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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2/03/19 18:01:12
Name   인생호의 선장
File #1   Screenshot_2022_03_19_at_16.07.41.jpg (23.7 KB), Download : 29
Subject   그럼에도 내가 보수인 것은


MBTI처럼 모든 인터넷으로 이루어지는 테스트는 그 정확성과 신뢰성.문항의 수 변별성 등에서 부족함이 많기 때문에
공신력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다양한 곳에서 정치성향 테스트를 해보았을 때 저는 늘 중도우파에 가까운 결과가 나옵니다.
과거에는 조금 더 자유주의적인 성향을 띄다가 최근에는 좀 더 공동체주의.국가주의적인 성향으로 바뀌었습니다.
참고로 저는 20대 중반 남성이며, 특정 정당과 정치인을 지지하는 것이 아닌 정치 성향적인 부분을 이야기하고 싶어 글을 남겨보며,
공대생으로서...ㅠㅠ 정치/사회는 교양수준의 지식 뿐이 없는 새럼입니다...

그럼 글을 시작해보면, 저는 그간 수많은 보수의 실패를 지켜보고 자유경제를 추종하는 자들의 몰락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어른이 꼰대로 바뀌는 것을 체감하였으며 김치녀가 한남으로 변하는 움직임도 지켜보았고, 대통령의 탄핵도 보았으며
위안부 시위 후원도 해봤다가 정의연 사태로 대가리 망치로 맞아도 보고,일본이 아닌 중국이 G2로 올라서고 미국의 지위가 흔들리는 것도 지켜보았습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어릴적 02로 시작하는 다이얼돌리는 집전화를 쓰다가 070 인터넷전화로. 정글짐 골절이 일상인 초등학교 운동장이
PC방 만석으로 옮겨가는 것도 본...일종의 아날로그->디지털 전환기도 겪었습니다. 남자는 파랑 여자는 핑크로 교육받고 자라다, 대학생 때 남성 소변기에 붙은 '한남 재X해'라는 포스트잇도 보았죠. 대학도 거의 딱 저 때부터 수시가 확대되어 저도 수시로 대학에 들어왔습니다.

굳이 이러한 것을 열거한 것은 그 짧은 시간동안 머리를 한 대 맞는 경험을 무수하게 해보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저뿐 아니라 여기에 계신 모든 분들이 동시에 겪은 일들이지만, 모쪼록 뭔가 가치관이 자리잡아갈 시점에 세계관 자체가 혼란하다 혼란해가 된 것이 제 경우라는 이야기입니다.그렇게 살다보니, 무엇이 내가 지향해야할 것인지가 흔들리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중립을 선언해버렸는데 결과적으로는 중립이라고는 해도 보수긴 하네요.

그렇게 보수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를 생각하다보니 사실 계기가 있긴 했습니다. 아마 제가 4살 때부터 키우던 강쥐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후에 펫로스로 하루하루가 힘들었을 때였을 겁니다. 어느새 얼굴에선 웃음기가 사라지고 매일 밤만 되면 베개를 끌어안고 숨죽여 울었죠. 그렇게 불면증에 유튜브를 전전하던 중 저와 비슷하게 남편을 사별한 중년 여성분이 스님에게 질문한 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중년 여성분은 대략 '남편에게 생전에 잘해주지 못했고, 마지막을 그렇게 힘들게 보낸 자신에 대한 죄책감'을 토로하였습니다. 어떤 위로를 건네야 할지 막막한 그 질문에 스님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너가 왜 부처인 줄 아느냐..너는 부처가 아니다...너는 일개 인간일 뿐이다..너는 전지하지도 전능하지도 않다. 그렇게 했던 것이, 그렇게 사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다'라고 말이죠. 어찌보면 모든 것에 면죄부를 줄 수도 있는 그런 말이지만, 반대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내가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는 것을 받아드리는 것 만이 억누르는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던 거죠.

그 당시에도 도움이 많이 되었던 말이지만, 지금의 제 가치관을 자리잡게 하는데도 영향을 끼친 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인간사. 특히 정치와 관련해서는 이 말이 특히 맞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저에게 있어 진보적인 정치란(국가의 역할을 확대하고 사회가 부의 재분배를 강제하는) "인간이 인간임을 인정하지 않는 방식"이라고 보았습니다. 인간은 원래 유한한 삶을 살며, 전지하지도 전능하지도 않으며 이성적이지도 않고 공감능력이 뛰어나지도 않으며 공정과 상식은 나의 기준이고, 나의 이익과 상대의 이익중 전자를 우선시킨다는 것을.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르며, 팔은 안으로 굽고 남의 떡이 더 커보이고 각자가 지닌 능력과 배경이 모두 다 다르고 필연적으로 비교우위가 발생한다는 것을 말이죠.

