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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1/05/18 16:55:57수정됨
Name   소요
Subject   섹슈얼리티 시리즈 (완) - 성교육의 이상과 실제
- Ollis, D. (2016). ‘I felt like I was watching porn’: the reality of preparing pre-service teachers to teach about sexual pleasure. Sex Education, 16(3), 308–323. https://doi.org/10.1080/14681811.2015.1075382
- Krebbekx, W. (2019). What else can sex education do? Logics and effects in classroom practices. Sexualities, 22(7–8), 1325–1341. https://doi.org/10.1177/1363460718779967

들어가며

마지막입니다. 주전공과 연결되기 때문에 구성을 달리했습니다. 논문 내용을 직접적으로 전달하기 보다는, 두 논문을 연결하면서 개인적인 감상을 늘렸어요.

왜 이 연재를 시작했는가?

1년 넘게 섹슈얼리티를 주제로 한 논문을 소개했어요. 계기는 학과 건물을 돌아다니다가 BDSM 관련 강의를 본 것이었고요. 검색해보니 그 달은 섹슈얼리티 주간이더라고요. 성폭력부터 BDSM의 긍정적 향유까지 폭넓게 그리고 공개적으로 세션을 제공했어요. 한국에서는 전혀 보지 못했던 상황이라 살짝 놀랐어요. 다양한 영역을 공부하면서 사회규범에 덜 얽매이게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학교에서 섹슈얼리티를 가르친다는 건 한국에서 바라봤던 모습과는 괴리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 날부로 관련 저널의 최신 논문을 쭉 다운받고 천천히 읽어보기 시작했어요. 공개된 온라인 커뮤니티에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올려야 할지도 고민하기 시작했고요. 한국 내에서 음성화 되어 있는 이야기들에 마땅히 필요한 위치를 돌려주고 싶었어요. 

섹슈얼리티를 둘러싼 양가적 감정

연재를 하면서 다분히 교육적 효과를 의도했어요. 다양하고 도발적인 주제들을 정제된 언어로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 목표였지요. 전달방식은 매력적이지 못했지만, 주제 자체가 흥미를 끌 수 있다 생각했지요. 예전에 올렸던 다른 주제와 비교해보면 결과적으로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지만요. 답은 유튜브 10분 영상이 아닐까 마 그렇습니다,,, 뿌슝빠슝

그런데 전달 방식의 문제(줄글로 소개된 빡센 이론과 긴 본문 ㅡㅡ)을 차치하고서라도 문제는 하나 더 있더라고요. 친한 분에게 댓글도 달고, 좋아요도 눌러달라고 반농반진 부탁드리니 민망하다라고 하더라고요. 글을 읽는 건 읽는 건데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까지 다는 건 또 다른 차원의 행위였지요. 아무도 안 다는 상황에서 첫 번째로 댓글을 다는 건 더더욱이요. 저는 이걸 자신의 아이디와 연결된 인상을 관리하고자 하는 욕구로 이해했어요. 거기에는 당연히 [섹슈얼리티 관련된 글에 좋아요와 댓글을 다는 걸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개인의 체화된 감각이 들어올 거고요.

제가 피곤한 방식으로 섹슈얼리티를 논의한 것도 같은 맥락에 있어요. 댓망진창 나지 않기를 바라기도 했고, 건조한 방식으로 진지하게 주제를 다룬다는 인상을 주고 싶기도 했거든요. 그게 사람들에게 복합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주제를 전달하고 논의를 유도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판단을 했죠. 정작 제가 결과적으로 희망하는 상태는 점심 메뉴나 저녁 메뉴 이야기하듯이 편하게 섹슈얼리티를 논의할 수 있는 거지만요. 

이런 양가적인 느낌을 따라가다보니 어린 시절 학교에서 배웠던 성교육이 생각나더라고요.

학교에서 배웠던 섹슈얼리티,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던 섹슈얼리티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대강당에 모여서 성교육을 받던 것이 기억나요. 강당 TV에서는 남녀 성기의 해부학적 도식이나, 정자와 난자의 상호작용에 대한 애니메이션이 흘러나왔고, 학생들은 자기들끼리 잡담을 나누느라 전혀 집중하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그나마도 학교에서 직접적으로 성을 다룬 건 그 때가 마지막이었고, 그 뒤로는 생물 시간에 생식 과정을 공부하면서 간접적으로 정보를 받았어요.

