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1/01/15 11:30:30수정됨
Name   사이시옷
Subject   눈 가리고 아웅아웅
우리집 고양이 꾸끼는 덩치는 너덧살 아이 같고 꼴에 노르웨이숲 품종이라고 멋진 얼굴을 가지고 있지만 이곳 저곳 사람이건 물건이건 넉살 좋게 치대며 다니는 고양이다. 정말 웃긴건 사고를 치다가 내 손에 목덜미를 잡혀 혼날 때면 눈을 게슴츠레 뜨고 입을 앙 다문 상태로 가만히 있는다. 마치 자기 눈에 안보이면 집사인 나도 사라질거라 믿는 양.

17개월 내 아들도 그렇다. "꼭꼭 숨어라"를 외치면 어디 들어가서 숨는 것이 아니라 제자리에 서서 앙증맞은 두 손으로 눈을 가린다. 자기에게 안보이면 남에게도 안보인다 굳게 믿고 있다. 그래서 나는 완벽하게 숨은(?) 아들에게 "우리 애기 어디 있니?"를 외치곤 한다.

나도 그랬다. 그것도 초등학교 6학년 때. 연좌제로 단체 반성문을 쓰는게 분해서 반성문이 아닌 성토문을 썼던 것이 발단이었다. 반 아이들은 1시간 넘게 자리에 꼼짝 못하고 앉아 담임 선생님이 나를 욕하며 소리 지르는 모습을 보아야 했다. 난 자리에 앉아 고개를 숙인 상태로 계속 욕을 먹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눈을 살짝 감아보았다. 담임은 내 버르장머리 없음을 이제 부모님에게서 찾기 시작 했지만 눈을 감으니 한층 나았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일이 아무 상관 없게 느껴졌다. 곧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편안한 상태가 되었다.

오늘 업무를 하다 팀원이 눈 가리고 아웅하는 모습을 보았다. 얄팍한 말로 순간을 모면하려는 모습이 웃기기도 하지만 이내 화가 났다. 그러다 문득 내 초등학교 때가 생각나자 조금은 마음 한 구석이 저려왔다. 고양이든, 아기든, 초등학교 6학년이든, 어른이든 어쨌든 숨어버리고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을 테니까. 그것이 자기 눈을 가리는 아웅아웅일지라도.



7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1027 일상/생각나는 순혈 오리지날 코리안인가? 46 사이시옷 20/10/05 6660 22
    11193 일상/생각할아버지, 데리버거, 수영장 2 사이시옷 20/12/03 5145 23
    11287 꿀팁/강좌[새해맞이] 습관을 게임처럼! Habitica 11 사이시옷 20/12/28 6312 3
    11289 꿀팁/강좌[새해맞이] 의지력은 돈으로. beeminder 6 사이시옷 20/12/29 5537 5
    11341 일상/생각눈 가리고 아웅아웅 1 사이시옷 21/01/15 5202 7
    11356 일상/생각34살, 그 하루를 기억하며 7 사이시옷 21/01/21 5036 27
    11419 일상/생각왜 나는 시간 기록을 멈추었는가 6 사이시옷 21/02/15 5499 7
    11561 일상/생각☆★ 제 1회 홍차넷배 몬생긴 고양이 사진전 ★☆ 41 사이시옷 21/04/08 6461 23
    12431 의료/건강[강좌] 가위눌림을 초월하는 법(잡글 주의) 18 사이시옷 22/01/11 5692 10
    12515 일상/생각내 고향 서울엔 11 사이시옷 22/02/14 5140 21
    13419 음악[같이해요] 홍차넷 스포티파이 블렌드 같이 만들어요 8 사이시옷 22/12/21 3209 6
    13433 도서/문학2022년 독서 결산 11 사이시옷 22/12/28 3469 5
    14057 꿀팁/강좌[홍보] 자기계발 뉴스레터 & 커뮤니티 '더배러'를 런칭합니다! 6 사이시옷 23/07/21 3787 11
    10183 일상/생각라멘을 쫓는 모험 10 사조참치 20/01/15 6508 11
    11810 창작내 마음은 (2) 11 사조참치 21/06/21 5293 3
    14097 오프모임[모집완료] 8/16 수요일 19시 영등포구청 / 와인 콸콸 하러 가실분? 50 사조참치 23/08/09 3779 8
    556 영화(스포없음)터미네이터 제니시스 보고 왔습니다 18 사탄 15/07/10 7343 0
    8907 문화/예술우리가 머물다 온 곳 9 사탕무밭 19/02/27 5809 13
    14003 일상/생각어제의 설악산-한계령, 대청봉, 공룡능선. 2 산타는옴닉 23/06/25 4235 11
    14089 생활체육대모산 간단 가이드(수서역~청솔마을 코스) 19 산타는옴닉 23/08/03 5311 19
    5275 창작사생연 - 만남 2 살찐론도 17/03/23 3732 2
    6710 창작찌질남 12 살찐론도 17/12/05 5000 13
    14011 일상/생각3대째 쓰는 만년필 ^^ 7 삶의지혜 23/07/01 3626 1
    7446 음악럼블피쉬-smile again(2007.3) 8 삼각팬티에운동화 18/04/27 7849 0
    145 기타[과학철학] “H₂O는 물이 아니다” 13 삼공파일 15/06/01 15180 0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