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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1/04/25 11:44:25수정됨
Name   소요
Subject   출발일 72시간 이내 - 샌프란시스코 공항의 사태
기록

숙소 주인은 많은 것을 물어봤다. 최종목적지는 어디인지, 언제 나가는지, 어디서 왔는지 물었다. 영어로 내준 서약서를 대강 훓어보고 서명했다. 나는 코로나 때문에 이러냐고 물었다. 답은 예스였다. 멀리 가지 말고 얌전히 맥도날드나 다녀와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주인은 내일 공항에 최소 3시간 전에 갈 것을 조언했다. 공항 검역 때문에 지체되는 시간이 크다 했다. 온도 체크를 하고, 음성 결과서도 내야한단다. 또 그 놈의 음성 결과서다.

해외입국자는 출발일 72시간 이내 발급된 음성결과서를 제출해야 한다 (http://ncov.mohw.go.kr/upload/ncov/file/202104/1617502324368_20210404111204.pdf). 입국을 준비할 때 가장 고민했던 지점이다. 출발일은 어느 공항을 기준으로 하는가가 헷갈렸다. 코로나 검사를 받는다고 결과가 바로 나오지는 않는다. 검사에 걸리는 기간을 고려해서 금요일에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월요일 아침에 나왔다. 비행기 출발일은 목요일 아침이었다. 화요일에 '출발일'의 기준을 출입국 쪽 지인에게 물어봤다. 목요일이여도 괜찮다고 했다. 목요일에 동부에서 출발해서 저녁에 샌프에 도착한 후, 금요일 오전에 비행기를 다시 타는 일정이었다.

하지만 항공사 직원은 거부했다. 여기는 샌프란시스코고, 오늘은 금요일이다. 당신은 새로 검사를 받아야 한다. 나는 항의했다. 하지만 직원은 완강했다. 여기에 신속 검사장이 있다. 거기에서 새로 음성결과를 받아와라.

오전 7시 반이었다. 신속검사장에는 이미 줄이 만들어졌다. 4~5 그룹이 기다리고 있었다. 10여분 후 한 사람이 다가왔다. 중년의 한국인이었다. 자신이 5시 45분부터 기다렸는데, 대기 장소를 착각했다면서 먼저 검사를 받을 수 있는지 물었다. 사람들은 그러라고 했다. 감사하다며 앞에 자리를 잡았다. 이어 미국인 중년 여성 둘이 다가왔다. 이들도 마찬가지의 이야기를 했다. 사람들은 또 그러라고 했다. 중년의 한국인과, 중년의 미국인 여성들은 서로 새벽부터 봤었다며 반가워했다. 검사는 8시부터 시작이었다.

대화가 시작되었다. 중년의 한국인은 항공사 고객서비스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미국인 여성들도 가세했다. 나도 합류했다. 내 뒤에 있는 히스패닉 중년 남성도 이야기를 시작했다. 출발지와 목적지는 각기 달랐다. 하지만 이 신속검사장에 모이게 된 경위는 비슷했다. 환승 과정에서 기존 음성결과지를 인정받지 못했다. 그나마 나는 나은 편이었다. 나 말고 셋은 어제 숙소를 새로 구해야 했다 말했다. 비용이야 '당연히' 자가부담이다. 검사 비용도 마찬가지였다. 비용이 260달러라는 말에 보험처리를 물었다. 그건 보험사와 상의하시라는 답변을 받았다.

검사를 받고 결과 발급 대기장으로 갔다. 검사 대기장에 보였던 사람들이 그대로 보였다. 대화도 마찬가지로 이어졌다. 중년의 한국 분이 대화를 주도했다. 항공사에 대한 불만에서, 서로의 소소한 가족 이야기로 주제가 넘어갔다. 감정을 낮춘 상태에서 상황을 바라봤다. 무언가 상황이 흥미롭다고 느꼈다. 나를 포함한 사람들의 상황을 관찰하고 되짚어보기 시작했다. 중년의 한국 분은 먼저 결과를 받고 나갔다. 나에게 터미널에서 다시 보자고 했다. 나 또한 결과를 받고 나가면서 한국행 비행기를 타는 사람들에게 이따가 보자고 했다.