반대로 쾌락이라는 면과 얽힌 섹슈얼리티는 포르노그라피를 중심으로 학생들 사이에서 입에 오르내렸어요.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부터 성인물 사이트 정보가 오고가거나, 중학교 때 누구랑 누구랑 했다더라거나, 일진인 남녀 무리들끼리 자위를 소재로 서로에게 공격적인 장난을 친다거나 했던 것들이 기억나요. 도서관에서 소설 책을 읽다가 성애 묘사가 나오면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던 것도 생각나네요 ㅋㅋ

숨겨진 교육과정(hidden curriculum)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섹슈얼리티는 공개적으로 다루지 않는 것으로] 간접적으로 교육 받았어요. 제도권을 통해 경험한 교육과정(experienced curriculum) 내에서 섹슈얼리티는 극히 제한적이었어요. 쾌락과 섹슈얼리티는 더더욱 '공식적이지 않은 것' 이었고요. 학생들 사이에서 유통되는 섹슈얼리티는 주로 '야동', '야사', '아설'을 통해 학습되고 전파되었지요. 대학교 때 관련 공부를 개인적으로 하면서 학과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 다들 그러더라고요. 아니 이 형/오빠는 야한 이야기를 야하지 않게 한다고요. 그것도 좀 신기했어요. 이게 꼭 야해야만 하는 이야기인가? 싶었고요.

지금 학부모인 세대들이 학교를 통해 직접적으로 전달받은 섹슈얼리티는 극히 미미하며, 섹슈얼리티와 쾌락은 더욱 음성화 되었었지요. 이러한 학교의 숨겨진 논리는 사회의 논리를 거울처럼 비춰요. 성인이 된 이후에도 사람들은 섹슈얼리티를 공부할 기회를 얻기 힘들어요. 체험을 통한 학습까지도 가능하다손 치더라도, 체험을 다양한 관점에서 반추해보는 성찰 과정은 요원하지요. 그 중요 원인은 판단적인 시선에 대한 고려 때문에 대화에 섹슈얼리티를 쉽게 끌어들이지 못하는 것이라 느껴요. 혹은 사회적 삶에서 젠더에 따라 다르게 용인하는 방식으로만 섹슈얼리티를 논의하거나요. 

힌국에서 가르치려고 하는 섹슈얼리티

2015년 교육부에서는 <학교 성교육 표준안>을 발표했어요. 권고안은 포괄적 성교육이라는 유네스코 지침에 위배된다는 비판이 따랐지요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812).

교수/학습 과정안을 훑어봤어요 (https://www.cbe.go.kr/dept/11/sub.php?menukey=286&mod=view&no=498550). 2011년 발표되었던 과정과 (https://www.korea.kr/archive/expDocView.do?docId=29776) 비교를 해봤어요. 고등학교 교수안만 살펴봤습니다.

2011년에는 섹슈얼리티라는 용어가 교수안에 들어와 있는 게 보이고(그 이전에도 들어와 있었는지는 확인하지 않았고) 남성성을 재구성하려는 시도가 보여요. 젠더가 이원 시스템이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은 채 남성성만 일방적으로 재구성 하려는 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젠더 연구의 최신 성과들을 반영하려는 의도는 보이더라고요. 중간에 차라리 포르노를 학교에서 틀면서 비판적 독해를 가르쳐야 한다고 언급하는 건, 뒷 시기의 다른 연구에서 주장했던 실천론과(Albury, 2014) 공명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2015년 안에는 성건강이나 데이트 성폭력을 둘러싼 논의들이 늘어났더라고요. 반대로 섹슈얼리티는 사라지고요. 성교육에 자녀 교육을 연결지어서 성-생식-가족을 연결짓는 측면은 강화되었고, 섹슈얼리티를 사회문화적인 구성물로 바라보는 관점은 약화되었어요. 

