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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2/05/08 19:56:57수정됨
Name   moqq
Subject   내 안의 진보는 끝났는가?
안그래도 이번 대선이 나에게 있어 처음으로 보수진영에 투표한 일이라
한 번쯤 내 안에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는데, 진보담론이 끝났는가? 하는 글이 올라와서 글을 끄적여봅니다.
죄송하지만 편의상 반말로 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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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넷 사람들은 믿지 못하겠지만 나도 소싯적엔 진보였다.
화염병, 쇠파이프도 만져보고, 안가도 구해보고, 점조직 말단 역할도 해봤다.
(아직도 당시 내 연락책 위에 누가 있었는지 모름..)
연대의 가치를 믿었고, 페미니즘을 지지하며 남성으로서의 내가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는지를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당시 ‘또문’에서 출판한 책이나 언니네, 일다 같은 곳의 글들은 여성의 생각들을 이해하는데 꽤 도움이 됐었는데..
언니네는 망한지 오래고. 또문은 몰겠네.
얼마 전 여성주의 저널 일다.가 네이버 뉴스에도 링크되어서 반가운 기분이 들었으나 혹여나 내 생각과는 다른 내용들이 실려있을까 싶어 들어가보진 않음..
여튼 집회도 나가고 할 수 있는 봉사활동을 하고 선거 때는 꾸준히 진보정당에 투표했다.

굳이 이런 소용없는 얘기들을 끄적여 보는 건 MB식처럼 내가 다 해봐서 아는데 뭐 이런 얘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고,
내가 뭐 김문수처럼 운동권 출신이다 이런 얘기를 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단지 내가 이런 경험을 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생각이 바뀌어갔는지를 짚어보기 위함일 뿐.

여하간 평범한 운동권이던 나는 20대 후반 대학을 벗어나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젠 학생이 아니니 학생운동도 아니고, 집회를 다닐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정치적 활동에서 멀어지며, 생계를 꾸려나가는 소시민이 된거지. 뭐 그래도 활동가 선배들이 만든 기부단체에 들어가고, 장애인 단체에 봉사도 다니고 했는데 학생시절의 활동이 어떤 틀 위에서 관성적으로 했던 활동이었다면, 이 때부터는 내 선택에 따라 내 활동이 정해지는 시기였다. 왜 옛날에 문화재 같은 거 가면 공연할 때 사람들이 다 일어나서 노래부르고, 집회끝나고 새벽에 모여서 또 발언하고 어쩌고 하는 거 진짜 잘 안맞았는데 그런 걸 할 필요가 없어지게 된거다. 이 때 깨달은 것은 내가 개인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사람이며, 봉사활동에서 크게 보람을 느끼진 못하는 사람이었다는 것 정도?

여하간 그렇게 진보의 꼬리표를 달고 봉사단체에 적을 두고 살던 시기.
단체에서 하나의 일이 발생한다. 단체장이 보수일간지와 인터뷰를 한 것이었다!
그걸 두고 회원들끼리 논쟁이 벌어졌는데
아무리 이득이 된다해도 보수일간지와 인터뷰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 Vs 아무렴 어떠냐? 활동이 넓어지면 그만이지.
(요새같으면 뭐가 문제냐 싶겠지만 예전에 운동권이 당구장가도 되느냐를 가지고도 싸우던 사람들이라…)
당시에 논쟁을 보며 생각했는데.. 영향력이 있으면 다인가? 그럼 이명박이 10억 기부하면 받아야하나? 이런 생각을 하다가 어? 근데 내가 아무리 봉사단체 활동을 해도 이명박이 10억 기부하면 그게 실제 장애인들에게 훨씬 더 큰 도움이 되는 거잖아? 그런 생각? 뭐 지금으로선 당연한 얘기지만 대깨운동권, 자본의 가치를 폄하하던 사람으로서는 꽤 큰 일이었다.
따져보면 뉴스에 나오는 연예인들이 아무리 도박을 해도 그 사람들은 나보다 세금을 많이 내는 더 훌륭한 시민이다.