탑승 시간 전에 아슬아슬하게 터미널에 도착했다. 한국인 중년 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후 비행기에 탑승했다. 아까 보고 들은 걸 기록하기 시작했다. 떠오른 이런 저런 생각도 초벌로 기록했다. 10시 35분이었다.

다음 날 공항에 내려 검역 체계를 통과했다. 통과하는 중간중간 출발일 72시간 전의 의미를 물었다. 음성결과서를 수거하는 장병은 심드렁하게 샌프란시스코 출발일 기준 72시간이면 월요일은 말이 안 되지 않냐고 답했다. 이후 만나는 사람들은 뒤에 배치된 인원에게 물어보라고 답했다. 중간부터 나는 질문을 '질본 관련 인원은 어디 있나요?'로 바꾸었다. 뒤로, 또 뒤로 가서 물어보라고 답변 받았다.

마지막까지 가도 인원은 찾을 수 없었다. 질병관리청에 전화를 걸었다. 상황을 설명했다. 담당 공무원은 처음 내 해석이 맞다고 답했다. 비행 시간 동안 72시간이 초과되었다 해도 새로 음성결과를 받을 필요는 없었다. 마음에 걸려서 환승 기간 동안 숙소에 묵은 걸 얘기했다. 그것도 상관없다 했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의 상황을 설명했다. 또 인천공항 음성결과서 수집 현장에서도 질병관리청의 설명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항공사에 이의제기 할 때 필요하리라 생각하는 서류에 관해 몇 가지 물어본 후 전화를 끝냈다.

메모

1) 공항 탑승 수속장의 질서변동?

공항에서 티켓을 발급받는 동안 타인과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은 거의 없다. 터미널 대기 중이나, 비행기 안에서 소소한 이야기를 나눈 적만 있었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내 경우를 돌이켜보면 1) 나나 타인이나 빠르게 탑승수속을 끝내고 터미널로 가는 데 바빠서, 2) 어차피 어디로 갈지도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였다.

샌프란시스코 검사 대기장처럼 대화가 이어지는 걸 본 건 처음이다. 여기서는 왜 대화가 일어난 걸까? 

1. 강제된 시간 공유: 기존 탑승 수속과 다르게 강제로 검사 대기장에서 모여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각자 개별적인 타임라인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었으면 대화가 일어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8시 검사 시작 이전까지 모여서 대기해야 하는 시간이 있었고, 검사를 받은 이후 다시 결과를 대기하면서 다시 대기해야 하는 시간이 있었다.

2. 강제된 시간 공유의 반복: 1에서 언급했던 대기 시간의 공유는 일회적이지 않았다. [검사 대기장 -> 결과 대기장] 사이의 반복이 존재했다 (한국행 비행기를 타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결과 대기장 -> 터미널까지). 결과대기장을 떠나면서 한국인 중년 남성은 나에게, 나는 다른 외국인에게 '이따가 보자'라고 말했다. 연속된 만남이 또 이어지리라는 기대였을까? 아니면 개연성을 담은 기대라기 보다는 상호작용 의례에 불과했을까?

3. 공통의 대화 주제: 사람들이 각자 말한 것이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msg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모두는 음성결과서를 다시 받아야 하는 상황, 그리고 거기에 들어가는 부대비용에 대한 불만을 공유했다. 당시 사람들이 토로한 불만내용 기록을 살펴보면, '항공사의 질 낮은 고객서비스'를 성토하고, '자신은 미리 규정을 확인하고 준비'했다는 걸 주장했다. 