여기서 교수/학습 과정안 수준의 의도된 커리큘럼(intended curriculum)을 각잡고 분석하고자 하는 건 아니에요. 전 2011년 2015년 다 만족스럽지 않다만, 굳이 하나를 고르라면 그래도 2011년이 전반적으로 낫네요. 2015년의 요소에서 끌어올 수 있는 긍정적인 점은 성건강을 둘러싼 논의가 있겠고요.

그럼 유네스코에서 가르치려고 한다는 포괄적 성교육은 무엇일까요? 유네스코 가이드라인은 섹슈얼리티를 인간의 생애 경험이라는 관점에서 생물학적 관점과 사회적 관점을 함께 다루고자 해요. 또한 섹슈얼리티의 쾌락적 측면도 배제하지 않고요.

섹슈얼리티를 둘러싼 양가적 감정이나, 제 경험을 통해 언급했던 숨겨진 교육과정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사회에 만연한 혹은 공교육에 스며들어가 있는 젠더 이분적 담론을 해체하고자 하는 비판이론적 접근은 중요한 갈래여요. 성과 건강을 둘러싼 오해를 바로잡고 사람들의 성행동 속에서 위험을 줄이고자 하는 의학적 관점 또한 다른 중요한 갈래여요. 성과 쾌락 그리고 욕망은 담론장에 편입이 늦었어요. 미쉘 파인(1988)은 욕망이 담론에서 사라져있다고 지적했었지요(missing discourse of desire). 하지만 최근에는 쾌락 또한 성교육의 주요 영역으로 들어오고 있어요. 

그럼 유네스코 권고를 받아들여서 성교육을 포괄적인 형태로 바꾸기만 하면 향후 세대의 섹슈얼리티 관념은 달라질까요?

교육과정의 세 가지 영역: 의도된, 실행되는, 경험하는

반 덴 아커(Van Den Akker, 2003)는 교육 과정을 세 가지로 나누어요. 첫째는 의도된 교육과정(intended curriculum)이에요. 가르치는 입장에서 무엇을 가르치고자 하는가?이지요. 둘째는 실행된 교육과정(implemented curriculum)이에요. 실제로 교사들이 무엇을 가르치는가?여요. 셋째는 경험된 교육과정(expreienced curriculum)이에요. 학생들이 경험하는 바는 무엇인가를 바라봐요.

간결한 프레임워크이지만 우리가 교육을 논의하는데 있어서 이 영역을 구분하는 건 중요해요. 혹자는 의도된 교육과정의 영향을 지나치게 과장하고, 혹자는 의도된 교육과정의 영향을 지나치게 축소해서 받아들여요. 그 사이 어드메에서 교육은 효과를 발휘해요. 공개적으로 가르치겠다고 밝힌 교육 뿐만 아니라, 말로 표현되지는 않지만 학교 내 사회생활을 통해 전달되는 숨겨진 교육과정(hidden curriculum)을 통해서도요.

성교육을 포괄적으로 바꾼다 했을 때, 우리는 의도된 교육과정 이상을 바라봐야 해요. 그래야 성교육이 기존 학교의 질서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교사들이 실제 학교 현장에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어떻게 섹슈얼리티를 가르치는지를 살펴볼 수 있지요. 이를 들여다보지 않은 모든 교육과정 분석은 선언에 그치기 쉬워요.

학교의 질서는 성교육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바꾼다 - 크레벡(2019)의 현장연구

인류학자 크레벡(2019)는 네덜란드 학교에서 포괄적 성교육이 학교의 질서 속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분석했어요. 네덜란드는 청소년의 섹슈얼리티를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전통이 상당히 오래된 국가에요. 논문에 여러가지 재미있는 사례가 담겨있지만, HIV 전파 원리를 가르치기 위한 게임에서 드러난 모습이 인상 깊어서 소개해볼게요.

