 세계를 묘사하고 있다. 작품 첫머리에서, 타고 있던 비행기가 테러리스트의 공격을 받으면서 두 사람은 하늘에서 마치 천사처럼 영국 땅에 떨어진다. 영국의 인종차별과 식민지 유산은 두 사람에게 서로 다른 방식으로 영향을 미친다.
지브릴은 스스로 이슬람 예언자에게 계시를 가져오는 천사 가브리엘이라고 착각하는 정신병적인 환각에 빠지고, 영국인을 혐오하는 정신병자 살라딘은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육체적 변이를 겪으면서 매 순간마다 더욱 악마적으로 변한다. 언어와 세계, 역사, 허구, 몽상, 환각, 예언을 뒤섞은 루시디의 스타일은 세계주의의 체현이나 다름없다]


저는 문알못이기 때문에 관련 내용은 아래 링크를 참조하시면 됩니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877105&cid=41773&categoryId=41782

제가 읽은 정치철학 논문들에 따르면, 저 지브릴(가브리엘을 상징)이 계시를 받는 존재, 모하운드(마호메드를 상징)가 논란의 중심이 됩니다. 교묘하게 코란에 묘사된 그의 12명의 부인, 그가 전파한 알라의 계시 등을 다 비틀어버리는 데요, '신성모독'에 가까운 걸 루시디도 알았는지 이를 '정신병자의 꿈'에서 벌어지는 일로 만들어 '장르적 속성'안에 숨어버립니다.(옳다 그르다의 가치판단은 제가 할 수도 없고, 그냥 그랬다는 거죠)

그런데 이슬람 종교에 대해 지식이 약간이라도 있는 분들은, 그들에게는 예수와 같은 구세주(삼위일체로 GOD의 아들이자 곧 신이기도 한)는 존재하지 않고 오직 위대한 선지자이자 예언자, 그리고 지도자인 마호메드가 추앙받는다는 걸 알고 계실겁니다. 따라서 마호메드는 그들에게 일종의 '성역'인데요, 여기를 공격해 버린겁니다.
얼마나 심하게 공격하는지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문제가 되는 장면 중 가장 극적인 장면 한 장면만 들고와보죠.

[누가 그녀에게 책임을 돌릴 수 있겠는가? 결국 그는 자신의 무아지경으로 들어갔고 대천사장으로부터의 계시를 들고 왔다. 지브릴은 신성한 지지를 보내는 시를 암송했다. 신이 허락한 것이다. 가능한 많은 여자와 원하는 대로 잠자리를 갖기를.(여기에 쓰인 단어는 fxxx 입니다.) 그러니 그 불쌍한 아예샤가 신에 대항해 뭐라 말할 수 있었겠는가? 그녀가 뭐라고 말했을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신은 확실히 당신이 그를 필요로할 때마다 등장해 당신을 위해 상황을 정리해주는 군요"]

(발번역은 본인. 구절은 논문에서 발췌)

여기에서 '그'는 모하운드(마호메드)입니다. 부인 이외에도 다른 여자들과 관계를 갖는데, 이슬람 교리상에서 그녀들은 모두 신성합니다만, 루시디가 묘사하는 그녀들은 매춘부들입니다. 아예샤는 15살짜리, 가장 인기 많은 매춘부입니다. 그리고 모하운드는 그의 포주가 되기도 한다는 거죠. 어마무시한 얘깁니다.

물론 루시디는 여기에서, 이를 문학적 기법이고 궁극적으로 신성함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저정도 표현을 해놓으면 종교와 생활, 정치가 분리가 안 돼있는 이슬람 신자들은 난리가 날법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사실 이 책이 나오고 영국에서 '영국 거주 무슬림'을 중심으로 분명 항의와 사회적 논란이 시작은 됐는데요, 그리 심각한 건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우연한 계기로 커져갑니다.


1. 불타버린 책,  불타오른 논란

영국의 이슬람교도들은 항의 시위를 하고 출판사에 책의 출판을 금지해줄 것을 요청합니다. 거리에서 다양한 시위를 펼치는데, 방법도 평화적이었고 영국 지식인 사회 역시 이슬람 교도들에게 상당히 우호적이었습니다. 다만 '출판의 자유'문제로 인해 '금지'는 어렵겠지만 '루시디의 사과와 해명'정도는 필요한 것 아니냐는 분위기였다고 합니다. 문제는 대중들이 이걸 잘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는 거죠. 그런데 다소 엉뚱한 '조언 하나'가 '파이어'를 만듭니다.
이슬람 교도들의 계속되는 평화시위가 거의 언론의 조명을 받지 못하자, '다문화주의 운동가' 정도로 추정되는 몇몇 인물이 이슬람교도들에게 조언을 한 모양입니다. '책을 불태우는 퍼포먼스를 하라. 그 퍼포먼스를 예고하라. 기자들이 몰려들 것이고 당신들의 입장이 널리 알려질 것이다'라고요.

