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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21 18:40:53수정됨
Name   Carl Barker
File #1   3f628094_b833_49dd_a421_805406bc17db_2020_12_19_Canelo_Alvarez1.jpg (190.4 KB), Download : 30
Subject   카넬로, 슈퍼미들급 링 매거진 챔피언 등극


카넬로가 상위 체급으로 올라가 치른 경기였습니다만, 보통의 카넬로 경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인상입니다. 상위 체급 챔피언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칼럼 스미스는 꽤 큰 편에 드는 선수였는데(슈퍼미들급인데 키가 190cm가 넘습니다. 더 윗체급에 있는 비볼(183cm), 베테르비에프(182cm) 같은 선수들 보다 큽니다.) 그럼에도 체격 차이가 와닿는 경기는 아니었습니다.

"상대방이 펀치 내기를 주저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는 서지오 모라 해설의 말처럼, 적극적인 카운터 펀치를 곁들인 카넬로의 프레셔 앞에서 스미스는 적잖이 위축된 모습이었습니다. 카넬로보다 윙스팬이 거의 20cm는 앞서는 형편에, 손을 많이 내서 계속 상대를 밀어내는게 베스트라는걸, 스미스도 모르지는 않았겠습니다만, 얼굴에서 손이 떨어지려고만 하면 레프트 훅이 날아와 가드를 두들기는 상황이다 보니, 여의치 못했습니다.

복싱에 무관심한 일반의 인식과는 달리, 아프지도 않은 잽으로 툭툭 두들기기만 한다고 아웃박스out box가 되는게 아닙니다. 다소간 실효적인 타격을 가함으로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원초적, 생리적인 두려움, 소위 말하는 respect를 가지게 해야만 박스가 성립되는 것인데, 그렇지 않으면 맞고 버티면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쇄도하는 상대방을 멈춰세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국내에서 노잼 복서로 악명높은 메이웨더도 빠른 발과 방어 기술로만 50전 무패의 전적을 쌓은 것은 아닙니다. 그도 상대를 주저하게 만드는 hard shot으로 상대의 respect를 얻는 것에 능숙한 복서였습니다. 그러나 스미스는 카넬로에게 respect를 안겨주는 것에 번번히 실패했습니다.

카넬로는 거의 동체급 이하의 복서를 대적하는 것처럼 스미스에게 아무런 respect없이 달려들기를 거듭했는데, 피충격을 최소화하려는 욕망이 너무 강한 나머지 스미스가 지나치게 소극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잽을 적중시키며 찰나의 공방에서의 우선권을 얻었을 때에도, 이미 충격을 허용한 직후에 맞받아쳐야 할때도 카운터, 후속타가 두려워 가드를 굳히고 물러나기만 했습니다. 자신의 사이즈와 그것이 가져다줄 시간적, 공간적 여유를 믿고 벌어진 가드 사이에 파워샷을 우겨 넣으려 했을때, 스미스는 해당 라운드를 자기의 것으로 가져올 수 있었는데, 그런 순간은 많지 않았습니다.

물론 잽싸움에 있어서 스미스가 확실히 타이밍을 장악했다 싶은 순간 자체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했습니다. 이길 수도 있었던 경기를 순전히 성향 문제로 내주었다기 보단, 때릴 각이 나오지 않았고, 그래서 소극적일 수 밖에 없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겁니다. 파워샷은 잽보다 더 큰 예비 동작과 리스크를 수반하고, 그런만큼 가능한 한 상대의 예측 바깥에서, 적어도 상대의 치명적인 반격을 쉽게 허용하지는 않을 선에서 던져지는게 바람직할 것인데, 스미스는 시야를 가리는 충분한 펀치 볼륨으로 언제 파워샷이 뒤이을지 알 수 없게 타이밍을 교란 시키지도, 고개를 젖히는 단단한 잽stiff jab으로 카넬로를 위축 시키지도 못했습니다. 오히려 체격적으로 열위에 선 카넬로 쪽이 더 질좋은 잽을 많이 구사했습니다.

respect가 없으니 1라운드 이후로 리치 어드밴티지는 일찍부터 의미를 잃었고, 대부분의 의미있는 펀치 교환은 '멕시칸 펀처' 카넬로에게 유리한, 훅이 오가는 근거리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고 보니 인사이드 파이트에서의 역량차가 현격히 나타났습니다. 사이즈 어드밴티지를 활용, 상대를 안전 거리에 묶어놓고 요리하는 것에 익숙한 스미스는 처음 겪는 프레셔에 처하면서, 몸에 익은대로, 상대가 보여주는대로 반응하는 수동적인 펀쳐로 전락했고, 발과 발이 붙는 거리에서 어깨 너머, 시야 바깥에서 날아오는 펀치들에 대응하는 것에 이골이 난 '멕시칸' 카넬로는 어렵지 않게 스미스의 발악을 통제할 수 있었습니다.

칼럼 스미스는 체급 대비 꽤 재빠른 스탭백-앞손 훅, 슬리핑 카운터 대응이 장기인 선수이지만, 오버핸드성의 훅을 곁들여가며 빠르게 거리를 압축하려 하고 전체급을 통틀어 최상급의 헤드 무브먼트를 가진 카넬로를 상대로는, 확실히 그것보다는 더 많은 것을 준비해야만 했습니다. 스미스가 그 중 어느것을 마음놓고 적중 시키기에도 카넬로는 너무 가까운 거리에 있었고, 예측하기 보다 당장 보이는 틈에 우겨 넣으려 하는 스미스의 힘이 실린 펀치들을, 눈이 좋은 카넬로는 어렵지 않게 벗겨낼 수 있었습니다.

반면 카넬로는 바디를 치기에 앞서, 스미스의 가드를 안면부로 끌어올릴 수 있었고, 다음으로 간간히 몸통을 지키기 위해 벌어진 가드 사이로 어퍼를 꽃아넣을 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일방적으로 쫓고 쫓기는 구도였다는 것을 넘어, 그런 식으로 스미스의 방어 체계를 온전히 장악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경기는 카넬로의 것이었습니다. 카넬로에게 단 하나를 제외한 모든 라운드를 몰아준 와이즈펠트의 채점은 조금 과하다는 감이 있지만, 그런 인상을 갖는다고 해도 이해는 할 수 있을만한 경기였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소수 의견이었던 117-111 정도가 알맞은 채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클렌부테롤 검출건과 카넬로 측의 노골적인 더킹 끝에 치러졌으나 결과가 깔끔하지는 않았던 골로프킨과의 두 차례 대전 때문에 여론이 좋지만은 않습니다만, 지금까지 이뤄놓은 것을 보면, 그리고 앞으로 선수로서 더 많은 것을 이루려 하는 태도의 측면에서 현재 카넬로보다 나은 선수는 없다고 여겨집니다. 한 때 중中량급의 최강자이자 카넬로가 넘어야 할 산으로 꼽혔던 골로프킨이 이대로 월장없이 커리어를 끝마칠 것이 거의 확실시되는 시점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전적에 흠이 갈까봐, 동체급의 컨텐더들과도 겨루기를 꺼려하는 현대 복싱판에서, 상위 두 체급을 오가며 체급내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코발레프)와 명실상부한 체급의 최강자(칼럼 스미스)와 연이어 싸워 이긴 카넬로의 행보는 거의 '이질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겠습니다. 과연 이 선수는 어디까지 가게 될까요. 다음의 행보는 누구를 향하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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