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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1/08/22 01:28:39
Name   lonely INTJ
Subject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친구는 내게 생각이 많다고 했다.
내가 물었다.그런 너는 생각 없이 사는 거냐고. 공격의 의도는 없었다.
순전히 궁금했을 뿐이다.정녕 너의 머리 속은 진공이냐고.

내 머리 속은 이런 저런 생각이 서로 얽히고 섥혀
내가 더 중요하다고 서로 싸우는 것만 같다고.그래서 알코올이라던가 니코틴이라던가
수면제라던가 그런 화학적인 도움 없이는 머리 속을 잠재우는 것이 어렵다고 말이다.

친구는 답했다.난 정말 별 생각이 없어.하고싶은 것 하고.뭐 그렇게 살아라고 말이다.
난 속으로 저런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이런게 기질인가? 싶었다.

세상에 고민없는 사람은 없다. 세상에 가난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 가난이라는 것은 종류가 너무나 다양하고 상대적인 것이어서 누가봐도 풍족하고
누가봐도 사랑스러우며 누가봐도 재능이 충만하여도 가난함을 인지할 수 있다.
난 인지한다. 내 안의 가난함을. 내 마음은 풍요로움과는 거리가 멀다.

남의 인생상담만큼 쉬은 것이 없다.그들 대부분의 고민은 무언가 근원이 있다.
그 근원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에서 부터 출발하는 문제는 그 근원을 인정토록하면 보통 해결된다.
거기다 나름의 사회생활을 거치면서 터득한 공감을 뜻하는 몇 가지 단어와 감정. 그리고 이모티콘을 적절히 활용하면
상담이 끝나고나면 둘도 없는 진한 우정을 경험한 그들을 볼 수 있다.

이것이 기만이라고 하면 기만일까? 그들이 진정으로 고마워하는 모습을 보면
내가 문제의 해결사가 된 것은 물론이고, 외로운 인생의 길에 잠시나마 동반자가 되어주었다는 것이 사실임은 틀림없다.
그런데 힘에도 작용.반작용이 있는 것은 분명한데 왜 나는 이토록 처절히 외로움을 느끼는 걸까.

이번에 백신을 예약하면서 작은 상상을 해보았다.만약 내가 예약하고 있는게 백신이 아니라 안락사가 가능한 주사라면?
사형집행일처럼 그러한 주사를 내가 예약하여 그 날짜를 알고 하루하루 줄어가고 있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노 쇼(No-Show)를 할 것인지 아니면 얌전히 그 병원 체어에 앉아 주사를 맞을 것인지.

나는 딱히 노 쇼를 할 생각은 없다.본능적인 공포에 짖눌려 발버둥칠지는 모르겠지만
결국엔 주사를 맞고 삶을 마치겠지.다만 너무 이상하고 괴기스럽고 징그러운게 있다면
내가 고민을 해결해 준 그 친구들은 그 주사를 맞는 명단에 없는 것이다.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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