물론 여기에서부터 문제가 꼬이게 되죠. 여러분들은 책을 불태우는 걸 보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가깝게는 불량만화 척결하자며 불태우던 1980년대 학부모단체 아주머니들이 떠오를 수도 있을 것이고, 이문열 소설을 태웠던 1990년대가 떠오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보고 들은게 있다보니 멀리 진시황의 분서갱유 정도가 떠오르겠지요. 하지만, 영국인과 유럽인들은 30년전 자신들 역사의 최대 치욕이자 악몽 '히틀러와 나치'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래서 부는게 역풍입니다. '신성모독이냐 아니냐'(영국에는 신성모독을 금지하는 법도 있었는데, 문제는 그게 기독교를 대상으로 한 법이었다는 거죠. 사실상 사문화된 법인데, 법이 존재하긴 하니 논란은 분명히 생깁니다.), '루시디가 사과를 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의 논쟁은 삽시간에 '표현의 자유' vs '신성모독'으로 옮겨갑니다.
그리고 '신성모독'이라고 보는 이슬람교도와 옹호자들(일부 다문화주의자들)과 서구 자유주의자(서구문명 중심주의자)간의 거대한 논쟁으로 옮아가고요, 책을 태우는 장면에 충격을 받은 다수의 영국민들은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다'를 넘어 '책을 태우는 건 야만'이라는 분위기로 흘러가게 됩니다.


2. 논란은 기자가 키운다

자 떡밥이 생겼으니, 언론사들은 미친듯이 이 논란에 뛰어들어 증폭시킵니다. 사실 책을 태웠을때만 해도 이 문제는 '영국사회 내부'의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영국 언론은 이른바 '현지 반응'을 따러 중동지역으로 날아갑니다. 가서 사람들을 붙잡고 묻습니다. 이런식의 인터뷰가 진행됩니다.

기자: "혹시 루시디라는 작가가 쓴 악마의 시 아심?"
지나가던 젊은이: "모름"
기자: "아, 이런이런 내용임"
지나가던 젊은이: "뭐 이 씨XXX000xx? 그 새끼 죽여야되는 거 아님? 아 놔 빡쳐..."

이렇게 몇 번 전파를 타면서 중동지역, 이슬람 국가의 지도자들과 국민들에게 '루시디 어페어'는 쫙 알려지게 됩니다.
그런데 영국 이슬람교도들 중 강경파 일부는 영국내에서 자신들에 대한 여론이 불리해지자, 아예 그 강경한 이슬람 지도자들에게 '지원사격'을 요청하게 되는데, 강경오브 강경 호메니이옹께서는 '파트와'를 선언합니다. 쉽게 말해 "저 새끼 사형. 잡아서 죽이면 죽인 놈 알라신에게 칭찬받고 천국감 오케?"를 시전해버리시죠.

자, 일이 점점 커지네요. 진짜 서구 자유주의에 기반한 '표현의 자유' vs. 이슬람 문명과 신성모독의 전선이 형성되고 '루시디', '악마의 시'는 전 세계 국제 뉴스를 장악하게 됩니다. 영국은 비밀경찰을 붙여 루시디를 숨기고, 영국과 이란은 국교도 단절하는 등 진짜 난리가 납니다. 곳곳에서 극단주의자들의 테러도 발생하고요. 서구사회에서 여론은 더 악화되죠.


3. 끝나지 않은 논란, 계속되는 논쟁

이제 25년이 넘어가는 사건이지만, 여전히 이 사건은 논쟁중입니다. 다문화주의 학자들은 루시디 작품에서 표현이 경솔했음을, 역사적 사실처럼 서술하면서도 역사적 사실을 교묘히 다 비틀었음을 제기하면서 루시디의 실수를 주로 지적합니다. 그리고 영국을 비롯한 서구사회가 '표현의 자유'에만 집착한 나머지 종교적 다양성을 인정하고 더 크게 그들을 품지 못했음을 비판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저들이 광신도라고 비웃지만, 니네 혹시 그거 앎? 1960년대까지 예수님 나오는 영화에 예수님은 얼굴이 나온적도 없음. 신성모독이라서. 그리고 처음으로 얼굴이 다 나온 예수역을 맡은 배우는 온몸의 털을 다 깎고 나옴. 신성하고 깨끗한 분임을 보여야해서. 우리도 그러고 살았는데, 왜 이리 편협함?]이라고 하죠.

자유주의자들은 [그땐 우리가 미개했던거고, 이젠 쟤네가 계몽될 차례임 오케? 표현의 자유 없어지면 우리 민주주의 사회 근간이 없어지는 거임] 이라고 주장하게 되죠.

이 논쟁? 아직도 안끝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는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이교도'난민이 유입된 유럽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이와 비슷한 '문화 충돌', 나아가 '문명의 충돌'은 계속 될 것이고 논란은 끝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정치철학적 논쟁은 똑 떨어지는 답을 내릴 순 없더라도, 그 논쟁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해법을 만들어낼 수 있고 의견을 조율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우리와 다소 멀리 떨어진 곳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어마어마한 '탈북난민'하고 접하게 될때, 이미 생각보다 많은 수가 들어와 있는 한국땅의 무슬림들과 직면하게 될때(중동지역과 동남아 모두 이슬람교가 압도적이죠. 그리고 수많은 동남아인이 한국땅에서 기도를 하고 살아갑니다.) 과연 우리는 어떤 논쟁을 벌이게 될까요?

연휴의 마지막날, 맘의 여유가 남아있을 때 한 번쯤 고민해볼 필요가 있어보입니다.

이상 긴글 마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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