4. 대화를 여는 사람, 대화를 받는 사람: 대화를 열었던 건 한국인 중년 남성이었다. 왜 그 분께서 대화의 시작을 열었는지는 인터뷰를 한 것이 아니니 모른다. 행동과 대화를 통해 추측 가능한 몇 가지 가설들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가설의 차원이다. 이어 대화를 받은 건 미국인 중년 여성 둘이었다. 첫번째 시도하는 사람이 있고, 이를 따르는 두 번째 사람이 나타나면 새로운 질서가 출현한다. 이 셋이 이미 새벽부터 대기장에서 서로를 존재를 인지하고 있다는(2번 요소에서 짚었던) 것을 엮어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 모두가 대화에 참여한 건 아니라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대화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과 참여한 사람들의 차이는? 개인 성향의 문제일까? 아니면 미리 준비를 했는가와 아닌가 차이일까?

5. 대화의 효과: 내 경우에 한정하여 주관적 경험을 얘기할 수 밖에 없다.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보험처리, 항공사 항의 관련, 정부 문건에 대한 해석 논리), 동시에 예상을 어긋나 발생한 상황에 대한 긴장을 해소할 수 있었다. 항공사 혹은 한국 정부에 대한 불만에 동조하면서 짜증나는 마음을 해소한 것은 덤이다,

이런 요소들은 다른 시간과 날짜에 신속검사장을 관찰하여 비교해보면 요소가 명확해질 것이다. 예를 들어 오전 10시에, 아무도 대화를 먼저 열지 않는 경우라면 어떨까? 내가 관찰한 정도와 비슷한 수준으로 대화가 일어날까?

좀 더 추상적인 차원으로 이야기를 전개해보면 우리가 [도시생활 도중 평소에 대화를 하지 않던 타인과 언제 대화를 하게 되는가?]라는 얘기로 넘어갈 수 있을 듯하다. 도시에서의 활동들은 시간표에 따라 조율되는 서비스와, 이에 따라 각기 목적에 맞춰 움직이는 개인화 된 스케쥴로 차 있다. 이 과정에서 서로에게 필요에 따른 질의 이상의 대화를 걸지 않는 건 질서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때때로 대화가 일어나기도 했다. 대표적인 건 버스가 예정대로 오지 않아 1~20분 이상을 기다리다가, 같이 기다리는 사람과 불만을 토로하면서 대화를 시작했던 기억이다. 이를 겹쳐서 공항에서의 일을 떠올려보면 일종의 정식을 제시해 볼 수 있을 듯하다.

도시 생활의 예측가능성이 붕괴하면 거기에서 공유 가능한 감정이 출현하고, 그 감정을 공유하고 나면 그 외의 다른 이야기도 이어갈 수 있는 사회적 상황이(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출현한다고 볼 수 있을까? 아마 어딘가에서 이미 연구된 주제일 거다.

2) 국경관리와 모빌리티 산업

앞선 메모에서 흥미는 대화의 출현이라는 비일상에 있었다. 그리고 공항의 사태를 야기한 건 국경관리를 둘러싼 상황들이다. 왜 샌프란시스코 항공사 직원은, 대민지원으로 파견 나와 검사서를 수거하는 군인은, 질병관리청 담당자와 말이 달랐을까?

1. 코로나 상황 속 국경에서의 권위 배열: 공식적인 권위는 질병관리청의 답변에 있을 것이다. 내가 이해한 방식이나, 다른 사람들이 이해했다고 주장한 방식도 비슷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런 해석은 국경에서 소용이 없었다. 

어느 영역이나 위쪽에서 결정한 가이드라인을 실무자들이 융통적으로 조율한다. 모든 상황을 언어로 규정하여 대응하는 건 불가능하다. 공식적인 권위와 실질적인 권위는 일치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 경우 권위를 실무자에게 더 부여하게 만드는 요인들이 있던 것 같다. 

다른 국가의 공식적 권위를 소환해 또다른 국가 내 실무자의 권위를 꺾기란 어려워 보인다. 미국 공항에서 한국 질병관리청에 전화하거나, 팩스로 서류를 받는 것도 여의치 않은 일이었다. 적어도 당시 내 머리 속에 들어있는 선택지가 아니었다. 커뮤니케이션에는 비용이 들어간다. 그건 시간일 수도 있고, 인프라를 이용하는 금액일 수도 있다. 더하여 모빌리티에 들어가는 비용을 고려할 때, 실무자와 다투어서 생기는 리스크가 컸다. 한정된 시간에 항공사 직원과 다투기 vs 납득이 안 되더라도 지시를 따르기에서 후자를 따른 건 그 때문이다.