당연히 현재의 격차와 불평등을 보고만 있을 거면 정부가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러한 격차와 불평등을 '정치'가 모두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구는 것은 오히려 더 큰 문제를 만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관습적인 폐해를 개선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러한 관습을 모두 적폐라는 단어로 쓸모없고 구태한 것으로 보는 것. 새로운 정치와 가치관의 도입으로 이 모든 것을 바꾸겠다는 생각. 특히 그러한 '적폐'가 시스템적인 부분을 넘어 그 적폐를 구성하는 개개인에 대한 혐오로 넘어가는 것은 그 정도를 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정치가 아니라 종교이며, 혁명이 아니라 소요인 것입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틀린 말이지만 청춘은 원래 아픈 것이며, 시스템이 개선되어야하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개인의 나태.능력부족에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적 미의 기준이 평균적이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내추럴이라 포장한 비만이 아름다워지는 세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이가 들면 꼰대화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경험.베테랑의 권위를 무너트리는 것은 아니며, 체벌이 사라졌다고 교권이 무너져야하는 것은 아닙니다. 억압된 양육형태가 잘못된 것은 맞지만 그 반대가 방임과 방치 양육이 아닙니다. 강한 군대를 외친다고 해서 전쟁광도 아니고 평화를 외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 있다고 모두가 동시에 결승선에 들어오는 것도 아니며, 국가가 사회를 통제한다고 해서 사회가 평등해지는 것도 아니며 강한 정부는 강한 권력과 동치이며 강한 권력은 필연적으로 부패를 만듭니다. 민간의 이익을 뻇어오는 것이 공동의 이익이 커지는 것이 아니며, 여기서 뺏어오면 저기가 커지고 저기서 뺏어오면 여기가 커지며, 어디가 커지는 것이 정의도 아니고, 그 어디를 어떻게 뺏을까/얻어올까를 정하는 것도 '특정 집단 무리의 인간들'일 뿐입니다. 자신들도 똑같은 식욕.수면욕.성욕에 지배당하는 인간이면서 마치 깨달음을 얻은 수행자마냥 선지자적인 태도로 정치를 수행하는 것. 권력의 이동을 '정의의 승리'로 포장하는 태도. 그런 깨달음은 개인의 실천에서 끝나야지, 사회적인 억압으로 이어져서는 안됩니다. 인간이 인간임을 인정해야합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해야합니다. 

타자를 배제한다고 해서, 지금의 기준을 부정한다고 해서 그들이 생각하는 평등한 세상 전쟁없는 평화로운 세상은 절대 오지 않습니다. 입으로만 하는 정치는 정신승리일 뿐입니다. 그걸 주장하는 자도 신도 아니고, 선지자도 아니고 배척하고자 하는 지금 체제를 구성하는 사람들도 적폐도 악도 부도덕한 무리도 아니고 그저 '사람'입니다. 이걸 인정하지 않으면 대화도,진보도 없습니다. 같은 말을 듣고도 '아'라고 했다 '어'라고 했다라는게 인간의 한계이지만 사실을 이념과 도덕적이어보이는 말이 넘어버리면 안됩니다. 더 나은 미래를 그리지만 현재를 살아야 합니다. 불편해도,싫어도 해야하고 눈 딱감고 가야하는거지 기준과 생각을 바꿔버리는 쉬운 선택을 해버리면 안됩니다.

보수라고 해서 방임.방치.부패.혐오주의자가 아닙니다. 저도 기후변화가 심각한 문제라 인지하며, 전쟁을 반대하고, 현 공장식 축산은 지속가능하지 않으며, 여성/소수자 혐오가 만연하며, 노동자.안전보장.난민 문제를 인식하고 있습니다. 적게나마 정기후원을 하고 있으며, 우크라 사태로 벌게 된 금융소득도 기부하였고, 대체육 스타트업에 관심이 많고 봉사기회가 있으면 참석합니다. 이랬으니 나도 착한 인간이죠? 하고 인정해달란 것 아닙니다. 하지만 반대로 화석연료와 원전은 아직 쓰여야하며, 전쟁을 원하지 않지만 강한 국방이 필요하다 느끼며, 중처법은 문제가 있고, 작금의 극단 여성주의자들의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생각합니다. 기후변화를 걱정하지만 내연기관 차를 다니고, 해외여행도 자주 가고 싶으며, 거의 매일 공장식 축산된 고기를 먹습니다. 내가 마신 카페 모카에 들어가는 초콜릿 생산에 초콜릿 한 번 못 먹어본 미성년자 노동착취가 일어남을 알고, 계육공장 영상을 보며 눈물이 나지만, 치킨은 먹습니다.  내가 인간이니 이렇게 이기적인게 당연하니까 면죄부줘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이니까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는거고 절간에 들어가 혼자 살게 아닌 이상 내가 아무리 깨끗한 인간이고 싶어도 누군가의 착취. 현 부패구조에 기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세상을 넌 진보니 보수니 딱 자를 수도 없고 정규분포 곡선 그릴꺼고 그렇습니다. 제가 언급한 것들이 '진보지지자'들이 그렇다는 이야기도 아니고요. 다만, 제가 느낀 결론은 어차피 '너도 나도 인간이고, 모두 더 나은 미래를 그리지만 미래 이전에 현실을 살자'는 겁니다. 혐오를 반대하는 자들이 혐오를 일삼고, 가야할 미래는 말하지만 정작 현실을 말하지는 않는. 이상주의와 자아비대가 만연한 그런 사회는 제가 살고 싶지 않는 사회입니다. 보기 불편한 내용들이 있었다면 죄송합니다. 죄송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의견에 반대한다고 해서 적폐에 일조하고 혐오에 참여하는 사람이 아닌데...반대만 말하면 입단속을 당해버리고 조리돌림이 되는 세상이 너무 지긋지긋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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