네덜란드의 한 교실에서는 에이즈 컵 게임을 실시했어요. 학생들은 자리에 앉은 상태에서 물이 든 컵을 나누어 가졌어요. 교사는 그 중 한 컵에 설탕을 넣어두었어요. 학생들끼리 서로의 컵에 물을 나누어 담는 것은 성교를 유비하고, 서로의 물이 섞여서 설탕이 전달되는 과정은 HIV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과정을 유비해요. 서로의 활동이 끝나고 난 후 학생들은 다시 자기가 지닌 컵을 한 모금 맛봐요. 단 맛이 난다면 이제 자신이 HIV에 걸렸다는 걸 알게 되는 거지요.

교사는 단 맛을 느낀 학생들은 손을 들라고 했어요. 맨 앞 왼쪽 구석에 앉은 여학생 넷을 제외한 모두가 손을 들었지요. 제나, 브리아나, 미에케, 린다는 '감염되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었지요. 이 넷이 감염되지 않았다는 게 알려졌을 때 다른 학생들은 웃기 시작했어요.

교수 목표는 HIV의 전파 원리였지만, 학생들 사이에서 '감염되지 않은' 것은 성적 매력이 없다는 증표처럼 이해되었지요. 제이든은 "하하 누구도 얘들이랑 섹스하고 싶지 않나보네 hahaha no one wanted to have sex with them!"이라고 말했어요. 교사는 학급활동이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는 걸 깨닫고 재빨리 콘돔 사용으로 주제를 바꿨지만, 해당 활동이 드러내보인 학급의 인기 질서는 뚜렷해요. 누군가는 다른 학생과 '섹스를 하고', 혹은 '섹스를 할지 물어보지'만, 누군가는 하지도 못하고 묻지도 못하며 제안을 받지도 못하지요. 결과적으로 해당 활동은 학급 내에 존재하던 인기 질서를 확인하고 강화했어요.

또한 이성애중심성의 강화도 나타나요. 남학생들은 서로 가까워져서 물을 섞어야 할 때가 되면, "으엑 나 게이 아니야 Yuck I am not gay!"라고 외치면서 가까이에 있는 다른 여학생에게 가고는 했어요.

한국 교육과정에서도, 네덜란드 교육과정에서도 또래 압력을 넘어서 섹슈얼리티에 대해 개인적인 결정을 내리는 건 중요한 교수 목표여요. 하지만 가르치고자 의도하는 내용과 별개로, 성교육 내용이나 활동이 학교현장에 이미 구성되어 있는 질서와 결합하지 않으리라는 건 나이브한 관점이에요. 

보다 이론적인 관점에서 얘기해보자면, 학교 생활의 여러 장면들에서 학생들은 섹슈얼리티를 함께 상연(collectively enact)해요. 그건 섹슈얼리티가 개인의 인기/매력과 결합하는 양상이나, 남학생들이 이성애 중심성을 강화하는 집단적인 모습 속에서 나타나고요. 섹슈얼리티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맥락과 그렇지 않은 맥락을 구분하는 건 불가능해요. 학교 생활의 여러 순간들에서 섹슈얼리티는 드러났다가 사라지니까요.  

교사들도 사회구조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 - 올리스(2016)의 사례 연구

이번에는 보다 교육학에 가까운 연구여요. 오스트레일리아 대학에서 교사 교육과정을 밟는 학생들에게 성교육 방법과 실천을 가르친 내용입니다. 이 과정에서는 포괄적 성교육이라는 관점에서 쾌락의 문제를 함께 다루었어요. 그 중 한 단락을 옮겨볼게요.

교육학과 대학생들에게 성교육과 쾌락을 통합하여 가르치는 과정에서 학습 결과를 살펴보는 주요 지표 중 하나는 일종의 문장검사였어요. 학교 환경에서 다루어져야 하는 성교육 주제 40가지를 제공했고, 학습 전후로 학생들이 어떤 의견을 지니는지를 살폈지요.

그 중 쾌락과 관련된 문제는 6가지였어요.

