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3/02/12 22:25:18
Name   카르스
Subject   수학 잘하는 동아시아인의 역사적 기원


동아시아인은 수학을 매우 잘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습니다.
실제로 PISA를 위시한 교육 지표에서 동아시아가 매우 높게 나오거든요.
이 고정관념으로 고통받는 동아시아 유학생과 이민자들의 일화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이런 동아시아인의 위대한 수학 역량은 단순히 현대 교육열 덕분일까요?
Baten and Sohn (2017)에 따르면 한국, 더 나아가 동아시아의 상대적으로 높은 수학능력은
400-500여년 전 이미 나타나, 높은 수학능력이 역사적인 근원이 있는 현상임을 보입니다.
중국, 조선, 일본 모두 당대의 유럽 지역보다 더 높은 수학능력을 보였습니다.


Baten and Sohn은 이 논문에서 조선인들의 수리력(numeracy - 여기서는 간단한 정수를 더하고 뺄 수 있는 능력) 수준을 조선 단성 지역(현 경상남도 산청군)의 호적 연령자료를 이용해 계산합니다.
수리력이 없는 사람들은 자기 연령을 응답할 때 0, 5세 단위로 뭉뚱그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호적에서 자기보고 형태로 응답하는 연령값 뒷자리 분포가 얼마나 0, 5에 집중되어 있는지를 바탕으로
수리력 있는 사람의 비율을 역산해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수리력 등 교육수준이 평균적으로 낮은 지역일수록 나이 쌓기(age-heaping) 현상이 빈번해져서 0과 5로 끝나는 연령의 비율이 더 높아집니다. (Mokyr, 2006; A'Hearn et al., 2009)


그 결과, 1550-70년대생 조선인 90%가 수리력이 있어 절대다수의 조선인들이 간단한 덧셈뺄셈이 가능한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1590년대생 일본인 81%보다 더 높은 수치입니다.

당시 타 지역과 수리력을 비교하면 이 수치의 높음이 더 돋보입니다.  




보다시피 1550-1599년생 남유럽인, 북서유럽인은 전체 인구의 70%만 수리력을 갖췄고, 동유럽인은 1600-1649년생 기준 60%만 수리력을 갖췄습니다.
반면에 한국 일본은 이미 1550-1599년생 수리력 가진 인구 비율이 80%~90%에 달해 남유럽, 북서유럽, 동유럽보다 더 높았습니다.
16세기 시절에 이미 서구보다도 더 앞선 셈이지요. 시기적으로는 한두세기 정도 앞섰습니다.
중국도 1650-1799년생의 무려 93.6%~99.2%가 수리력을 갖추어서 동시기 유럽 국가들보다 높습니다.


이는 동아시아의 전근대 교육, 인적자본 수준이 몇백년 전부터 이미 높았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물론 전근대의 교육, 인적자본의 우수함이 자생적 근대화를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똑같이 높은 수리력을 갖춘 동아시아 지역이지만
자생적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과 실패한 중국, 조선으로 나뉘었지요.

하지만 이러한 높은 교육, 인적자본 능력이 현대 동아시아의 눈부신 경제성장, 교육열과 높은 인적자본 수준의 기원이 되었다면 지나친 추측일까요?
이미 수백년 전에 존재했던 높은 수리력의 기반이
20세기의 눈부신 발전과 현재의 높은 교육수준으로 이어졌을 개연성이 높다고 저자들은 지적합니다.

출처: Baten, J., & Sohn, K. (2017). Numeracy in early modern Korea, Japan, and China: The age-heaping approach. Japan and the World Economy, 43, 14-22.



4
  • 굉장히 흥미롭네요!!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3595 사회한국 인구부양비 악화의 진짜 원인 (부제: 출산율 2.1 찍어도 인구부양비 악화는 피할 수 없다) 27 카르스 23/02/24 3229 9
13588 정치이명박 정권 초기를 보는듯한 2023년 한국정치 25 카르스 23/02/22 3144 4
13583 사회서구와 동아시아에서 추구하는 자유는 다르다 13 카르스 23/02/21 2298 7
13569 사회한국인과 세계인들은 현세대와 다음 세대의 삶을 어떻게 보는가 6 카르스 23/02/15 2077 6
13561 역사수학 잘하는 동아시아인의 역사적 기원 28 카르스 23/02/12 2799 4
13546 사회통계로 본 비수도권 청년 인구유출 추이 7 카르스 23/02/06 2824 9
13538 사회석학의 학술발표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왜곡되어 소비되는 방식 13 카르스 23/02/03 2653 29
13513 경제인구구조 변화가 세계 경제에 미칠 6가지 영향 13 카르스 23/01/27 3173 10
13499 정치윤석열 정부 한미동맹 어젠다의 의외의 걸림돌 14 카르스 23/01/22 2557 2
13457 경제때늦은 2022년의 경제학 (+인접분야) 논문읽기 결산 8 카르스 23/01/04 2216 12
13441 일상/생각내 인생의 전환점, 2022년을 결산하다 7 카르스 23/01/01 2256 22
13420 사회하나의 그래프로 압축해본 한국 일본사회 비교 29 카르스 22/12/22 2963 6
13347 스포츠BBC 월드컵 예측의 놀라운 적중률 6 카르스 22/11/24 2887 0
13336 정치페미니즘-반페미니즘 담론은 정점을 지났는가 100 카르스 22/11/20 4540 2
13308 사회한국 사회의 검열이 완화되지 않는 진짜 이유? 80 카르스 22/11/10 4104 7
13119 사회한국 인구구조의 아이러니 20 카르스 22/09/01 4130 51
13100 일상/생각자폐 스펙트럼과 일반인의 경계에서 살아온 사람의 이야기 14 카르스 22/08/21 6507 71
12996 정치요즘 정치에 대한 세 가지 단상 27 카르스 22/07/13 4523 10
12935 음악유자왕 피아노 연주회 리뷰 (2022.06.19, 예술의전당) 9 카르스 22/06/19 2836 9
12891 일상/생각나머지는 운이니까 16 카르스 22/06/05 3964 30
12814 음악아마추어인 내가 피아노 콘서트를 연다면 13 카르스 22/05/14 3190 5
12790 사회윤석열을 맞이하며: 진보 담론의 시대는 끝났다 76 카르스 22/05/08 5599 47
12757 사회왜 요즘 페미니즘은 성적으로 덜 개방적인가 52 카르스 22/04/28 5248 14
12756 사회OECD 지역웰빙 지수로 본 한국의 지역격차 14 카르스 22/04/27 3261 10
12742 사회현대 청년들에게 연애와 섹스가 어렵고 혼란스러운 결정적인 이유 56 카르스 22/04/19 5622 16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