내국인으로 입국하는 과정에서도 이런 어려움을 겪었으나, 외국인으로 입국하는 과정에서는 더한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CDC 해석이 뭐건 간에 국경관리자가 거부하면 낑낑깽깽 기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2. 결정구조의 변화와 실무자들의 보수/직관적인 해석 : 항공사 직원도, 대민지원 나온 군인도 출발일이 아니라 경유일 기준 해석을 자신있게 제시했다는 건 흥미롭다. 

같이 기다렸던 한국인 분은 고객 서비스의 부재를 지적했었다. 그것도 가능한 해석이다. 이 항공사 혹은 더 좁혀서 샌프란시스코 공항 내 항공사 지점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비슷한 경험을 폭넓게 발견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팬데믹으로 변화한 국경관리 강화는 시장이 주도하는 모빌리티 서비스의 성격 또한 변화시킨 지점이 있는 듯했다. 달리 말하자면 항공 모빌리티 산업에서 고객 만족도보다 국경관리와의 연동 압력이 더 커진 게 아닌가 싶다. 항공 모빌리티는 고급 서비스이다. 산업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자원이, 따라서 개별 서비스 이용에 들어가는 비용이 여타의 서비스보다 고가이다. 지불하는 가격이 높은만큼 제공되는 서비스에 대한 민감도도 높다. 거기에는 매끄러운 절차에 대한 요구도 포함되고 말이다. 하지만 팬데믹은 소비자의 서비스 요구보다도 국경관리 쪽 해석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모빌리티 산업을 변모시키지 않나 싶다. 개별 소비자의 불만이 일으키는 손해보다, 방역 문제를 일으켰을 때 생기는 손해가 클 것이다.

한국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샌프란시스코 공항의 항공사 직원들이 이해하고 적용하는 데 혼선이 존재하기는 했을 것이다. 질병관리청에 당부한 내용도 이거 이대로 두면 계속 똑같은 피해보는 한궈런들이 생기리라는 얘기였다. 하지만 항공사 직원으로서는 확신이 없으면 나와 같은 경우 다시 받으라는 지시를 내리는 게 보수적인 판단이라는 생각도 든다. 문제가 생겼을 경우 자신에게 발생하는 리스크가 크니 말이다. 항공사에서 활용하는 가이드라인을 수집하거나, 항공사 직원들과 인터뷰를 해보면 재미있는 얘기들이 나올 듯하다.

대민지원 나온 군인에게 더 따져묻지는 않았다만, '샌프란시스코에서 어제 출발 하셨으니 출발일 기준 3일에 안 들어가지 않냐'고 시차나 비행 시간을 고려않은 채 주장한 내용도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을 듯하다. 군인의 시선에서 바라볼 때는 월요일에 나온 검사지를 가지고 토요일에 들어와서 3일 전이라 주장하는 도른자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말이다 ㅋㅋ

출발일의 해석을 경유일로 주장해도 (더 높은 권위와 갈등하지 않는다면) 직관적으로 맞아떨어진다는 건 이들이 자신의 주장을 밀어붙일 수 있는 근거 중 하나였을까? 인간들이 논쟁 양상은 경험적 근거를 누적하여 검증하거나, 그 내부 논리를 세세히 들여다보는 것과는 별개로 굴러가는 경우가 많다. 사례가 쌓이면서 해석의 합리성이 다듬어진다면 모를까 처음에는 '그렇게 보이는' 순간적 해석의 힘이 강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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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있었던 일이 재미있어서 필드노트 작성하듯이 한 번 글을 써보았읍니다. 정리하다보니 다음에는 어떤 식으로 준비해야 할지도 보이고 하네요. 다른 케이스가 있으면 더 유용한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우짤 수 없죠 뭐ㅠ 국가 간 백신 공급 불균형이 일어나면서 백신관광 같은 이야기도 나오는데,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꽤나 많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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