- 젋은 이들은 섹스와 관련된 실험을 해야 한다 Young people should experiment with sex
- 나는 자위를 묘사하는데 편안함을 느낀다 I would feel comfortable describing masturbation
- 성적 쾌락은 섹슈얼리티 교육의 핵심 요소이여야 한다 Sexual pleasure should be a key element of sexuality education
- 포르노그라피는 성 교육의 주요 수단이다 Pornography is an important sex education medium
- "cunt"와 같은 단어를 되찾는 것은 섹슈얼리티 교육의 주요 결과이다. Reclaiming words like “cunt” are important outcomes of sexuality education
- 욕망과 친밀성은 섹슈얼리티 교육의 주요 요소이다. Desire and intimacy are key components of sexuality education

교육 시작 전 학생들은 모든 진술들에 대해 혼란을 느끼고 어려워했지만, 교육 말미에는 각 기저에 깔린 논지를 이해했지요. 하지만 예외가 하나 있었어요.

그건 "Cunt"라는 표현을 되찾아야 한다는 진술이었지요. 여성기를 직접적으로 지칭하는 이 표현은 수치감과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강력한 상징이였어요. 대부분의 여학생들은 이 표현을 여성 섹슈얼리티의 긍정적인 측면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적이 살면서 한 번도 없다고 말했지요. 페미니스트들은 이런 반응이 여성성과 여성 섹슈얼리티에 대한 부정적이고 미소지닉한 관점과 연결된다고 주장해요 (Hunt, 2015). 그래서 페미니스트들은 "cunt"라는 표현을 여성들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되찾아와야 한다고 얘기했지요.

하지만 학생들은 교육 말미까지 이 주장에 확신을 가지지 못했어요. 어떤 환경 속에서도 이 단어를 발음하지 못했지요. 

역겨움(disgust)는 문화에 의해 조형되고 걸러져요 (Haidt et al., 1997). 심지어 문화적 맥락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이후에도 학생들은 "cunt"라는 단어에 결부된 거부감을 떨쳐내기 힘들어헀지요. 아흐메드(Ahmed, 2004)는 혐오감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 대해 지니는 인상이나 이 인상이 신체로 드러나는 방식 속에서 이미 내포된 관념에 의해 매개된다mediated by ideas that are already implicated in the very impressions we make of others and the way these impressions surface as bodies'고 주장해요. 사람들이 직관이고 당연이라고 받아들이는 것들에 담긴 뿌리를 살펴봐야 한다 정도로 이해하면 될 거예요.
* 또한 이러한 역겨움은 부정적인 관점에서만 끝나지 않아요. 예전 연재글에서 줄리아 크레스테바의 비체 논의를 언급했던 걸 기억하실지 모르겠어요. 거부감과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은, 다른 한 편으로는 매혹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 된다고요. 저자도 이 지점을 언급하고 있지만, 이 글에서는 더 논의하지 않습니다.

상기한 사례 외에도, 저자들은 논문 전체에 걸쳐 교사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쾌락을 통합한 성교육을 공부하면서 겪은 혼란들을 분석해요. 스웨덴에서 활용하는 포괄적 성교육 애니메이션(https://www.youtube.com/watch?v=T-XAR8PIqbs&ab_channel=RFSU, "Sex on the Map" 성인인증 후 시청 가능)을 본 학생 중 하나는, "포르노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I felt like I was watching porn"라고 말하기도 했지요. 

학생들이 보건이라는 관점에서 위험 행동을 방지하기 위한 성교육이나 성폭력을 방지하기 위한 성교육에 대해(prevention education) 더 편안하게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쾌락과 관련된 모든 콘텐츠들을 어려워하지는 않았어요. 뮤직 비디오 속의 젠더, 권력, 성애화를 분석하는 활동은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지요. 저자는 이 비디오가 여성을 수동적, 대상화 하는 이미지를 표상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지닌 '정상'의 관념과 부합해서 거부감을 덜 느꼈다고 분석해요. 

말미에 이르러, 저자는 기존 사회구조의 영향에서 상대적으로 운신의 폭을 넓히기 위한 방안으로 성찰적 재구성(reflective reconstruction)을 언급해요. 성찰을 둘러싼 교육학적 논의나 이를 둘러싼 문제는 또 별개의 글로 쪼개어 다루어야 할 주제이니 여기서는 생략할게요.

