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1/08/24 12:11:51
Name   히하홓
File #1   1629774543.jpg (56.6 KB), Download : 53
Subject   서양 사학자 평가한 촉한





이미지는
⊙후한대에만 존재하는 현

▲ 서진 시대 새로 생긴 현(즉 촉,오가 새로 만든 현)

● 후한, 서진 시대 둘다 존재하던 현

이라고 합니다 



----------------------------------------------

촉한의 항복 당시, 촉한의 인구는 28만 가구, 인구 94만명, 관리 4만, 10만 2천의 군사(under arms)로 이루어진다고 보고 되었습니다.후한 시절 익주의 등록된 인구는 725만명이었고, 성도 근방의 3군만으로도 57만가구, 225만 인구보다 많았았습니다. 20여년 후의 세금 평가 수치를 보존하고 있는 진서 지리지(Treatise of Geography of the jin shu)에서는 지역의 가구를 3백만을 겨우 넘는 것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촉한의 기록과도 양립합니다. 이것은 실질적으로 주에 거주하는 사람의 숫자의 감소보다는 세금 쿼터 시스템을 명백하게 암시합니다. 이 시대의 정부는 한나라 때의 지역 행정관이 가졌던 동일한 수준의 수준을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명목 인구의 감소는 분열된 제국 전체에서 거의 같았습니다.

반면에, 비록 오나라는 한나라의 전통을 반복하려는(might echo the traditions of Han) 정부의 구성을 확립하려는 몇번의 시도를 해왔지만. 촉한은 가장 기본적인 민간 행정 이상은 가지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Shu-Han appears to have had no more than the most basic civiladministration.) 제갈량의 죽음으로, 승상부은 사라졌다.(the office of Chancellor came to an end.)
장완은 자신의 선임자(역주:제갈량)의 역할을 대사마직으로 장악했고, 성도 정부의 수반인 비의은 대장군-녹상서사와 익주목이었습니다. 장완의 죽음 후, 비의는 군사 작전본부 한중으로 이동했고, 강유 역시 북쪽의 지휘권과 함께 녹상서사가 되었습니다. 즉 국가의 선임 관리는 군사 직을 확보 있었고 주기적으로 전쟁에서 교전했습니다. 반면 성도의 문관적 문제들(civilian matters)은 유선과 그의 총신들의 손에 있었습니다.(while civilian matters at Chengdu were in the hands of Liu Shan and his favourites.) 이러한 상황에서 촉한의 행정은 군벌 정권의 그것이었습니다(that of a warlord regime), 신병 모집, 군대의 보급에 집중하면서 족장의 개인적 관심 위에 있었습니다.(with emphasis on the recruitment and supply of troops and on the personal interests of the chieftain)물론 일을 돕기위한 사무직 관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장기적 계획과 발전을 위한 정부는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제한의 결과는 촉한 정부와 남쪽의 땅들(역주: 남만)의 관계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유비가 214년 성도의 권력을 장악할 때, 유비의 남쪽 영토를 관리하기 위하여 지역적 관청 내향(庲降)을 설립했습니다. 그리고 220년대 중반 제갈량의 군사원정은 맹획이 이끄는 비중국인 동맹을 파괴했습니다.

아래 단락은 오역 가능성 높음

그러나, 정착지들은 제갈량에게 패배한 부족에게 세금을 부과했음이 관찰됩니다. 제갈량은 다른 권위의 상징과 인장의 파워를 확인하면서, 부족의 원주민 리더들을 계속 콘트롤하기 위해서 사람을 남겼습니다. (It should be observed, however, that the settlement imposed on the defeated tribes by Zhuge liang left the people under the continuing control of their native leaders, confirming that power with seals and other emblems of authority.)

공식적인 측면에서 그들은 촉한의 신하였지만. 기록은 남쪽 군들에서 여러번의 후대 반란을 언급합니다. 비록 큰 어려움없이 지배권에 백성들이 들어왔지만(although the people were brought under control without great difficulty), 그들은 국가의 자원을 현저하게 더하지는 못했습니다.(they did not add notably to the resources of the state.)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는 촉한의 정책과 오나라의 정책을 대조할 수 있습니다.