꼭 이것 때문은 아니지만 이 시기부터는 좌파적 이념이 현실 세계에서 가지는 영향력에 대해 좀 더 냉정하게 봤던 것 같다. 실제로 정권을 잡을 수 있다거나 잡아야 한다거나 이런 행복회로는 돌리지 않게 되었던 듯..(실제로 운동권들 더러운 꼴도 충분히 많이 봤고..)
솔직히 지금까지 수천년동안 많은 개혁가들이 체제를 개혁하려 했지만 대부분 성공하지 못하고 보통은 체제의 모순이 붕괴되면서 변화가 일어났으니.. 이제 와서 내가 하는 활동이 사회를 좋게 바꾼다는 것 역시 믿지 못하게 된 것도 있고..
또 예전에 호주제 폐지가 있었는데, 내가 아는 한 호주제 폐지는 여성진영에서 그렇게 큰 이슈는 아니었다. 다만 어느 순간 폐지되어 버렸지. 당시 성대 앞에서 유생 차림의 노인들이 엄청 시위를 했었지만 아무런 반향없이 지나가 버렸다. 결국 누가 애쓰지 않아도 사회적인 생각의 흐름에 따라 바뀔 일은 바뀌어 간다는 것 또한 내가 정치적으로 게을러지는 걸 정당화하는 수단이 되었다..

다음으로 내가 겪었던 일은 진보정당에서의 민주적 절차가 무시된 일이었다. 당시 서울시장 선거에 진보정당 후보가 출마했었는데, 총회에서 결정된 사안이 이 후 별 얘기없이 바뀐 부분이 있었다. 이 때 나는 진보정당을 탈퇴하고 이후로는 얼쩡거리지도 않았다.
그래도 30대 초반까지는 계속 진보정당의 이념과 활동이 실제 우리 사회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왼쪽으로 넓히는 일을 한다고 믿고 지지하긴 했었는데 갈수록 진보정당의 한계를 느끼게 되었다.
그 전에는 현실정치에서 거대양당이 맨날 쓸데없는 정쟁만 한다고 생각하며 관심을 크게 안가졌는데 (물론 지금도 그런 생각이다.) 이명박, 박근혜가 대통령을 겪고 나니 실제 시스템에서의 정치가 현실적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을 이 때서야 시작함..  ㅋ
우선 박근혜 응징이 우선 과제였는데 진보후보를 대통령으로 올린다 한들 이명박근혜를 처벌할 수 있을까 의문스러웠고
둘째로 나라의 시스템을 굴릴 인재풀도 없다는 현실적인 생각을 40이 다되서야 했으니 그 전까진 진짜 그냥 관념덩어리가 아니었을까?

이후로 시간이 지나 아이가 크고 인플레이션을 겪으면서
아 야발.. 나는 월급쟁이고 수입이 뻔한데 내 먹고 살 걱정을 해야할 판이네?
+ 정부를 믿고 무주택이던 사람들은 벼락거지가 되어버렸네?
콤보로 내 살길은 내가 마련해야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내 이념과 별개로 내 살길은 알아서 찾는 게 맞다는 걸 느꼈다는거지.
뭐랄까 국가는 국가의 일을 하고, 나는 나의 일을 하고..
현실 자본가로 살면서 왼쪽을 지지하는 게 잘못된 것도 아니잖아. 빌게이츠나 워렌버핏처럼.
이처럼 자본의 논리에 적응해서 사는 것이 잘못된 것도 아니고,
오히려 그들이 일자리를 만들고 세금을 내는 걸 인정해야 한다는 것?

여튼 내가 지금까지 생각이 변한 부분들을 다 엮으면,
운동권이 현실정치의 대안이 되긴 어렵다.
개인은 개인의 살길을 스스로 찾아야한다.
이념보다 돈이 힘이 있고 개인이 자본 논리를 따른다해도 세금을 많이 내면 모범시민.
민주주의에서는 누구나 1표. 결국 모두의 욕망은 동일한 한 표로서 가치를 가진다.
아 물론 그렇다고 원래 믿던 왼쪽 이념들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절대선은 아니고 서로 존중하고 타협해야한다는거지.
타협하지 못하는 래디컬들이 어떤 결과들을 가져오는지 우리 모두 충분히 경험했다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내 안의 진보담론은 더 이상 보수담론보다 우위를 지니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나에게 있어 진보담론의 우위는 끝났다고 본다.
나는 이런 결론이 내가 40대를 지나면서 보수화되었다? 이렇게 생각하진 않고
오히려 요새 젊은 사람들은 나보다 더 똑똑하고 현실적인데 내가 느끼는 것을 느끼지 못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사회분위기가 변하긴 변한 게 아닐까?

이 글을 쓰면서 생각났던 책은
김연수 작가의
9월의 이틀, 밤은 노래한다.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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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대 초반인 저와 변화과정이 비슷합니다.
  • 다들 그러하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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