나가며

"cunt"를 번역할까 말까 고민을 했어요. 한국어에 대응되는 번역어는 또 그 자체로 글을 읽는 독자 분들에게 감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았거든요. 영어를 체화하고 있는 분들에게는 민망스러울 수 있겠지만 ㅠ_ㅠ 한국어 독자를 상정하고 글을 적었습니다.

본문에서 거듭 강조했듯이 행위는 진공 속에서 일어나지 않아요. 홍차넷에 섹슈얼리티 글을 연재하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연재하면서 어느 정도로 표현의 수위를 결정해야 하나 그 떄 그 때 고민을 했어요. 섹슈얼리티를 공개된 장소에서 논의한다는 것, 그걸 논문의 형태를 빌어 짐짓 건조하게 표현하면서도 주제는 도발적이라는 것, 주제를 제시하는 제가 남성이라는 것 자체로 빚어내는 효과가 있다는 점 등등을 모두 고려해야 했고요. 뭐 우야겠습니까... 그만큼 섬세한 접근이 필요한 논의이기는 한 걸요. 그래야 덜 섬세하게 다루어도 문제가 적어지게 될거라 생각하기도 하고요.

엊그제 친척 댁에 갔다가 딝도리탕을 얻어 먹었어요. 이모랑 사촌여동생이랑 얘기를 하던 도중에 레깅스를 어디서 입고, 어떻게 입어야 하는가에 대해 얘기가 나오더라고요. Y존을 긴 옷으로 가려야 하느니 마느니, 공원이랑 등산까지는 밖에 입고 나가도 오케이라느니 마느니 하는 얘기를 나누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공부하는 곳에서는 다들 생활복으로 입고 다녀서 그런지 학교에 그러고 다녀도 별로 이상하지가 않다고 말을 얹었지요. 

이 이야기를 돌이켜보면 Y존이라는 걸 둘러싼 한국 사회의 논의가 이 글에서 제시한 사례 연구들과 공명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상 속에서 사람들이 섹슈얼리티를 국지적인 형태로 협상하고 논의하면서 실천을 확립해간다는 것, 그리고 섹슈얼리티, 공간, 그리고 문화가 중요하게 연결되는 주제라는 것까지도요. 

학교는 아직까지도 섹슈얼리티(특히 그 속의 쾌락)에서 벗어난 것으로 제시되는 공간이에요. 하지만 학교는 공적인 성교육 커리큘럼과 별개로, 구성원들이 섹슈얼리티를 집단적으로 실천하는 장이에요. 인간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사회의 모든 제영역이 그러하듯이요. 때문에 학생과 교사 모두 포괄적 성교육이 지향하는 바와는 다른 문화적 논리와 실천을 내면화하고 있어요. 본문에서 드러난, 목표와 현장 사이의 갈등이 두드러지는 지점을 파고들어가는 것이 성교육을 실현하기 위한 통로가 될 것이에요.

다른 글들을 소개하면서 쉬었다가 장애학으로 돌아오겠습니다. 1년 동안 읽어주신 분들에게 감사를 드려요^_^/

본문에서 인용한 다른 논문들은,

Ahmed, S. 2004. The Cultural Politics of Emotion. Edinburgh: Edinburgh university Press
Albury, K. 2014. Porn and sex education, porn as sex education. Porn Studies1(1–2), 172–181. https://doi.org/10.1080/23268743.2013.863654
Fine, M. 1988. Sexuality, schooling, and adolescent females: The missing discourse of desire. Harvard Educational Review 58(1): 29–54
Haidt, J., P. Rozin, C. McCauly, and S. Imada. 1997. “Body, Psyche, and Culture: The Relationship between Disgust and Morality.” Psychology Developing Societies 9 (1): 107–131.


입니다. 커리큘럼 분석에 대해 궁금하신 분은 Akker, J. V. D. (2004) Curriculum Perspective: An Introduction를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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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완결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 고생 많으셨습니다. 좋은 연재에 감사드립니다.
  • 정성스럽게 쓰신 학술적 글 시리즈에 감사드립니다. 저도 언젠가 이런 시리즈를 해야하는데.. (눈물)
  • 부럽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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