오나라는 최초의 정복에 다음에 확고한 식민지 건설, 지역 control의 새로운 단위의 확립이 뒷따랐습니다.
(where initial conquest was followed by firm colonization and the establishment of new units for local control.)
그 결과 150년의 차이가 나는 후한의 인구 센서스와 진나라의 등록치에서 오나라 영토의 카운티(counties 역주: 행정구역?)의 숫자는 2배가 되었습니다.(while the number of counties in the territory of Wu doubled during the century and a half between the census of Later Han and the register of lin)
촉한의 영토에서는 그저 20퍼센트의 순증가가 있었으며 실질적인 발전 프로그램이 없었습니다. (in the territory of
Shu-Han there was a net gain of just twenty per cent, and there was no real programme of development)

요컨데, 손권이 양쯔강 중앙에서 자신의 지배력를 확인할 때, 촉한의 유일한 확장 지역은 북방과 남방을 향했습니다. 남방으로 제갈량과 그의 후계자들의 정부는 general authority(일반적 권위?)으로 그들 스스로 만족했다.(the government of Zhuge liang and his successors contented themselves with a general authOrity)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습득한 인적, 물적자원을 발전시키지 않았습니다.(but they did not develop the human and material resources they had acquired.) 대신에 그들은 그들의 노력을 북방에 집중했고, 헛된 공격 속에서 그들의 제한된 힘을 기진맥진하게 만들었습니다. (they concentrated their efforts on the north and exhausted their limited strength in futile aggression.) 촉한은 지방 국가의 군벌적 사업체로 여겨집니다. (ShuHan was founded as a warlord enterprise in a provincial state) 촉한은 그것 이상이 결코 되지 않았습니다.(it never became anything more.)

출처 The Three Kingdoms and Western Jin: A History of China in the Third Century AD - I

-----
B.A. Honours History Cambridge (1957)
M.A. History Cambridge (1961)
B.A. Honours Chinese ANU (1962)
M.A. Oriental Studies Honours ANU (1964)
PhD Far Eastern History ANU (1968)

삼국지 토탈워 자문까지 맡으셨던 서구 사학계에서 제일유명한 후한,삼국지 전문 학자라고 하시네요

60년대에 오나라의 남방 개척으로 박사학위 받으셨다구..



2
  • 추천이야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2024 요리/음식맥주 조금만 더 비싼 거 마셔보기 12 알탈 21/08/28 4150 3
12023 요리/음식맥주 조금만 더 천천히 마시기 - 2 30 알탈 21/08/28 3845 7
12022 요리/음식맥주 조금만 더 천천히 마시기 - 1 21 알탈 21/08/28 4484 11
12021 철학/종교설문조사 결과 발표 (두둥) 9 매뉴물있뉴 21/08/27 3364 4
12019 역사과거를 도려낸 나라의 주민이 사는 법. 15 joel 21/08/27 3984 24
12018 경제한국은 중부담 중복지 국가가 되어가는가? 13 샨르우르파 21/08/26 3777 5
12017 문화/예술뜨개질을 시작해보자! 8 고기찐빵 21/08/26 5065 6
12016 경제강남아파트 시들 강북 연립 활기 -2008년 기사입니다. 5 요일3장18절 21/08/26 3496 1
12015 정치무야홍, 유승민, 역선택 27 Picard 21/08/26 3734 6
12014 일상/생각사랑이란 5 lonely INTJ 21/08/25 3152 1
12013 생활체육올해여름휴가는 골프로(2개 골프장 후기 & 새퍼터 영입) 2 danielbard 21/08/25 3469 2
12012 철학/종교[설문조사 진행중] 건전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시급) 30 매뉴물있뉴 21/08/25 3360 2
12011 일상/생각손님들#1 7 Regenbogen 21/08/25 3419 29
12010 일상/생각바하밥집 후원 6 lonely INTJ 21/08/24 3274 19
12009 기타남자양말 신는방법(?) 43 흑마법사 21/08/24 3910 9
12008 일상/생각그때의 나는 뭐랄까... 쓰...쓰레기? 11 세인트 21/08/24 4079 17
12007 역사서양 사학자 평가한 촉한 12 히하홓 21/08/24 4167 2
12006 정치국힘은 왕도 성장캐, 혹은 각성 왕귀캐가 필요하다 18 주식하는 제로스 21/08/23 3676 4
12005 일상/생각사람이 바뀌는 순간 15 sisyphus 21/08/22 3987 2
12004 게임휴먼카인드 리뷰 6 저퀴 21/08/22 4587 7
12003 일상/생각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4 lonely INTJ 21/08/22 4153 7
12002 정치미국사의 단편적인 장면으로 보는 현 정치에 대한 단상 9 호타루 21/08/21 4125 8
11999 일상/생각족보 4 私律 21/08/20 3691 32
11998 오프모임오늘밤 mm벙 애매한 시작 시간 8:45PM 15 지금여기 21/08/20 3944 1
11997 정치이준석 vs 국힘 12 Picard 21/08/20 3890 3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